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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모든 사회적·경제적인 악순환을 시정하고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또한, 성장여건의 조성을 위한 기본 방향을 ① 전력·석탄 등의 에너지공급원의 확보, ② 농업생산력의 증대, ③ 기간산업의 확충과 사회간접자본의 충족, ④ 유휴자원의 활용, ⑤ 수출증대를 주축으로 하는 국제수지의 개선, ⑥ 기술의 진흥 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 |
− | + | 경제규모면에서는 이 기간의 연평균성장률이 7.8%로서 계획을 초과하였고, 산업별로는 특히 광공업 부문이 급성장하여 산업구조의 개선에 적지 않은 진전을 가져왔다는 성과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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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산업구조를 근대화하고 자립경제 확립을 더욱 촉진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또한, 기본 방향을 ① 식량의 자급, ② 철강·기계 및 화학공업에 중점을 둔 공업구조의 고도화, ③ 수출증진과 수입대체에 의한 국제수지의 개선, ④ 고용증대와 인구팽창 억제, ⑤ 국민소득의 향상, ⑥ 기술수준과 생산성제고 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 |
− | + | 이 기간에는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추진되었으며, 수출의 급성장과 더불어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7%로서 계획을 초과 달성하였다는 성과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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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간에는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추진되었으며, 수출의 급성장과 더불어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7%로서 계획을 초과 | ||
==='''1972년~1976년'''=== | ==='''1972년~1976년'''=== | ||
− | + |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균형성장을 위한 성장·안정·균형의 조화에 목표를 두었다. 또한, 기본 방향을 중화학공업의 육성과 자본재의 수입의존도를 지양하고 국민경제의 자립화기반을 더욱 다지면서 ① 산업구조의 고도화, ② 국제수지의 개선, ③ 주곡의 자급, ④ 지역개발의 균형에 치중함으로써 전반적인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가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추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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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976년 수출이 78억 1000만 달러의 규모에 도달함으로써 5년 동안에 무려 7배의 수출증가를 기록하였고, 철강·수송용 기계·전자공업·조선공업 등 중공업이 성장산업으로 등장하면서 중화학공업의 구성비율을 한층 높이고, 자본재의 대외의존도를 경감시켰다는 점에 성과가 있다. | |
==='''1977년~1981년'''=== | ==='''1977년~1981년'''=== | ||
− | 제1·2·3차 개발계획과는 달리 사회개발의 필요성과 형평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자 | + | 제1·2·3차 개발계획과는 달리 사회개발의 필요성과 형평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자 자력성장구조의 실현, 사회개발을 통한 형평의 증진, 기술혁신과 능률의 향상에 목표를 두었다. 기본 방향은 3차에 걸친 계획의 전략을 이어받아 ① 철강·석유·비료·양회·기계·전자·조선 등의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전략, ② 사회간접자본의 계속적인 확충, ③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능률향상과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다. |
그러나 1980년 경제개발계획을 착수한 이후 최대의 경제적 시련을 겪는 동시에, 모든 부문에서 계획을 크게 밑도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경제난국을 맞게 되었다. | 그러나 1980년 경제개발계획을 착수한 이후 최대의 경제적 시련을 겪는 동시에, 모든 부문에서 계획을 크게 밑도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경제난국을 맞게 되었다. | ||
==='''1982년~1986년'''=== | ==='''1982년~1986년'''=== | ||
− | 목표를 경제성장의 지속과 사회발전을 통한 국민복지향상에 둠으로써 명칭도 종래의 ‘경제개발계획’에서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었다. | + | 목표를 경제성장의 지속과 사회발전을 통한 국민복지향상에 둠으로써 명칭도 종래의 ‘경제개발계획’에서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었다. 이 계획의 기본방향은 물가안정의 기반구축, 국제수지의 개선, 생산성의 향상, 사회발전의 촉진, 합리적인 제도의 발전 등에 두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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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계획의 기본방향은 물가안정의 기반구축, 국제수지의 개선, 생산성의 향상, 사회발전의 촉진, 합리적인 제도의 발전 등에 두었다. | ||
==='''1987년~1991년'''=== | ==='''1987년~1991년'''=== | ||
− | + | 자율과 경쟁에 입각하여 자원이 배분될 수 있도록 시장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도와 주고, 분배의 공평을 도모하는 데 방향을 두고 있다. | |
==='''1992년~1996년'''=== | ==='''1992년~1996년'''=== | ||
− | + | 계획은 제6차 계획과 더불어 형평의 제고와 조화있는 국제화추진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이 선진국 진입문턱에 도달하는 기간의 계획이며 1인당 소득 1만 달러 목표달성을 좌우하는 시점의 계획이란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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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참고문헌== |
2023년 12월 2일 (토) 15:17 판
목차
경제개발계획이란?
