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_edu
이동: 둘러보기, 검색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30번째 줄: 30번째 줄:
  
 
==배경사건==
 
==배경사건==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과 일본정부가 중일전쟁 및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의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을 의미한다. 국제법에서는 개인이 성매매를 위한 인신매매를 시도하는 행위도 범죄로 보고 조약에 가입한 국가들로 하여금 이를 막으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군'위안부' 동원이라는 범죄행위를 기획 실행하였다. 이 때문에 발굴된 공문서에는 '위안부' 용어부터 시작하여 이들의 동원에 대해 매우 완곡하게 표현하고 징집과 수송, 위안소 운영 등에 대해서 상당히 비밀스럽게 다루거나 혹은 은폐·축소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한국인 피해자 240명(2020년 6월 현재), 북한 피해자 218명(2002년 5월 현재), 남북 합계 458명이 알려졌다. 이는 조선인 피해자 전체 수가 아니다.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의된 이후 남북 정부나 민간단체가 파악한 생존자의 수로, 전체 피해자의 극히 일부이다. 한일 양국은 2015년 12월28일 일본 정부가 사죄를 표명하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10억엔(약 107억원)을 출연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인정하는 내용의 합의를 발표했다. 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을 대리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016년 3월 헌법소원을 냈다. 2019년 12월 30일 헌법재판소는 ’12·28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
군함도(軍艦島)는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県] 노모반도[野母半島] 서쪽, 나가사키항에서 18㎞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섬 하시마[端島]의 다른 이름이다. 하시마에 본격적으로 노동력이 유입된 것은 1910년대 이후이다. 임금을 기대한 일본 하층민과 범법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개발 초기부터 노동 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 높아 일본 사회에서 감옥섬 또는 지옥섬으로 불렸다. 1918년 5월 말 다카시마탄갱의 전체 노동자는 3,336명이었는데, 이들 중 조선인 노동자는 334명이었다. 이 자료에는 다카시마탄갱 각 섬의 노동자 수가 따로 집계되어 있는데, 하시마의 갱 내부 941명 가운데 조선인은 70명이었다. 일본은 1937년 중일 전쟁 발발을 기점으로 총동원 체제를 가동하고 1938년 4월 공포한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인적·물적 자원과 자금을 동원하였다. 하시마탄광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과 가혹한 상황을 경험하였다. 하시마는 해저 탄광일 뿐만 아니라 누운 채 탄을 캐야 하는 사갱(斜坑)이었다.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작은 갱구를 600~1,000m까지 기어 들어가 물에 젖은 상태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채탄하였다. 석탄 증산을 강요하는 강도 높은 작업과 열악한 식량 사정, 일상적인 폭력을 견디기 어려웠던 조선인들은 탈출을 시도하였다. 석탄 상자나 사과상자 파편을 잡고 건너편 노모반도를 향해 헤엄쳐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탈출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또한 원자 폭탄 투하 후 당국은 하시마탄광의 조선인들을 나가사키 시내 복구 작업에 투입해 잔류 방사능에 노출시키는 피해를 입혔다. 확인된 하시마 사망 조선인은 122명이다. 나가사키시는 폐허가 된 섬 내부에서 건물 붕괴가 진행되고 위험한 장소가 늘어나자 일반의 출입을 금지하다가 2008년 하시마 남쪽을 정비해 견학로를 조성한 후, 견학로에 한해 2009년 4월부터 관광객의 섬 상륙을 허용하였고, 일본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하시마는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 산업 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강제 노동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일본군 '위안부'(日本軍慰安婦))]''
+
<ref> 세계한민족문화대전 '세계 문화 유산 군함도에 잠든 재일 조선인'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localCode=jpn&contentsId=GC95200004#:~:text=%EC%9D%BC%EC%A0%9C%20%EA%B0%95%EC%A0%90%EA%B8%B0%20%EC%A1%B0%EC%84%A0%EC%9D%B8%EC%9D%84%20%EA%B0%95%EC%A0%9C,%ED%98%84%ED%99%A9%EC%9D%80%20%EC%95%8C%20%EC%88%98%20%EC%97%86%EB%8B%A4.] </ref>
<ref>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본군 위안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C%84%EC%95%88%EB%B6%80&ridx=0&tot=5683] </ref>
 
