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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_edu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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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4T07:53:18Z</updated>
	<subtitle>사용자 기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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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류:옷차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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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2:13: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분류 : 옷차림&lt;br /&gt;
&lt;br /&gt;
아래의 페이지 및 기사는 옷차림이 작성한 기사이다.&lt;br /&gt;
&lt;br /&gt;
본문 속 하이퍼링크는 대부분 뉴스 기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환수 유물들의 환수 시도과정이 기록되어 있는 기사가 연결되어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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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류:옷차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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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2:12: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분류 : 옷차림&lt;br /&gt;
&lt;br /&gt;
아래의 페이지 및 기사는 옷차림이 작성한 기사이다.&lt;br /&gt;
본문 속 하이퍼링크는 대부분 뉴스 기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환수 유물들의 환수 시도과정이 기록되어 있는 기사가 연결되어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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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왕오천축국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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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2:10: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환수 시도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 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왕오천축국전.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프랑스 )&lt;br /&gt;
|- &lt;br /&gt;
| 시기 || 신라, 8세기 초&lt;br /&gt;
|- &lt;br /&gt;
|형태 || 한 권의 두루마리로 된 필사본 &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프랑스 국립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는 왕오천축국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여행기로 큰 가치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형태&amp;lt;/font&amp;gt;===&lt;br /&gt;
1권의 필사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질이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이 현존한다.&lt;br /&gt;
&lt;br /&gt;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존본은 그 약본이며,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내용&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신라의 승려 혜초가 723년부터 727년까지 다섯 천축국을 답사하고 이곳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여행기다. &lt;br /&gt;
&lt;br /&gt;
인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과 다른 남아시아 지역, 그리고 보통 중동으로 분류되는 이란까지 여행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또한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의 파키스탄, 시리아, 튀르키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경로에 나타난 지명은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지기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사료적 가치&amp;lt;/font&amp;gt;===&lt;br /&gt;
====중국과 인도와의 교역료 파악====&lt;br /&gt;
&lt;br /&gt;
이전에 서역을 방문하던 승려들은 해로만을 사용하거나 육로만을 이용했던 데 반해 혜초는 갈 때는 해로, 돌아올 땐 육로를 이용하여 당시의 여로를 모두 담고 있다.&lt;br /&gt;
&lt;br /&gt;
====희귀한 8세기 자료====&lt;br /&gt;
&lt;br /&gt;
전술한 여행기는 6세기와 7세기의 인도 정세를 말해 주는 자료이지만 이 책이 8세기 자료인 점은 가치가 매우 높다.&lt;br /&gt;
&lt;br /&gt;
특히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인도제국의 제왕들이 코끼리나 병력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었는지, 아랍의 제국이 얼마만큼 인도 쪽으로 세력을 펼쳤는가 하는 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뿐 아니라 튀르크족이나 한족의 지배하에 있던 나라들이 어디이며, 그 생활수준은 어떠하였는가 등도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당대 사회상 서술====&lt;br /&gt;
&lt;br /&gt;
불교의 대승이나 소승이 각각 어느 정도 행해지고 있는지, 또 음식 · 의상 · 습속 · 산물 · 기후 등도 각 지방마다 기록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중부 인도에서 어머니나 누이를 아내로 삼는다거나, 여러 형제가 아내를 공유하는 풍습이 있다는 등의 기록은 이 자료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또한 이국적인 풍취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인도에는 감옥이나 사형제도가 없고, 죄를 지은 이는 벌금으로 다스린다는 기록, 카슈미르지방에는 여자 노예가 없고, 인신매매가 없다는 등의 기록이 흥미롭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 경로&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왕오천축국전은 만들어진 후 정확한 유출 경로를 알 수 없다.&lt;br /&gt;
&lt;br /&gt;
처음 공식적으로 발견된 곳은 중국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08년 프랑스인 중국학자 폴 펠리오가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위안루에게서 구매한 7,000점의 유물 중에 섞여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관련 에피소드&amp;lt;/font&amp;gt;===&lt;br /&gt;
====필사본의 책명====&lt;br /&gt;
현재는 한 권의 두루마리로 된 필사본만이 남아 있는데, 책명도 저자명도 떨어져 나가 남아 있지 않으며 여러 글자가 사라졌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여러 불교 서적에 주석을 단 《일체경음의》에 “혜초왕오천축국전”이라는 제목 아래 여러 어휘가 설명되어 있는데,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들 어휘와 순서가 잔본과 많은 부분 일치하여 이것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임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혜초의 왕오천축국전====&lt;br /&gt;
처음에는 당나라 고승 현장 이외의 당나라 승려로 여겨지다가 당시의 일본 서본원사의 승려이자 돈황학자인 오타니 고즈이가 신라승 혜초의 것임을 밝혀내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내에서는 1943년 최남선이 이 원문과 해제를 붙임으로써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 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왕오천축국전이 중국에서 발견된 경위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구매' 형식을 통해 프랑스로 건너갔기 때문에 환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또한 공식적인 기록이 국내에서 반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할 명분이 없다.&lt;br /&gt;
&lt;br /&gt;
비밀리로 소장 중이었던 왕오천축국전은 2010년과 2023년 12월 17일부터 4월 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0330179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에 대여, 전시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립중앙박물관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출품을 요청하였고 대여 심사회의의 승인을 통해 국내에 반입하여 전시하였다.&lt;br /&gt;
&lt;br /&gt;
중국에서 발견된 경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불법적인 유출을 명목으로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과의 협력관계를 모색하며 다른 문화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A7%81%EC%A7%80%EC%8B%AC%EC%B2%B4%EC%9A%94%EC%A0%88&amp;diff=52209</id>
		<title>직지심체요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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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2:01: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압류가능성 때문에 대여 불가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직지.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프랑스 )&lt;br /&gt;
|- &lt;br /&gt;
| 시기 || 고려, 1377년&lt;br /&gt;
|- &lt;br /&gt;
|형태 || 금속활자본&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각 상권, 하권의 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현재 프랑스에 있는 원본은 하권에 해당하며, 상권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글자====&lt;br /&gt;
이 책은 활자의 주조술과 조판술이 아주 미숙하였던 고려시대에 관서가 아닌 지방의 한 사찰이 전통적인 밀랍주조법으로 주조하여 찍어낸 것이기 때문에 활자의 크기와 글자모양이 고르지 않고, 또 본문을 찍은 중자가 부족하여 소자와 나무보자로 충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조잡한 편이다.&lt;br /&gt;
&lt;br /&gt;
이와 같이 기술이 미숙한 단계의 책이지만, 문헌에만 전하여지고 있던 여러 종의 고려 주자본 중 유일하게 전래되고 있는 금속활자본으로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내용&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고려후기 승려 경한이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만든 불교교리서이다.&lt;br /&gt;
&lt;br /&gt;
이 책의 중심주제는 ‘직지심체(直指心體)’이다. 이것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깨달을 때 그 심성이 바로 부처의 실체라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사람의 본성은 그 자체가 본시 청정하므로 선지식의 도움에 의하여 자기 마음 속에서 그 심성이 자정함을 깨닫고 늘 스스로 닦고 행한다면 곧 불성을 체득하여 자기 자신이 바로 부처의 몸이 되며, 자기 마음이 바로 불심이 된다는 요지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즉, 사람이 눈을 외계로 돌리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올바로 가지면서 참선하여 도를 깨친다면 마음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가 됨을 뜻한다.&lt;br /&gt;
&lt;br /&gt;
스승이 주는 과제에 의하여 선을 공부하는 간화선보다는, 일체의 사심과 망념에서 떠난 마음을 중시하는 무심무념을 궁극의 경지로 삼음이 경한의 특징적인 선풍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와 같은 특색있는 선풍을 펼치기 위하여 경한은 이 책을 편찬한 것으로, 그가 주창한 무심선을 연구하는 데에 긴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경로&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구한말 당시 주한프랑스대리공사로서 서울에 부임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했던 고물품중에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이후 플랑시는 공사 임무를 수행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는데 이때 여러 고물품들을 수집해 갔고&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11년 경매에 올려 골동품상 브베르에게 180프랑으로 팔렸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골동품상이 다음해인 1943년에 죽으며 그의 상속인에게 넘어가 관리되어 오다가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프랑스 반환 거부====&lt;br /&gt;
&lt;br /&gt;
프랑스 입장에서는 약탈, 도난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도난·약탈 문화재는 반출 경위가 확인될 경우 본국에 되돌려 주는 것이 국제법 상의 관례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직지심체요절은 약탈, 도난 문화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는 반환을 거부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1886년 초대 주한프랑스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블랑시가 1880~1890년 사이에 국내에서 구매해 프랑스로 가져갔으며&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구매하게 된 경위나 구매처는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할 명목이 없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압류가능성 때문에 대여 불가====&lt;br /&gt;
&lt;br /&gt;
프랑스와 문화재 협상의 특이점은 일시적 '대여'를 시도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프랑스에 유출된 문화재에는 병인양요를 비롯한 전쟁 전리품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구매를 통한 재산이기 때문에 환수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대부분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국내에서의 전시와 연구를 위해서는 대여형식의 전시를 요청하고 있는데&lt;br /&gt;
&amp;lt;br/&amp;gt;&lt;br /&gt;
2010년대부터 프랑스에 여러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매번 무산됐다.&lt;br /&gt;
&lt;br /&gt;
그 이유는 프랑스 정부 측에서 직지심체요절을 대여해줄 경우 한국에서 [https://www.yna.co.kr/view/AKR20211118002400081 압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br/&amp;gt;2021년 프랑스에 방문한 문화체육부장관이 정부 차원에서 압류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amp;diff=52169</id>
		<title>반가사유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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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0:31: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문화재제자리찾기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반가사유상.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백제&lt;br /&gt;
|- &lt;br /&gt;
|형태 || 금동불상&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도쿄국립박물관&lt;br /&gt;
