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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_edu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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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류:라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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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라떼]]&lt;br /&gt;
&lt;br /&gt;
불교 건축물 중 고려시대에 속한 일부 건축물의 위키페이지를 맡아 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에 건축된 용두사, 부석사의 무량수전, 조사당, 수덕사의 대웅전에 관한 위키 페이지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무량수전, 조사당이 위치한 부석사 문서를 제작하고 수덕사 대웅전이 위치한 수덕사 위키 문서에 정보를 추가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된 건축물 문서는 내부 링크를 통해 연결했으며 용어의 뜻을 풀이할 때에도 내부 링크를 사용했습니다. 문서로 제작되지 않은 일부 건축물이나 유적은 신뢰도 있는 외부 링크와 연결시켜 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출처를 표기할 때에도 외부링크를 통해 바로 자료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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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 대웅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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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관련 건축물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 수덕사 3층석탑]&lt;br /&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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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 대웅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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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관련 건축물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수덕사 3층석탑[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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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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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관련 건축물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수덕사 3층석탑[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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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관련 건축물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수덕사 3층석탑[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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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사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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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5:12: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건축물 정보 */&lt;/p&gt;
&lt;hr /&gt;
&lt;div&gt;[[파일:조사당_사진.png|섬네일|430픽셀|오른쪽|영주 부석사 조사당]]&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 고려 우왕 3년(1377)&amp;lt;ref&amp;gt;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lt;br /&gt;
*특징: 국보 제19호&lt;br /&gt;
&lt;br /&gt;
부석사 조사당의 부분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1962년 지정)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72 디지털영주문화대전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구성: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지붕으로 꾸몄다.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90000,37&amp;amp;pageNo=1_1_1_0&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 그러나 1300년대에 생긴 전설이라는 점에서 그 진위성은 확실하지 않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영주 부석사 조사당&amp;lt;/ref&amp;gt;&lt;br /&gt;
 영주 봉황산 부석사 선비화(禪扉花) 이야기&lt;br /&gt;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 /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lt;br /&gt;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lt;br /&gt;
 스님이 말하길, 지팡이가 신기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네&lt;br /&gt;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수가 생기니,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았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부석사]]&lt;br /&gt;
*[[무량수전]]&lt;br /&gt;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 17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70000,37&amp;amp;pageNo=1_1_1_0 문화재청]&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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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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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사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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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일화 */&lt;/p&gt;
&lt;hr /&gt;
&lt;div&gt;[[파일:조사당_사진.png|섬네일|430픽셀|오른쪽|영주 부석사 조사당]]&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 고려 우왕 3년(1377)&amp;lt;ref&amp;gt;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lt;br /&gt;
*특징: 국보 제19호&lt;br /&gt;
*구성: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지붕으로 꾸몄다.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90000,37&amp;amp;pageNo=1_1_1_0&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 그러나 1300년대에 생긴 전설이라는 점에서 그 진위성은 확실하지 않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영주 부석사 조사당&amp;lt;/ref&amp;gt;&lt;br /&gt;
 영주 봉황산 부석사 선비화(禪扉花) 이야기&lt;br /&gt;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 /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lt;br /&gt;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lt;br /&gt;
 스님이 말하길, 지팡이가 신기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네&lt;br /&gt;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수가 생기니,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았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부석사]]&lt;br /&gt;
*[[무량수전]]&lt;br /&gt;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 17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70000,37&amp;amp;pageNo=1_1_1_0 문화재청]&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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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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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조사당_사진.png|섬네일|430픽셀|오른쪽|영주 부석사 조사당]]&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 고려 우왕 3년(1377)&amp;lt;ref&amp;gt;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lt;br /&gt;
*특징: 국보 제19호&lt;br /&gt;
*구성: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지붕으로 꾸몄다.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90000,37&amp;amp;pageNo=1_1_1_0&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부석사 조사당의 부분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1962년 지정)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72 디지털영주문화대전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 그러나 1300년대에 생긴 전설이라는 점에서 그 진위성은 확실하지 않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영주 부석사 조사당&amp;lt;/ref&amp;gt;&lt;br /&gt;
 영주 봉황산 부석사 선비화(禪扉花) 이야기&lt;br /&gt;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 /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lt;br /&gt;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lt;br /&gt;
 스님이 말하길, 지팡이가 신기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네&lt;br /&gt;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수가 생기니,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았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부석사]]&lt;br /&gt;
*[[무량수전]]&lt;br /&gt;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 17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70000,37&amp;amp;pageNo=1_1_1_0 문화재청]&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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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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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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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사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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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조사당_사진.png|섬네일|430픽셀|오른쪽|영주 부석사 조사당]]&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 고려 우왕 3년(1377)&amp;lt;ref&amp;gt;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lt;br /&gt;
*특징: 국보 제19호&lt;br /&gt;
&lt;br /&gt;
부석사 조사당의 부분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1962년 지정)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72 디지털영주문화대전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 그러나 1300년대에 생긴 전설이라는 점에서 그 진위성은 확실하지 않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영주 부석사 조사당&amp;lt;/ref&amp;gt;&lt;br /&gt;
 영주 봉황산 부석사 선비화(禪扉花) 이야기&lt;br /&gt;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 /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lt;br /&gt;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lt;br /&gt;
 스님이 말하길, 지팡이가 신기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네&lt;br /&gt;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수가 생기니,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았네&lt;br /&gt;
&lt;br /&gt;
*구성: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지붕으로 꾸몄다.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90000,37&amp;amp;pageNo=1_1_1_0&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부석사]]&lt;br /&gt;
*[[무량수전]]&lt;br /&gt;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 17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70000,37&amp;amp;pageNo=1_1_1_0 문화재청]&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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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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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관련 건축물 */&lt;/p&gt;
&lt;hr /&gt;
&lt;div&gt;[[파일:무량수전_사진.png|섬네일|430픽셀|오른쪽|무량수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중기)&amp;lt;ref&amp;gt;고려 시대의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어 고려 시대 중기의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lt;br /&gt;
*특징: 국보 제18호&lt;br /&gt;
&lt;br /&gt;