  
 
===배경사건과의 차이점===
 
===배경사건과의 차이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영화에 직접 사건 증언이 나오기도 한다.
+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실제와는 다른 점이 여럿 존재한다. 극중 임시정부의 인사들이 히시마 섬에 잡혀 있으면서 변절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또한 영화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함께 섬을 탈출하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없었으며 개인적인 탈출 시도만 존재했다. 대부분은 익사하거나 일본군에게 잡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대규모 전투와 무장 봉기도 마찬가지로 허구의 이야기이다. 또한 일본군이 조선인을 은폐 목적으로 말살하려는 계획을 하지 않았으며, 전쟁 끝자락에도 노동을 착취했다고 한다. 액션 영화로서의 클리셰를 위한 각색이 존재했으며, 이런 부분들이 실제 역사의 무게를 달리했다며 비판받을 요소가 되었다.
강일출 할머니는 열여섯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소각 명령'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한다.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할머니가 2001년, '나눔의 집' 미술심리치료를 통해서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철저하게 재현하기도 하였다.
+
 
<ref>출처 : '귀향, 다음 영화 작품 소개[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1662]'</ref>
+
<ref>출처 : '군함도 영화 위키 [https://namu.wiki/w/%EA%B5%B0%ED%95%A8%EB%8F%84(%EC%98%81%ED%99%94)]'</ref>
  
 
==흥행==
 
==흥행==
 
누적 관객수 6,592,151명으로 상영을 종료하였다. 또한 누적매출액은 50,510,565,168원에 달했다.
 
누적 관객수 6,592,151명으로 상영을 종료하였다. 또한 누적매출액은 50,510,565,168원에 달했다.
 +
그러나 제작비가 260억 가량 투입된 영화이기 때문에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ref>출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https://www.kobis.or.kr/kobis/business/mast/mvie/searchMovieList.do]</ref>
 
<ref>출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https://www.kobis.or.kr/kobis/business/mast/mvie/searchMovieList.do]</ref>
  
 
==티켓가격 평가에 대한 이유==
 
==티켓가격 평가에 대한 이유==
5만원, 이 영화는 역사적 고증보다는 액션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군함도 사건에 비해 그 무거움이 담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굉장히 유명하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는 데, 적절하게 관계가 녹아들지 못했다. 그러나 시각적인 만족도는 높았으며,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5만원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
5만원, 이 영화는 역사적 고증보다는 액션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군함도 사건은 많은 피해자를 남기게 되었는데, 영화에서는 그 무거움이 담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굉장히 유명하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극중 적절하게 관계가 녹아들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액션 씬의 시각적인 만족도는 높았으며,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티켓 가격을 5만원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주석==
 
==주석==
 
<references/>
 
<references/>

2022년 12월 19일 (월) 22:38 기준 최신판


개요

영화 '군함도'은 일제강점기 중 민족말살통치시대에 발생한 군함도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 대한 주관적 평가는 알로이즈가 작성하였다.

평점

IMDB사이트 기준 7.1/10

줄거리

1945년,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과 그의 하나뿐인 딸 '소회'(김수안)은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군함도로 가게 된다. 군함도에서 조선인들은 강제 징용당하여 노동자로 착취당하고 있었다. 강옥은 일본인 관리의 비위를 맞춰 딸 소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칠성'(소지섭)과 '말년'(이정현)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던 중 전쟁 막바지에 일본 전역에 미국의 폭격이 시작되고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군함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가둔 채 폭파하려고 한다. 이를 눈치 챈 '무영'(송중기)는 강옥, 칠성, 말년을 비롯한 모든 조선인과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생되며 무영만이 소희를 대신 맡아서 살아 나가게 된다. [1]