|}&lt;br /&gt;
&lt;br /&gt;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세계 약 70여점 정도가 남아있어 높은 희귀성을 가진 불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16.3cm의 작은 불상이다.&lt;br /&gt;
&lt;br /&gt;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것과 유사하다.&lt;br /&gt;
&lt;br /&gt;
====재질====&lt;br /&gt;
반가사유상 본체의 청동성분은 모두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은 고대 한국 금동불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반가사유상의 가치&amp;lt;/font&amp;gt;===&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미가 매우 사실적이며 빼어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 과정&amp;lt;/font&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충남 공주의 사지 석탑 내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충청남도 공주 부근 산성의 탑 가운데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소장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한국문화재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해 편찬한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도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경성공소원 판사 미야케 조사쿠의 소장품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41년 도쿄에서 열린 소장품 전시 목록에는 오구라의 컬렉션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전에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오구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도굴꾼 사이에서는 값을 높이 쳐주기로 유명해 도굴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골동품을 들고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오구라의 행적을 살펴봤을 때 공주 절터의 탑에서 도굴된 금동반가사유상이 여러 루트를 거쳐 오구라의 수집품이 됐음을 추정이 가능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 시도&amp;lt;/font&amp;gt;===&lt;br /&gt;
오구라 컬렉션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 불법 수집품의 목록에 오구라 컬렉션의 소장품을 포함시켰고, 돌려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결국 양국 정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이 소유하는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권장하겠다”고 합의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1981년 오구라 컬렉션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고,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 어떠한 의사타진도 하지 않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사유 재산이라서 돌려줄 수 없다는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정부의 국유 재산이 됐다.&lt;br /&gt;
&lt;br /&gt;
일본 국유재산이 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환수운동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lt;br /&gt;
====문화재제자리찾기====&lt;br /&gt;
2014년에는 [http://caro.or.kr/ 문화재제자리찾기]&amp;lt;ref&amp;gt;문화재제자리찾기는 혜문 스님 중심으로 국외소재 문화유산을 환수해오기 위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이다.&amp;lt;/ref&amp;gt;라는 시민단체가 도쿄재판부에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오구라의 자필 목록을 근거로 오구라 컬렉션 중 34점이 명백한 도굴, 도난품임을 문헌적으로 입증하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은 결렬됐다.&lt;br /&gt;
&lt;br /&gt;
====지자체의 환수 노력====&lt;br /&gt;
2019년부터 충남도는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을 포함한 지역 유출 오구라 컬렉션의 환수를 위한 조사 등 환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lt;br /&gt;
&amp;lt;br/&amp;gt;충남도의회는 지난 2016년 충남도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지원 조례안을 가결하고 2017년에는 충남국외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을 구성해 국내외 반출문화재를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유출 출처의 불확실성, 개인 소장품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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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가사유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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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0:30: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문화재제자리찾기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반가사유상.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백제&lt;br /&gt;
|- &lt;br /&gt;
|형태 || 금동불상&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도쿄국립박물관&lt;br /&gt;
|}&lt;br /&gt;
&lt;br /&gt;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세계 약 70여점 정도가 남아있어 높은 희귀성을 가진 불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16.3cm의 작은 불상이다.&lt;br /&gt;
&lt;br /&gt;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것과 유사하다.&lt;br /&gt;
&lt;br /&gt;
====재질====&lt;br /&gt;
반가사유상 본체의 청동성분은 모두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은 고대 한국 금동불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반가사유상의 가치&amp;lt;/font&amp;gt;===&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미가 매우 사실적이며 빼어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 과정&amp;lt;/font&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충남 공주의 사지 석탑 내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충청남도 공주 부근 산성의 탑 가운데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소장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한국문화재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해 편찬한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도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경성공소원 판사 미야케 조사쿠의 소장품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41년 도쿄에서 열린 소장품 전시 목록에는 오구라의 컬렉션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전에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오구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도굴꾼 사이에서는 값을 높이 쳐주기로 유명해 도굴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골동품을 들고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오구라의 행적을 살펴봤을 때 공주 절터의 탑에서 도굴된 금동반가사유상이 여러 루트를 거쳐 오구라의 수집품이 됐음을 추정이 가능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 시도&amp;lt;/font&amp;gt;===&lt;br /&gt;
오구라 컬렉션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 불법 수집품의 목록에 오구라 컬렉션의 소장품을 포함시켰고, 돌려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결국 양국 정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이 소유하는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권장하겠다”고 합의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1981년 오구라 컬렉션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고,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 어떠한 의사타진도 하지 않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사유 재산이라서 돌려줄 수 없다는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정부의 국유 재산이 됐다.&lt;br /&gt;
&lt;br /&gt;
일본 국유재산이 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환수운동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lt;br /&gt;
====문화재제자리찾기====&lt;br /&gt;
2014년에는 [http://caro.or.kr/ 문화재제자리찾기]&amp;lt;ref&amp;gt;문화재제자리찾기는 혜문 스님이 중심으로 국외소재 문화유산을 환수해오기 위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이다.&amp;lt;/ref&amp;gt;라는 시민단체가 도쿄재판부에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오구라의 자필 목록을 근거로 오구라 컬렉션 중 34점이 명백한 도굴, 도난품임을 문헌적으로 입증하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은 결렬됐다.&lt;br /&gt;
&lt;br /&gt;
====지자체의 환수 노력====&lt;br /&gt;
2019년부터 충남도는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을 포함한 지역 유출 오구라 컬렉션의 환수를 위한 조사 등 환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lt;br /&gt;
&amp;lt;br/&amp;gt;충남도의회는 지난 2016년 충남도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지원 조례안을 가결하고 2017년에는 충남국외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을 구성해 국내외 반출문화재를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유출 출처의 불확실성, 개인 소장품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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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가사유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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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0:30: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문화재제자리찾기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반가사유상.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백제&lt;br /&gt;
|- &lt;br /&gt;
|형태 || 금동불상&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도쿄국립박물관&lt;br /&gt;
|}&lt;br /&gt;
&lt;br /&gt;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세계 약 70여점 정도가 남아있어 높은 희귀성을 가진 불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16.3cm의 작은 불상이다.&lt;br /&gt;
&lt;br /&gt;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것과 유사하다.&lt;br /&gt;
&lt;br /&gt;
====재질====&lt;br /&gt;
반가사유상 본체의 청동성분은 모두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은 고대 한국 금동불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반가사유상의 가치&amp;lt;/font&amp;gt;===&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미가 매우 사실적이며 빼어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 과정&amp;lt;/font&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충남 공주의 사지 석탑 내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충청남도 공주 부근 산성의 탑 가운데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소장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한국문화재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해 편찬한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도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경성공소원 판사 미야케 조사쿠의 소장품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41년 도쿄에서 열린 소장품 전시 목록에는 오구라의 컬렉션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전에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오구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도굴꾼 사이에서는 값을 높이 쳐주기로 유명해 도굴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골동품을 들고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오구라의 행적을 살펴봤을 때 공주 절터의 탑에서 도굴된 금동반가사유상이 여러 루트를 거쳐 오구라의 수집품이 됐음을 추정이 가능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 시도&amp;lt;/font&amp;gt;===&lt;br /&gt;
오구라 컬렉션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 불법 수집품의 목록에 오구라 컬렉션의 소장품을 포함시켰고, 돌려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결국 양국 정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이 소유하는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권장하겠다”고 합의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1981년 오구라 컬렉션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고,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 어떠한 의사타진도 하지 않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사유 재산이라서 돌려줄 수 없다는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정부의 국유 재산이 됐다.&lt;br /&gt;
&lt;br /&gt;
일본 국유재산이 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환수운동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lt;br /&gt;
====문화재제자리찾기====&lt;br /&gt;
2014년에는 [http://caro.or.kr/ 문화재제자리찾기]&amp;lt;ref&amp;gt;문화재제자리찾기는 혜문 스님이 중심으로 국외소재 문화유산을 환수해오기 위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이다. 지금까지 조선왕조실록 47책,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 문정왕후 어보, 조선왕실인장 등을 환수해왔다&amp;lt;/ref&amp;gt;라는 시민단체가 도쿄재판부에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오구라의 자필 목록을 근거로 오구라 컬렉션 중 34점이 명백한 도굴, 도난품임을 문헌적으로 입증하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은 결렬됐다.&lt;br /&gt;
&lt;br /&gt;
====지자체의 환수 노력====&lt;br /&gt;