무량수전은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며 형태미와 비례미가 뛰어나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불경 내용에 따라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여 불상이 동쪽을 향하게 했고 바닥에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경북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며 고려시대 불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건축물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29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무량수전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700180000&amp;amp;pageNo=1_1_2_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반적인 불전은 건물 중심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방향과 같게 한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도록 만들었으며 내부 바닥에는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량수전과 같은 구성은 건물의 깊이를 확보하고 불단으로 향하는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부석사]]&lt;br /&gt;
*[[조사당]]&lt;br /&gt;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 17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70000,37&amp;amp;pageNo=1_1_1_0 문화재청]&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건축문화재]][[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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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량수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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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4:20: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건축물 정보 */&lt;/p&gt;
&lt;hr /&gt;
&lt;div&gt;[[파일:무량수전_사진.png|섬네일|430픽셀|오른쪽|무량수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중기)&amp;lt;ref&amp;gt;고려 시대의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어 고려 시대 중기의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lt;br /&gt;
*특징: 국보 제18호&lt;br /&gt;
&lt;br /&gt;
무량수전은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며 형태미와 비례미가 뛰어나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불경 내용에 따라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여 불상이 동쪽을 향하게 했고 바닥에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경북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며 고려시대 불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건축물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29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무량수전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700180000&amp;amp;pageNo=1_1_2_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반적인 불전은 건물 중심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방향과 같게 한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도록 만들었으며 내부 바닥에는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량수전과 같은 구성은 건물의 깊이를 확보하고 불단으로 향하는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부석사]]&lt;br /&gt;
*[[조사당]]&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건축문화재]][[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amp;diff=34643</id>
		<title>수덕사 대웅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amp;diff=34643"/>
		<updated>2023-12-11T04:17: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건축물 정보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수덕사 3층석탑[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A9%EB%91%90%EC%82%AC&amp;diff=34577</id>
		<title>용두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A9%EB%91%90%EC%82%AC&amp;diff=34577"/>
		<updated>2023-12-11T03:26: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건축물 정보 */&lt;/p&gt;
&lt;hr /&gt;
&lt;div&gt;[[파일:철당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청주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龍頭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이전으로 추정&lt;br /&gt;
현재는 절이 소실되어 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제8대 현종 관련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사건: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227&amp;amp;cid=46648&amp;amp;categoryId=4664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정의===&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국보 제41호로 용두사 터에 세워졌던 철 당간이다.&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은 현재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m 높이로 보존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통해 부처님의 위싱과 공덕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lt;br /&gt;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4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두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두 가지의 관련된 일화가 존재한다.&lt;br /&gt;
&lt;br /&gt;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amp;lt;br/&amp;gt;&lt;br /&gt;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2635 디지털청주문화대전「주성과 용두사지 철당간 전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용두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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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용두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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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3:26:1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철당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청주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龍頭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이전으로 추정&lt;br /&gt;
현재는 절이 소실되어 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제8대 현종 관련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사건: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227&amp;amp;cid=46648&amp;amp;categoryId=4664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정의===&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국보 제41호로 용두사 터에 세워졌던 철 당간이다.&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은 현재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m 높이로 보존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통해 부처님의 위싱과 공덕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lt;br /&gt;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4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두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두 가지의 관련된 일화가 존재한다.&lt;br /&gt;
&lt;br /&gt;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amp;lt;br/&amp;gt;&lt;br /&gt;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2635 디지털청주문화대전「주성과 용두사지 철당간 전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용두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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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류:라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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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3:23: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라떼]]&lt;br /&gt;
&lt;br /&gt;
불교 건축물 중 고려시대에 속한 일부 건축물의 위키페이지를 맡아 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에 건축된 용두사, 부석사의 무량수전, 조사당, 수덕사의 대웅전에 관한 위키 페이지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무량수전, 조사당이 위치한 부석사 문서를 제작하고 수덕사 대웅전이 위치한 수덕사 위키 문서에 정보를 추가했습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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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3:23: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라떼]]&lt;br /&gt;
불교 건축물 중 고려시대에 속한 일부 건축물의 위키페이지를 맡아 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에 건축된 용두사, 부석사의 무량수전, 조사당, 수덕사의 대웅전에 관한 위키 페이지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무량수전, 조사당이 위치한 부석사 문서를 제작하고 수덕사 대웅전이 위치한 수덕사 위키 문서에 정보를 추가했습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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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철당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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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2:57:1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amp;lt;big&amp;gt;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달아두는 장대&amp;lt;/big&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의 입구에 세우는 깃대의 일종으로, 찰간(刹竿)·장간(長竿)·정간(旌竿)·기간(旗竿)·치간(幟竿)·번간(幡竿)·범장(帆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나무·돌·구리·쇠 등으로 만든다. &lt;br /&gt;
&lt;br /&gt;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당간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도괴되고 파손되어 그 유례가 많지 않다. &lt;br /&gt;
&lt;br /&gt;
현존하는 당간의 유례는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1962년 지정), 안성 칠장사 등 철제당간 3기와, 석제당간으로는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보물, 1963년 지정)·담양 객사리 석당간(보물, 1969년 지정)과 비지정 당간이 몇 기 있다. 위의 네 곳의 당간 중 공주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3기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lt;br /&gt;
&lt;br /&gt;
3기의 당간 중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은 철제로서 20개의 원통형 주철을 상하가 서로 물려 이어지게 쌓아올렸는데, 특히 밑에서 세 번째 원통 표면에 양주(陽鑄)된 393자의 용두사당간기(龍頭寺幢竿記)에 962년(광종 13)이라는 주조연대를 밝히고 있다. 이 당간기에 의하면 애초에는 30단의 주통이었으며 높이는 60자(18.18m)였음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당간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도를 파괴하여 정법을 드러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범어사사적(梵魚寺事蹟)』에 의하면 절(節)은 33범천(梵天)을 상징하여 33단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도경』 흥국사조(興國寺條)에는 개성 흥국사에는 10여장(丈), 즉 30여m 되는 동주당간(銅鑄幢竿)이 법당 뒤 마당에 세워져 있었는데, 당간 표면에는 황금칠을 하고 당간 정상에는 봉황의 머리장식을 하였으며 그곳에 비단으로 된 당을 달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978년(경종 3)에 세운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는 당간을 절 마당에 세웠으며 범패(梵旆: 기)를 그 위에 달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lt;br /&gt;
&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건축문화재]][[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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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철당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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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2:56: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amp;lt;big&amp;gt;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달아두는 장대&amp;lt;/big&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의 입구에 세우는 깃대의 일종으로, 찰간(刹竿)·장간(長竿)·정간(旌竿)·기간(旗竿)·치간(幟竿)·번간(幡竿)·범장(帆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나무·돌·구리·쇠 등으로 만든다. &lt;br /&gt;
&lt;br /&gt;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당간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도괴되고 파손되어 그 유례가 많지 않다. &lt;br /&gt;
&lt;br /&gt;
현존하는 당간의 유례는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1962년 지정), 안성 칠장사 등 철제당간 3기와, 석제당간으로는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보물, 1963년 지정)·담양 객사리 석당간(보물, 1969년 지정)과 비지정 당간이 몇 기 있다. 위의 네 곳의 당간 중 공주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3기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lt;br /&gt;
&lt;br /&gt;
