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위치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역사
802년(통일신라)에 창건을 시작했다.
920년대 말 고려 태조왕건이 후백제군과 해인사 인근에서 전투를 했는데, 왕건은 당시 해인사 주지인 희랑대사의 도움을 받았다.
희랑대사는 승병을 보내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
고려 건국 후 태조 왕건이 희랑대사의 공덕을 높이 사서 해인사를 증축하고 국찰로 삼았다.
주요 볼거리 및 유물
고려시대 승려 ‘희랑대사’의 실제 모습을 조각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
- 2020년에 국보로 승격됐다.
-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 조각으로, 고려시대인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희랑대사는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왕건은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해인사에 두었다.
- 문화재청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승려를 높여 이르는 말)의 조각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례(같거나 비슷한 예)가 거의 전해지지 않으며 ‘희랑대사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출처:표준국어대사전)[1]되고 있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의 조사 결과, 이 조각상은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삼베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기법)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어졌고 후대에도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 문화재청은 “제작 당시 모습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면서 “고려 초 10세기 우리나라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자 희랑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조각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사ㆍ예술ㆍ학술 가치가 탁월하다”고 밝혔다.
- 세계기록유산이며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동양 각국의 대장경과 비교할 때 오탈자가 거의 없다.
- 글꼴도 거의 일정해서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합천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경남 합천 해인사의 '신라 쌍둥이 불상'
- 2012년 함께 보물로 지정됐던 두 불상이 10년 만에 국보로 승격됐다.
- 이전에는 해인사에 법보전과 대적광전에 비로자나불이 각각 하나씩 있었으나, 2005년 7월에 법보전 비로자나불 안에서 남북국시대(통일신라)의 글씨가 나왔고, 이를 통해 통일신라 불상임이 밝혀졌다.
- 지금은 대비로전에 쌍둥이 비로자나불이 함께 모셔져있다.
참고문헌
주석
- ↑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