2019년부터 충남도는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을 포함한 지역 유출 오구라 컬렉션의 환수를 위한 조사 등 환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lt;br /&gt;
&amp;lt;br/&amp;gt;충남도의회는 지난 2016년 충남도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지원 조례안을 가결하고 2017년에는 충남국외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을 구성해 국내외 반출문화재를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유출 출처의 불확실성, 개인 소장품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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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amp;diff=52166</id>
		<title>반가사유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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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0:16: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문화재제자리찾기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반가사유상.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백제&lt;br /&gt;
|- &lt;br /&gt;
|형태 || 금동불상&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도쿄국립박물관&lt;br /&gt;
|}&lt;br /&gt;
&lt;br /&gt;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세계 약 70여점 정도가 남아있어 높은 희귀성을 가진 불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16.3cm의 작은 불상이다.&lt;br /&gt;
&lt;br /&gt;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것과 유사하다.&lt;br /&gt;
&lt;br /&gt;
====재질====&lt;br /&gt;
반가사유상 본체의 청동성분은 모두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은 고대 한국 금동불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반가사유상의 가치&amp;lt;/font&amp;gt;===&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미가 매우 사실적이며 빼어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 과정&amp;lt;/font&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충남 공주의 사지 석탑 내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충청남도 공주 부근 산성의 탑 가운데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소장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한국문화재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해 편찬한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도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경성공소원 판사 미야케 조사쿠의 소장품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41년 도쿄에서 열린 소장품 전시 목록에는 오구라의 컬렉션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전에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오구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도굴꾼 사이에서는 값을 높이 쳐주기로 유명해 도굴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골동품을 들고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오구라의 행적을 살펴봤을 때 공주 절터의 탑에서 도굴된 금동반가사유상이 여러 루트를 거쳐 오구라의 수집품이 됐음을 추정이 가능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 시도&amp;lt;/font&amp;gt;===&lt;br /&gt;
오구라 컬렉션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 불법 수집품의 목록에 오구라 컬렉션의 소장품을 포함시켰고, 돌려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결국 양국 정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이 소유하는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권장하겠다”고 합의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1981년 오구라 컬렉션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고,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 어떠한 의사타진도 하지 않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사유 재산이라서 돌려줄 수 없다는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정부의 국유 재산이 됐다.&lt;br /&gt;
&lt;br /&gt;
일본 국유재산이 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환수운동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lt;br /&gt;
====문화재제자리찾기====&lt;br /&gt;
2014년에는 [http://caro.or.kr/ 문화재제자리찾기]라는 시민단체가 도쿄재판부에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오구라의 자필 목록을 근거로 오구라 컬렉션 중 34점이 명백한 도굴, 도난품임을 문헌적으로 입증하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은 결렬됐다.&lt;br /&gt;
&lt;br /&gt;
====지자체의 환수 노력====&lt;br /&gt;
2019년부터 충남도는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을 포함한 지역 유출 오구라 컬렉션의 환수를 위한 조사 등 환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lt;br /&gt;
&amp;lt;br/&amp;gt;충남도의회는 지난 2016년 충남도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지원 조례안을 가결하고 2017년에는 충남국외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을 구성해 국내외 반출문화재를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유출 출처의 불확실성, 개인 소장품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2165</id>
		<title>몽유도원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2165"/>
		<updated>2024-12-20T10:14: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환수시도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2023년 12월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는 일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몽유도원도 [https://www.breaknews.com/1006666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lt;br /&gt;
&lt;br /&gt;
해당 계약에서는 한국반환을 위한 사실상 일체 권한을 위임 받는 체결을 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보상을 위한 협상과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 등의 숙제가 남아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실제적인 반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실무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실무적인 부분에는 400억에 가까운 보상금 문제가 남아있으며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는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 뉴스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lt;br /&gt;
&lt;br /&gt;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2164</id>
		<title>몽유도원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2164"/>
		<updated>2024-12-20T10:14: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환수시도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2023년 12월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는 일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몽유도원도 [https://www.breaknews.com/1006666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lt;br /&gt;
&lt;br /&gt;
해당 계약에서는 한국반환을 위한 사실상 일체 권한을 위임 받는 체결을 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보상을 위한 협상과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 등의 숙제가 남아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실제적인 반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실무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상황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무적인 부분에는 400억에 가까운 보상금 문제가 남아있으며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는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 뉴스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lt;br /&gt;
&lt;br /&gt;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2163</id>
		<title>몽유도원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2163"/>
		<updated>2024-12-20T10:08: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환수시도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2023년 12월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는 일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몽유도원도 [https://www.breaknews.com/1006666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lt;br /&gt;
&lt;br /&gt;
해당 계약에서는 한국반환을 위한 사실상 일체 권한을 위임 받는 체결을 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보상을 위한 협상과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 등의 숙제가 남아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실제적인 반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실무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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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몽유도원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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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0:08: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환수시도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2023년 12월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는 일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몽유도원도 * [https://www.breaknews.com/1006666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lt;br /&gt;
&lt;br /&gt;
해당 계약에서는 한국반환을 위한 사실상 일체 권한을 위임 받는 체결을 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보상을 위한 협상과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 등의 숙제가 남아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실제적인 반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실무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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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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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0:04: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분류 : 옷차림&lt;br /&gt;
&lt;br /&gt;
아래의 페이지 및 기사는 옷차림이 작성한 기사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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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20T10:04:3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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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분류:옷차림&lt;br /&gt;
&lt;br /&gt;
아래의 페이지 및 기사는 옷차림이 작성한 기사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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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ls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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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잃어버린_문화재를_찾아서&lt;br /&gt;
&lt;br /&gt;
#Class&lt;br /&gt;
문화유산&lt;br /&gt;
환수국가&lt;br /&gt;
반출국가&lt;br /&gt;
환수_주체&lt;br /&gt;
현_소장처&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반출하였다&lt;br /&gt;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매입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영구대여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속한다&lt;br /&gt;
소장하고있다&lt;br /&gt;
&lt;br /&gt;
#Nodes&lt;br /&gt;
한국학_중앙_연구원 현_소장처 한국학_중앙_연구원&lt;br /&gt;
서울대학교_규장각 현_소장처 서울대학교_규장각&lt;br /&gt;
우리옛돌박물관 현_소장처 우리옛돌박물관&lt;br /&gt;
송광사 현_소장처 송광사&lt;br /&gt;
옥천사 현_소장처 옥천사&lt;br /&gt;
반남박씨_죽천공파_종중 현_소장처 반남박씨_죽천공파_종중&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현_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lt;br /&gt;
서봉사 현_소장처 서봉사&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현_소장처 국립민속박물관&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현_소장처 도쿄국립박물관&lt;br /&gt;
덴리대학_중앙도서관 현_소장처 덴리대학_중앙도서관&lt;br /&gt;
프랑스_국립도서관 현_소장처 프랑스_국립도서관&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환수_주체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환수_주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lt;br /&gt;
국가유산청 환수_주체 국가유산청&lt;br /&gt;
국립경주박물관 환수_주체 국립경주박물관&lt;br /&gt;
제이넷컴 환수_주체 제이넷컴&lt;br /&gt;
김영삼_정부 환수_주체 김영삼_정부&lt;br /&gt;
복권기금 환수_주체 복권기금&lt;br /&gt;
사단법인_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 환수_주체 사단법인_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lt;br /&gt;