3기의 당간 중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은 철제로서 20개의 원통형 주철을 상하가 서로 물려 이어지게 쌓아올렸는데, 특히 밑에서 세 번째 원통 표면에 양주(陽鑄)된 393자의 용두사당간기(龍頭寺幢竿記)에 962년(광종 13)이라는 주조연대를 밝히고 있다. 이 당간기에 의하면 애초에는 30단의 주통이었으며 높이는 60자(18.18m)였음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당간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도를 파괴하여 정법을 드러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범어사사적(梵魚寺事蹟)』에 의하면 절(節)은 33범천(梵天)을 상징하여 33단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도경』 흥국사조(興國寺條)에는 개성 흥국사에는 10여장(丈), 즉 30여m 되는 동주당간(銅鑄幢竿)이 법당 뒤 마당에 세워져 있었는데, 당간 표면에는 황금칠을 하고 당간 정상에는 봉황의 머리장식을 하였으며 그곳에 비단으로 된 당을 달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978년(경종 3)에 세운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는 당간을 절 마당에 세웠으며 범패(梵旆: 기)를 그 위에 달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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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big&amp;gt;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달아두는 장대&amp;lt;/big&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의 입구에 세우는 깃대의 일종으로, 찰간(刹竿)·장간(長竿)·정간(旌竿)·기간(旗竿)·치간(幟竿)·번간(幡竿)·범장(帆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나무·돌·구리·쇠 등으로 만든다. &lt;br /&gt;
&lt;br /&gt;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당간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도괴되고 파손되어 그 유례가 많지 않다. &lt;br /&gt;
&lt;br /&gt;
현존하는 당간의 유례는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1962년 지정), 안성 칠장사 등 철제당간 3기와, 석제당간으로는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보물, 1963년 지정)·담양 객사리 석당간(보물, 1969년 지정)과 비지정 당간이 몇 기 있다. 위의 네 곳의 당간 중 공주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3기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lt;br /&gt;
&lt;br /&gt;
3기의 당간 중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은 철제로서 20개의 원통형 주철을 상하가 서로 물려 이어지게 쌓아올렸는데, 특히 밑에서 세 번째 원통 표면에 양주(陽鑄)된 393자의 용두사당간기(龍頭寺幢竿記)에 962년(광종 13)이라는 주조연대를 밝히고 있다. 이 당간기에 의하면 애초에는 30단의 주통이었으며 높이는 60자(18.18m)였음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당간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도를 파괴하여 정법을 드러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범어사사적(梵魚寺事蹟)』에 의하면 절(節)은 33범천(梵天)을 상징하여 33단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도경』 흥국사조(興國寺條)에는 개성 흥국사에는 10여장(丈), 즉 30여m 되는 동주당간(銅鑄幢竿)이 법당 뒤 마당에 세워져 있었는데, 당간 표면에는 황금칠을 하고 당간 정상에는 봉황의 머리장식을 하였으며 그곳에 비단으로 된 당을 달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978년(경종 3)에 세운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는 당간을 절 마당에 세웠으며 범패(梵旆: 기)를 그 위에 달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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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amp;lt;big&amp;gt;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달아두는 장대&amp;lt;/big&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의 입구에 세우는 깃대의 일종으로, 찰간(刹竿)·장간(長竿)·정간(旌竿)·기간(旗竿)·치간(幟竿)·번간(幡竿)·범장(帆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나무·돌·구리·쇠 등으로 만든다. &lt;br /&gt;
&lt;br /&gt;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당간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도괴되고 파손되어 그 유례가 많지 않다. &lt;br /&gt;
&lt;br /&gt;
현존하는 당간의 유례는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1962년 지정), 안성 칠장사 등 철제당간 3기와, 석제당간으로는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보물, 1963년 지정)·담양 객사리 석당간(보물, 1969년 지정)과 비지정 당간이 몇 기 있다. 위의 네 곳의 당간 중 공주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3기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lt;br /&gt;
&lt;br /&gt;
3기의 당간 중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은 철제로서 20개의 원통형 주철을 상하가 서로 물려 이어지게 쌓아올렸는데, 특히 밑에서 세 번째 원통 표면에 양주(陽鑄)된 393자의 용두사당간기(龍頭寺幢竿記)에 962년(광종 13)이라는 주조연대를 밝히고 있다. 이 당간기에 의하면 애초에는 30단의 주통이었으며 높이는 60자(18.18m)였음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당간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도를 파괴하여 정법을 드러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범어사사적(梵魚寺事蹟)』에 의하면 절(節)은 33범천(梵天)을 상징하여 33단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도경』 흥국사조(興國寺條)에는 개성 흥국사에는 10여장(丈), 즉 30여m 되는 동주당간(銅鑄幢竿)이 법당 뒤 마당에 세워져 있었는데, 당간 표면에는 황금칠을 하고 당간 정상에는 봉황의 머리장식을 하였으며 그곳에 비단으로 된 당을 달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978년(경종 3)에 세운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는 당간을 절 마당에 세웠으며 범패(梵旆: 기)를 그 위에 달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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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big&amp;gt;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달아두는 장대&amp;lt;/big&amp;gt;&lt;br /&gt;
&lt;br /&gt;
*사찰의 입구에 세우는 깃대의 일종으로, 찰간(刹竿)·장간(長竿)·정간(旌竿)·기간(旗竿)·치간(幟竿)·번간(幡竿)·범장(帆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나무·돌·구리·쇠 등으로 만든다. &lt;br /&gt;
&lt;br /&gt;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당간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도괴되고 파손되어 그 유례가 많지 않다. &lt;br /&gt;
&lt;br /&gt;
현존하는 당간의 유례는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1962년 지정), 안성 칠장사 등 철제당간 3기와, 석제당간으로는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보물, 1963년 지정)·담양 객사리 석당간(보물, 1969년 지정)과 비지정 당간이 몇 기 있다. 위의 네 곳의 당간 중 공주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3기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lt;br /&gt;
&lt;br /&gt;
3기의 당간 중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은 철제로서 20개의 원통형 주철을 상하가 서로 물려 이어지게 쌓아올렸는데, 특히 밑에서 세 번째 원통 표면에 양주(陽鑄)된 393자의 용두사당간기(龍頭寺幢竿記)에 962년(광종 13)이라는 주조연대를 밝히고 있다. 이 당간기에 의하면 애초에는 30단의 주통이었으며 높이는 60자(18.18m)였음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당간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도를 파괴하여 정법을 드러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범어사사적(梵魚寺事蹟)』에 의하면 절(節)은 33범천(梵天)을 상징하여 33단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도경』 흥국사조(興國寺條)에는 개성 흥국사에는 10여장(丈), 즉 30여m 되는 동주당간(銅鑄幢竿)이 법당 뒤 마당에 세워져 있었는데, 당간 표면에는 황금칠을 하고 당간 정상에는 봉황의 머리장식을 하였으며 그곳에 비단으로 된 당을 달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978년(경종 3)에 세운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는 당간을 절 마당에 세웠으며 범패(梵旆: 기)를 그 위에 달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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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2:52: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철당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청주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龍頭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이전으로 추정&lt;br /&gt;
현재는 절이 소실되어 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제8대 현종 관련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사건: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227&amp;amp;cid=46648&amp;amp;categoryId=4664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국보 제41호로 용두사 터에 세워졌던 철 당간이다.&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은 현재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m 높이로 보존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통해 부처님의 위싱과 공덕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lt;br /&gt;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4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두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두 가지의 관련된 일화가 존재한다.&lt;br /&gt;
&lt;br /&gt;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amp;lt;br/&amp;gt;&lt;br /&gt;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2635 디지털청주문화대전「주성과 용두사지 철당간 전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용두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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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용두사.lis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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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5:04: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용두사 relation&lt;br /&gt;
&lt;br /&gt;
#Class&lt;br /&gt;
유적 gold	box&lt;br /&gt;
시대 red	ellipse&lt;br /&gt;
절&lt;br /&gt;
인물 green	ellipse&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의_유적이다&lt;br /&gt;
~시대에_지어졌다 &lt;br /&gt;
~와_관련된_인물이다&lt;br /&gt;
~와_친족_관계이다	&lt;br /&gt;
&lt;br /&gt;
#Nodes&lt;br /&gt;
용두사 절 용두사&lt;br /&gt;
철당간    유적    철당간&lt;br /&gt;
고려    시대    고려&lt;br /&gt;
김예종 인물 김예종&lt;br /&gt;
김희일 인물 김희일&lt;br /&gt;
&lt;br /&gt;
#Links&lt;br /&gt;
용두사 철당간 ~의_유적이다&lt;br /&gt;
고려 용두사 ~시대에_지어졌다&lt;br /&gt;
고려 철당간 ~시대에_지어졌다&lt;br /&gt;
김예종 철당간 ~와_관련된_인물이다&lt;br /&gt;
김희일 철당간 ~와_관련된_인물이다&lt;br /&gt;
김예종 김희일 ~와_친족_관계이다&lt;br /&gt;
&lt;br /&gt;
#End&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용두사.list .ls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건축문화재]][[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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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lis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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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5:03: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수덕사 relation&lt;br /&gt;
&lt;br /&gt;
#Class&lt;br /&gt;
건축물 gold	circle&lt;br /&gt;
시대 red	ellipse&lt;br /&gt;
절&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의_건축물이다&lt;br /&gt;
~시대에_지어졌다 &lt;br /&gt;
&lt;br /&gt;
#Nodes&lt;br /&gt;
수덕사 절 수덕사&lt;br /&gt;
수덕사_대웅전    건축물    수덕사_대웅전&lt;br /&gt;
수덕사_3층석탑    건축물   수덕사_3층석탑&lt;br /&gt;
고려    시대    고려&lt;br /&gt;
백제    시대    백제&lt;br /&gt;
&lt;br /&gt;
#Links&lt;br /&gt;
수덕사 수덕사_대웅전 ~의_건축물이다&lt;br /&gt;
수덕사 수덕사_3층석탑 ~의_건축물이다&lt;br /&gt;
백제 수덕사 ~시대에_지어졌다&lt;br /&gt;
고려 수덕사_대웅전 ~시대에_지어졌다&lt;br /&gt;
고려 수덕사_3층석탑 ~시대에_지어졌다&lt;br /&gt;
&lt;br /&gt;
#End&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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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석사.lis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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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5:03:2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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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부석사 relation&lt;br /&gt;
&lt;br /&gt;
#Class&lt;br /&gt;
건축물 gold	circle&lt;br /&gt;
시대 red	ellipse&lt;br /&gt;
절&lt;br /&gt;
인물 green	ellipse&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의_건축물이다&lt;br /&gt;
~시대에_지어졌다 &lt;br /&gt;
~와_관련된_인물이다	&lt;br /&gt;
&lt;br /&gt;
#Nodes&lt;br /&gt;
부석사 절 부석사&lt;br /&gt;
무량수전    건축물    무량수전&lt;br /&gt;
조사당    건축물    조사당&lt;br /&gt;
