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당
정의
건축물 정보
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
-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 고려 우왕 3년(1377)[1]
-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
- 특징: 국보 제19호
부석사 조사당의 부분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1962년 지정)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2]
- 구성: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지붕으로 꾸몄다.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3]
일화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 그러나 1300년대에 생긴 전설이라는 점에서 그 진위성은 확실하지 않다.[4]
영주 봉황산 부석사 선비화(禪扉花) 이야기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 /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 스님이 말하길, 지팡이가 신기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네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수가 생기니,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았네
관련 건축물
관계
출처
- ↑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 ↑ http://www.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72 디지털영주문화대전
-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90000,37&pageNo=1_1_1_0
-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영주 부석사 조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