대한민국 환수국가 대한민국 null https://search.pstatic.net/common/?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100310_21%2Ftngus5334_12682018610987dOQ4_jpg%2F%25C5%25C2%25B1%25D8%25B1%25E2_tngus5334.jpg&amp;amp;type=a340&lt;br /&gt;
미국 반출국가 미국 null https://cdn.pixabay.com/photo/2013/07/13/12/51/flag-160479_960_720.png&lt;br /&gt;
일본 반출국가 일본 null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e/Flag_of_Japan.svg/2560px-Flag_of_Japan.svg.png&lt;br /&gt;
프랑스 반출국가 프랑스 null https://cdn.pixabay.com/photo/2015/11/20/18/55/french-flag-1053711_640.png&lt;br /&gt;
영국 반출국가 영국 null https://images.freeimages.com/vhq/images/previews/949/uk-union-flag-126543.png&lt;br /&gt;
독일 반출국가 독일 null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a/Flag_of_Germany.svg/255px-Flag_of_Germany.svg.png&lt;br /&gt;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문화유산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6%A1%EA%B4%91%EC%82%AC_%EC%B9%98%EC%84%B1%EA%B4%91%EC%97%AC%EB%9E%98%EB%8F%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5/57/%EC%86%A1%EA%B4%91%EC%82%AC%EC%B9%98%EC%84%B1%EA%B4%91%EC%97%AC%EB%9E%98%EB%8F%84.jpg&lt;br /&gt;
호렵도_팔폭병풍 문화유산 호렵도_팔폭병풍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8%B8%EB%A0%B5%EB%8F%84_%ED%8C%94%ED%8F%AD%EB%B3%91%ED%92%8D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b/bb/%ED%98%B8%EB%A0%B5%EB%8F%84%ED%8C%94%ED%8F%AD%EB%B3%91%ED%92%8D.jpg&lt;br /&gt;
나한도 문화유산 나한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2%98%ED%95%9C%EB%8F%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3/3e/%EB%82%98%ED%95%9C%EB%8F%84.jpg&lt;br /&gt;
몽유도원도 문화유산 몽유도원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3/Dream_Journey_to_the_Peach_Blossom_Land.jpg/408px-Dream_Journey_to_the_Peach_Blossom_Land.jpg&lt;br /&gt;
독조도 문화유산 독조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F%85%EC%A1%B0%EB%8F%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d/d8/%EB%8F%85%EC%A1%B0%EB%8F%84.jpg/300px-%EB%8F%85%EC%A1%B0%EB%8F%84.jpg&lt;br /&gt;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문화유산 휘경원원소도감의궤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C%98%EA%B2%BD%EC%9B%90%EC%9B%90%EC%86%8C%EB%8F%84%EA%B0%90%EC%9D%98%EA%B6%A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c/c8/%EC%99%B8%EA%B7%9C%EC%9E%A5%EA%B0%81%EC%9D%98%EA%B6%A4.jpeg/200px-%EC%99%B8%EA%B7%9C%EC%9E%A5%EA%B0%81%EC%9D%98%EA%B6%A4.jpeg&lt;br /&gt;
대동여지도 문화유산 대동여지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f/f9/%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jpeg/200px-%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jpeg&lt;br /&gt;
직지심체요절 문화유산 직지심체요절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A7%81%EC%A7%80%EC%8B%AC%EC%B2%B4%EC%9A%94%EC%A0%88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2/2d/%EC%A7%81%EC%A7%80.jpg/300px-%EC%A7%81%EC%A7%80.jpg&lt;br /&gt;
양봉요지 문화유산 양봉요지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6%91%EB%B4%89%EC%9A%94%EC%A7%80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0/0c/%EC%96%91%EB%B4%89%EC%9A%94%EC%A7%80.jpeg/200px-%EC%96%91%EB%B4%89%EC%9A%94%EC%A7%80.jpeg&lt;br /&gt;
보살_반가사유상 문화유산 보살_반가사유상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6/62/%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jpg&lt;br /&gt;
왕오천축국전 문화유산 왕오천축국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9%95%EC%98%A4%EC%B2%9C%EC%B6%95%EA%B5%AD%EC%A0%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d/d1/%EC%99%95%EC%98%A4%EC%B2%9C%EC%B6%95%EA%B5%AD%EC%A0%84.jpg/300px-%EC%99%95%EC%98%A4%EC%B2%9C%EC%B6%95%EA%B5%AD%EC%A0%84.jpg&lt;br /&gt;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문화유산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0%B1%EC%9E%90%EC%B2%AD%ED%99%94%EC%A0%95%EB%B6%80%EC%9D%B8%EC%96%91%EC%A3%BC%EC%A1%B0%EC%94%A8%EB%AC%98%EC%A7%80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4/41/%EB%B0%B1%EC%9E%90%EC%B2%AD%ED%99%94%EC%A0%95%EB%B6%80%EC%9D%B8%EC%96%91%EC%A3%BC%EC%A1%B0%EC%94%A8%EB%AC%98%EC%A7%80.jpg/200px-%EB%B0%B1%EC%9E%90%EC%B2%AD%ED%99%94%EC%A0%95%EB%B6%80%EC%9D%B8%EC%96%91%EC%A3%BC%EC%A1%B0%EC%94%A8%EB%AC%98%EC%A7%80.jpg&lt;br /&gt;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문화유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2%98%EC%A0%84%EA%B5%AD%ED%99%94%EB%84%9D%EC%BF%A8%EB%AC%B4%EB%8A%AC%EC%83%81%EC%9E%90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0/08/%EB%82%98%EC%A0%84%EA%B5%AD%ED%99%94%EB%84%9D%EC%BF%A8%EB%AC%B4%EB%8A%AC%EC%83%81%EC%9E%90.jpg/200px-%EB%82%98%EC%A0%84%EA%B5%AD%ED%99%94%EB%84%9D%EC%BF%A8%EB%AC%B4%EB%8A%AC%EC%83%81%EC%9E%90.jpg&lt;br /&gt;
혼례용단령 문화유산 혼례용단령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8%BC%EB%A1%80%EC%9A%A9%EB%8B%A8%EB%A0%B9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b/b8/%ED%98%BC%EB%A1%80%EC%9A%A9%EB%8B%A8%EB%A0%B9.jpg/200px-%ED%98%BC%EB%A1%80%EC%9A%A9%EB%8B%A8%EB%A0%B9.jpg&lt;br /&gt;
앙부일구 문화유산 앙부일구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5%99%EB%B6%80%EC%9D%BC%EA%B5%AC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3/35/%EC%95%99%EB%B6%80%EC%9D%BC%EA%B5%AC.jpg/200px-%EC%95%99%EB%B6%80%EC%9D%BC%EA%B5%AC.jpg&lt;br /&gt;
덕온공주_동제인장 문화유산 덕온공주_동제인장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D%95%EC%98%A8%EA%B3%B5%EC%A3%BC_%EB%8F%99%EC%A0%9C%EC%9D%B8%EC%9E%A5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0/0b/%EB%8D%95%EC%98%A8%EA%B3%B5%EC%A3%BC%EB%8F%99%EC%A0%9C%EC%9D%B8%EC%9E%A5.jpg/200px-%EB%8D%95%EC%98%A8%EA%B3%B5%EC%A3%BC%EB%8F%99%EC%A0%9C%EC%9D%B8%EC%9E%A5.jpg&lt;br /&gt;
덕종어보 문화유산 덕종어보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D%95%EC%A2%85%EC%96%B4%EB%B3%B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5/53/%EB%8D%95%EC%A2%85%EC%96%B4%EB%B3%B4.jpeg/200px-%EB%8D%95%EC%A2%85%EC%96%B4%EB%B3%B4.jpeg&lt;br /&gt;
얼굴무늬수막새 문화유산 얼굴무늬수막새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6%BC%EA%B5%B4%EB%AC%B4%EB%8A%AC%EC%88%98%EB%A7%89%EC%83%88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6/6b/%EC%96%BC%EA%B5%B4%EB%AC%B4%EB%8A%AC%EC%88%98%EB%A7%89%EC%83%88.jpg/200px-%EC%96%BC%EA%B5%B4%EB%AC%B4%EB%8A%AC%EC%88%98%EB%A7%89%EC%83%88.jpg&lt;br /&gt;
조선시대문인석 문화유산 조선시대문인석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A1%B0%EC%84%A0%EC%8B%9C%EB%8C%80%EB%AC%B8%EC%9D%B8%EC%84%9D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e/ea/%EC%A1%B0%EC%84%A0%EC%8B%9C%EB%8C%80%EB%AC%B8%EC%9D%B8%EC%84%9D.png/300px-%EC%A1%B0%EC%84%A0%EC%8B%9C%EB%8C%80%EB%AC%B8%EC%9D%B8%EC%84%9D.png&lt;br /&gt;
옥천사나한상 문화유산 옥천사나한상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8%A5%EC%B2%9C%EC%82%AC%EB%82%98%ED%95%9C%EC%83%81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2/29/%EC%98%A5%EC%B2%9C%EC%82%AC%EB%82%98%ED%95%9C%EC%83%81.png/200px-%EC%98%A5%EC%B2%9C%EC%82%AC%EB%82%98%ED%95%9C%EC%83%81.png&lt;br /&gt;
장군석 문화유산 장군석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E%A5%EA%B5%B0%EC%84%9D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b/b6/%EC%9E%A5%EA%B5%B0%EC%84%9D.png/200px-%EC%9E%A5%EA%B5%B0%EC%84%9D.png&lt;br /&gt;
장명등 문화유산 장명등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E%A5%EB%AA%85%EB%93%B1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9/9f/%EC%9E%A5%EB%AA%85%EB%93%B1.jpg/200px-%EC%9E%A5%EB%AA%85%EB%93%B1.jpg&lt;br /&gt;
&lt;br /&gt;
#Links&lt;br /&gt;
영국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호렵도_팔폭병풍 반출하였다&lt;br /&gt;
영국 나한도 반출하였다&lt;br /&gt;
프랑스 직지심체요절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보살_반가사유상 반출하였다&lt;br /&gt;
프랑스 왕오천축국전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독조도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몽유도원도 반출하였다&lt;br /&gt;
독일 양봉요지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대동여지도 반출하였다&lt;br /&gt;
프랑스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덕종어보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반출하였다&lt;br /&gt;
독일 혼례용단령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앙부일구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덕온공주_동제인장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옥천사나한상 반출하였다&lt;br /&gt;
독일 조선시대문인석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얼굴무늬수막새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장군석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장명등 반출하였다&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대동여지도 매입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복권기금 대동여지도 매입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양봉요지 영구대여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양봉요지 영구대여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김영삼_정부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영구대여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덕종어보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매입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혼례용단령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앙부일구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수막새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조선시대문인석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옥천사나한상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장군석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제이넷컴 장군석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장명등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제이넷컴 장명등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호렵도_팔폭병풍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호렵도_팔폭병풍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송광사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나한도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덕온공주_동제인장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사단법인_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 몽유도원도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대한민국 독조도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대한민국 보살_반가사유상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대한민국 왕오천축국전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대한민국 직지심체요절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송광사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호렵도_팔폭병풍 소장하고있다&lt;br /&gt;
서봉사 나한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프랑스_국립도서관 직지심체요절 소장하고있다&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보살_반가사유상 소장하고있다&lt;br /&gt;
프랑스_국립도서관 왕오천축국전 소장하고있다&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독조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양봉요지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대동여지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서울대학교_규장각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소장하고있다&lt;br /&gt;
한국학_중앙_연구원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덕종어보 소장하고있다&lt;br /&gt;
