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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_edu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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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고려 팔관회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 팔관회===&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절차&amp;lt;/span&amp;gt;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amp;lt;ref&amp;gt; 중국 고대와 중세에 행하여진 각종 예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amp;lt;/ref&amp;gt;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법왕사 팔관설경문&amp;lt;/span&amp;gt;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1391년(공양왕 3) 11월&amp;lt;/font&amp;gt;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법왕사에서는 팔관회 외에 백고좌도량&amp;lt;ref&amp;gt; 불교에서 신라,고려 시대에 호국을 위해 국가적 행사로 개최한 종교의례 &amp;lt;/ref&amp;gt;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위한 행차가 있었다. 1129년 9월 28일, 1131년 10월 10일, 1135년 10월 10일 법왕사에 백고좌도량을 개설하고 3일 동안 3만 명의 승려에게 반승&amp;lt;ref&amp;gt; 불교에서 승려를 공경하고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재식을 베푸는 행사를 지칭하는 용어 &amp;lt;/ref&amp;gt;을 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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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 팔관회===&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amp;lt;/span&amp;gt;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amp;lt;ref&amp;gt; 중국 고대와 중세에 행하여진 각종 예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amp;lt;/ref&amp;gt;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법왕사 팔관설경문&amp;lt;/span&amp;gt;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1391년(공양왕 3) 11월&amp;lt;/font&amp;gt;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법왕사에서는 팔관회 외에 백고좌도량&amp;lt;ref&amp;gt; 불교에서 신라,고려 시대에 호국을 위해 국가적 행사로 개최한 종교의례 &amp;lt;/ref&amp;gt;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위한 행차가 있었다. 1129년 9월 28일, 1131년 10월 10일, 1135년 10월 10일 법왕사에 백고좌도량을 개설하고 3일 동안 3만 명의 승려에게 반승&amp;lt;ref&amp;gt; 불교에서 승려를 공경하고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재식을 베푸는 행사를 지칭하는 용어 &amp;lt;/ref&amp;gt;을 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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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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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25:4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 팔관회===&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amp;lt;/span&amp;gt;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amp;lt;ref&amp;gt; 중국 고대와 중세에 행하여진 각종 예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amp;lt;/ref&amp;gt;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법왕사 팔관설경문&amp;lt;/span&amp;gt;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1391년(공양왕 3) 11월&amp;lt;/font&amp;gt;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또한 법왕사에서는 팔관회 외에 백고좌도량&amp;lt;ref&amp;gt; 불교에서 신라,고려 시대에 호국을 위해 국가적 행사로 개최한 종교의례 &amp;lt;/ref&amp;gt;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위한 행차가 있었다. 1129년 9월 28일, 1131년 10월 10일, 1135년 10월 10일 법왕사에 백고좌도량을 개설하고 3일 동안 3만 명의 승려에게 반승&amp;lt;ref&amp;gt; 불교에서 승려를 공경하고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재식을 베푸는 행사를 지칭하는 용어 &amp;lt;/ref&amp;gt;을 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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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25: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결론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 팔관회===&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amp;lt;/span&amp;gt;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amp;lt;ref&amp;gt; 중국 고대와 중세에 행하여진 각종 예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amp;lt;/ref&amp;gt;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법왕사 팔관설경문&amp;lt;/span&amp;gt;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1391년(공양왕 3) 11월&amp;lt;/font&amp;gt;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또한 법왕사에서는 팔관회 외에 백고좌도량&amp;lt;ref&amp;gt; 불교에서 신라,고려 시대에 호국을 위해 국가적 행사로 개최한 종교의례 &amp;lt;/ref&amp;gt;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위한 행차가 있었다. 1129년 9월 28일, 1131년 10월 10일, 1135년 10월 10일 법왕사에 백고좌도량을 개설하고 3일 동안 3만 명의 승려에게 반승&amp;lt;ref&amp;gt; 불굥에서 승려를 공경하고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재식을 베푸는 행사를 지칭하는 용어 &amp;lt;/ref&amp;gt;을 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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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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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25: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 팔관회===&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amp;lt;/span&amp;gt;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amp;lt;ref&amp;gt; 중국 고대와 중세에 행하여진 각종 예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amp;lt;/ref&amp;gt;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법왕사 팔관설경문&amp;lt;/span&amp;gt;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1391년(공양왕 3) 11월&amp;lt;/font&amp;gt;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또한 법왕사에서는 팔관회 외에 백고좌도량&amp;lt;ref&amp;gt; 불교에서 신라,고려 시대에 호국을 위해 국가적 행사로 개최한 종교의례 &amp;lt;/ref&amp;gt;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위한 행차가 있었다. 1129년 9월 28일, 1131년 10월 10일, 1135년 10월 10일 법왕사에 백고좌도량을 개설하고 3일 동안 3만 명의 승려에게 반승&amp;lt;ref&amp;gt; 불굥에서 승려를 공경하고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재식을 베푸는 행사를 지칭하는 용어 &amp;lt;/ref&amp;gt;을 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4%9C%EC%9A%B8_%EC%97%B0%EB%93%B1%ED%9A%8C&amp;diff=60033</id>
		<title>서울 연등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4%9C%EC%9A%B8_%EC%97%B0%EB%93%B1%ED%9A%8C&amp;diff=60033"/>
		<updated>2025-06-23T01:20: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주요 프로그램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서울 연등회는 신라·고려·조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확장한 시민참여형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서울 도심을 무대로 세계인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규모 문화유산 축제로 발전되었다.&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55년''' 제등행렬: 현대 연등회의 시발점&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75년''' 초파일 국가 공휴일로 지정: 참여 인원 증가&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76년'''  여의도광장-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96년''' 동대문운동장-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을 비롯하여 전통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회향한마당(대동한마당) 등으로 진행됨.&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내부 행사==&lt;br /&gt;