등장인물

이강옥(황정민) 최칠성(소지섭) 박무영(송중기) 말년(이정현) 소희(김수안)

배경사건

군함도(軍艦島)는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県] 노모반도[野母半島] 서쪽, 나가사키항에서 18㎞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섬 하시마[端島]의 다른 이름이다. 하시마에 본격적으로 노동력이 유입된 것은 1910년대 이후이다. 임금을 기대한 일본 하층민과 범법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개발 초기부터 노동 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 높아 일본 사회에서 감옥섬 또는 지옥섬으로 불렸다. 1918년 5월 말 다카시마탄갱의 전체 노동자는 3,336명이었는데, 이들 중 조선인 노동자는 334명이었다. 이 자료에는 다카시마탄갱 각 섬의 노동자 수가 따로 집계되어 있는데, 하시마의 갱 내부 941명 가운데 조선인은 70명이었다. 일본은 1937년 중일 전쟁 발발을 기점으로 총동원 체제를 가동하고 1938년 4월 공포한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인적·물적 자원과 자금을 동원하였다. 하시마탄광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과 가혹한 상황을 경험하였다. 하시마는 해저 탄광일 뿐만 아니라 누운 채 탄을 캐야 하는 사갱(斜坑)이었다.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작은 갱구를 600~1,000m까지 기어 들어가 물에 젖은 상태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채탄하였다. 석탄 증산을 강요하는 강도 높은 작업과 열악한 식량 사정, 일상적인 폭력을 견디기 어려웠던 조선인들은 탈출을 시도하였다. 석탄 상자나 사과상자 파편을 잡고 건너편 노모반도를 향해 헤엄쳐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탈출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또한 원자 폭탄 투하 후 당국은 하시마탄광의 조선인들을 나가사키 시내 복구 작업에 투입해 잔류 방사능에 노출시키는 피해를 입혔다. 확인된 하시마 사망 조선인은 122명이다. 나가사키시는 폐허가 된 섬 내부에서 건물 붕괴가 진행되고 위험한 장소가 늘어나자 일반의 출입을 금지하다가 2008년 하시마 남쪽을 정비해 견학로를 조성한 후, 견학로에 한해 2009년 4월부터 관광객의 섬 상륙을 허용하였고, 일본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하시마는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 산업 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강제 노동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2]

배경사건과의 차이점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실제와는 다른 점이 여럿 존재한다. 극중 임시정부의 인사들이 히시마 섬에 잡혀 있으면서 변절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또한 영화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함께 섬을 탈출하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없었으며 개인적인 탈출 시도만 존재했다. 대부분은 익사하거나 일본군에게 잡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대규모 전투와 무장 봉기도 마찬가지로 허구의 이야기이다. 또한 일본군이 조선인을 은폐 목적으로 말살하려는 계획을 하지 않았으며, 전쟁 끝자락에도 노동을 착취했다고 한다. 액션 영화로서의 클리셰를 위한 각색이 존재했으며, 이런 부분들이 실제 역사의 무게를 달리했다며 비판받을 요소가 되었다.

[3]

흥행

누적 관객수 6,592,151명으로 상영을 종료하였다. 또한 누적매출액은 50,510,565,168원에 달했다. 그러나 제작비가 260억 가량 투입된 영화이기 때문에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4]

티켓가격 평가에 대한 이유

5만원, 이 영화는 역사적 고증보다는 액션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군함도 사건은 많은 피해자를 남기게 되었는데, 영화에서는 그 무거움이 담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굉장히 유명하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극중 적절하게 관계가 녹아들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액션 씬의 시각적인 만족도는 높았으며,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티켓 가격을 5만원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주석

  1. 출처 : '군함도, 다음 영화 주요 정보[1]'
  2. 세계한민족문화대전 '세계 문화 유산 군함도에 잠든 재일 조선인' [2]
  3. 출처 : '군함도 영화 위키 [3]'
  4. 출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