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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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민자당 축하연.jpeg

3당 합당(三黨合黨)은 1990년 1월 22일 발표되어 그해 2월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과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사건이다. 이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의 후신(현재 국민의 힘)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제1 보수정당의 명맥을 잇고 있다.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은 민주 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 없이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한다. -노태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김영삼

진행

제5공화국의 후신 세력인 민주정의당(민정당) 세력은 6월 민주 항쟁이라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으나, 계속되는 국민들의 민주화 및 군사정권 청산 요구는 이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민정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노태우 정부는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보수대연합(4당 합당)'을 비밀리에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는 민정당이 1986년 신한민주당에 처음 제안했던 것으로, 당시에는 야권에서 호응이 없어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이 4당 구도로는 각자 본인들의 집권이 요원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던 것이다. 3당은 1990년 내각제 개헌 등을 조건으로 통합에 합의했으며,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 아래 3당 합당을 발표했다. 3당의 국회 의석 수를 합치면 개헌선인 200석을 훌쩍 넘긴다는 점, 각각 대구경북, 부울경, 충청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던 3당의 통합으로 사실상 호남 외의 지역들이 모두 연합하는 구도가 됐다는 점 등에서 통합 신당은 '괴물 여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당합당의 여파로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2년 만에 80%에 육박하는 높은 수치의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신생 민주자유당은 218석을 보유한 절대다수 정당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했으나, 2년 후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개헌선은커녕 299석 중 149석으로 과반 달성에도 실패하는 참패를 당한다. 이는 계파 간 공천 갈등의 여파로 낙천자 중 상당수가 무소속으로, 혹은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를 강행한 결과로 분석되었다. 이질적인 여러 계파가 한 당에 섞인 것에 대한 부작용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1992년 말 14대 대선에서 김영삼이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이후 야당 및 무소속 의원들을 대거 영입하여 다시 국회 과반수의 거대 여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