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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계획이란?'''==
 
=='''경제개발계획이란?'''==
 
  국민 경제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일정 기간을 단위로 하여 짠 계획. 1959년 3월 부흥부 산하의 산업 개발 위원회에서 작성한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안’이 정부가 마련한 경제 개발 계획의 시초이다.<ref>[https://ko.dict.naver.com/#/entry/koko/94b0c93a5d2049c69c43f9eaef447640 우리말샘]</ref>
 
  국민 경제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일정 기간을 단위로 하여 짠 계획. 1959년 3월 부흥부 산하의 산업 개발 위원회에서 작성한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안’이 정부가 마련한 경제 개발 계획의 시초이다.<ref>[https://ko.dict.naver.com/#/entry/koko/94b0c93a5d2049c69c43f9eaef447640 우리말샘]</ref>
 
  
 
=='''도입'''==
 
=='''도입'''==
1953년 3월에 발표되었던 국제연합한국부흥단(UNKRA)의 ‘한국경제재건계획(네이산보고서)’이 있었으나, 원조정책의 일환으로 작성된 건의보고서로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으며, 1959년 3월 부흥부 산하에 있던 산업개발위원회에서 작성된 경제개발3개년계획안(1960∼1962)이 정부가 마련한 경제개발계획의 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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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월에 발표되었던 국제연합한국부흥단(UNKRA)의 ‘한국경제재건계획(네이산보고서)’이 있었지만, 경제개발계획으로는 공식 채택되지 않았다. 이후  1959년 3월 부흥부 산하에 있던 산업개발위원회에서 작성된 <span style="background:#F2EFFB">경제개발3개년계획안(1960∼1962)</span>이 정부가 마련한 경제개발계획의 시초가 되었다.
  
 
=='''진행'''==
 
=='''진행'''==
 
==='''1962년~1966년'''===
 
==='''1962년~1966년'''===
목표는 모든 사회적·경제적인 악순환을 시정하고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성장여건의 조성을 위한 기본 방향을 ① 전력·석탄 등의 에너지공급원의 확보, ② 농업생산력의 증대, ③ 기간산업의 확충과 사회간접자본의 충족, ④ 유휴자원의 활용, ⑤ 수출증대를 주축으로 하는 국제수지의 개선, ⑥ 기술의 진흥 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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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에는 사회적, 경제적인 악순환을 끊고 <span style="background:#F2EFFB">자립적 경제를 하기 위한 토대</span>를 쌓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을 전력과 같은 에너지 공급원의 확보, ② 농업 생산력 증, ③ 기초산업의 확보와 사회간접자본의 충족, ④ 유휴자원 활용, ⑤ 수출증대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수지의 개선, ⑥ 기술의 발달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성과는 경제규모면에서는 이 기간의 연평균성장률이 7.8%로서 계획을 초과하였고, 산업별로는 특히 광공업 부문이 급성장하여 산업구조의 개선에 적지 않은 진전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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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로는 이 기간의 연평균성장률이 7.8%로 원래의 계획을 넘었으며, 광공업 부문이 성장하였다는 점이 있다.
  
 
==='''1967년~1971년'''===
 
==='''1967년~1971년'''===
그동안의 경험과 정비된 통계자료를 이용, 계량모형화하였고, 국내의 경제여건과 시장기구 등을 다각적으로 반영한 장기전망을 토대로 하였다는 점에서 계획기술상으로 제1차 경제개발계획보다 훨씬 우수하였다. 이 기간의 기본 목표는 산업구조를 근대화하고 자립경제 확립을 더욱 촉진시키는 데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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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에는 <span style="background:#F2EFFB">근대적인 산업구조를 설립하고 자립적인 경제를 촉진</span>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을 ① 식량의 자급, ② 철강, 기계 및 화학공업에 중점을 둔 공업구조의 고도화, ③ 수출증진과 수입대체에 의한 국제수지의 개선, ④ 고용증대와 인구팽창 억제, ⑤ 국민소득의 향상, ⑥ 기술수준과 생산성제고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기본 방향은 ① 식량의 자급, ② 철강·기계 및 화학공업에 중점을 둔 공업구조의 고도화, ③ 수출증진과 수입대체에 의한 국제수지의 개선, ④ 고용증대와 인구팽창 억제, ⑤ 국민소득의 향상, ⑥ 기술수준과 생산성제고 등에 중점을 두었다. 개발전략은 수출증대와 수입대체로 집약되며 개방경제체제하의 자립도의 제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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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로는 기간부터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되었으며, 연평균경제성장률이 9.7%였다는 점이 있다.
 