고려    시대    고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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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응국사 인물 원응국사&lt;br /&gt;
&lt;br /&gt;
#Links&lt;br /&gt;
부석사 무량수전 ~의_건축물이다&lt;br /&gt;
부석사 조사당 ~의_건축물이다&lt;br /&gt;
통일신라 부석사 ~시대에_지어졌다&lt;br /&gt;
고려 무량수전 ~시대에_지어졌다&lt;br /&gt;
고려 조사당 ~시대에_지어졌다&lt;br /&gt;
의상대사 부석사 ~와_관련된_인물이다&lt;br /&gt;
원응국사 조사당 ~와_관련된_인물이다&lt;br /&gt;
&lt;br /&gt;
#End&lt;br /&gt;
&amp;lt;/pr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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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건축문화재]][[분류:라떼]]&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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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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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5:00: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사진.png|섬네일|450픽셀|오른쪽|&amp;lt;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amp;gt;]]&lt;br /&gt;
수덕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4 여기로]&lt;br /&gt;
&lt;br /&gt;
==사찰 소개==&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수덕사는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9D%BC 백제] 때에 창건되어 내려오는 유서깊은 고찰이며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이기도 하다. 수덕사 뒤 덕숭산 정상부에는 선방인 정혜사와 여러 토굴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금선대에서는 경허, 만공, 혜월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덕숭산 꼭대기에 위치한 전월사는 만공스님이 말년을 주로 보낸 곳이라 한다. 그 근처에 세계일화라고 쓰여진 탑이 만공스님 부도탑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73호이다. 또한 우리나라 4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366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 바위, 미륵 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lt;br /&gt;
&lt;br /&gt;
수덕사는 완만한 산의 구릉을 따라 삼단과 석축을 쌓고 가장 위쪽에 대웅전을 배치한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으로 도입·전개·결과의 연속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대웅전을 강조하고 있다. 도입부는 속세로부터 사찰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전개부는 시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유도하여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결말부는 핵심공간으로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는 대웅전이 위치해 있으며 동선의 배치와 뛰어난 구조미로 완성된다. &amp;lt;ref&amp;gt;https://www.yesan.go.kr/tour/sub01_01_01_01_01.do 예산군_수덕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惠現)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척불정책에 의하여 수덕사는 전대에 비하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사세도 많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을 제외한 건축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 결과로 보인다. 1920년대 신문 취재 기사에서는 예산의 대표적 사찰로서 수덕사 대신 인근의 정혜사와 보덕사가 소개될 정도였다. 이러한 점에서 수덕사가 현재의 위상을 회복하게 된 데에는 승려 경허(鏡虛)[1846~1912]와 만공(滿空)[1871~1946]&amp;lt;ref&amp;gt;경허의 문하인 만공은 특히 간화선(看話禪) 중심의 한국 불교계를 중흥시킨 대표적 인물이다.&amp;lt;/ref&amp;gt;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034&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창건설화는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amp;lt;ref&amp;gt;http://www.sudeoksa.com/bbs/content.php?co_id=30201010 수덕사&amp;lt;/ref&amp;gt;&lt;br /&gt;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이야기&lt;br /&gt;
  수덕이라는 도령이 사냥을 갔다가 먼발치에서 덕숭낭자를 보고 상사병에 빠진다. 끈질긴 청혼에 덕숭낭자는 자기집 근처에 절을 지어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수덕도령은 욕심속에 절을 지었으나 완공 직전에 불이 나서 절이 소실되게 된다. 절을 짓기를 반복하다 세번째는 탐욕을 내려놓고 부처님만 생각하여 절을 완공하였다. 그런데 약속대로 결혼은 하였으나 낭자는 도령의 손길을 거부하였다. 도령이 덕숭낭자를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사라지고 버선 한쪽만 쥐어 있었다.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하얀 버선꽃이 피어난다. 그 후 수덕사는 도령의 이름을 따고 덕숭산은 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lt;br /&gt;
&lt;br /&gt;
  대중창불사에 관련된 이야기&lt;br /&gt;
 절은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해야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당시 스님들로서는 불사금 조달이 어려운 와중에 묘령의 여인이 공양주를 자청하여 절에 찾아왔다. 그런데 미모가 뛰어나 많은 이가 찾아오게 되었고 대부호의 아들인 정혜라는 청년이 청혼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불사가 완성되면 청혼에 응하겠다고 말하자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불사기간을 앞당겼다. 낙성식 후 하산을 재촉하자 잠시 시간을 달라며 여인이 방을 나가려고 하기에 그녀를 잡았는데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로부터 봄이 되면 버선꽃이 피어나게 되었고 관세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을 따서 수덕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소속 문화재==&lt;br /&gt;
'''[[수덕사 대웅전]]''' ([[국보]])&lt;br /&gt;
&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C%82%BC%EC%B8%B5%EC%84%9D%ED%83%91 수덕사 삼층석탑]&lt;br /&gt;
&lt;br /&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그 외 다수&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 건축문화재]]&lt;br /&gt;
[[분류: 최준호]]&lt;br /&gt;
[[분류: 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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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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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5:00: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사진.png|섬네일|450픽셀|오른쪽|&amp;lt;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amp;gt;]]&lt;br /&gt;
수덕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4 여기로]&lt;br /&gt;
&lt;br /&gt;
==사찰 소개==&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수덕사는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9D%BC 백제] 때에 창건되어 내려오는 유서깊은 고찰이며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이기도 하다. 수덕사 뒤 덕숭산 정상부에는 선방인 정혜사와 여러 토굴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금선대에서는 경허, 만공, 혜월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덕숭산 꼭대기에 위치한 전월사는 만공스님이 말년을 주로 보낸 곳이라 한다. 그 근처에 세계일화라고 쓰여진 탑이 만공스님 부도탑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73호이다. 또한 우리나라 4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366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 바위, 미륵 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lt;br /&gt;
&lt;br /&gt;
수덕사는 완만한 산의 구릉을 따라 삼단과 석축을 쌓고 가장 위쪽에 대웅전을 배치한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으로 도입·전개·결과의 연속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대웅전을 강조하고 있다. 도입부는 속세로부터 사찰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전개부는 시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유도하여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결말부는 핵심공간으로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는 대웅전이 위치해 있으며 동선의 배치와 뛰어난 구조미로 완성된다. &amp;lt;ref&amp;gt;https://www.yesan.go.kr/tour/sub01_01_01_01_01.do 예산군_수덕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惠現)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척불정책에 의하여 수덕사는 전대에 비하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사세도 많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을 제외한 건축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 결과로 보인다. 1920년대 신문 취재 기사에서는 예산의 대표적 사찰로서 수덕사 대신 인근의 정혜사와 보덕사가 소개될 정도였다. 이러한 점에서 수덕사가 현재의 위상을 회복하게 된 데에는 승려 경허(鏡虛)[1846~1912]와 만공(滿空)[1871~1946]&amp;lt;ref&amp;gt;경허의 문하인 만공은 특히 간화선(看話禪) 중심의 한국 불교계를 중흥시킨 대표적 인물이다.&amp;lt;/ref&amp;gt;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034&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창건설화는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amp;lt;ref&amp;gt;http://www.sudeoksa.com/bbs/content.php?co_id=30201010 수덕사&amp;lt;/ref&amp;gt;&lt;br /&gt;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이야기&lt;br /&gt;
  수덕이라는 도령이 사냥을 갔다가 먼발치에서 덕숭낭자를 보고 상사병에 빠진다. 끈질긴 청혼에 덕숭낭자는 자기집 근처에 절을 지어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수덕도령은 욕심속에 절을 지었으나 완공 직전에 불이 나서 절이 소실되게 된다. 절을 짓기를 반복하다 세번째는 탐욕을 내려놓고 부처님만 생각하여 절을 완공하였다. 그런데 약속대로 결혼은 하였으나 낭자는 도령의 손길을 거부하였다. 도령이 덕숭낭자를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사라지고 버선 한쪽만 쥐어 있었다.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하얀 버선꽃이 피어난다. 그 후 수덕사는 도령의 이름을 따고 덕숭산은 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lt;br /&gt;
&lt;br /&gt;
  대중창불사에 관련된 이야기&lt;br /&gt;
 절은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해야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당시 스님들로서는 불사금 조달이 어려운 와중에 묘령의 여인이 공양주를 자청하여 절에 찾아왔다. 그런데 미모가 뛰어나 많은 이가 찾아오게 되었고 대부호의 아들인 정혜라는 청년이 청혼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불사가 완성되면 청혼에 응하겠다고 말하자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불사기간을 앞당겼다. 낙성식 후 하산을 재촉하자 잠시 시간을 달라며 여인이 방을 나가려고 하기에 그녀를 잡았는데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로부터 봄이 되면 버선꽃이 피어나게 되었고 관세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을 따서 수덕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소속 문화재==&lt;br /&gt;
'''[[수덕사 대웅전]]''' ([[국보]])&lt;br /&gt;
&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C%82%BC%EC%B8%B5%EC%84%9D%ED%83%91 수덕사 삼층석탑]&lt;br /&gt;
&lt;br /&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그 외 다수&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 건축문화재]]&lt;br /&gt;
[[분류: 최준호]]&lt;br /&gt;
[[분류: 신유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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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 대웅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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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4:57: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수덕사 3층석탑[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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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amp;diff=34221</id>
		<title>수덕사 대웅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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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4:56: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수덕사 3층석탑[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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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석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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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4:55: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부석사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부석사]]&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부석사(浮石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통일신라-신라 문무대왕 16년(676년)&lt;br /&gt;
  삼국유사에는“의상이 태백산에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교(대승불교)를 포교하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amp;quot;고 전한다. 그리하여 신라 문무왕 16년(676) 2월에 의상대사가 문무왕이 뜻을 받들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amp;lt;ref&amp;gt;http://www.pusoksa.org/intro/history&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lt;br /&gt;
