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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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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가옥(박노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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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수 가옥은 1938년대 지어진 절충 가옥으로 한옥과 양옥의 건축기법을 포함하여 중국식 건축기법이 사용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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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수 가옥은 1938년대 지어진 절충 가옥으로 한옥과 양옥의 건축기법을 포함하여 중국식 건축기법이 사용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파일:청주_일양절충식가옥.jpg|400픽셀]]<ref>"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C%A3%BC_%EB%AC%B8%ED%99%94%EB%8F%99_%EC%9D%BC%C2%B7%EC%96%91_%EC%A0%88%EC%B6%A9%EC%8B%9D_%EA%B0%80%EC%98%A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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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청주_일양절충식가옥.jpg|400픽셀]]<ref>사진 출처: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C%A3%BC_%EB%AC%B8%ED%99%94%EB%8F%99_%EC%9D%BC%C2%B7%EC%96%91_%EC%A0%88%EC%B6%A9%EC%8B%9D_%EA%B0%80%EC%98%A5</ref>
 
* 국가등록문화재(2002년 2월 28일 지정)
 
* 국가등록문화재(2002년 2월 28일 지정)
 
* 시대: 1924년
 
* 시대: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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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과 문화동의 경계가 되는 언덕 아래에 있으며 건립 당시 45도 경사의 물매 지붕을 갖고 있어, 청주지역의 어느 장소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뾰족 양철지붕이었다. 양식 및 일식 주택의 평면구성을 보이며, 지붕의 사면이 박공 형태로 이루어진 ‘+’자형 사모임 지붕으로 이루어진 주택건물로써, 평면형식에 있어서 홀형과 중복도형이 병용된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형식의 주택이었다.</br>
 
: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과 문화동의 경계가 되는 언덕 아래에 있으며 건립 당시 45도 경사의 물매 지붕을 갖고 있어, 청주지역의 어느 장소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뾰족 양철지붕이었다. 양식 및 일식 주택의 평면구성을 보이며, 지붕의 사면이 박공 형태로 이루어진 ‘+’자형 사모임 지붕으로 이루어진 주택건물로써, 평면형식에 있어서 홀형과 중복도형이 병용된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형식의 주택이었다.</br>
 
: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은 1924년 모 은행장의 사택으로 건립되었으며, 1950년 후반부터 청주YMCA(1948년 2월 15일 창립)가 이곳에서 20여 년간 사업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1955년 11월 9일 청주 YMCA에서 미군 C.A.C의 원조자재를 얻어다 강당을 신축했으며, 1999년 5월 10일 1층 화장실을 증축하였고 현재는 우리예능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2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br>
 
: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은 1924년 모 은행장의 사택으로 건립되었으며, 1950년 후반부터 청주YMCA(1948년 2월 15일 창립)가 이곳에서 20여 년간 사업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1955년 11월 9일 청주 YMCA에서 미군 C.A.C의 원조자재를 얻어다 강당을 신축했으며, 1999년 5월 10일 1층 화장실을 증축하였고 현재는 우리예능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2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br>
:복도를 통하여 다다미방들이 연결된 일식주택에서는 보기 힘든 1920년대에 소개된 방갈로 풍의 이국적 외관을 갖고 있어, 주거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ref>"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淸州文化洞日洋折衷式家屋]",네이버지식백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19054&cid=40942&categoryId=3308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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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통하여 다다미방들이 연결된 일식주택에서는 보기 힘든 1920년대에 소개된 방갈로 풍의 이국적 외관을 갖고 있어, 주거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ref>"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淸州文化洞日洋折衷式家屋]",네이버 지식백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19054&cid=40942&categoryId=3308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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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흥동 일·양 절충식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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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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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등록문화재(2008년 07월 03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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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1929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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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대전광역시 중구 문창로 119-15 (대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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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주: 대전광역시 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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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7월 3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29년 철도국장 관사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주택이다. 대전 지역 근대건축물 중 개인 소유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집이다. 뾰족집이란 이름은, 지붕의 경사가 급한 박공형일 뿐 아니라 거실 부분의 지붕이 원뿔 모양이어서 붙은 것이다. 규모는 대지 449㎡, 연면적 119㎡ 정도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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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구성은 1920년대 일본 가옥의 방식을 따랐다. 그런데 미리 유리를 끼워서 짠 창, 남쪽으로 난 원형의 거실 등 세부적인 꾸밈은 외형은 중세 서양의 특성을 절충하였다. 평면상 원형으로 돌출되어 있는 거실의 원뿔형 지붕 부분은 외관상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축자재는 대부분 일본에서 가져온 것으로 사용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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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층에 방 4개, 위층에 방 2개 등 모두 6개의 방과 부속실로 구성되어 있다. 2층방은 짚을 두껍게 깐 일본식 다다미방이 그대로 남아 있고 동(銅)으로 짠 문틀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건축 당시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많은 주택이다. 이대길이 소유하고 대전광역시 중구에서 관리한다. <ref>"대전 대흥동 일·양 절충식 가옥 [大田 大興洞 日·洋 折衷式 家屋]",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86434&cid=40942&categoryId=33080</ref>
  