===1. 연등행렬===&lt;br /&gt;
====일정 및 경로====&lt;br /&gt;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 전후 주말 저녁, 서울 흥인지문~종로~조계사 구간에서 진행된다. 2025년 기준, 5월 16일(토)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약 2시간 반 동안 펼쳐진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amp;quot;https://www.google.com/maps/d/u/0/embed?mid=1zF-Pyp25c6ysQjncWP1FBzDo8KPVVEU&amp;amp;ehbc=2E312F&amp;quot; width=&amp;quot;64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구성과 풍경====&lt;br /&gt;
[[파일:연등행렬.png|400픽셀]]&lt;br /&gt;
&lt;br /&gt;
수만여 개의 형형색색 연등이 시민과 불자, 외국인 참가자들의 손에 들려 서울의 밤거리를 밝힌다. 연꽃등, 동물등, 캐릭터등, 대형 장엄등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연등이 등장한다.&lt;br /&gt;
&lt;br /&gt;
행렬은 동국대에서 시작해 흥인지문, 종로, 조계사까지 이어지며, 거리 곳곳에 관람석이 설치되고, 시민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행사 의의====&lt;br /&gt;
연등행렬은 단순한 퍼레이드를 넘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빛의 행진'이다.&lt;br /&gt;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 코끼리, 사자 등 대형 장엄등과 함께, 참가자 각자가 소망을 담은 연등을 들고 행진함으로써 공동체적 연대와 소망을 나눈다.&lt;br /&gt;
최근에는 만화 캐릭터 등 현대적 요소도 가미되어, 남녀노소·국적 불문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2. 연등놀이===&lt;br /&gt;
====행사 개요====&lt;br /&gt;
연등행렬이 끝난 뒤 종각사거리, [[조계사]] 일대에서 '연등놀이'가 이어진다.&lt;br /&gt;
전통적으로는 연등을 들고 모여 율동, 노래, 놀이를 즐기는 시민참여형 놀이마당이었으며, 현대에는 공연, 퍼포먼스, 디제잉 파티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확장되었다.&lt;br /&gt;
&lt;br /&gt;
====주요 프로그램====&lt;br /&gt;
&lt;br /&gt;
연등놀이 무대:&lt;br /&gt;
[[조계사]], [[봉은사]], 한마음선원 등에서 준비한 전통 연희, 합창, 퍼포먼스 공연이 펼쳐진다.&lt;br /&gt;
&lt;br /&gt;
디제잉 파티:&lt;br /&gt;
종로 거리 한복판에서는 DJ와 함께하는 파티가 열려, 젊은이, 가족, 외국인 등 다양한 세대와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춤추고 어우러진다.&lt;br /&gt;
&lt;br /&gt;
====행사 의의====&lt;br /&gt;
연등놀이는 단순히 관람하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가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lt;br /&gt;
고려시대 연등회가 지녔던 공동체 정신, 계층 통합, 세대 전승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계승한다.&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4%9C%EC%9A%B8_%EC%97%B0%EB%93%B1%ED%9A%8C&amp;diff=60032</id>
		<title>서울 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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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20: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행사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서울 연등회는 신라·고려·조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확장한 시민참여형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서울 도심을 무대로 세계인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규모 문화유산 축제로 발전되었다.&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55년''' 제등행렬: 현대 연등회의 시발점&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75년''' 초파일 국가 공휴일로 지정: 참여 인원 증가&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76년'''  여의도광장-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96년''' 동대문운동장-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을 비롯하여 전통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회향한마당(대동한마당) 등으로 진행됨.&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내부 행사==&lt;br /&gt;
===1. 연등행렬===&lt;br /&gt;
====일정 및 경로====&lt;br /&gt;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 전후 주말 저녁, 서울 흥인지문~종로~조계사 구간에서 진행된다. 2025년 기준, 5월 16일(토)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약 2시간 반 동안 펼쳐진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amp;quot;https://www.google.com/maps/d/u/0/embed?mid=1zF-Pyp25c6ysQjncWP1FBzDo8KPVVEU&amp;amp;ehbc=2E312F&amp;quot; width=&amp;quot;64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구성과 풍경====&lt;br /&gt;
[[파일:연등행렬.png|400픽셀]]&lt;br /&gt;
&lt;br /&gt;
수만여 개의 형형색색 연등이 시민과 불자, 외국인 참가자들의 손에 들려 서울의 밤거리를 밝힌다. 연꽃등, 동물등, 캐릭터등, 대형 장엄등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연등이 등장한다.&lt;br /&gt;
&lt;br /&gt;
행렬은 동국대에서 시작해 흥인지문, 종로, 조계사까지 이어지며, 거리 곳곳에 관람석이 설치되고, 시민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행사 의의====&lt;br /&gt;
연등행렬은 단순한 퍼레이드를 넘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빛의 행진'이다.&lt;br /&gt;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 코끼리, 사자 등 대형 장엄등과 함께, 참가자 각자가 소망을 담은 연등을 들고 행진함으로써 공동체적 연대와 소망을 나눈다.&lt;br /&gt;
최근에는 만화 캐릭터 등 현대적 요소도 가미되어, 남녀노소·국적 불문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2. 연등놀이===&lt;br /&gt;
====행사 개요====&lt;br /&gt;
연등행렬이 끝난 뒤 종각사거리, [[조계사]] 일대에서 '연등놀이'가 이어진다.&lt;br /&gt;
전통적으로는 연등을 들고 모여 율동, 노래, 놀이를 즐기는 시민참여형 놀이마당이었으며, 현대에는 공연, 퍼포먼스, 디제잉 파티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확장되었다.&lt;br /&gt;
&lt;br /&gt;
====주요 프로그램====&lt;br /&gt;
&lt;br /&gt;
연등놀이 무대:&lt;br /&gt;
조계사, 봉은사, 한마음선원 등에서 준비한 전통 연희, 합창, 퍼포먼스 공연이 펼쳐진다.&lt;br /&gt;
&lt;br /&gt;
디제잉 파티:&lt;br /&gt;
종로 거리 한복판에서는 DJ와 함께하는 파티가 열려, 젊은이, 가족, 외국인 등 다양한 세대와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춤추고 어우러진다.&lt;br /&gt;
&lt;br /&gt;
====행사 의의====&lt;br /&gt;
연등놀이는 단순히 관람하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가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lt;br /&gt;
고려시대 연등회가 지녔던 공동체 정신, 계층 통합, 세대 전승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계승한다.&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60031</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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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19: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소회(小會)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 &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4%EB%93%B1&amp;diff=60030</id>
		<title>간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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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18: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행사 장소 */&lt;/p&gt;
&lt;hr /&gt;
&lt;div&gt;==유래==&lt;br /&gt;
간등은 한국 전통 등불 행사의 기원으로, 신라 왕실이 불교 의례와 정치적 통합을 결합한 국가적 행사이다. 527년 신라 법흥왕 대에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시작되었으며, 553년 창건된 황룡사를 중심으로 국가 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간등은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의 등공양 전통과 신라의 토속 신앙(풍년 기원, 농경 주기)이 융합된 행사로, 왕실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통합을 상징한다.&lt;br /&gt;