*특징: 의상이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 사찰.&lt;br /&gt;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베풀던 곳으로, 의상을“부석존자&amp;quot;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부석종&amp;quot;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lt;br /&gt;
&lt;br /&gt;
엄격한 양식을 가졌던 삼국시대의 절과 달리 자유로운 건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고려와 조선 시대로 갈 수록 점점 심해진다. 회전문, 범종각, 법당, 안양문, 무량수전의 차례로 이루어지는 공간 구조는 화엄경의 질서와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lt;br /&gt;
*사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공민왕 7년(1358)에 왜구의 침입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렸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amp;lt;ref&amp;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2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부석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무량수전]]&lt;br /&gt;
*[[조사당]]&lt;br /&gt;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 17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70000,37&amp;amp;pageNo=1_1_1_0 문화재청]&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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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A1%B0%EC%82%AC%EB%8B%B9&amp;diff=34219</id>
		<title>조사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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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0T14:55: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조사당_사진.png|섬네일|430픽셀|오른쪽|영주 부석사 조사당]]&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 고려 우왕 3년(1377)&amp;lt;ref&amp;gt;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lt;br /&gt;
*특징: 국보 제19호&lt;br /&gt;
&lt;br /&gt;
부석사 조사당의 부분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1962년 지정)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72 디지털영주문화대전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 그러나 1300년대에 생긴 전설이라는 점에서 그 진위성은 확실하지 않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영주 부석사 조사당&amp;lt;/ref&amp;gt;&lt;br /&gt;
 영주 봉황산 부석사 선비화(禪扉花) 이야기&lt;br /&gt;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 /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lt;br /&gt;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lt;br /&gt;
 스님이 말하길, 지팡이가 신기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네&lt;br /&gt;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수가 생기니,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았네&lt;br /&gt;
&lt;br /&gt;
*구성: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지붕으로 꾸몄다.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90000,37&amp;amp;pageNo=1_1_1_0&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부석사]]&lt;br /&gt;
*[[무량수전]]&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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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A9%EB%91%90%EC%82%AC&amp;diff=32025</id>
		<title>용두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A9%EB%91%90%EC%82%AC&amp;diff=32025"/>
		<updated>2023-12-08T10:36: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철당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청주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龍頭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이전으로 추정&lt;br /&gt;
현재는 절이 소실되어 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제8대 현종 관련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사건: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227&amp;amp;cid=46648&amp;amp;categoryId=4664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국보 제41호로 용두사 터에 세워졌던 철 당간이다.&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은 현재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m 높이로 보존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통해 부처님의 위싱과 공덕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lt;br /&gt;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4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두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두 가지의 관련된 일화가 존재한다.&lt;br /&gt;
&lt;br /&gt;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amp;lt;br/&amp;gt;&lt;br /&gt;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2635 디지털청주문화대전「주성과 용두사지 철당간 전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용두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건축문화재]]&lt;br /&gt;
[[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C%B4%EB%9F%89%EC%88%98%EC%A0%84&amp;diff=32020</id>
		<title>무량수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C%B4%EB%9F%89%EC%88%98%EC%A0%84&amp;diff=32020"/>
		<updated>2023-12-08T10:28: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무량수전_사진.png|섬네일|430픽셀|오른쪽|무량수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중기)&amp;lt;ref&amp;gt;고려 시대의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어 고려 시대 중기의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lt;br /&gt;
*특징: 국보 제18호&lt;br /&gt;
&lt;br /&gt;
무량수전은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며 형태미와 비례미가 뛰어나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불경 내용에 따라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여 불상이 동쪽을 향하게 했고 바닥에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경북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며 고려시대 불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건축물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29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무량수전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700180000&amp;amp;pageNo=1_1_2_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반적인 불전은 건물 중심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방향과 같게 한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도록 만들었으며 내부 바닥에는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량수전과 같은 구성은 건물의 깊이를 확보하고 불단으로 향하는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부석사]]&lt;br /&gt;
*[[조사당]]&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건축문화재]][[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A9%EB%91%90%EC%82%AC&amp;diff=32017</id>
		<title>용두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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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10:26: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철당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청주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龍頭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이전으로 추정&lt;br /&gt;
현재는 절이 소실되어 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제8대 현종 관련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사건: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227&amp;amp;cid=46648&amp;amp;categoryId=4664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국보 제41호로 용두사 터에 세워졌던 철 당간이다.&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은 현재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m 높이로 보존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통해 부처님의 위싱과 공덕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lt;br /&gt;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4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두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두 가지의 관련된 일화가 존재한다.&lt;br /&gt;
&lt;br /&gt;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amp;lt;br/&amp;gt;&lt;br /&gt;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2635 디지털청주문화대전「주성과 용두사지 철당간 전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용두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건축문화재]][[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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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용두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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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철당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청주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龍頭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이전으로 추정&lt;br /&gt;
현재는 절이 소실되어 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제8대 현종 관련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사건: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227&amp;amp;cid=46648&amp;amp;categoryId=4664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국보 제41호로 용두사 터에 세워졌던 철 당간이다.&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은 현재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m 높이로 보존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통해 부처님의 위싱과 공덕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lt;br /&gt;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4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두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두 가지의 관련된 일화가 존재한다.&lt;br /&gt;
&lt;br /&gt;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amp;lt;br/&amp;gt;&lt;br /&gt;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2635 디지털청주문화대전「주성과 용두사지 철당간 전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용두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건축 문화재]][[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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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용두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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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철당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청주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龍頭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이전으로 추정&lt;br /&gt;
현재는 절이 소실되어 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제8대 현종 관련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사건: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227&amp;amp;cid=46648&amp;amp;categoryId=4664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lt;br /&gt;
&lt;br /&gt;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lt;br /&gt;
&lt;br /&gt;
*특징: 국보 제41호로 용두사 터에 세워졌던 철 당간이다.&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은 현재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m 높이로 보존되어 있다.&amp;lt;br/&amp;gt;&lt;br /&gt;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통해 부처님의 위싱과 공덕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lt;br /&gt;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4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두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두 가지의 관련된 일화가 존재한다.&lt;br /&gt;
