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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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이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

보빙사당시사진

목적

임오군란 이후 청의 간섭이 강화되자 미국으로부터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밝히려 하였다.

조선의 외교, 교육 등 분야에 미국인 고문관과 군사교관을 초청하고자 하였다.

소속 인물

민영익[1]

전권대신

홍영식

부대신

서광범

종사관

유길준

수행원

일정

보빙사이동경로

1883년 7월 16일에 인천에서 출발하였다

일본을 거쳐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9월 18일 뉴욕에서 미국 대통령 체스터 A.아서를 접견해 국서와 선임장을 제출하였다.

보빙사가 미 대통령을 만나 절을 하는 모습

그 후 보스톤에서 외국박람회, 시범농장, 방직공장, 공립학교 등을 시찰하였다.

뉴욕에서는 또한 병원, 전산회사. 보험회사, 신문사, 우체국 등을 시찰하였다.

마지막으로 워싱턴에서 중앙부처를 시찰하고 10월 12일에 백악관을 방문하여 미국 대통령에게 고별인사를 전하였다.

이후 보빙사는 두 집단으로 나누어졌다. 일부는 조국으로 귀환하였지만, 민영익은 세계일주를 하였다.

영향과 결과

보빙사가 견문한 신문물은 이후 우정국, 농무목축시험장, 육영공원 등을 설립하는 데 영향을 주면서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에 기여하였다.

고종의 의도하였던 미국의 정치적 지원은 미국의 불개입 외교 방침으로 인하여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온톨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