 
=='''참고문헌'''==
 
=='''참고문헌'''==

2023년 12월 9일 (토) 20:03 판


개요

현재 대한민국에 소재한 근대건축물들 중 두 개 이상의 주거 양식이 절충된 가옥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목록

박노수가옥(박노구미술관)

  • 박노수 가옥은 1938년대 지어진 절충 가옥으로 한옥과 양옥의 건축기법을 포함하여 중국식 건축기법이 사용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청주 일양절충식가옥.jpg[1]

  • 국가등록문화재(2002년 2월 28일 지정)
  • 시대: 1924년
  • 소재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로122번길 18 (문화동)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과 문화동의 경계가 되는 언덕 아래에 있으며 건립 당시 45도 경사의 물매 지붕을 갖고 있어, 청주지역의 어느 장소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뾰족 양철지붕이었다. 양식 및 일식 주택의 평면구성을 보이며, 지붕의 사면이 박공 형태로 이루어진 ‘+’자형 사모임 지붕으로 이루어진 주택건물로써, 평면형식에 있어서 홀형과 중복도형이 병용된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형식의 주택이었다.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은 1924년 모 은행장의 사택으로 건립되었으며, 1950년 후반부터 청주YMCA(1948년 2월 15일 창립)가 이곳에서 20여 년간 사업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1955년 11월 9일 청주 YMCA에서 미군 C.A.C의 원조자재를 얻어다 강당을 신축했으며, 1999년 5월 10일 1층 화장실을 증축하였고 현재는 우리예능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2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복도를 통하여 다다미방들이 연결된 일식주택에서는 보기 힘든 1920년대에 소개된 방갈로 풍의 이국적 외관을 갖고 있어, 주거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2]

대전 대흥동 일·양 절충식 가옥

[[파일:대전일

  • 국가등록문화재(2008년 07월 03일 지정)
  • 시대: 1929년경
  • 소재지: 대전광역시 중구 문창로 119-15 (대흥동)
  • 소유주: 대전광역시 중구청
2008년 7월 3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29년 철도국장 관사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주택이다. 대전 지역 근대건축물 중 개인 소유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집이다. 뾰족집이란 이름은, 지붕의 경사가 급한 박공형일 뿐 아니라 거실 부분의 지붕이 원뿔 모양이어서 붙은 것이다. 규모는 대지 449㎡, 연면적 119㎡ 정도이다.
공간구성은 1920년대 일본 가옥의 방식을 따랐다. 그런데 미리 유리를 끼워서 짠 창, 남쪽으로 난 원형의 거실 등 세부적인 꾸밈은 외형은 중세 서양의 특성을 절충하였다. 평면상 원형으로 돌출되어 있는 거실의 원뿔형 지붕 부분은 외관상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축자재는 대부분 일본에서 가져온 것으로 사용했다.
아래층에 방 4개, 위층에 방 2개 등 모두 6개의 방과 부속실로 구성되어 있다. 2층방은 짚을 두껍게 깐 일본식 다다미방이 그대로 남아 있고 동(銅)으로 짠 문틀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건축 당시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많은 주택이다. 이대길이 소유하고 대전광역시 중구에서 관리한다. [3]

참고문헌

각주

  1. 사진 출처: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C%A3%BC_%EB%AC%B8%ED%99%94%EB%8F%99_%EC%9D%BC%C2%B7%EC%96%91_%EC%A0%88%EC%B6%A9%EC%8B%9D_%EA%B0%80%EC%98%A5
  2.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淸州文化洞日洋折衷式家屋]",네이버 지식백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19054&cid=40942&categoryId=33084
  3. "대전 대흥동 일·양 절충식 가옥 [大田 大興洞 日·洋 折衷式 家屋]",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86434&cid=40942&categoryId=3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