반남박씨_죽천공파_종중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혼례용단령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앙부일구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덕온공주_동제인장 소장하고있다&lt;br /&gt;
옥천사 옥천사나한상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문인석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수막새 소장하고있다&lt;br /&gt;
우리옛돌박물관 장군석 소장하고있다&lt;br /&gt;
우리옛돌박물관 장명등 소장하고있다&lt;br /&gt;
덴리대학_중앙도서관 몽유도원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덴리대학_중앙도서관 일본 속한다&lt;br /&gt;
프랑스_국립도서관 프랑스 속한다&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속한다&lt;br /&gt;
한국학_중앙_연구원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서울대학교_규장각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우리옛돌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송광사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옥천사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반남박씨_죽천공파_종중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서봉사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덴리대학_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국가유산청 속한다&lt;br /&gt;
국가유산청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립경주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제이넷컴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김영삼_정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복권기금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사단법인_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lt;br /&gt;
#End&lt;br /&gt;
&amp;lt;/pre&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C%98%EA%B2%BD%EC%9B%90%EC%9B%90%EC%86%8C%EB%8F%84%EA%B0%90%EC%9D%98%EA%B6%A4&amp;diff=50959</id>
		<title>휘경원원소도감의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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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새 문서: ㅇㅇ&lt;/p&gt;
&lt;hr /&gt;
&lt;div&gt;ㅇㅇ&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lst&amp;diff=50838</id>
		<title>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ls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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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9T02:05: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잃어버린_문화재를_찾아서&lt;br /&gt;
&lt;br /&gt;
#Class&lt;br /&gt;
문화유산&lt;br /&gt;
환수국가&lt;br /&gt;
반출국가&lt;br /&gt;
환수_주체&lt;br /&gt;
현_소장처&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반출하였다&lt;br /&gt;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매입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영구대여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속한다&lt;br /&gt;
소장하고있다&lt;br /&gt;
&lt;br /&gt;
#Nodes&lt;br /&gt;
한국학_중앙_연구원 현_소장처 한국학_중앙_연구원&lt;br /&gt;
서울대학교_규장각 현_소장처 서울대학교_규장각&lt;br /&gt;
우리옛돌박물관 현_소장처 우리옛돌박물관&lt;br /&gt;
송광사 현_소장처 송광사&lt;br /&gt;
옥천사 현_소장처 옥천사&lt;br /&gt;
반남박씨_죽천공파_종중 현_소장처 반남박씨_죽천공파_종중&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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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사 현_소장처 서봉사&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현_소장처 국립민속박물관&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현_소장처 도쿄국립박물관&lt;br /&gt;
덴리대학_중앙도서관 현_소장처 덴리대학_중앙도서관&lt;br /&gt;
프랑스_국립도서관 현_소장처 프랑스_국립도서관&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환수_주체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환수_주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lt;br /&gt;
국가유산청 환수_주체 국가유산청&lt;br /&gt;
국립경주박물관 환수_주체 국립경주박물관&lt;br /&gt;
제이넷컴 환수_주체 제이넷컴&lt;br /&gt;
김영삼_정부 환수_주체 김영삼_정부&lt;br /&gt;
복권기금 환수_주체 복권기금&lt;br /&gt;
사단법인_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 환수_주체 사단법인_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lt;br /&gt;
대한민국 환수국가 대한민국 null https://search.pstatic.net/common/?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100310_21%2Ftngus5334_12682018610987dOQ4_jpg%2F%25C5%25C2%25B1%25D8%25B1%25E2_tngus5334.jpg&amp;amp;type=a340&lt;br /&gt;
미국 반출국가 미국 null https://cdn.pixabay.com/photo/2013/07/13/12/51/flag-160479_960_720.png&lt;br /&gt;
일본 반출국가 일본 null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e/Flag_of_Japan.svg/2560px-Flag_of_Japan.svg.png&lt;br /&gt;
프랑스 반출국가 프랑스 null https://cdn.pixabay.com/photo/2015/11/20/18/55/french-flag-1053711_640.png&lt;br /&gt;
영국 반출국가 영국 null https://images.freeimages.com/vhq/images/previews/949/uk-union-flag-126543.png&lt;br /&gt;
독일 반출국가 독일 null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a/Flag_of_Germany.svg/255px-Flag_of_Germany.svg.png&lt;br /&gt;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문화유산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6%A1%EA%B4%91%EC%82%AC_%EC%B9%98%EC%84%B1%EA%B4%91%EC%97%AC%EB%9E%98%EB%8F%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5/57/%EC%86%A1%EA%B4%91%EC%82%AC%EC%B9%98%EC%84%B1%EA%B4%91%EC%97%AC%EB%9E%98%EB%8F%84.jpg&lt;br /&gt;
호렵도_팔폭병풍 문화유산 호렵도_팔폭병풍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8%B8%EB%A0%B5%EB%8F%84_%ED%8C%94%ED%8F%AD%EB%B3%91%ED%92%8D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b/bb/%ED%98%B8%EB%A0%B5%EB%8F%84%ED%8C%94%ED%8F%AD%EB%B3%91%ED%92%8D.jpg&lt;br /&gt;
나한도 문화유산 나한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2%98%ED%95%9C%EB%8F%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3/3e/%EB%82%98%ED%95%9C%EB%8F%84.jpg&lt;br /&gt;
몽유도원도 문화유산 몽유도원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3/Dream_Journey_to_the_Peach_Blossom_Land.jpg/408px-Dream_Journey_to_the_Peach_Blossom_Land.jpg&lt;br /&gt;
독조도 문화유산 독조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F%85%EC%A1%B0%EB%8F%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d/d8/%EB%8F%85%EC%A1%B0%EB%8F%84.jpg/300px-%EB%8F%85%EC%A1%B0%EB%8F%84.jpg&lt;br /&gt;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문화유산 휘경원원소도감의궤&lt;br /&gt;
대동여지도 문화유산 대동여지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f/f9/%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jpeg/200px-%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jpeg&lt;br /&gt;
직지심체요절 문화유산 직지심체요절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A7%81%EC%A7%80%EC%8B%AC%EC%B2%B4%EC%9A%94%EC%A0%88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2/2d/%EC%A7%81%EC%A7%80.jpg/300px-%EC%A7%81%EC%A7%80.jpg&lt;br /&gt;
양봉요지 문화유산 양봉요지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6%91%EB%B4%89%EC%9A%94%EC%A7%80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0/0c/%EC%96%91%EB%B4%89%EC%9A%94%EC%A7%80.jpeg/200px-%EC%96%91%EB%B4%89%EC%9A%94%EC%A7%80.jpeg&lt;br /&gt;
보살_반가사유상 문화유산 보살_반가사유상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6/62/%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jpg&lt;br /&gt;
왕오천축국전 문화유산 왕오천축국전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9%95%EC%98%A4%EC%B2%9C%EC%B6%95%EA%B5%AD%EC%A0%8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d/d1/%EC%99%95%EC%98%A4%EC%B2%9C%EC%B6%95%EA%B5%AD%EC%A0%84.jpg/300px-%EC%99%95%EC%98%A4%EC%B2%9C%EC%B6%95%EA%B5%AD%EC%A0%84.jpg&lt;br /&gt;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문화유산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0%B1%EC%9E%90%EC%B2%AD%ED%99%94%EC%A0%95%EB%B6%80%EC%9D%B8%EC%96%91%EC%A3%BC%EC%A1%B0%EC%94%A8%EB%AC%98%EC%A7%80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4/41/%EB%B0%B1%EC%9E%90%EC%B2%AD%ED%99%94%EC%A0%95%EB%B6%80%EC%9D%B8%EC%96%91%EC%A3%BC%EC%A1%B0%EC%94%A8%EB%AC%98%EC%A7%80.jpg/200px-%EB%B0%B1%EC%9E%90%EC%B2%AD%ED%99%94%EC%A0%95%EB%B6%80%EC%9D%B8%EC%96%91%EC%A3%BC%EC%A1%B0%EC%94%A8%EB%AC%98%EC%A7%80.jpg&lt;br /&gt;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문화유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2%98%EC%A0%84%EA%B5%AD%ED%99%94%EB%84%9D%EC%BF%A8%EB%AC%B4%EB%8A%AC%EC%83%81%EC%9E%90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0/08/%EB%82%98%EC%A0%84%EA%B5%AD%ED%99%94%EB%84%9D%EC%BF%A8%EB%AC%B4%EB%8A%AC%EC%83%81%EC%9E%90.jpg/200px-%EB%82%98%EC%A0%84%EA%B5%AD%ED%99%94%EB%84%9D%EC%BF%A8%EB%AC%B4%EB%8A%AC%EC%83%81%EC%9E%90.jpg&lt;br /&gt;
혼례용단령 문화유산 혼례용단령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8%BC%EB%A1%80%EC%9A%A9%EB%8B%A8%EB%A0%B9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b/b8/%ED%98%BC%EB%A1%80%EC%9A%A9%EB%8B%A8%EB%A0%B9.jpg/200px-%ED%98%BC%EB%A1%80%EC%9A%A9%EB%8B%A8%EB%A0%B9.jpg&lt;br /&gt;
앙부일구 문화유산 앙부일구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5%99%EB%B6%80%EC%9D%BC%EA%B5%AC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3/35/%EC%95%99%EB%B6%80%EC%9D%BC%EA%B5%AC.jpg/200px-%EC%95%99%EB%B6%80%EC%9D%BC%EA%B5%AC.jpg&lt;br /&gt;
덕온공주_동제인장 문화유산 덕온공주_동제인장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D%95%EC%98%A8%EA%B3%B5%EC%A3%BC_%EB%8F%99%EC%A0%9C%EC%9D%B8%EC%9E%A5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0/0b/%EB%8D%95%EC%98%A8%EA%B3%B5%EC%A3%BC%EB%8F%99%EC%A0%9C%EC%9D%B8%EC%9E%A5.jpg/200px-%EB%8D%95%EC%98%A8%EA%B3%B5%EC%A3%BC%EB%8F%99%EC%A0%9C%EC%9D%B8%EC%9E%A5.jpg&lt;br /&gt;
덕종어보 문화유산 덕종어보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D%95%EC%A2%85%EC%96%B4%EB%B3%B4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5/53/%EB%8D%95%EC%A2%85%EC%96%B4%EB%B3%B4.jpeg/200px-%EB%8D%95%EC%A2%85%EC%96%B4%EB%B3%B4.jpeg&lt;br /&gt;
얼굴무늬수막새 문화유산 얼굴무늬수막새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6%BC%EA%B5%B4%EB%AC%B4%EB%8A%AC%EC%88%98%EB%A7%89%EC%83%88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6/6b/%EC%96%BC%EA%B5%B4%EB%AC%B4%EB%8A%AC%EC%88%98%EB%A7%89%EC%83%88.jpg/200px-%EC%96%BC%EA%B5%B4%EB%AC%B4%EB%8A%AC%EC%88%98%EB%A7%89%EC%83%88.jpg&lt;br /&gt;
조선시대문인석 문화유산 조선시대문인석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A1%B0%EC%84%A0%EC%8B%9C%EB%8C%80%EB%AC%B8%EC%9D%B8%EC%84%9D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e/ea/%EC%A1%B0%EC%84%A0%EC%8B%9C%EB%8C%80%EB%AC%B8%EC%9D%B8%EC%84%9D.png/300px-%EC%A1%B0%EC%84%A0%EC%8B%9C%EB%8C%80%EB%AC%B8%EC%9D%B8%EC%84%9D.png&lt;br /&gt;
옥천사나한상 문화유산 옥천사나한상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8%A5%EC%B2%9C%EC%82%AC%EB%82%98%ED%95%9C%EC%83%81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2/29/%EC%98%A5%EC%B2%9C%EC%82%AC%EB%82%98%ED%95%9C%EC%83%81.png/200px-%EC%98%A5%EC%B2%9C%EC%82%AC%EB%82%98%ED%95%9C%EC%83%81.png&lt;br /&gt;
장군석 문화유산 장군석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E%A5%EA%B5%B0%EC%84%9D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b/b6/%EC%9E%A5%EA%B5%B0%EC%84%9D.png/200px-%EC%9E%A5%EA%B5%B0%EC%84%9D.png&lt;br /&gt;
장명등 문화유산 장명등 https://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E%A5%EB%AA%85%EB%93%B1 https://dh.aks.ac.kr/~dh_edu/wiki/images/thumb/9/9f/%EC%9E%A5%EB%AA%85%EB%93%B1.jpg/200px-%EC%9E%A5%EB%AA%85%EB%93%B1.jpg&lt;br /&gt;
&lt;br /&gt;
#Links&lt;br /&gt;
영국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호렵도_팔폭병풍 반출하였다&lt;br /&gt;
영국 나한도 반출하였다&lt;br /&gt;