국민 경제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일정 기간을 단위로 하여 짠 계획. 1959년 3월 부흥부 산하의 산업 개발 위원회에서 작성한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안’이 정부가 마련한 경제 개발 계획의 시초이다.[1]
도입
1953년 3월에 발표되었던 국제연합한국부흥단(UNKRA)의 ‘한국경제재건계획(네이산보고서)’이 있었으나, 원조정책의 일환으로 작성된 건의보고서로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으며, 1959년 3월 부흥부 산하에 있던 산업개발위원회에서 작성된 경제개발3개년계획안(1960∼1962)이 정부가 마련한 경제개발계획의 시초가 되었다.
진행
1962년~1966년
모든 사회적·경제적인 악순환을 시정하고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또한, 성장여건의 조성을 위한 기본 방향을 ① 전력·석탄 등의 에너지공급원의 확보, ② 농업생산력의 증대, ③ 기간산업의 확충과 사회간접자본의 충족, ④ 유휴자원의 활용, ⑤ 수출증대를 주축으로 하는 국제수지의 개선, ⑥ 기술의 진흥 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경제규모면에서는 이 기간의 연평균성장률이 7.8%로서 계획을 초과하였고, 산업별로는 특히 광공업 부문이 급성장하여 산업구조의 개선에 적지 않은 진전을 가져왔다는 성과가 있다.
1967년~1971년
산업구조를 근대화하고 자립경제 확립을 더욱 촉진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또한, 기본 방향을 ① 식량의 자급, ② 철강·기계 및 화학공업에 중점을 둔 공업구조의 고도화, ③ 수출증진과 수입대체에 의한 국제수지의 개선, ④ 고용증대와 인구팽창 억제, ⑤ 국민소득의 향상, ⑥ 기술수준과 생산성제고 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이 기간에는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추진되었으며, 수출의 급성장과 더불어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7%로서 계획을 초과 달성하였다는 성과가 있다.
1972년~1976년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균형성장을 위한 성장·안정·균형의 조화에 목표를 두었다. 또한, 기본 방향을 중화학공업의 육성과 자본재의 수입의존도를 지양하고 국민경제의 자립화기반을 더욱 다지면서 ① 산업구조의 고도화, ② 국제수지의 개선, ③ 주곡의 자급, ④ 지역개발의 균형에 치중함으로써 전반적인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가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추진했다.
1976년 수출이 78억 1000만 달러의 규모에 도달함으로써 5년 동안에 무려 7배의 수출증가를 기록하였고, 철강·수송용 기계·전자공업·조선공업 등 중공업이 성장산업으로 등장하면서 중화학공업의 구성비율을 한층 높이고, 자본재의 대외의존도를 경감시켰다는 점에 성과가 있다.
1977년~1981년
제1·2·3차 개발계획과는 달리 사회개발의 필요성과 형평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자 자력성장구조의 실현, 사회개발을 통한 형평의 증진, 기술혁신과 능률의 향상에 목표를 두었다. 기본 방향은 3차에 걸친 계획의 전략을 이어받아 ① 철강·석유·비료·양회·기계·전자·조선 등의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전략, ② 사회간접자본의 계속적인 확충, ③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능률향상과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1980년 경제개발계획을 착수한 이후 최대의 경제적 시련을 겪는 동시에, 모든 부문에서 계획을 크게 밑도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경제난국을 맞게 되었다.
1982년~1986년
목표를 경제성장의 지속과 사회발전을 통한 국민복지향상에 둠으로써 명칭도 종래의 ‘경제개발계획’에서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었다. 이 계획의 기본방향은 물가안정의 기반구축, 국제수지의 개선, 생산성의 향상, 사회발전의 촉진, 합리적인 제도의 발전 등에 두었다. .
1987년~1991년
자율과 경쟁에 입각하여 자원이 배분될 수 있도록 시장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도와 주고, 분배의 공평을 도모하는 데 방향을 두고 있다.
1992년~1996년
계획은 제6차 계획과 더불어 형평의 제고와 조화있는 국제화추진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이 선진국 진입문턱에 도달하는 기간의 계획이며 1인당 소득 1만 달러 목표달성을 좌우하는 시점의 계획이란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참고 페이지: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501600&code=kc_age_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