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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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용덕은 중국 바오딩 항공학교에서 본격적인 비행 교육을 받으며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뒤, 1924년 우페이푸(吳佩孚) 군벌의 공군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그는 정찰 임무, 폭격 작전, 영공 방어 등 실제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이는 한국 독립운동가 중 드물게 공식 군 항공 조직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사례로 평가된다. 이 시기 최용덕은 최신 항공술을 체득하며 “공중력이야말로 근대전의 핵심 전력”이라는 확신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광복군과 대한민국 공군 창설 과정에서 전문적 조언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항공 활동과 군벌 시기

최용덕은 1930년대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세력에게 항공 부대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하였다.
1934년 신한독립당 창립에 참여해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비행사 양성 계획, 항공기 확보 운동, 독립군 항공대 창설 구상 등을 추진하였다. 그는 항공력이야말로 훗날 독립국가 수립 후 국방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이러한 비전은 기존 무장투쟁 중심 전략에서 한 단계 발전된 독립운동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항공력 확충 노력은 한국광복군에서의 항공 조직 창설 논의로 이어지는 중요한 사전 작업이 되었다.

독립운동과 항공력 확충 노력

1934년 신한독립당 창건에 참여하고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항공력 건설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다.
한인 비행사 양성, 항공기 구매 운동을 조직하는 등 “독자적인 한국 공군 창설”을 목표로 다양한 항공 관련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는 훗날 광복군 공군 창설 논의의 기초가 되었다.

한국광복군에서의 항공 관련 역할

한국광복군 창설 이후 1942년 총사령부 총무처장, 1943년 참모처장을 역임하였다.
광복군 내에서 항공 부대 창설 계획을 담당하며, 독립 후 대한민국 공군의 모태가 될 조직 구성에 참여하였다.
중국 정부 및 연합군과 협력하여 항공 장교 양성, 비행 교육 지원 등 공군 기반 조성에 힘썼다.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

광복 후 귀국한 최용덕은 한국 군대의 항공 전력 구축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한민국 공군 창설 운동을 주도하였다.
공군 장교단 편성, 항공기 확보, 항공작전 운용 체계 등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한민국 공군은 그를 초기 공군 창설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한다.

서훈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