황룡사는 신라의 종합의례장으로, 팔관회와 함께 국가 행사의 핵심 공간이었다.&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sortable 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시기	||내용	||출처&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년)	||정월 15일 황룡사에서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	||《삼국사기》&lt;br /&gt;
|-&lt;br /&gt;
|890년(진성여왕 4년)	||정월 보름 황룡사 간등 행사로 왕권 회복 시도.	||《삼국사기》&lt;br /&gt;
|}&lt;br /&gt;
&lt;br /&gt;
==행사==&lt;br /&gt;
시기: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lt;br /&gt;
&lt;br /&gt;
1. 제례 준비: 승려들이 등불 제작 및 법당 장식.&lt;br /&gt;
&lt;br /&gt;
2. 왕의 행차: 왕이 황룡사로 행차, 백관·백성 호위.&lt;br /&gt;
&lt;br /&gt;
3. 등불 점등: 법당과 회랑에 등불 밝힘, 불교 경전 독송.&lt;br /&gt;
&lt;br /&gt;
4. 연회 개최: 왕이 백관에게 잔치 베풀며 국가 안녕 기원.&lt;br /&gt;
&lt;br /&gt;
===사용된 도구===&lt;br /&gt;
등기(燈器): 종이, 비단, 나무틀, 밀랍으로 만든 연꽃·거북·용 형상 등 불교 상징물 형태의 등불이다.&lt;br /&gt;
&lt;br /&gt;
초: 참기름, 들기름, 오동나무기름 등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촛불로, 어둠을 밝히는 지혜 상징이다.&lt;br /&gt;
&lt;br /&gt;
===행사 장소===&lt;br /&gt;
[[황룡사]]: 경주 월성 동쪽에 위치한 2만 5,000평 규모의 대규모 사찰이었다.&lt;br /&gt;
&lt;br /&gt;
==중요성==&lt;br /&gt;
간등은 신라 왕실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통합을 상징하는 국가 의례로서, 이후 고려 연등회와 조선 관등놀이, 현대 연등회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 등불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lt;br /&gt;
간등에서 연등회로 이어지는 전통은 한국 문화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불교와 토속 신앙의 융합, 왕실과 민간의 소통, 공동체적 나눔과 축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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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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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17: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역사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amp;lt;/span&amp;gt;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법왕사 팔관설경문&amp;lt;/span&amp;gt;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1391년(공양왕 3) 11월&amp;lt;/font&amp;gt;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0%EC%B2%98%EB%8B%98%EB%8F%84_%EC%B6%95%EC%A0%9C%EC%B2%B4%EC%A7%88%3F!&amp;diff=60027</id>
		<title>부처님도 축제체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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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16: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민간주도기 */&lt;/p&gt;
&lt;hr /&gt;
&lt;div&gt;==주제==&lt;br /&gt;
한국 불교 축제의 흐름&lt;br /&gt;
&lt;br /&gt;
==기획의도==&lt;br /&gt;
&lt;br /&gt;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국교로 기능하며 정치, 사회, 경제 등 전반적인 생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불교 축제는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 모든 계층이 참여할 수 있는 민족 축제로 발전하여 한국 문화의 중요한 축을 형성해왔다. &lt;br /&gt;
&lt;br /&gt;
이에 역사적 전개 과정과 문화적 의미를 정리하여 불교 축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 가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불교 축제가 국가의 주도로 시행되었던 신라와 고려시대(국가주도기), 조선 유교 체제하에서 민간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간 민간 이행기,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시민 주도의 대규모 문화축제로 재구성되었던 민간주도기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 주목한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등회, 팔관회,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아, 각 축제별로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 관련 사찰과 승려들의 역할, 당대 사회에 미친 영향, 현재까지의 전승 양상과 변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한국 불교 축제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불교와 축제의 결합이 공동체 문화와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 바를 밝힘으로써, 불교 축제 지속적 발전 가능성과 그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한다.&lt;br /&gt;
&lt;br /&gt;
==팀원 및 기여==&lt;br /&gt;
&lt;br /&gt;
'''김태현'''&lt;br /&gt;
&lt;br /&gt;
제작 - 간등, 고려연등회, 호기놀이, 관등놀이&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관계성 정리&lt;br /&gt;
&lt;br /&gt;
'''소정희'''&lt;br /&gt;
&lt;br /&gt;
제작 - 황룡사, 조계사, 봉은사, 법왕사&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마인드맵 작성&lt;br /&gt;
&lt;br /&gt;
'''이현정'''&lt;br /&gt;
&lt;br /&gt;
제작 - 신라 팔관회, 고려 팔관회, 부산 팔관회,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 혜량&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컨텐츠 구조(표) 정리, 기획의도 작성&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lt;br /&gt;
{{NetworkGraph|title=한국불교축제.lst}}&lt;br /&gt;
===마인드맵===&lt;br /&gt;
[[파일:한국불교축제마인드맵.jpeg|400픽셀]]&lt;br /&gt;
&lt;br /&gt;
===컨텐츠 구조===&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축제||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열렸던 주요 불교 축제들을 정리하였다. || 고려연등회, 간등, 서울연등회, 신라팔관회, 고려팔관회, 부산팔관회, 서울국제불교박람회&lt;br /&gt;
|-&lt;br /&gt;
|행사|| 주요 축제와 더불어 행해진 불교 행사들을 정리하였다. || 관등놀이, 연등행렬, 연등놀이&lt;br /&gt;
|-&lt;br /&gt;
|사찰|| 축제 및 행사가 열리거나 관계가 깊은 사찰들을 정리하였다. || 황룡사, 봉은사, 조계사, 법왕사&lt;br /&gt;
|-&lt;br /&gt;
|승려|| 축제 및 행사를 주도했거나 사찰과 관련이 있는 승려들을 정리하였다. || 자장, 원명스님, 우운, 담화원명스님, 혜량&lt;br /&gt;
|-&lt;br /&gt;
|시기|| 축제 및 행사가 행해진 역사와 관련된 시기를 크게 4부분으로 나누었다. || 신라, 고려, 조선, 현대&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lt;br /&gt;
* ~가주도했다&lt;br /&gt;
** 사찰 및 승려와 주도한 축제 및 행사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황룡사 ➜ 간등&lt;br /&gt;
**#봉은사 ➜ 고려연등회&lt;br /&gt;
**#조계사 ➜ 서울연등회&lt;br /&gt;
**#조계사 ➜ 연등행렬&lt;br /&gt;
**#조계사 ➜ 연등놀이&lt;br /&gt;
**#황룡사 ➜ 신라팔관회&lt;br /&gt;
**#법왕사 ➜ 고려팔관회&lt;br /&gt;
&lt;br /&gt;
* ~시기에열렸다&lt;br /&gt;
** 축제 및 행사와 열린 시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고려연등회 ➜ 고려&lt;br /&gt;
**#간등 ➜ 신라&lt;br /&gt;
**#관등놀이 ➜ 조선&lt;br /&gt;
**#서울연등회 ➜ 현대&lt;br /&gt;
**#연등행렬 ➜ 현대&lt;br /&gt;
**#연등놀이 ➜ 현대&lt;br /&gt;
**#신라팔관회 ➜ 신라&lt;br /&gt;
**#고려팔관회 ➜ 고려&lt;br /&gt;
**#부산팔관회 ➜ 현대&lt;br /&gt;
**#서울국제불교박람회 ➜ 현대&lt;br /&gt;
&lt;br /&gt;
* ~시기에지어졌다&lt;br /&gt;
** 사찰과 지어진 시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봉은사 ➜ 신라&lt;br /&gt;
**#황룡사 ➜ 신라&lt;br /&gt;
**#조계사 ➜ 조선&lt;br /&gt;
**#법왕사 ➜ 고려&lt;br /&gt;
&lt;br /&gt;
* ~소속이다&lt;br /&gt;
** 승려와 소속된 사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자장 ➜ 황룡사&lt;br /&gt;
**#원명스님 ➜ 봉은사&lt;br /&gt;
**#담화원명스님 ➜ 조계사&lt;br /&gt;
**#우운 ➜ 법왕사&lt;br /&gt;
**#혜량 ➜ 황룡사&lt;br /&gt;
&lt;br /&gt;
* ~로이어진다&lt;br /&gt;
** 시대 별로 이어지는 축제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간등 ➜ 고려연등회&lt;br /&gt;
**#고려연등회 ➜ 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 ➜ 서울연등회&lt;br /&gt;
&lt;br /&gt;
==스토리텔링==&lt;br /&gt;
&lt;br /&gt;