&lt;br /&gt;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amp;lt;br/&amp;gt;&lt;br /&gt;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2635 디지털청주문화대전「주성과 용두사지 철당간 전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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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br /&gt;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분류:불교 건축물]][[분류:라떼]]&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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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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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석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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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10:24: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관련 건축물 */&lt;/p&gt;
&lt;hr /&gt;
&lt;div&gt;[[파일:부석사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부석사]]&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부석사(浮石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통일신라-신라 문무대왕 16년(676년)&lt;br /&gt;
  삼국유사에는“의상이 태백산에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교(대승불교)를 포교하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amp;quot;고 전한다. 그리하여 신라 문무왕 16년(676) 2월에 의상대사가 문무왕이 뜻을 받들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amp;lt;ref&amp;gt;http://www.pusoksa.org/intro/history&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lt;br /&gt;
*특징: 의상이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 사찰.&lt;br /&gt;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베풀던 곳으로, 의상을“부석존자&amp;quot;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부석종&amp;quot;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lt;br /&gt;
&lt;br /&gt;
엄격한 양식을 가졌던 삼국시대의 절과 달리 자유로운 건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고려와 조선 시대로 갈 수록 점점 심해진다. 회전문, 범종각, 법당, 안양문, 무량수전의 차례로 이루어지는 공간 구조는 화엄경의 질서와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lt;br /&gt;
*사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공민왕 7년(1358)에 왜구의 침입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렸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amp;lt;ref&amp;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2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부석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무량수전]]&lt;br /&gt;
*[[조사당]]&lt;br /&gt;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 17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70000,37&amp;amp;pageNo=1_1_1_0 문화재청]&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0%EC%84%9D%EC%82%AC&amp;diff=32012</id>
		<title>부석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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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10:23:5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관련 건축물 */&lt;/p&gt;
&lt;hr /&gt;
&lt;div&gt;[[파일:부석사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부석사]]&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부석사(浮石寺)&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통일신라-신라 문무대왕 16년(676년)&lt;br /&gt;
  삼국유사에는“의상이 태백산에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교(대승불교)를 포교하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amp;quot;고 전한다. 그리하여 신라 문무왕 16년(676) 2월에 의상대사가 문무왕이 뜻을 받들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amp;lt;ref&amp;gt;http://www.pusoksa.org/intro/history&amp;lt;/ref&amp;gt;&lt;br /&gt;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lt;br /&gt;
*특징: 의상이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 사찰.&lt;br /&gt;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베풀던 곳으로, 의상을“부석존자&amp;quot;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부석종&amp;quot;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lt;br /&gt;
&lt;br /&gt;
엄격한 양식을 가졌던 삼국시대의 절과 달리 자유로운 건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고려와 조선 시대로 갈 수록 점점 심해진다. 회전문, 범종각, 법당, 안양문, 무량수전의 차례로 이루어지는 공간 구조는 화엄경의 질서와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lt;br /&gt;
*사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공민왕 7년(1358)에 왜구의 침입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렸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amp;lt;ref&amp;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2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부석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무량수전]]&lt;br /&gt;
*[[조사당]]&lt;br /&gt;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 17호)[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170000,37&amp;amp;pageNo=1_1_1_0 문화재청]&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부석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8%98%EB%8D%95%EC%82%AC&amp;diff=32008</id>
		<title>수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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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10:18: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일화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사진.png|섬네일|450픽셀|오른쪽|&amp;lt;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amp;gt;]]&lt;br /&gt;
수덕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4 여기로]&lt;br /&gt;
&lt;br /&gt;
==사찰 소개==&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수덕사는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9D%BC 백제] 때에 창건되어 내려오는 유서깊은 고찰이며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이기도 하다. 수덕사 뒤 덕숭산 정상부에는 선방인 정혜사와 여러 토굴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금선대에서는 경허, 만공, 혜월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덕숭산 꼭대기에 위치한 전월사는 만공스님이 말년을 주로 보낸 곳이라 한다. 그 근처에 세계일화라고 쓰여진 탑이 만공스님 부도탑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73호이다. 또한 우리나라 4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366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 바위, 미륵 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lt;br /&gt;
&lt;br /&gt;
수덕사는 완만한 산의 구릉을 따라 삼단과 석축을 쌓고 가장 위쪽에 대웅전을 배치한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으로 도입·전개·결과의 연속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대웅전을 강조하고 있다. 도입부는 속세로부터 사찰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전개부는 시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유도하여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결말부는 핵심공간으로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는 대웅전이 위치해 있으며 동선의 배치와 뛰어난 구조미로 완성된다. &amp;lt;ref&amp;gt;https://www.yesan.go.kr/tour/sub01_01_01_01_01.do 예산군_수덕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惠現)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척불정책에 의하여 수덕사는 전대에 비하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사세도 많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을 제외한 건축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 결과로 보인다. 1920년대 신문 취재 기사에서는 예산의 대표적 사찰로서 수덕사 대신 인근의 정혜사와 보덕사가 소개될 정도였다. 이러한 점에서 수덕사가 현재의 위상을 회복하게 된 데에는 승려 경허(鏡虛)[1846~1912]와 만공(滿空)[1871~1946]&amp;lt;ref&amp;gt;경허의 문하인 만공은 특히 간화선(看話禪) 중심의 한국 불교계를 중흥시킨 대표적 인물이다.&amp;lt;/ref&amp;gt;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034&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창건설화는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amp;lt;ref&amp;gt;http://www.sudeoksa.com/bbs/content.php?co_id=30201010 수덕사&amp;lt;/ref&amp;gt;&lt;br /&gt;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이야기&lt;br /&gt;
  수덕이라는 도령이 사냥을 갔다가 먼발치에서 덕숭낭자를 보고 상사병에 빠진다. 끈질긴 청혼에 덕숭낭자는 자기집 근처에 절을 지어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수덕도령은 욕심속에 절을 지었으나 완공 직전에 불이 나서 절이 소실되게 된다. 절을 짓기를 반복하다 세번째는 탐욕을 내려놓고 부처님만 생각하여 절을 완공하였다. 그런데 약속대로 결혼은 하였으나 낭자는 도령의 손길을 거부하였다. 도령이 덕숭낭자를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사라지고 버선 한쪽만 쥐어 있었다.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하얀 버선꽃이 피어난다. 그 후 수덕사는 도령의 이름을 따고 덕숭산은 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lt;br /&gt;
&lt;br /&gt;
  대중창불사에 관련된 이야기&lt;br /&gt;
 절은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해야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당시 스님들로서는 불사금 조달이 어려운 와중에 묘령의 여인이 공양주를 자청하여 절에 찾아왔다. 그런데 미모가 뛰어나 많은 이가 찾아오게 되었고 대부호의 아들인 정혜라는 청년이 청혼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불사가 완성되면 청혼에 응하겠다고 말하자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불사기간을 앞당겼다. 낙성식 후 하산을 재촉하자 잠시 시간을 달라며 여인이 방을 나가려고 하기에 그녀를 잡았는데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로부터 봄이 되면 버선꽃이 피어나게 되었고 관세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을 따서 수덕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소속 문화재==&lt;br /&gt;
'''[[수덕사 대웅전]]''' ([[국보]])&lt;br /&gt;
&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C%82%BC%EC%B8%B5%EC%84%9D%ED%83%91 수덕사 삼층석탑]&lt;br /&gt;
&lt;br /&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그 외 다수&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 건축문화재]]&lt;br /&gt;
[[분류: 최준호]]&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8%98%EB%8D%95%EC%82%AC&amp;diff=32007</id>
		<title>수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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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10:16: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사찰 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사진.png|섬네일|450픽셀|오른쪽|&amp;lt;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amp;gt;]]&lt;br /&gt;
수덕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4 여기로]&lt;br /&gt;
&lt;br /&gt;
==사찰 소개==&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수덕사는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9D%BC 백제] 때에 창건되어 내려오는 유서깊은 고찰이며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이기도 하다. 수덕사 뒤 덕숭산 정상부에는 선방인 정혜사와 여러 토굴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금선대에서는 경허, 만공, 혜월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덕숭산 꼭대기에 위치한 전월사는 만공스님이 말년을 주로 보낸 곳이라 한다. 그 근처에 세계일화라고 쓰여진 탑이 만공스님 부도탑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73호이다. 또한 우리나라 4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366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 바위, 미륵 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lt;br /&gt;
&lt;br /&gt;