프랑스 직지심체요절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보살_반가사유상 반출하였다&lt;br /&gt;
프랑스 왕오천축국전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독조도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몽유도원도 반출하였다&lt;br /&gt;
독일 양봉요지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대동여지도 반출하였다&lt;br /&gt;
프랑스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덕종어보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반출하였다&lt;br /&gt;
독일 혼례용단령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앙부일구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덕온공주_동제인장 반출하였다&lt;br /&gt;
미국 옥천사나한상 반출하였다&lt;br /&gt;
독일 조선시대문인석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얼굴무늬수막새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장군석 반출하였다&lt;br /&gt;
일본 장명등 반출하였다&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대동여지도 매입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복권기금 대동여지도 매입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양봉요지 영구대여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양봉요지 영구대여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김영삼_정부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영구대여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덕종어보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매입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혼례용단령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앙부일구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수막새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조선시대문인석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옥천사나한상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장군석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제이넷컴 장군석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장명등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제이넷컴 장명등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가유산청 호렵도_팔폭병풍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호렵도_팔폭병풍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송광사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나한도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덕온공주_동제인장 경매를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사단법인_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 몽유도원도 기증을_통해_환수하였다&lt;br /&gt;
대한민국 독조도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대한민국 보살_반가사유상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대한민국 왕오천축국전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대한민국 직지심체요절 환수하지_못하였다&lt;br /&gt;
송광사 송광사_치성광여래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호렵도_팔폭병풍 소장하고있다&lt;br /&gt;
서봉사 나한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프랑스_국립도서관 직지심체요절 소장하고있다&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보살_반가사유상 소장하고있다&lt;br /&gt;
프랑스_국립도서관 왕오천축국전 소장하고있다&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독조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양봉요지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대동여지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서울대학교_규장각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소장하고있다&lt;br /&gt;
한국학_중앙_연구원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덕종어보 소장하고있다&lt;br /&gt;
반남박씨_죽천공파_종중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혼례용단령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앙부일구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덕온공주_동제인장 소장하고있다&lt;br /&gt;
옥천사 옥천사나한상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문인석 소장하고있다&lt;br /&gt;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수막새 소장하고있다&lt;br /&gt;
우리옛돌박물관 장군석 소장하고있다&lt;br /&gt;
우리옛돌박물관 장명등 소장하고있다&lt;br /&gt;
덴리대학_중앙도서관 몽유도원도 소장하고있다&lt;br /&gt;
덴리대학_중앙도서관 일본 속한다&lt;br /&gt;
프랑스_국립도서관 프랑스 속한다&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속한다&lt;br /&gt;
한국학_중앙_연구원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서울대학교_규장각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우리옛돌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송광사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옥천사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반남박씨_죽천공파_종중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서봉사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도쿄국립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덴리대학_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성_베네딕도회_왜관수도원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국가유산청 속한다&lt;br /&gt;
국가유산청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국립경주박물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제이넷컴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김영삼_정부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복권기금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사단법인_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 대한민국 속한다&lt;br /&gt;
&lt;br /&gt;
#End&lt;br /&gt;
&amp;lt;/pre&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0535</id>
		<title>몽유도원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0535"/>
		<updated>2024-12-07T13:09: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2023년 12월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는 일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몽유도원도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lt;br /&gt;
&lt;br /&gt;
해당 계약에서는 한국반환을 위한 사실상 일체 권한을 위임 받는 체결을 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보상을 위한 협상과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 등의 숙제가 남아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실제적인 반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실무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4%EB%A5%98:%EC%98%B7%EC%B0%A8%EB%A6%BC&amp;diff=50534</id>
		<title>분류:옷차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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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7T13:08: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새 문서: 분류:옷차림&lt;/p&gt;
&lt;hr /&gt;
&lt;div&gt;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amp;diff=50533</id>
		<title>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amp;diff=50533"/>
		<updated>2024-12-07T13:08: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콘텐츠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여러분은 우리 문화유산이 아직 해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어떻게 환수해왔는지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봅시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기획의도'''==&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배경'''&amp;lt;/span&amp;gt;===&lt;br /&gt;
부당하게 국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amp;quot;문화유산을 환수한다&amp;quot;'''는 것은 현대인이 근대적 정신을 가지고 전근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amp;lt;/span&amp;gt;===&lt;br /&gt;
국외로 불법, 부당 반출 되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환수 조치한 사례에 대하여 알아본다. 역사적 가정에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국외 문화유산의 국내 환수는 매우 중요하다. 환수된 문서 및 회화, 공예품은 역사적 왜곡 및 과장을 방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국외로 부당하게 반출되었던 사례를 살펴보고, 국외 문화유산을 환수해온 경로 및 방식을 알아본다. 추가적으로 아직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은 무엇이 있는지 조사한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 의의'''&amp;lt;/span&amp;gt;===&lt;br /&gt;
이를 통해 아직까지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을 더 효과적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문화유산 환수사업을 향한 시민의 관심을 촉진시킴으로써 국외 문화유산 환수의 필요성을 알린다.&lt;br /&gt;
&lt;br /&gt;
=='''환수 주체'''==&lt;br /&gt;
===국가기관===&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lt;br /&gt;
&lt;br /&gt;
===민간===&lt;br /&gt;
=='''어디서 왔는가'''==&lt;br /&gt;
===*'''''[[독일(GERMANY)]]'''''===&lt;br /&gt;
====[[양봉요지]]====&lt;br /&gt;
====[[조선시대문인석]]====&lt;br /&gt;
====[[혼례용단령]]====&lt;br /&gt;
&lt;br /&gt;
===*'''''[[미국(USA)]]'''''===&lt;br /&gt;
====[[나한도]]====&lt;br /&gt;
====[[덕온공주 동제인장]]====&lt;br /&gt;
====[[덕종어보]]====&lt;br /&gt;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lt;br /&gt;
====[[앙부일구]]====&lt;br /&gt;
====[[옥천사나한상]]====&lt;br /&gt;
====[[호렵도 팔폭병풍]]====&lt;br /&gt;
&lt;br /&gt;
===*'''''[[영국(UK)]]'''''===&lt;br /&gt;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lt;br /&gt;
===*'''''[[일본(JAPAN)]]'''''===&lt;br /&gt;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lt;br /&gt;
====[[대동여지도]]====&lt;br /&gt;
====[[얼굴무늬수막새]]====&lt;br /&gt;
&lt;br /&gt;
====[[장군석]]====&lt;br /&gt;
====[[장명등]]====&lt;br /&gt;
&lt;br /&gt;
=== *'''''[[프랑스(FRANCE)]]'''''===&lt;br /&gt;
====[[휘경원원소도감의궤]]====&lt;br /&gt;
&lt;br /&gt;
=='''앞으로의 과제'''==&lt;br /&gt;
==='''''[[일본(JAPAN)]]'''''===&lt;br /&gt;
====[[독조도]]====&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반가사유상]]====&lt;br /&gt;
&lt;br /&gt;
==='''''[[프랑스(FRANCE)]]'''''===&lt;br /&gt;
====[[왕오천축국전]]====&lt;br /&gt;
====[[직지심체요절]]====&lt;br /&gt;
&lt;br /&gt;
=='''환수 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ZC4gAfcj9UNWuc3dNDTiM6lUHLM_0Y2-owcK441Wtfw&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마인드맵'''==&lt;br /&gt;
[[파일: 마인드맵.png|900픽셀|위쪽|덕온공주동제인장]]&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NetworkGraph | title=잃어버린_문화재를_찾아서.lst}}&lt;br /&gt;
&lt;br /&gt;
=='''팀원'''==&lt;br /&gt;
*'''권지은'''&lt;br /&gt;
*'''김선응'''&lt;br /&gt;
*'''임은혜'''&lt;br /&gt;
*'''정영서'''&lt;br /&gt;
*'''최원준'''&lt;br /&gt;
&lt;br /&gt;
=='''분류 정보 기록'''==&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반출국가 || 문화유산이 반출된 국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lt;br /&gt;
|-&lt;br /&gt;
|환수국가 || 대한민국을 반출국가와 구분하는 클래스이다. ||  대한민국&lt;br /&gt;
|-&lt;br /&gt;
|환수 주체 || 문화유산을 환수한 주체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국가기관, 민간단체, 익명의 민간단체&lt;br /&gt;
|-&lt;br /&gt;
|문화유산의 환수 여부 || 문화유산이 환수되었는지 여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미환수 문화유산&lt;br /&gt;
|-&lt;br /&gt;
|현 소장처 || 현재 문화유산을 소장 중인 소장처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익명의 현 소장처&lt;br /&gt;
|-&lt;br /&gt;
|문화유산 || 환수 또는 미환수된 문화유산을 정리하는 클래스이다. || 송광사 치성광여래도, 호렵도 팔폭병풍, 나한도, 몽유도원도, 독조도,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대동여지도, 직지심체요절, 양봉요지, 왕오천축국전, 보살 반가사유상, 얼굴무늬수막새, 조선시대문인석, 옥천사나한상, 장군석, 장명등,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혼례용단령, 앙부일구, 덕온공주 동제인장, 덕종어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Relation)===&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반출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 영국 →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 &lt;br /&gt;
**#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경매를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매입을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기증을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영구대여를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환수하지 못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속한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소장하고 있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amp;diff=50532</id>
		<title>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amp;diff=50532"/>
