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1917)
목차
윤동주(尹東柱)
1. 개요
윤동주(1917–1945)는 일제 강점기 말기, 식민지 조선 청년의 정체성과 양심, 언어적 윤리를 깊이 고민하며 한국 현대시사에 독보적 흔적을 남긴 시인이다. 그의 시는 단정한 언어·투명한 이미지·신앙적 고백·자기 성찰을 특징으로 하며, 일제 말기 조선어 탄압 속에서도 끝까지 조선어로 시를 썼다는 점에서 ‘윤리적 저항문학’으로 평가된다.
2. 생애
| 연도 | 내용 |
|---|---|
| 1917 | 중국 용정(龍井) 출생 |
| 1930s | 용정 명동학교 → 지린공립중학교 재학 |
| 1938 | 연희전문 문과 입학. 초기 대표작 창작 |
| 1942 | 일본 릿쿄대 입학 → 곧 교토 도시샤대학으로 편입 |
| 1943 | 독립운동 연루 혐의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 |
| 1945.2 |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옥사) |
3. 윤동주 생애 지도
4. 문학적 특징
4.1 언어의 윤리성과 자기 성찰
윤동주의 시는 늘 “나는 떳떳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고백적 문체가 중심이다. 「서시」는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4.2 기독교 세계관과 인간적 고백
창조·죄·용서·구원 등 기독교적 상징이 자연스럽게 배치되며, 내적 성찰을 통해 존재의 근원을 묻는다.
4.3 디아스포라 정체성
간도 조선인 사회에서 성장하며, 국경과 언어의 경계가 시의 핵심 감수성으로 자리 잡는다. 「별 헤는 밤」, 「고향」 등의 시에서 그리움·고독·순수한 청년성이 나타난다.
4.4 식민지 청년의 자의식과 자책감
일본 유학기(도쿄·교토)에는 “나는 왜 조선어로 시를 쓰는가?”, “나는 조선인으로서 윤리적인가?” 같은 강렬한 자책과 부끄러움이 시 세계를 심화시켰다. 이 시기의 「쉽게 쓰여진 시」와 「참회록」은 그 내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4.5 절제된 언어와 투명한 이미지
윤동주의 시는 단정하고 절제된 언어로 쓰였으나, 그 속에는 깊은 상실·양심·고뇌가 투명하게 새어 나온다.
5. 대표작
| 시 제목 | 주제 |
|---|---|
| 서시 | 존재 윤리, 자기 고백 |
| 별헤는 밤 | 고향 상실, 순수한 청년성 |
| 자화상 | 자의식과 내적 분열 |
| 십자가 | 고통과 구원 |
| 쉽게 쓰여진 시 | 유학기 자책감 |
5.1 <서시> 전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해설: 이 시는 윤동주 문학 세계의 핵심인‘양심적 존재로서의 자기 규율’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는 화자는 시대적 폭력 속에서도 스스로의 윤리를 지키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마지막 구절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외부 세계의 움직임과 내면의 윤리적 떨림이 하나로 연결되는 장면으로,
고독하지만 순결한 청년의 삶의 자세를 상징한다.
5.2 <자화상> 전문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서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해설: 우물 속 ‘사나이’는 분열된 자아의 은유이다.
화자는 우물이라는 공간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마주한다.
돌을 던져 흩어지는 ‘달·구름·가을’은
자기 성찰의 고통, 깨져버린 자아, 시대적 혼란을 상징한다.
그러나 물결이 가라앉자 다시 제 모습을 찾듯,
윤동주는 혼란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시적 의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5.3 <쉽게 쓰여진 시> 전문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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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작품은 일본 유학기 윤동주의 극심한 자책감과 자의식의 고통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표현은 식민지 조선인이 제국의 공간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생생히 드러낸다.
시를 쓸 수 있는 환경조차 부끄러워하는 화자의 태도는 "나는 윤리적으로 온전한가?"라는 지속적 고민을 반영한다.
마지막 구절 "이 시는 너무 쉽게 쓰여졌다"는 창작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년 시인의 고백이다.
5.4 <별 헤는 밤> 전문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잔다르크, 브루튀스, 마리이…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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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고향 용정에서의 기억과 청년기의 순수함·동경·상처가 결합된 윤동주의 대표적 서정시이다.
별에 부여된 “추억·사랑·쓸쓸함·어머니”는 청년의 감정 역사 전체가 우주적 이미지로 확장된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끝없는 별 헤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시대적 현실(식민지·유학·정체성 상실)과 청춘의 유한함을 암시한다.
이 시는 윤동주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픈 시 세계를 보여준다.
6. 윤동주 시의 의의
윤동주는 폭력적 시대 속에서도 언어·양심·정체성을 지키고자 한 ‘윤리적 저항 시인’이며, 그의 시는 오늘날에도 청년성, 성찰, 인간 존엄의 상징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