수덕사는 완만한 산의 구릉을 따라 삼단과 석축을 쌓고 가장 위쪽에 대웅전을 배치한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으로 도입·전개·결과의 연속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대웅전을 강조하고 있다. 도입부는 속세로부터 사찰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전개부는 시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유도하여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결말부는 핵심공간으로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는 대웅전이 위치해 있으며 동선의 배치와 뛰어난 구조미로 완성된다. &amp;lt;ref&amp;gt;https://www.yesan.go.kr/tour/sub01_01_01_01_01.do 예산군_수덕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惠現)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척불정책에 의하여 수덕사는 전대에 비하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사세도 많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을 제외한 건축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 결과로 보인다. 1920년대 신문 취재 기사에서는 예산의 대표적 사찰로서 수덕사 대신 인근의 정혜사와 보덕사가 소개될 정도였다. 이러한 점에서 수덕사가 현재의 위상을 회복하게 된 데에는 승려 경허(鏡虛)[1846~1912]와 만공(滿空)[1871~1946]&amp;lt;ref&amp;gt;경허의 문하인 만공은 특히 간화선(看話禪) 중심의 한국 불교계를 중흥시킨 대표적 인물이다.&amp;lt;/ref&amp;gt;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034&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일화===&lt;br /&gt;
창건설화는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lt;br /&gt;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이야기&lt;br /&gt;
  수덕이라는 도령이 사냥을 갔다가 먼발치에서 덕숭낭자를 보고 상사병에 빠진다. 끈질긴 청혼에 덕숭낭자는 자기집 근처에 절을 지어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수덕도령은 욕심속에 절을 지었으나 완공 직전에 불이 나서 절이 소실되게 된다. 절을 짓기를 반복하다 세번째는 탐욕을 내려놓고 부처님만 생각하여 절을 완공하였다. 그런데 약속대로 결혼은 하였으나 낭자는 도령의 손길을 거부하였다. 도령이 덕숭낭자를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사라지고 버선 한쪽만 쥐어 있었다.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하얀 버선꽃이 피어난다. 그 후 수덕사는 도령의 이름을 따고 덕숭산은 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lt;br /&gt;
&lt;br /&gt;
  대중창불사에 관련된 이야기&lt;br /&gt;
 절은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해야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당시 스님들로서는 불사금 조달이 어려운 와중에 묘령의 여인이 공양주를 자청하여 절에 찾아왔다. 그런데 미모가 뛰어나 많은 이가 찾아오게 되었고 대부호의 아들인 정혜라는 청년이 청혼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불사가 완성되면 청혼에 응하겠다고 말하자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불사기간을 앞당겼다. 낙성식 후 하산을 재촉하자 잠시 시간을 달라며 여인이 방을 나가려고 하기에 그녀를 잡았는데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로부터 봄이 되면 버선꽃이 피어나게 되었고 관세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을 따서 수덕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소속 문화재==&lt;br /&gt;
'''[[수덕사 대웅전]]''' ([[국보]])&lt;br /&gt;
&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C%82%BC%EC%B8%B5%EC%84%9D%ED%83%91 수덕사 삼층석탑]&lt;br /&gt;
&lt;br /&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그 외 다수&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 건축문화재]]&lt;br /&gt;
[[분류: 최준호]]&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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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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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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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09:21: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사진.png|섬네일|450픽셀|오른쪽|&amp;lt;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amp;gt;]]&lt;br /&gt;
수덕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4 여기로]&lt;br /&gt;
&lt;br /&gt;
==사찰 소개==&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수덕사는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9D%BC 백제] 때에 창건되어 내려오는 유서깊은 고찰이며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이기도 하다. 수덕사 뒤 덕숭산 정상부에는 선방인 정혜사와 여러 토굴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금선대에서는 경허, 만공, 혜월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덕숭산 꼭대기에 위치한 전월사는 만공스님이 말년을 주로 보낸 곳이라 한다. 그 근처에 세계일화라고 쓰여진 탑이 만공스님 부도탑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73호이다. 또한 우리나라 4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366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 바위, 미륵 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lt;br /&gt;
&lt;br /&gt;
수덕사는 완만한 산의 구릉을 따라 삼단과 석축을 쌓고 가장 위쪽에 대웅전을 배치한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으로 도입·전개·결과의 연속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대웅전을 강조하고 있다. 도입부는 속세로부터 사찰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전개부는 시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유도하여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결말부는 핵심공간으로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는 대웅전이 위치해 있으며 동선의 배치와 뛰어난 구조미로 완성된다. &amp;lt;ref&amp;gt;https://www.yesan.go.kr/tour/sub01_01_01_01_01.do 예산군_수덕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惠現)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척불정책에 의하여 수덕사는 전대에 비하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사세도 많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을 제외한 건축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 결과로 보인다. 1920년대 신문 취재 기사에서는 예산의 대표적 사찰로서 수덕사 대신 인근의 정혜사와 보덕사가 소개될 정도였다. 이러한 점에서 수덕사가 현재의 위상을 회복하게 된 데에는 승려 경허(鏡虛)[1846~1912]와 만공(滿空)[1871~1946]&amp;lt;ref&amp;gt;경허의 문하인 만공은 특히 간화선(看話禪) 중심의 한국 불교계를 중흥시킨 대표적 인물이다.&amp;lt;/ref&amp;gt;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034&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소속 문화재==&lt;br /&gt;
'''[[수덕사 대웅전]]''' ([[국보]])&lt;br /&gt;
&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C%82%BC%EC%B8%B5%EC%84%9D%ED%83%91 수덕사 삼층석탑]&lt;br /&gt;
&lt;br /&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그 외 다수&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 건축문화재]]&lt;br /&gt;
[[분류: 최준호]]&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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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수덕사 3층석탑[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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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수덕사 3층석탑[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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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amp;lt;ref&amp;gt;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amp;amp;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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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건축물 정보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lt;br /&gt;
&lt;br /&gt;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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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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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관계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width: 600px; height: 720px;&amp;quot;&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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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amp;diff=31983</id>
		<title>수덕사 대웅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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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09:05: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lt;br /&gt;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lt;br /&gt;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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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 대웅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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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09:02: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정의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대웅전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예산 수덕사 대웅전]]&lt;br /&gt;
==&amp;lt;big&amp;gt;정의&amp;lt;/big&amp;gt;==&lt;br /&gt;
===건축물 정보===&lt;br /&gt;
&amp;lt;big&amp;gt;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amp;lt;/big&amp;gt;&lt;br /&gt;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lt;br /&gt;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예산 수덕사 대웅전&amp;lt;/ref&amp;gt;&lt;br /&gt;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lt;br /&gt;
*특징: 국보 제 49호&lt;br /&gt;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수덕사의 대웅전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건축 시기가 명확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한반도 목조건축물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문화재이다.&lt;br /&gt;
&lt;br /&gt;
===관련 건축물===&lt;br /&gt;
*[[수덕사]]&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관계&amp;lt;/big&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수덕사.list .lst}}&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출처&amp;lt;/big&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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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대별로 보는 불교 건축문화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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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08:59: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 고려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cef7ae; margin: 0; border: 2px solid Black; padding: 2px ; border-square:100px&amp;quot;&amp;gt;주제 선정==&lt;br /&gt;
===주제 선정 과정===&lt;br /&gt;
건축문화재는 유형문화재의 일부로, 역사의 증거이자 살아있는 유산이다. 건축물은 그 당시 사회의 생활 양식뿐만 아니라 종교, 예술을 반영하고 있기에 건축물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초반에는 다양한 건축문화재들 중 어떤 건축문화재에 초점을 맞출 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과 같은 서울에 위치한 궁궐들을 비교해보자는 의견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에 한정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 간의 건축물을 비교하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나라 간의 건축물 비교, 한 국가 내에서 다양한 기능을 지닌 건축물의 특징 비교, 건축물의 시대별 변천사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했었다. 최종적으로 우리나라가 유교, 불교, 기독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가 혼재되어있던 특징을 살려, 시대별 종교 건축물들을 비교하는 주제를 선정하였다. 하지만 기독교는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기에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는 건축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으며 유교도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는 관련된 건축물을 찾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4가지의 종교를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조사를 하면 주제가 너무 광범위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조선시대와 같이 한 시대를 특정해서 유교, 불교, 기독교, 도교를 비교할 지, 아니면 한 종교를 선택해 변천사를 알아볼 지를 계속 고민했었다. 자료조사 과정을 거치고 난 뒤, 최종 주제로 불교 건축물의 시대별 변천사에 대해 다루기로 결정하였다.&lt;br /&gt;