		<updated>2024-12-07T13:08: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콘텐츠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여러분은 우리 문화유산이 아직 해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어떻게 환수해왔는지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봅시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기획의도'''==&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배경'''&amp;lt;/span&amp;gt;===&lt;br /&gt;
부당하게 국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amp;quot;문화유산을 환수한다&amp;quot;'''는 것은 현대인이 근대적 정신을 가지고 전근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amp;lt;/span&amp;gt;===&lt;br /&gt;
국외로 불법, 부당 반출 되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환수 조치한 사례에 대하여 알아본다. 역사적 가정에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국외 문화유산의 국내 환수는 매우 중요하다. 환수된 문서 및 회화, 공예품은 역사적 왜곡 및 과장을 방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국외로 부당하게 반출되었던 사례를 살펴보고, 국외 문화유산을 환수해온 경로 및 방식을 알아본다. 추가적으로 아직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은 무엇이 있는지 조사한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 의의'''&amp;lt;/span&amp;gt;===&lt;br /&gt;
이를 통해 아직까지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을 더 효과적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문화유산 환수사업을 향한 시민의 관심을 촉진시킴으로써 국외 문화유산 환수의 필요성을 알린다.&lt;br /&gt;
&lt;br /&gt;
=='''환수 주체'''==&lt;br /&gt;
===국가기관===&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lt;br /&gt;
&lt;br /&gt;
===민간===&lt;br /&gt;
=='''어디서 왔는가'''==&lt;br /&gt;
===*'''''[[독일(GERMANY)]]'''''===&lt;br /&gt;
====[[양봉요지]]====&lt;br /&gt;
====[[조선시대문인석]]====&lt;br /&gt;
====[[혼례용단령]]====&lt;br /&gt;
&lt;br /&gt;
===*'''''[[미국(USA)]]'''''===&lt;br /&gt;
====[[나한도]]====&lt;br /&gt;
====[[덕온공주 동제인장]]====&lt;br /&gt;
====[[덕종어보]]====&lt;br /&gt;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lt;br /&gt;
====[[앙부일구]]====&lt;br /&gt;
====[[옥천사나한상]]====&lt;br /&gt;
====[[호렵도 팔폭병풍]]====&lt;br /&gt;
&lt;br /&gt;
===*'''''[[영국(UK)]]'''''===&lt;br /&gt;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lt;br /&gt;
===*'''''[[일본(JAPAN)]]'''''===&lt;br /&gt;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lt;br /&gt;
====[[대동여지도]]====&lt;br /&gt;
====[[얼굴무늬수막새]]====&lt;br /&gt;
&lt;br /&gt;
====[[장군석]]====&lt;br /&gt;
====[[장명등]]====&lt;br /&gt;
&lt;br /&gt;
=== *'''''[[프랑스(FRANCE)]]'''''===&lt;br /&gt;
====[[휘경원원소도감의궤]]====&lt;br /&gt;
&lt;br /&gt;
=='''앞으로의 과제'''==&lt;br /&gt;
==='''''[[일본(JAPAN)]]'''''===&lt;br /&gt;
====[[독조도]]====&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반가사유상]]====&lt;br /&gt;
&lt;br /&gt;
==='''''[[프랑스(FRANCE)]]'''''===&lt;br /&gt;
====[[왕오천축국전]]====&lt;br /&gt;
====[[직지심체요절]]====&lt;br /&gt;
&lt;br /&gt;
=='''환수 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ZC4gAfcj9UNWuc3dNDTiM6lUHLM_0Y2-owcK441Wtfw&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마인드맵'''==&lt;br /&gt;
[[파일: 마인드맵.png|900픽셀|위쪽|덕온공주동제인장]]&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NetworkGraph | title=잃어버린_문화재를_찾아서.lst}}&lt;br /&gt;
&lt;br /&gt;
=='''팀원'''==&lt;br /&gt;
*'''권지은'''&lt;br /&gt;
*'''김선응'''&lt;br /&gt;
*'''임은혜'''&lt;br /&gt;
*'''정영서'''&lt;br /&gt;
*'''최원준'''&lt;br /&gt;
&lt;br /&gt;
=='''분류 정보 기록'''==&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반출국가 || 문화유산이 반출된 국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lt;br /&gt;
|-&lt;br /&gt;
|환수국가 || 대한민국을 반출국가와 구분하는 클래스이다. ||  대한민국&lt;br /&gt;
|-&lt;br /&gt;
|환수 주체 || 문화유산을 환수한 주체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국가기관, 민간단체, 익명의 민간단체&lt;br /&gt;
|-&lt;br /&gt;
|문화유산의 환수 여부 || 문화유산이 환수되었는지 여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미환수 문화유산&lt;br /&gt;
|-&lt;br /&gt;
|현 소장처 || 현재 문화유산을 소장 중인 소장처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익명의 현 소장처&lt;br /&gt;
|-&lt;br /&gt;
|문화유산 || 환수 또는 미환수된 문화유산을 정리하는 클래스이다. || 송광사 치성광여래도, 호렵도 팔폭병풍, 나한도, 몽유도원도, 독조도,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대동여지도, 직지심체요절, 양봉요지, 왕오천축국전, 보살 반가사유상, 얼굴무늬수막새, 조선시대문인석, 옥천사나한상, 장군석, 장명등,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혼례용단령, 앙부일구, 덕온공주 동제인장, 덕종어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Relation)===&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반출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 영국 →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 &lt;br /&gt;
**#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경매를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매입을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기증을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영구대여를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환수하지 못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속한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소장하고 있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amp;diff=50531</id>
		<title>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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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7T13:07: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콘텐츠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여러분은 우리 문화유산이 아직 해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어떻게 환수해왔는지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봅시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기획의도'''==&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배경'''&amp;lt;/span&amp;gt;===&lt;br /&gt;
부당하게 국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amp;quot;문화유산을 환수한다&amp;quot;'''는 것은 현대인이 근대적 정신을 가지고 전근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amp;lt;/span&amp;gt;===&lt;br /&gt;
국외로 불법, 부당 반출 되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환수 조치한 사례에 대하여 알아본다. 역사적 가정에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국외 문화유산의 국내 환수는 매우 중요하다. 환수된 문서 및 회화, 공예품은 역사적 왜곡 및 과장을 방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국외로 부당하게 반출되었던 사례를 살펴보고, 국외 문화유산을 환수해온 경로 및 방식을 알아본다. 추가적으로 아직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은 무엇이 있는지 조사한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 의의'''&amp;lt;/span&amp;gt;===&lt;br /&gt;
이를 통해 아직까지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을 더 효과적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문화유산 환수사업을 향한 시민의 관심을 촉진시킴으로써 국외 문화유산 환수의 필요성을 알린다.&lt;br /&gt;
&lt;br /&gt;
=='''환수 주체'''==&lt;br /&gt;
===국가기관===&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lt;br /&gt;
&lt;br /&gt;
===민간===&lt;br /&gt;
=='''어디서 왔는가'''==&lt;br /&gt;
===*'''''[[독일(GERMANY)]]'''''===&lt;br /&gt;
====[[양봉요지]]====&lt;br /&gt;
====[[조선시대문인석]]====&lt;br /&gt;
====[[혼례용단령]]====&lt;br /&gt;
&lt;br /&gt;
===*'''''[[미국(USA)]]'''''===&lt;br /&gt;
====[[나한도]]====&lt;br /&gt;
====[[덕온공주 동제인장]]====&lt;br /&gt;
====[[덕종어보]]====&lt;br /&gt;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lt;br /&gt;
====[[앙부일구]]====&lt;br /&gt;
====[[옥천사나한상]]====&lt;br /&gt;
====[[호렵도 팔폭병풍]]====&lt;br /&gt;
&lt;br /&gt;
===*'''''[[영국(UK)]]'''''===&lt;br /&gt;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lt;br /&gt;
===*'''''[[일본(JAPAN)]]'''''===&lt;br /&gt;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lt;br /&gt;
====[[대동여지도]]====&lt;br /&gt;
====[[얼굴무늬수막새]]====&lt;br /&gt;
&lt;br /&gt;
====[[장군석]]====&lt;br /&gt;
====[[장명등]]====&lt;br /&gt;
&lt;br /&gt;
=== *'''''[[프랑스(FRANCE)]]'''''===&lt;br /&gt;
====[[휘경원원소도감의궤]]====&lt;br /&gt;
&lt;br /&gt;
=='''앞으로의 과제'''==&lt;br /&gt;
==='''''[[일본(JAPAN)]]'''''===&lt;br /&gt;
====[[독조도]]====&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반가사유상]]====&lt;br /&gt;
&lt;br /&gt;
==='''''[[프랑스(FRANCE)]]'''''===&lt;br /&gt;
====[[왕오천축국전]]====&lt;br /&gt;
====[[직지심체요절]]====&lt;br /&gt;
&lt;br /&gt;
=='''환수 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ZC4gAfcj9UNWuc3dNDTiM6lUHLM_0Y2-owcK441Wtfw&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마인드맵'''==&lt;br /&gt;
[[파일: 마인드맵.png|900픽셀|위쪽|덕온공주동제인장]]&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NetworkGraph | title=잃어버린_문화재를_찾아서.lst}}&lt;br /&gt;
&lt;br /&gt;
=='''팀원'''==&lt;br /&gt;
*'''권지은'''&lt;br /&gt;
*'''김선응'''&lt;br /&gt;
*'''임은혜'''&lt;br /&gt;
*'''정영서'''&lt;br /&gt;
*'''최원준'''&lt;br /&gt;
&lt;br /&gt;
=='''분류 정보 기록'''==&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반출국가 || 문화유산이 반출된 국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lt;br /&gt;
|-&lt;br /&gt;
|환수국가 || 대한민국을 반출국가와 구분하는 클래스이다. ||  대한민국&lt;br /&gt;
|-&lt;br /&gt;
|환수 주체 || 문화유산을 환수한 주체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국가기관, 민간단체, 익명의 민간단체&lt;br /&gt;
|-&lt;br /&gt;
|문화유산의 환수 여부 || 문화유산이 환수되었는지 여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미환수 문화유산&lt;br /&gt;
|-&lt;br /&gt;
|현 소장처 || 현재 문화유산을 소장 중인 소장처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익명의 현 소장처&lt;br /&gt;
|-&lt;br /&gt;
|문화유산 || 환수 또는 미환수된 문화유산을 정리하는 클래스이다. || 송광사 치성광여래도, 호렵도 팔폭병풍, 나한도, 몽유도원도, 독조도,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대동여지도, 직지심체요절, 양봉요지, 왕오천축국전, 보살 반가사유상, 얼굴무늬수막새, 조선시대문인석, 옥천사나한상, 장군석, 장명등,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혼례용단령, 앙부일구, 덕온공주 동제인장, 덕종어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Relation)===&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반출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 영국 →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 &lt;br /&gt;
**#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경매를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매입을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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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기증을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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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영구대여를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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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환수하지 못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속한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소장하고 있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br /&gt;
[[출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amp;diff=50526</id>
		<title>반가사유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amp;diff=50526"/>
		<updated>2024-12-07T10:49: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기본정보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반가사유상.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백제&lt;br /&gt;
|- &lt;br /&gt;