 
기간에는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추진되었으며, 수출의 급성장과 더불어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7%로서 계획을 초과 달성하였다. 이와 같은 높은 성장률은 우리 나라 경제를 도약의 발판 위에 올려놓았다.
 
  
 
==='''1972년~1976년'''===
 
==='''1972년~1976년'''===
기본 목표는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균형성장을 위한 성장·안정·균형의 조화에 두고, 그 기본 방향은 중화학공업의 육성과 자본재의 수입의존도를 지양하고 국민경제의 자립화기반을 더욱 다지면서 ① 산업구조의 고도화, ② 국제수지의 개선, ③ 주곡의 자급, ④ 지역개발의 균형에 치중함으로써 전반적인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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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에는 <span style="background:#F2EFFB">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키면서 균형적인 성장</span>을 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은 ① 산업구조의 고도화, ② 국제수지의 개선, ③ 주요 곡식의 자급, ④ 지역개발의 균형에 치중함을 통해 성장과 안정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제1차 개발계획은 성장의 여건, 제2차 개발계획은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였지만 제3차 개발계획은 질적인 충실화에 두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겪었던 석유파동이라는 중대한 시련과 불황에 직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의 연평균경제성장률이 9.7%로 높은 것은 획기적인 수출신장에 힘입은 바 컸다. 즉, 1976년 수출이 78억 1000만 달러의 규모에 도달함으로써 5년 동안에 무려 7배의 수출증가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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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로는 5년만에 7배의 수출증가를 이루었으며, 중화학공업이 성장했고, 자본재의 대외의존도가 낮아졌다는 점이 있다.1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은 철강·수송용 기계·전자공업·조선공업 등 중공업이 성장산업으로 등장하면서 중화학공업의 구성비율을 한층 높이고, 자본재의 대외의존도를 경감시켰다는 점이다.
 
  
 
==='''1977년~1981년'''===
 
==='''1977년~1981년'''===
제1·2·3차 개발계획과는 달리 사회개발의 필요성과 형평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자 계획목표는 자력성장구조의 실현, 사회개발을 통한 형평의 증진, 기술혁신과 능률의 향상에 두고, 기본 방향은 3차에 걸친 계획의 전략을 이어받아 철강·석유·비료·양회·기계·전자·조선 등의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전략, ② 사회간접자본의 계속적인 확충, ③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능률향상과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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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에는 사회의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span style="background:#F2EFFB">자력성장구조의 실현, 사회개발을 통한 형평의 증진, 기술혁신과 능률의 향상</span>에 목표를 두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은 ①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 전략, ② 사회간접자본의 지속적인 확보, ③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능률향상과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그러나 1980년 경제개발계획을 착수한 이후 최대의 경제적 시련을 겪는 동시에, 모든 부문에서 계획을 크게 밑도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경제난국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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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80년 경제개발계획을 시작 이후 최대의 경제적 시련을 겪었으며, 모든 부문이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여 경제난국이 발생하였다.
  
 
==='''1982년~1986년'''===
 
==='''1982년~1986년'''===
목표를 경제성장의 지속과 사회발전을 통한 국민복지향상에 둠으로써 명칭도 종래의 ‘경제개발계획’에서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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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에는 전과 다르게 <span style="background:#F2EFFB">국민의 복지 향상</span>에 목표를 둠으로써 명칭이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은  ① 물가안정을 위한 기반 구축, ② 국제수지 개선, 생산성의 향상, ④ 사회발전 촉진, 합리적인 제도 발전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이 계획의 기본방향은 물가안정의 기반구축, 국제수지의 개선, 생산성의 향상, 사회발전의 촉진, 합리적인 제도의 발전 등에 두었다. 그러나 국내외 여건의 변화에 따라 제2차 연도인 1983년 수정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1987년~1991년'''===
 
==='''1987년~1991년'''===
기본 방향은 자율과 경쟁에 입각하여 자원이 배분될 수 있도록 시장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도와 주고, 분배의 공평을 도모하는 데 두고 있다. 이 계획은 달러화의 가치가 최고 수준에서 떨어지기 시작하고 또한 미국의 금리나 석유가격도 떨어지게 되는 시점인 1985년에 시작하여 1986년에 완성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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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에는 <span style="background:#F2EFFB">시장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돕고, 분배의 공평을 추진</span>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1992년~1996년'''===
 