&lt;br /&gt;
===불교 건축물을 선정한 이유===&lt;br /&gt;
불교는 4~5세기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와, 신라-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국교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다. 유교사상이 우세했던 조선에서도 계속해서 그 입지를 유지했으며 현재까지 불교는 기독교와 더불어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종교이다. 약 1700여년간 끊이지 않고 이어온 불교는 다른 종교들에 비해 석탑과 절과 같은 종교와 관련된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으며 변천사를 살펴보기에도 용이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또한 많은 불교 건축물들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어 그들의 가치와 중요성이 입증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의의===&lt;br /&gt;
불교 건축물을 크게 신라 시대(삼국시대), 통일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시대별 건축물 분포 위치의 차이와 석탑 건축 양식 간의 비교를 통해서 불교의 지위와 위상의 변화를 알 수 있으며 석탑의 양식을 통해 당시 어느 나라와의 교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는지와 같은 외교적인 측면도 알 수 있다. 또한 릴레이션을 통해서 1000년이 넘는 시간에 걸친 불교 건축물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건축물간의 관련성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cef7ae; margin: 0; border: 2px solid Black; padding: 2px ; border-square: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NetworkGraph | title=불교건축문화재.lst}}&lt;br /&gt;
===클래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절 || 대한민국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건축된 수많은 사찰들 중 핵심적인 몇 가지 절들을 다양한 시대에 맞춰 추렸다. || 불국사, 분황사, 무위사, 해인사, 용두사, 통도사, 경천사, 고달사, 개태사, 거조사, 원각사, 법주사, 수덕사 &lt;br /&gt;
|-&lt;br /&gt;
|국가|| 불교가 처음 도입된 삼국시대 국가부터 조선시대까지 불교건축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국가들을 정리하였다. 시대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며, 삼국시대는 신라의 건축물이 대부분인 관계로 신라시대라 명명함. ||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lt;br /&gt;
|-&lt;br /&gt;
|건축물|| 다양한 시대와 국가의 불교건축물들을 모았다. || 무량수전, 조사당, 장경판전, 통도사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 금강계단, 미륵사지 석탑, 청운교 및 백운교, 경천사지 십층석탑,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석조삼존불입상, 거조암 삼층 석탑, 분황사 모전석탑, 석굴암, 다보탑, 쌍사자석등, 극락보전, 원각사지 십층석탑 &lt;br /&gt;
|-&lt;br /&gt;
|지역|| 현대 대한민국의 지역 구분을 기준으로 역사적 불교건축물들이 많이 존재하는 도를 추렸다.(서울은 경기도로 포함시켰다) || 경상북도, 경상남도, 충청북도,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남도  &lt;br /&gt;
|-&lt;br /&gt;
|사건 || 불교건축물들이 다수 파괴된 한국의 역사적 사건을 정리했다. || 임진왜란, 여몽전쟁, 왜구침입 &lt;br /&gt;
|}&lt;br /&gt;
&lt;br /&gt;
===릴레이션===&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brown&amp;quot;&amp;gt;'''~시대에 만들어졌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어떤 사찰, 건축물이 어느 시대에 제작되었는지를 알려준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불국사 → 신라&lt;br /&gt;
***#분황사 → 신라&lt;br /&gt;
***#통도사 → 신라&lt;br /&gt;
***#법주사 → 신라&lt;br /&gt;
***#수덕사 → 신라(삼국시대 백제)&lt;br /&gt;
***#무위사 → 통일신라 &lt;br /&gt;
***#부석사 → 통일신라&lt;br /&gt;
***#해인사 → 통일신라&lt;br /&gt;
***#거조사 → 통일신라&lt;br /&gt;
***#고달사 → 통일신라 &lt;br /&gt;
***#원각사 → 고려 &lt;br /&gt;
***#개태사 → 고려&lt;br /&gt;
***#용두사 → 고려 &lt;br /&gt;
***#경천사 → 고려 &lt;br /&gt;
&lt;br /&gt;
***#미륵사지석탑 → 신라(삼국시대 백제)&lt;br /&gt;
***#모전석탑 → 신라&lt;br /&gt;
***#청운교-백운교 → 통일신라 &lt;br /&gt;
***#고달사지원종대사탑비 → 통일신라 &lt;br /&gt;
***#거조암 삼층석탑 → 통일신라 &lt;br /&gt;
***#쌍사자석등 → 통일신라  &lt;br /&gt;
***#석굴암 → 통일신라 &lt;br /&gt;
***#다보탑 → 통일신라 &lt;br /&gt;
***#경천사지 십층석탑 → 고려&lt;br /&gt;
***#석조삼존불입상 → 고려&lt;br /&gt;
***#수덕사 대웅전 → 고려 &lt;br /&gt;
***#무량수전 → 고려 &lt;br /&gt;
***#철당간 → 고려&lt;br /&gt;
***#조사당 → 고려&lt;br /&gt;
***#장경판전 → 조선&lt;br /&gt;
***#통도사 대웅전 → 조선&lt;br /&gt;
***#금강계단 → 조선&lt;br /&gt;
***#극락보전 → 조선 &lt;br /&gt;
***#원각사지 십층석탑 → 조선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brown&amp;quot;&amp;gt;'''~의 건축물이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어떤 세부적 건축물이 어디 절에 속한 건축물인지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무량수전 → 부석사&lt;br /&gt;
***#조사당 → 부석사 &lt;br /&gt;
***#통도사 대웅전 → 통도사&lt;br /&gt;
***#금강계단 → 통도사 &lt;br /&gt;
***#장경판전 → 해인사&lt;br /&gt;
***#철당간 → 용두사&lt;br /&gt;
***#경천사지 십층석탑 → 경천사&lt;br /&gt;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 고달사&lt;br /&gt;
***#석조삼존불입상 → 개태사&lt;br /&gt;
***#거조암 삼층석탑 → 거조사 &lt;br /&gt;
***#모전석탑 → 분황사&lt;br /&gt;
***#쌍사자석등 → 법주사&lt;br /&gt;
***#수덕사 대웅전 → 수덕사&lt;br /&gt;
***#극락보전 → 무위사&lt;br /&gt;
***#원각사지 십층석탑 → 원각사&lt;br /&gt;
***#석굴암 → 불국사&lt;br /&gt;
***#다보탑 → 불국사 &lt;br /&gt;
***#청운교-백운교 → 불국사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brown&amp;quot;&amp;gt;'''~에 위치한다 '''&amp;lt;/span&amp;gt;&lt;br /&gt;
***설명: 어떤 건축물이나 사찰이 어느 도(道)에 위치하는지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고달사 → 경기도&lt;br /&gt;
***#경천사 → 경기도 &lt;br /&gt;
***#원각사 → 경기도  &lt;br /&gt;
***#해인사 → 경상남도&lt;br /&gt;
***#통도사 → 경상남도&lt;br /&gt;
***#부석사 → 경상북도&lt;br /&gt;
***#불국사 → 경상북도 &lt;br /&gt;
***#거조사 → 경상북도 &lt;br /&gt;
***#분황사 → 경상북도  &lt;br /&gt;
***#용두사 → 충청북도&lt;br /&gt;
***#법주사 → 충청북도 &lt;br /&gt;
***#개태사 → 충청남도 &lt;br /&gt;
***#수덕사 → 충청남도 &lt;br /&gt;
***#무위사 → 전라남도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brown&amp;quot;&amp;gt;'''~로 인해_파괴되었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건축물이나 사찰 등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파괴 당했는지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통도사 → 임진왜란&lt;br /&gt;
***#불국사 → 임진왜란&lt;br /&gt;
***#분황사 → 임진왜란 &lt;br /&gt;
***#법주사 → 임진왜란&lt;br /&gt;
***#부석사 → 왜구침입&lt;br /&gt;
***#개태사 → 왜구침입  &lt;br /&gt;
***#용두사 → 여몽전쟁&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cef7ae; margin: 0; border: 2px solid Black; padding: 2px ; border-square: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lt;br /&gt;
[[파일:불교_건축문화재.jpeg|900픽셀|섬네일|center|&amp;lt;팀플 초기에 구상하였던 클래스와 릴레이션&amp;gt;|center]]&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cef7ae; margin: 0; border: 2px solid Black; padding: 2px ; border-square:100px&amp;quot;&amp;gt;구글맵 및 타임라인==&lt;br /&gt;
&lt;br /&gt;
===구글맵===&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red&amp;quot;&amp;gt;'''신라'''&amp;lt;/span&amp;gt;&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yellow&amp;quot;&amp;gt;'''통일신라'''&amp;lt;/span&amp;gt;&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blue&amp;quot;&amp;gt;'''고려'''&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amp;quot;https://www.google.com/maps/d/embed?mid=164yuODlTTRa8fQnNdIvt3xsc76juuP4&amp;amp;ehbc=2E312F&amp;quot; width=&amp;quot;64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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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cef7ae; margin: 0; border: 2px solid Black; padding: 2px ; border-square:100px&amp;quot;&amp;gt;불교 사찰 및 건축문화재 목록==&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삼국시대~통일신라&amp;lt;/big&amp;gt;===&lt;br /&gt;
&lt;br /&gt;
*[[미륵사지 석탑]]&lt;br /&gt;
&lt;br /&gt;
*[[수덕사]]&lt;br /&gt;
&lt;br /&gt;
*[[분황사]]&lt;br /&gt;
**[[분황사 모전석탑]]&lt;br /&gt;
&lt;br /&gt;
*[[법주사]]&lt;br /&gt;
**[[법주사 쌍사자 석등]]&lt;br /&gt;
&lt;br /&gt;
*[[불국사]]&lt;br /&gt;
**[[청운교 및 백운교]]&lt;br /&gt;
**[[다보탑]]&lt;br /&gt;
**[[석굴암 석굴]]&lt;br /&gt;
&lt;br /&gt;
*[[부석사]]&lt;br /&gt;
&lt;br /&gt;
===&amp;lt;big&amp;gt;고려&amp;lt;/big&amp;gt;===&lt;br /&gt;
*[[개태사]]&amp;lt;/br&amp;gt;&lt;br /&gt;
*[[거조사]]&amp;lt;/br&amp;gt;&lt;br /&gt;
**[[영산전]]&lt;br /&gt;
**[[526 석조 나한상]]&lt;br /&gt;
*[[경천사]]&amp;lt;/br&amp;gt;&lt;br /&gt;
**[[경천사 10층 석탑]]&amp;lt;/br&amp;gt;&lt;br /&gt;
*[[고달사]]&amp;lt;/br&amp;gt;&lt;br /&gt;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amp;lt;/br&amp;gt;&lt;br /&gt;
*[[용두사]]&amp;lt;/br&amp;gt;&lt;br /&gt;
*부석사 [[무량수전]]&amp;lt;/br&amp;gt;&lt;br /&gt;
*부석사 [[조사당]]&amp;lt;/br&amp;gt;&lt;br /&gt;
*[[수덕사 대웅전]]&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조선&amp;lt;/big&amp;gt;===&lt;br /&gt;
&lt;br /&gt;
*[http://www.muwisa.or.kr/intro/info 강진 무위사]&lt;br /&gt;
**[[무위사 극락보전]]&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서울 원각사지]]&lt;br /&gt;
**[[원각사지 십층석탑]]&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http://www.tongdosa.or.kr/bbs/content.php?co_id=menu01103 양산 통도사]&lt;br /&gt;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합천 해인사]]&lt;br /&gt;
**[[해인사 장경판전]]&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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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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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8T08:58: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YL0409: &lt;/p&gt;
&lt;hr /&gt;
&lt;div&gt;[[파일:수덕사_사진.png|섬네일|400픽셀|오른쪽|수덕사]]&lt;br /&gt;
수덕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4 여기로]&lt;br /&gt;
&lt;br /&gt;
==사찰 소개==&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수덕사는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9D%BC 백제] 때에 창건되어 내려오는 유서깊은 고찰이며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이기도 하다. 수덕사 뒤 덕숭산 정상부에는 선방인 정혜사와 여러 토굴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금선대에서는 경허, 만공, 혜월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덕숭산 꼭대기에 위치한 전월사는 만공스님이 말년을 주로 보낸 곳이라 한다. 그 근처에 세계일화라고 쓰여진 탑이 만공스님 부도탑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73호이다. 또한 우리나라 4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366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 바위, 미륵 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惠現)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척불정책에 의하여 수덕사는 전대에 비하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사세도 많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을 제외한 건축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 결과로 보인다. 1920년대 신문 취재 기사에서는 예산의 대표적 사찰로서 수덕사 대신 인근의 정혜사와 보덕사가 소개될 정도였다. 이러한 점에서 수덕사가 현재의 위상을 회복하게 된 데에는 승려 경허(鏡虛)[1846~1912]와 만공(滿空)[1871~1946]&amp;lt;ref&amp;gt;경허의 문하인 만공은 특히 간화선(看話禪) 중심의 한국 불교계를 중흥시킨 대표적 인물이다.&amp;lt;/ref&amp;gt;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amp;lt;ref&amp;gt;http://www.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034&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소속 문화재==&lt;br /&gt;
'''[[수덕사 대웅전]]''' ([[국보]])&lt;br /&gt;
&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C%82%BC%EC%B8%B5%EC%84%9D%ED%83%91 수덕사 삼층석탑]&lt;br /&gt;
&lt;br /&gt;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lt;br /&gt;
&lt;br /&gt;
그 외 다수&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콘텐츠 분야 7분반]]&lt;br /&gt;
[[분류: 건축문화재]]&lt;br /&gt;
[[분류: 최준호]]&lt;/div&gt;</summary>
		<author><name>SYL0409</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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