===국가주도기===&lt;br /&gt;
&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간등]]: 한국 전통 등불 행사의 기원으로, 신라 왕실이 불교 의례와 정치적 통합을 결합한 국가적 행사이다.&lt;br /&gt;
&lt;br /&gt;
[[신라 팔관회]] : 불교의 계율인 팔계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불사의식이자 전사자를 위령하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등의 제의적 의식이다.&lt;br /&gt;
&lt;br /&gt;
[[황룡사]]: 정월 보름에 왕이 이곳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푼 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 진흥왕 때는 이곳에서 팔관회를 주관했다.&lt;br /&gt;
&lt;br /&gt;
[[혜량]] : 팔관회를 최초로 개최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 고려시대 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lt;br /&gt;
&lt;br /&gt;
[[고려 팔관회]] : 신앙과 제사, 놀이 등이 융합된 국가적인 축제이다. '부처를 공양하고 귀신을 즐겁게 하는 모임’이라고도 하였다.&lt;br /&gt;
&lt;br /&gt;
[[법왕사]] : 국왕이 법왕사에 행차하여 팔관회를 주관했다.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연등회에서 중요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민간이행기===&lt;br /&gt;
&lt;br /&gt;
'''''조선'''''&lt;br /&gt;
&lt;br /&gt;
[[관등놀이]]: 부처님오신날 밤에 사람들이 거리와 사찰에 나가 연등을 구경하고, 다양한 민속놀이와 오락을 즐기는 풍습이다.&lt;br /&gt;
&lt;br /&gt;
고려 팔관회는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과 고려라는 국가에 대한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적인 축제였기 때문에,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년)에 폐지되었다. 조선의 건국 주체들은 건국 직후 팔관회를 사치스러운 불교 행사로 지목해 단번에 폐지시켰는데, 이는 고려의 대표적인 불교 의식을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민간주도기===&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lt;br /&gt;
[[서울 연등회]]: 신라·고려·조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확장한 시민참여형 축제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서울 도심을 무대로 세계인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규모 축제이다.&lt;br /&gt;
&lt;br /&gt;
[http://www.llf.or.kr// 사이트]&lt;br /&gt;
&lt;br /&gt;
[[조계사]]: 서울 도심에서 펼쳐지는 연등 행렬의 주요 출발점 또는 도착점 역할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부산 팔관회]] : 2000년부터 부산 불교계를 중심으로 팔관회를 복원·재현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목적과 특징에 있어 조금씩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전통문화의 보전이 주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http://www.palgwanhoe.or.kr/ 사이트]&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 국내 유일한 전통문화산업 박람회로, 불교의 자원을 종교를 넘어 산업적·문화적으로 많은 자산으로 활용하여 취약한 전통문화시장을 활성화하도록 한다.&lt;br /&gt;
&lt;br /&gt;
[https://www.bexpo.kr/ 사이트]&lt;br /&gt;
&lt;br /&gt;
[[분류: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김필삼]]&lt;br /&gt;
[[분류:화랑]]&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2%95%EC%99%95%EC%82%AC&amp;diff=60026</id>
		<title>법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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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16: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진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amp;lt;/span&amp;gt;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법왕사 팔관설경문&amp;lt;/span&amp;gt;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1391년(공양왕 3) 11월&amp;lt;/font&amp;gt;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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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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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15: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진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amp;lt;/span&amp;gt;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c0cb&amp;quot;&amp;gt;법왕사 팔관설경문&amp;lt;/span&amp;gt;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1391년(공양왕 3) 11월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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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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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역사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919년(태조 2)&amp;lt;/font&amp;gt;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진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법왕사 팔관설경문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1391년(공양왕 3) 11월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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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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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고려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919년(태조 2)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진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법왕사 팔관설경문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1391년(공양왕 3) 11월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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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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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왕실 및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화엄종 승려 우운이 왕명으로 법왕사에 주석했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919년(태조 2)에 태조가 개성 10사의 하나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서긍이 진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왕성의 동북쪽의 춘궁과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옛 터가 연경궁 동쪽에 있다고 하여 법왕사는 도성 안 동북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 초기부터 국가적인 법회나 의례가 법왕사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대에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법왕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법왕사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의침이 조사당을 지을 무렵 법왕사는 계단이 무너지고 초석이 파괴되어 잡초만이 무성하여 퇴락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후 급속도로 퇴락하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저차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차가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고려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성종이 팔관회의 잡기들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거롭고 소란하다고 하여 모조리 폐지해 버리고 법왕사에 행차하여 분향한 뒤에 구정으로 돌아와 문무관료의 하례를 받는 것으로 행차를 마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규보의 법왕사 팔관설경문을 보면 중동 팔관회날 법왕사 행차에서는 고승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팔관회날 국왕의 법왕사 행차는 1391년(공양왕 3) 11월까지 계속되어 고려 말까지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개성 법왕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자리했던 사찰로서, 당시 성대하게 열렸던 팔관회와 같은 불교 축제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비록 