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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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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은 처음부터 적대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종이 성인이 된 시점부터 사이가 점점 틀어지게 되었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은 처음부터 적대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종이 성인이 된 시점부터 사이가 점점 틀어지게 되었다.
  
1873년, 명성황후는 왕실 및 친족들을 포섭하여 남편인 고종이 친정할 수 있도록 설득하였다. 최익현으로 하여금 고종의 친정과 흥선대원군의 하야와 퇴진을 요구하는 소를 지속적으로 올리게 하여 결국 대원군의 퇴진과 고종의 친정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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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명성황후는 왕실 및 친족들을 포섭하여 남편인 고종이 친정할 수 있도록 설득하였다. 최익현으로 하여금 고종의 친정과 흥선대원군의 하야와 퇴진을 요구하는 소를 지속적으로 올리게 하여 결국 대원군의 퇴진과 고종의 친정을 이끌어냈다.  
  
 
이후 임오군란을 일으킨 병사들이 흥선대원군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키자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간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이후 임오군란을 일으킨 병사들이 흥선대원군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키자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간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는 조선의 정권을 잡기위한 경쟁구도 속에서 필연적인 대립관계가 수립된 것이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는 조선의 정권을 잡기위한 경쟁구도 속에서 필연적인 대립관계가 수립된 것이다.

2023년 12월 6일 (수) 15:36 판

출생

명성황후(본명:민자영)은 1851년 9월 25일 경기도 여주목 근동면 섬락리에서 아버지 민치록과 어머니 한창부부인 한산 이씨 사이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명성황후.jpg

생애

즉위

조선의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정실이며 1866년 3월 21일 조선의 왕비로 즉위하였으며 1895년 1월 12일 대한제국의 왕후로 즉위하였다.

사망

을미사변[1]

1895년 10월 8일 당시 조선 주재 일본공사인 미우라 고로를 중심으로 일본군 공사관 수비대와 경관, 일본군 경성 수비대 일부,일본인 낭인들,조선군 훈련대가 경복궁에 무력으로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포함한 조선인 궁중 인사들을 집단 살해하였다.

이는 러시아를 통해 일본의 침력을 막으려 하였던 고종과 명성황후의 계획을 알아챈 일본이 계획적으로 벌인 일로서 명성황후의 죽음은 을미의병[2]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경복궁에 감금되었던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하였다.

흥선대원군과의 관계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은 처음부터 적대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종이 성인이 된 시점부터 사이가 점점 틀어지게 되었다.

1873년, 명성황후는 왕실 및 친족들을 포섭하여 남편인 고종이 친정할 수 있도록 설득하였다. 최익현으로 하여금 고종의 친정과 흥선대원군의 하야와 퇴진을 요구하는 소를 지속적으로 올리게 하여 결국 대원군의 퇴진과 고종의 친정을 이끌어냈다.

이후 임오군란을 일으킨 병사들이 흥선대원군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키자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간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는 조선의 정권을 잡기위한 경쟁구도 속에서 필연적인 대립관계가 수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