==='''1992년~1996년'''===
계획은 한국경제와 사회가 당면한 각종문제를 연구검토하여 작성되었다. 이 계획은 무엇보다도 한국이 선진국 진입문턱에 도달하는 기간의 계획이며 1인당 소득 1만 달러 목표달성을 좌우하는 시점의 계획이란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계획은 제6차 계획과 더불어 형평의 제고와 조화있는 국제화추진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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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에는 <span style="background:#F2EFFB">조화로운 국제화 추진</span>을 목표로 두고 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782
 
  
 
==참고문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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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페이지: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501600&code=kc_age_50
  
 
[[분류:산업화가 쏘아올린 작은 문학]]
 
[[분류:산업화가 쏘아올린 작은 문학]]
 
[[분류:농담곰]]
 
[[분류:농담곰]]

2023년 12월 2일 (토) 15:38 기준 최신판

경제개발계획이란?

국민 경제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일정 기간을 단위로 하여 짠 계획. 1959년 3월 부흥부 산하의 산업 개발 위원회에서 작성한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안’이 정부가 마련한 경제 개발 계획의 시초이다.[1]

도입

1953년 3월에 발표되었던 국제연합한국부흥단(UNKRA)의 ‘한국경제재건계획(네이산보고서)’이 있었지만, 경제개발계획으로는 공식 채택되지 않았다. 이후 1959년 3월 부흥부 산하에 있던 산업개발위원회에서 작성된 경제개발3개년계획안(1960∼1962)이 정부가 마련한 경제개발계획의 시초가 되었다.

진행

1962년~1966년

이 기간에는 사회적, 경제적인 악순환을 끊고 자립적 경제를 하기 위한 토대를 쌓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을 ① 전력과 같은 에너지 공급원의 확보, ② 농업 생산력 증, ③ 기초산업의 확보와 사회간접자본의 충족, ④ 유휴자원 활용, ⑤ 수출증대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수지의 개선, ⑥ 기술의 발달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성과로는 이 기간의 연평균성장률이 7.8%로 원래의 계획을 넘었으며, 광공업 부문이 성장하였다는 점이 있다.

1967년~1971년

이 기간에는 근대적인 산업구조를 설립하고 자립적인 경제를 촉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을 ① 식량의 자급, ② 철강, 기계 및 화학공업에 중점을 둔 공업구조의 고도화, ③ 수출증진과 수입대체에 의한 국제수지의 개선, ④ 고용증대와 인구팽창 억제, ⑤ 국민소득의 향상, ⑥ 기술수준과 생산성제고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성과로는 이 기간부터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되었으며, 연평균경제성장률이 9.7%였다는 점이 있다.

1972년~1976년

이 기간에는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키면서 균형적인 성장을 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은 ① 산업구조의 고도화, ② 국제수지의 개선, ③ 주요 곡식의 자급, ④ 지역개발의 균형에 치중함을 통해 성장과 안정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성과로는 5년만에 7배의 수출증가를 이루었으며, 중화학공업이 성장했고, 자본재의 대외의존도가 낮아졌다는 점이 있다.1

1977년~1981년

이 기간에는 사회의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자력성장구조의 실현, 사회개발을 통한 형평의 증진, 기술혁신과 능률의 향상에 목표를 두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은 ①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 전략, ② 사회간접자본의 지속적인 확보, ③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능률향상과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하지만 1980년 경제개발계획을 시작 이후 최대의 경제적 시련을 겪었으며, 모든 부문이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여 경제난국이 발생하였다.

1982년~1986년

이 기간에는 전과 다르게 국민의 복지 향상에 목표를 둠으로써 명칭이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었다. 경제 성장을 위한 기본 방향은 ① 물가안정을 위한 기반 구축, ② 국제수지 개선, ③ 생산성의 향상, ④ 사회발전 촉진, ⑤ 합리적인 제도 발전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1987년~1991년

이 기간에는 시장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돕고, 분배의 공평을 추진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1992년~1996년

이 기간에는 조화로운 국제화 추진을 목표로 두고 있다.

참고문헌

참고 페이지: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501600&code=kc_age_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