현재는 접근이 어렵고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법왕사의 존재와 불교 축제와의 연결은 고려 시대 개경의 활기찬 불교 문화와 국가 의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한국 불교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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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룡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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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10: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신라의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amp;lt;/span&amp;gt;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서기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553년&amp;lt;/font&amp;gt;(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특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무려 &amp;lt;font color=&amp;quot;#C83F12&amp;quot;&amp;gt;80m&amp;lt;/font&amp;gt;에 달했다고 한다.&lt;br /&gt;
이 목탑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불교 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고려 고종 25년(1238년)&amp;lt;/font&amp;gt;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60019</id>
		<title>황룡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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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10: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역사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신라의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amp;lt;/span&amp;gt;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서기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553년&amp;lt;/font&amp;gt;(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특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무려 &amp;lt;font color=&amp;quot;#C83F12&amp;quot;&amp;gt;80m&amp;lt;/font&amp;gt;에 달했다고 한다.&lt;br /&gt;
이 목탑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불교 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고려 고종 25년(1238년)&amp;lt;/font&amp;gt;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8</id>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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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08: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현대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amp;lt;ref&amp;gt; 2025년에는 6월 14일부터 15일 이틀간 열렸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사진 || 문화유산 명칭 || 지정 종류 || 시대 || 간략 설명 &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 보물 제 321호 || 고려 충혜왕 5년 (1344년)  || 입사 기법을 사용해 만든 고려시대 향완이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00픽셀]] ||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 보물 제 1819호 || 조선 효종 2년(1651년) || 봉은사 대웅전에 모셔진 세 분의 불상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봉안되어 있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00픽셀]] || 봉은사 선불당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정보 없음 || 봉은사에 있는 건물 중 하나로, 수행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 [[파일:초목판.jpg|100픽셀]] ||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 조선 철종 7년(1856년) || '화염경'의 주석서인 '화엄소초'를 새긴 목판이다. 총 3,175매의 판에 새겨져 있다.&lt;br /&gt;
|-&lt;br /&gt;
| [[파일:목사천완상.jpg|100픽셀]] || 봉은사 목 사천왕상 || 서울시 유형문화재 || 1746년 || 다른 사천왕상과 비교할 때 자세가 입상임에도 다른 상보다 크기가 작고, 생령좌가 아닌 단순한 방형의 목제좌대에 직립한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 [[파일:칠성도.jpg|100픽셀]]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유물 || 19세기 후반 || 치성광여래와 일광보살, 월광보살, 28숙 등이 묘사된 불화이다. 전통적인 백우거 도상을 계승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7</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7"/>
		<updated>2025-06-23T01:07: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사진 || 문화유산 명칭 || 지정 종류 || 시대 || 간략 설명 &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 보물 제 321호 || 고려 충혜왕 5년 (1344년)  || 입사 기법을 사용해 만든 고려시대 향완이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00픽셀]] ||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 보물 제 1819호 || 조선 효종 2년(1651년) || 봉은사 대웅전에 모셔진 세 분의 불상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봉안되어 있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00픽셀]] || 봉은사 선불당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정보 없음 || 봉은사에 있는 건물 중 하나로, 수행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 [[파일:초목판.jpg|100픽셀]] ||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 조선 철종 7년(1856년) || '화염경'의 주석서인 '화엄소초'를 새긴 목판이다. 총 3,175매의 판에 새겨져 있다.&lt;br /&gt;
|-&lt;br /&gt;
| [[파일:목사천완상.jpg|100픽셀]] || 봉은사 목 사천왕상 || 서울시 유형문화재 || 1746년 || 다른 사천왕상과 비교할 때 자세가 입상임에도 다른 상보다 크기가 작고, 생령좌가 아닌 단순한 방형의 목제좌대에 직립한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 [[파일:칠성도.jpg|100픽셀]]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유물 || 19세기 후반 || 치성광여래와 일광보살, 월광보살, 28숙 등이 묘사된 불화이다. 전통적인 백우거 도상을 계승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6</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6"/>
		<updated>2025-06-23T01:07: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사진 || 문화유산 명칭 || 지정 종류 || 시대 || 간략 설명 &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 보물 제 321호 || 고려 충혜왕 5년 (1344년)  || 입사 기법을 사용해 만든 고려시대 향완이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00픽셀]] ||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 보물 제 1819호 || 조선 효종 2년(1651년) || 봉은사 대웅전에 모셔진 세 분의 불상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봉안되어 있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00픽셀]] || 봉은사 선불당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정보 없음 || 봉은사에 있는 건물 중 하나로, 수행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 [[파일:초목판.jpg|100픽셀]] ||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 조선 철종 7년(1856년) || '화염경'의 주석서인 '화엄소초'를 새긴 목판이다. 총 3,175매의 판에 새겨져 있다.&lt;br /&gt;
|-&lt;br /&gt;
| [[파일:목사천완상.jpg|100픽셀]] || 봉은사 목 사천왕상 || 서울시 유형문화재 || 1746년 || 다른 사천왕상과 비교할 때 자세가 입상임에도 다른 상보다 크기가 작고, 생령좌가 아닌 단순한 방형의 목제좌대에 직립한 것이 특징이다.&lt;br /&gt;
| [[파일:칠성도.jpg|100픽셀]]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유물 || 19세기 후반 || 치성광여래와 일광보살, 월광보살, 28숙 등이 묘사된 불화이다. 전통적인 백우거 도상을 계승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사천왕상&lt;br /&gt;
&lt;br /&gt;
