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ᐧ༚̮ᐧ
작품 개요
| 항목 | 내용 |
|---|---|
| 제목 | 껍데기는 가라 |
| 작가 | 신동엽 |
| 발표 | 1967년,『52인 시집』 |
| 갈래 | 서정 갈래 |
| 시대적 배경 | 이승만 정권 (현대) |
전문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주요 특징
배경
주목해야 할 시어는 두 가지로, 1연의 '사월'과 2연의 '동학년'이다. 이 시어들은 각각 4.19혁명과 동학농민운동을 의미한다. 두 가지 사건은 민주, 자유를 열망한 이들의 저항과 혁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4.19 혁명은 현대 페이지의 항목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시가 창작된 시기와 그 발생 시기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였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동학운동, 혹은 동학농민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이 농민운동은 1894년(고종31) 전봉준을 지도자로 하여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그 원인이 된 것은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지나친 횡포와 가렴주구에 대한 농민층의 분노였다. 이러한 분노는 동학의 종교적 성격과 더해져 농민혁명으로 전개되었다.
정부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봉기를 진압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고, 청국에 원병을 요청한다. 청국이 톈진조약에 따라 조선파병을 통고함에 따라 일본 역시 파병을 통고하는 동시에 일본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서울에 들어왔다. 이들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다는 소식은 전봉준의 분노를 불렀고, 농민군은 그들을 축출하기 위해 다시 봉기하기로 한다.
그 결과 세성산에서 농민군과 관군, 일본군의 접전이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농민군은 사상자 수백 명을 내고 패배하였으며, 이후 웅치 방면을 총공격했으나 일본군의 반격을 받아 공주 남쪽 30리 지점의 경천점까지 물러나는 패배를 겪는다. 이어지는 우금치에서의 공방전에서, 농민군은 운명을 걸고 전투에 임했으나 근대식 무기로 무장하고 잘 훈련된 일본군에게는 대적하지 못했고, 많은 사상자를 내며 참패한다. 주력부대 1만여 명 중 살아남은 500여 명은 항전을 계속하다 결국 해산하고 만다. 대략 1년에 걸쳐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하였으나, 참전했던 동학농민군이 이후 항일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되고, 그 맥락이 3.1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 [1]
특징
1960년대 참여문학의 대표작이며, 군사 독재에 항거한 민중 민족 문학의 이정표 역할을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소재와 이미지들이 복잡하지 않고, 반복을 통해 그 내용을 강조하는 것은 시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껍데기'라는 시어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마지막 연의 '쇠붙이'와, 상반되는 시어인 '알맹이'뿐이다. 4.19혁명과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알맹이'가 의미하는 것은 민주화의 열망, 민중의 정의, 부패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정신이자 순수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쇠붙이'는 그 총 혹은 칼과 같은 무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 이미지에서 드러나듯, 차갑고 위험한 부정적인 존재, 즉 폭력과 군사, 무력, 전쟁 등을 나타낸다. 즉 순수한 인간성과 민족성 대신 외세에 의한 긴장과 독재 정권인 것이다. 작품은 전체 17행 중에서 6행을 "껍데기는 가라"라는 구절에 할애하고 있다. 따라서 시인이 열망하는 것은 민족의 발전과 순수성을 해치는 불의인 '껍데기'의 소멸과 그로 인해 이룰 수 있는 민족의 평화와 화합, 순수의 회복일 것이다.[2]
작가
| 이름 | 신동엽 (申東曄) |
|---|---|
| 출생/사망 | 1930년 8월 18일 ~ 1969년 4월 7일 |
| 출생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
| 활동 시기 | 1960년대 (현대) |
| 문학 사조 | 참여시 |
| 문학적 특징 | 현실에 대한 비판 |
| 대표작 |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조선일보』에 시 <진달래 산천(山川)>, 『세계일보』에 <새로 열리는 땅>을 발표하였다.
1960년『현대문학』에 <풍경(風景)>, 『조선일보』에 <그 가을> 등을 발표하였으며, 1963년에는 첫 시집 『아사녀(阿斯女)』를 출판했다. 이후 1967년에 신구문화사가 간행한 『현대한국문학전집』 제18권 『52인 시집』에 <껍데기는 가라>, <3월>, <원추리>를 비롯하여 7편의 시를 실었다. 같은 해에 장편 서사시 <금강(錦江)>을 발표하며 문단에서의 위치가 부상하기도 했다.
다른 문인들과 비교했을 때 신동엽이 특이한 것은 '1950년대 모더니즘'을 거치지 않고, 토착정서에 역사의식을 담은 민족적 리얼리즘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본 문서에 제시된 <껍데기는 가라>뿐 아니라 <금강> 역시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하여 시인의 특징적인 시세계를 보여 준다.[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역시 4.19 혁명 직전의 독재를 그 배경으로 하여 부정적인 사회 현실을 깨닫고 저항하기를 촉구하는 시이다. <껍데기는 가라>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사건 혹은 단어를 제시하기보다는 비유적이지만 비교적 단순한 시어로 작품을 전개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찢어야 할 '쇠 항아리' 역시 부정적인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껍데기는 가라>의 '쇠붙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참고문헌
- ↑ "동학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6865
- ↑ "껍데기는 가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5964&cid=41708&categoryId=41737
- ↑ "신동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0049&cid=46645&categoryId=46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