[[파일:목사천완상.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파일:칠성도.jpg|200픽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5</id>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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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1:02: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사진 || 문화유산 명칭 || 지정 종류 || 시대 || 간략 설명 &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 보물 제 321호 || 고려 충혜왕 5년 (1344년)  || 입사 기법을 사용해 만든 고려시대 향완이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00픽셀]] ||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 보물 제 1819호 || 조선 효종 2년 || 봉은사 대웅전에 모셔진 세 분의 불상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봉안되어 있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00픽셀]] || 봉은사 선불당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정보 없음 || 봉은사에 있는 건물 중 하나로, 수행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 [[파일:초목판.jpg|100픽셀]] ||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 유물 || 조선 15세기 || 조선 부교 총본산 건립에 맞춰 총본산(지금의 조계사)의 주존불로 봉인하기 위해 이안된 상징적인 불상이다.&lt;br /&gt;
|-&lt;br /&gt;
| [[파일:목사천완상.jpg|100픽셀]] || 봉은사 목 사천왕상 || 유물 || 조선 15세기 || 조선 부교 총본산 건립에 맞춰 총본산(지금의 조계사)의 주존불로 봉인하기 위해 이안된 상징적인 불상이다.&lt;br /&gt;
|-&lt;br /&gt;
| [[파일:칠성도.jpg|100픽셀]] || 봉은사 칠성도 || 유물 || 조선 15세기 || 조선 부교 총본산 건립에 맞춰 총본산(지금의 조계사)의 주존불로 봉인하기 위해 이안된 상징적인 불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사천왕상&lt;br /&gt;
&lt;br /&gt;
[[파일:목사천완상.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파일:칠성도.jpg|200픽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4</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4"/>
		<updated>2025-06-23T00:57: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사진 || 문화유산 명칭 || 지정 종류 || 시대 || 간략 설명 &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 전통사찰 제 77호 || 조선 인조 2년  || '학이 찾아드는 곳'이라는 이름만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절이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00픽셀]] ||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조선시대 ||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로, 뛰어난 구도와 개성 있는 인물 표현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00픽셀]] || 봉은사 선불당 || 유물 || 조선 15세기 || 조선 부교 총본산 건립에 맞춰 총본산(지금의 조계사)의 주존불로 봉인하기 위해 이안된 상징적인 불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사천왕상&lt;br /&gt;
&lt;br /&gt;
[[파일:목사천완상.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파일:칠성도.jpg|200픽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3</id>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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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54: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사천왕상&lt;br /&gt;
&lt;br /&gt;
[[파일:목사천완상.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파일:칠성도.jpg|200픽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B9%A0%EC%84%B1%EB%8F%84.jpg&amp;diff=60012</id>
		<title>파일:칠성도.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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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0301mg: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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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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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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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53: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사천왕상&lt;br /&gt;
&lt;br /&gt;
[[파일:목사천완상.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0</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10"/>
		<updated>2025-06-23T00:52: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사천왕상&lt;br /&gt;
&lt;br /&gt;
[[파일:목사천완상.jpe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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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일:목사천완상.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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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0301mg: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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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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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51: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사천왕상&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07</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07"/>
		<updated>2025-06-23T00:44: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06</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06"/>
		<updated>2025-06-23T00:44: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e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05</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05"/>
		<updated>2025-06-23T00:44: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파일:초목판.jpeg|20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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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일:초목판.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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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43:2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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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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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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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42: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조선 시대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02</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60002"/>
		<updated>2025-06-23T00:41:4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조선 시대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은혜를 받는다.’&amp;lt;/span&amp;gt;라는 뜻의 봉은(俸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고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60001</id>
		<title>황룡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60001"/>
		<updated>2025-06-23T00:40: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fffb1&amp;quot;&amp;gt;신라의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amp;lt;/span&amp;gt;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서기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553년&amp;lt;/font&amp;gt;(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특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무려 80m에 달했다고 한다.&lt;br /&gt;
이 목탑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불교 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고려 고종 25년(1238년)&amp;lt;/font&amp;gt;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60000</id>
		<title>황룡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60000"/>
		<updated>2025-06-23T00:40: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역사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세워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서기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553년&amp;lt;/font&amp;gt;(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특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무려 80m에 달했다고 한다.&lt;br /&gt;
이 목탑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불교 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고려 고종 25년(1238년)&amp;lt;/font&amp;gt;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59999</id>
		<title>황룡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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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39: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신라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세워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서기 &amp;lt;font color=&amp;quot;#471396&amp;quot;&amp;gt;553년&amp;lt;/font&amp;gt;(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특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무려 80m에 달했다고 한다.&lt;br /&gt;
이 목탑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불교 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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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룡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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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38: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현대의 황룡사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세워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특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무려 80m에 달했다고 한다.&lt;br /&gt;
이 목탑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불교 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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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룡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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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37: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신라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세워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특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무려 80m에 달했다고 한다.&lt;br /&gt;
이 목탑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불교 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59996</id>
		<title>황룡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59996"/>
		<updated>2025-06-23T00:37: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역사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세워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특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무려 80m에 달했다고 한다.&lt;br /&gt;
 이 목탑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이를 통해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불교 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59995</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59995"/>
		<updated>2025-06-23T00:34: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은혜를 받는다.’라는 뜻의 봉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고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59994</id>
		<title>황룡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59994"/>
		<updated>2025-06-23T00:34: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세워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2009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59993</id>
		<title>황룡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59993"/>
		<updated>2025-06-23T00:32: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세워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 정월 15일에 국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 신라사회는 상당한 규모의 등불 행사를 황룡사에서 정월 15일에 개최하였다고 한다. &amp;lt;ref&amp;gt;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amp;lt;/ref&amp;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3%A1%EC%82%AC&amp;diff=59992</id>
		<title>황룡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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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30: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그 외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개요== &lt;br /&gt;
&lt;br /&gt;
[[파일:황룡사복원도.jpeg|200픽셀]]&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lt;br /&gt;
|-&lt;br /&gt;
| 시대 || 신라 진흥왕 14년&lt;br /&gt;
|-&lt;br /&gt;
| 소유단체 || 경주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세워진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원래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변경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진흥왕의 아들인 진평왕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신라 불교의 중심 도량이자 국가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lt;br /&gt;
&lt;br /&gt;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완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사찰 터인 황룡사지로만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현대의 황룡사== &lt;br /&gt;
현재 황룡사는 사찰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지’로 불리며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황룡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황룡사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황룡사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경주 황룡사지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터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 시대 건축 기술과 불교 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대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사찰 배치와 건축 야익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으며, 이는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주요 구조물==&lt;br /&gt;
===9층 목탑===&lt;br /&gt;
[[파일:9층목탑.jpeg|200픽셀]]&lt;br /&gt;
&lt;br /&gt;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주요 구조물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9층 목탑으로,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주변국 구한의 신라 침략을 막을는 염원을 담은 탑으로 전해진다.&lt;br /&gt;
&lt;br /&gt;
===그 외===&lt;br /&gt;
목탑 외에도 금당, 강당, 회랑 등 다양한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금당에는 거대한 장육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신라===&lt;br /&gt;
통일 신라시대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현재 황룡사 터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종교 의례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주시에서는 황룡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미래에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다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 과거처럼 국가적인 불교 축제나 의례가 이곳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황룡사 복원 사업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황룡사 터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담긴 신라 천년의 불교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불교 축제는 이러한 황룡사의 정신과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lt;br /&gt;
&lt;br /&gt;
황룡사 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불교 문화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룡사 터 복원과 함께 불교 축제가 더욱 발전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59991</id>
		<title>봉은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59991"/>
		<updated>2025-06-23T00:28: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고려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은혜를 받는다.’라는 뜻의 봉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고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59990</id>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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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28: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현대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은혜를 받는다.’라는 뜻의 봉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고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4%89%EC%9D%80%EC%82%AC&amp;diff=59989</id>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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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00:28: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현대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은혜를 받는다.’라는 뜻의 봉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고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파일:불교차문화축제.png|200픽셀]]&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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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봉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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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0301mg: /* 불교축제와의 관계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jpeg|200픽셀]]&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주요 사항 || 내용&lt;br /&gt;
|-&lt;br /&gt;
|소재지|| 강남구 삼성동&lt;br /&gt;
|-&lt;br /&gt;
| 주지 || 원명 스님&lt;br /&gt;
|-&lt;br /&gt;
| 창건 || 79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신라 시대===&lt;br /&gt;
서기 794년 남북극시대 신라 원성왕 시절에 연회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였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것 때문에 절 이름을 ‘은혜를 받는다.’라는 뜻의 봉은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문정왕후의 강력한 지지 아래 크게 번성했지만,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봉은사의 위상도 급격기 약해졌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에는 다산 정약용고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표적 인물들도 봉은사를 방문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특히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면서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 참여했고, 그의 최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amp;lt;ref&amp;gt; 이 글씨는 지금도 봉은사 판전에 걸려있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근현대===&lt;br /&gt;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lt;br /&gt;
서울 봉은사 감로도, 서울 봉은사 괘불도,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불교축제와의 관계==&lt;br /&gt;
===고려===&lt;br /&gt;
*'''고려 연등회''':&lt;br /&gt;
[[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을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상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봉은사는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안거/하안거 결제 해제 등 전통적인 불교 의례를 엄숙하게 봉행한다.&lt;br /&gt;
&lt;br /&gt;
*정기 법회, 기도,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특히 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lt;br /&gt;
&lt;br /&gt;
*'''불교 차문화 축제''': 봉은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불교 수행 방법 중 하나인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t;br /&gt;
&lt;br /&gt;
[https://culture.seoul.go.kr/culture/culture/cultureEvent/view.do?cultcode=153832&amp;amp;menuNo=200010 사이트]&lt;br /&gt;
&lt;br /&gt;
==문화유산==&lt;br /&gt;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청동은입사향완.jpeg|100픽셀]]&lt;br /&gt;
&lt;br /&gt;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jpeg|120픽셀]]&lt;br /&gt;
&lt;br /&gt;
봉은사 선불당&lt;br /&gt;
&lt;br /&gt;
[[파일:봉은사선불당.jpeg|150픽셀]]&lt;br /&gt;
&lt;br /&gt;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현판&lt;br /&gt;
&lt;br /&gt;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lt;br /&gt;
&lt;br /&gt;
봉은사 목사천왕상&lt;br /&gt;
&lt;br /&gt;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lt;br /&gt;
&lt;br /&gt;
봉은사 판전 신중도&lt;br /&gt;
&lt;br /&gt;
봉은사 비로자나불도&lt;br /&gt;
&lt;br /&gt;
봉은사 칠성도&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lt;br /&gt;
'''접근성과 역할''':&lt;br /&gt;
서울 강남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많은 시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lt;br /&gt;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불교 문화 확산 기여''':&lt;br /&gt;
템플스테이, 외국어 법회,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한국 불교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다.&lt;br /&gt;
특히 불교 차문화 축제와 같은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전통 사찰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서울 속에서 활발하게 불교 문화와 축제를 펼쳐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lt;br /&gt;
봉은사에서 열리는 다양한 불교 축제와 문화 행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나누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category:한국 불교 축제]][[category:김필삼]]&lt;/div&gt;</summary>
		<author><name>0301mg</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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