|형태 || 금동불상&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도쿄국립박물관&lt;br /&gt;
|}&lt;br /&gt;
&lt;br /&gt;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세계 약 70여점 정도가 남아있어 높은 희귀성을 가진 불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16.3cm의 작은 불상이다.&lt;br /&gt;
&lt;br /&gt;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것과 유사하다.&lt;br /&gt;
&lt;br /&gt;
====재질====&lt;br /&gt;
반가사유상 본체의 청동성분은 모두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은 고대 한국 금동불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반가사유상의 가치&amp;lt;/font&amp;gt;===&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미가 매우 사실적이며 빼어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 과정&amp;lt;/font&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충남 공주의 사지 석탑 내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충청남도 공주 부근 산성의 탑 가운데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소장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한국문화재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해 편찬한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도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경성공소원 판사 미야케 조사쿠의 소장품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41년 도쿄에서 열린 소장품 전시 목록에는 오구라의 컬렉션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전에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오구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도굴꾼 사이에서는 값을 높이 쳐주기로 유명해 도굴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골동품을 들고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오구라의 행적을 살펴봤을 때 공주 절터의 탑에서 도굴된 금동반가사유상이 여러 루트를 거쳐 오구라의 수집품이 됐음을 추정이 가능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 시도&amp;lt;/font&amp;gt;===&lt;br /&gt;
오구라 컬렉션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 불법 수집품의 목록에 오구라 컬렉션의 소장품을 포함시켰고, 돌려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결국 양국 정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이 소유하는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권장하겠다”고 합의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1981년 오구라 컬렉션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고,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 어떠한 의사타진도 하지 않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사유 재산이라서 돌려줄 수 없다는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정부의 국유 재산이 됐다.&lt;br /&gt;
&lt;br /&gt;
일본 국유재산이 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환수운동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lt;br /&gt;
====문화재제자리찾기====&lt;br /&gt;
2014년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라는 시민단체가 도쿄재판부에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오구라의 자필 목록을 근거로 오구라 컬렉션 중 34점이 명백한 도굴, 도난품임을 문헌적으로 입증하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은 결렬됐다.&lt;br /&gt;
&lt;br /&gt;
====지자체의 환수 노력====&lt;br /&gt;
2019년부터 충남도는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을 포함한 지역 유출 오구라 컬렉션의 환수를 위한 조사 등 환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lt;br /&gt;
&amp;lt;br/&amp;gt;충남도의회는 지난 2016년 충남도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지원 조례안을 가결하고 2017년에는 충남국외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을 구성해 국내외 반출문화재를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유출 출처의 불확실성, 개인 소장품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A7%81%EC%A7%80%EC%8B%AC%EC%B2%B4%EC%9A%94%EC%A0%88&amp;diff=50525</id>
		<title>직지심체요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A7%81%EC%A7%80%EC%8B%AC%EC%B2%B4%EC%9A%94%EC%A0%88&amp;diff=50525"/>
		<updated>2024-12-07T09:25: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압류가능성 때문에 대여 불가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직지.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프랑스 )&lt;br /&gt;
|- &lt;br /&gt;
| 시기 || 고려, 1377년&lt;br /&gt;
|- &lt;br /&gt;
|형태 || 금속활자본&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각 상권, 하권의 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현재 프랑스에 있는 원본은 하권에 해당하며, 상권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글자====&lt;br /&gt;
이 책은 활자의 주조술과 조판술이 아주 미숙하였던 고려시대에 관서가 아닌 지방의 한 사찰이 전통적인 밀랍주조법으로 주조하여 찍어낸 것이기 때문에 활자의 크기와 글자모양이 고르지 않고, 또 본문을 찍은 중자가 부족하여 소자와 나무보자로 충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조잡한 편이다.&lt;br /&gt;
&lt;br /&gt;
이와 같이 기술이 미숙한 단계의 책이지만, 문헌에만 전하여지고 있던 여러 종의 고려 주자본 중 유일하게 전래되고 있는 금속활자본으로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내용&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고려후기 승려 경한이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만든 불교교리서이다.&lt;br /&gt;
&lt;br /&gt;
이 책의 중심주제는 ‘직지심체(直指心體)’이다. 이것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깨달을 때 그 심성이 바로 부처의 실체라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사람의 본성은 그 자체가 본시 청정하므로 선지식의 도움에 의하여 자기 마음 속에서 그 심성이 자정함을 깨닫고 늘 스스로 닦고 행한다면 곧 불성을 체득하여 자기 자신이 바로 부처의 몸이 되며, 자기 마음이 바로 불심이 된다는 요지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즉, 사람이 눈을 외계로 돌리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올바로 가지면서 참선하여 도를 깨친다면 마음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가 됨을 뜻한다.&lt;br /&gt;
&lt;br /&gt;
스승이 주는 과제에 의하여 선을 공부하는 간화선보다는, 일체의 사심과 망념에서 떠난 마음을 중시하는 무심무념을 궁극의 경지로 삼음이 경한의 특징적인 선풍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와 같은 특색있는 선풍을 펼치기 위하여 경한은 이 책을 편찬한 것으로, 그가 주창한 무심선을 연구하는 데에 긴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경로&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구한말 당시 주한프랑스대리공사로서 서울에 부임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했던 고물품중에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이후 플랑시는 공사 임무를 수행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는데 이때 여러 고물품들을 수집해 갔고&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11년 경매에 올려 골동품상 브베르에게 180프랑으로 팔렸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골동품상이 다음해인 1943년에 죽으며 그의 상속인에게 넘어가 관리되어 오다가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프랑스 반환 거부====&lt;br /&gt;
&lt;br /&gt;
프랑스 입장에서는 약탈, 도난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도난·약탈 문화재는 반출 경위가 확인될 경우 본국에 되돌려 주는 것이 국제법 상의 관례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직지심체요절은 약탈, 도난 문화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는 반환을 거부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1886년 초대 주한프랑스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블랑시가 1880~1890년 사이에 국내에서 구매해 프랑스로 가져갔으며&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구매하게 된 경위나 구매처는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할 명목이 없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압류가능성 때문에 대여 불가====&lt;br /&gt;
&lt;br /&gt;
프랑스와 문화재 협상의 특이점은 일시적 '대여'를 시도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프랑스에 유출된 문화재에는 병인양요를 비롯한 전쟁 전리품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구매를 통한 재산이기 때문에 환수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대부분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국내에서의 전시와 연구를 위해서는 대여형식의 전시를 요청하고 있는데&lt;br /&gt;
&amp;lt;br/&amp;gt;&lt;br /&gt;
2010년대부터 프랑스에 여러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매번 무산됐다.&lt;br /&gt;
&lt;br /&gt;
그 이유는 프랑스 정부 측에서 직지심체요절을 대여해줄 경우 한국에서 압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br/&amp;gt;2021년 프랑스에 방문한 문화체육부장관이 정부 차원에서 압류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amp;diff=50524</id>
		<title>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amp;diff=50524"/>
		<updated>2024-12-07T08:55: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어디서 왔는가 */&lt;/p&gt;
&lt;hr /&gt;
&lt;div&gt;=='''콘텐츠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여러분은 우리 문화유산이 아직 해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어떻게 환수해왔는지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봅시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기획의도'''==&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배경'''&amp;lt;/span&amp;gt;===&lt;br /&gt;
부당하게 국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amp;quot;문화유산을 환수한다&amp;quot;'''는 것은 현대인이 근대적 정신을 가지고 전근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amp;lt;/span&amp;gt;===&lt;br /&gt;
국외로 불법, 부당 반출 되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환수 조치한 사례에 대하여 알아본다. 역사적 가정에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국외 문화유산의 국내 환수는 매우 중요하다. 환수된 문서 및 회화, 공예품은 역사적 왜곡 및 과장을 방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국외로 부당하게 반출되었던 사례를 살펴보고, 국외 문화유산을 환수해온 경로 및 방식을 알아본다. 추가적으로 아직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은 무엇이 있는지 조사한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기획 의의'''&amp;lt;/span&amp;gt;===&lt;br /&gt;
이를 통해 아직까지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을 더 효과적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문화유산 환수사업을 향한 시민의 관심을 촉진시킴으로써 국외 문화유산 환수의 필요성을 알린다.&lt;br /&gt;
&lt;br /&gt;
=='''환수 주체'''==&lt;br /&gt;
===국가기관===&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lt;br /&gt;
&lt;br /&gt;
===민간===&lt;br /&gt;
=='''어디서 왔는가'''==&lt;br /&gt;
===*'''''[[독일(GERMANY)]]'''''===&lt;br /&gt;
====[[양봉요지]]====&lt;br /&gt;
====[[조선시대문인석]]====&lt;br /&gt;
====[[혼례용단령]]====&lt;br /&gt;
&lt;br /&gt;
===*'''''[[미국(USA)]]'''''===&lt;br /&gt;
====[[나한도]]====&lt;br /&gt;
====[[덕온공주 동제인장]]====&lt;br /&gt;
====[[덕종어보]]====&lt;br /&gt;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lt;br /&gt;
====[[앙부일구]]====&lt;br /&gt;
====[[옥천사나한상]]====&lt;br /&gt;
====[[호렵도 팔폭병풍]]====&lt;br /&gt;
&lt;br /&gt;
===*'''''[[영국(UK)]]'''''===&lt;br /&gt;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lt;br /&gt;
===*'''''[[일본(JAPAN)]]'''''===&lt;br /&gt;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lt;br /&gt;
====[[대동여지도]]====&lt;br /&gt;
====[[얼굴무늬수막새]]====&lt;br /&gt;
&lt;br /&gt;
====[[장군석]]====&lt;br /&gt;
====[[장명등]]====&lt;br /&gt;
&lt;br /&gt;
=== *'''''[[프랑스(FRANCE)]]'''''===&lt;br /&gt;
====[[휘경원원소도감의궤]]====&lt;br /&gt;
&lt;br /&gt;
=='''앞으로의 과제'''==&lt;br /&gt;
==='''''[[일본(JAPAN)]]'''''===&lt;br /&gt;
====[[독조도]]====&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반가사유상]]====&lt;br /&gt;
&lt;br /&gt;
==='''''[[프랑스(FRANCE)]]'''''===&lt;br /&gt;
====[[왕오천축국전]]====&lt;br /&gt;
====[[직지심체요절]]====&lt;br /&gt;
&lt;br /&gt;
=='''환수 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ZC4gAfcj9UNWuc3dNDTiM6lUHLM_0Y2-owcK441Wtfw&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마인드맵'''==&lt;br /&gt;
[[파일: 마인드맵.png|900픽셀|위쪽|덕온공주동제인장]]&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NetworkGraph | title=잃어버린_문화재를_찾아서.lst}}&lt;br /&gt;
&lt;br /&gt;
=='''팀원'''==&lt;br /&gt;
*'''권지은'''&lt;br /&gt;
*'''김선응'''&lt;br /&gt;
*'''임은혜'''&lt;br /&gt;
*'''정영서'''&lt;br /&gt;
*'''최원준'''&lt;br /&gt;
&lt;br /&gt;
=='''분류 정보 기록'''==&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반출국가 || 문화유산이 반출된 국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lt;br /&gt;
|-&lt;br /&gt;
|환수국가 || 대한민국을 반출국가와 구분하는 클래스이다. ||  대한민국&lt;br /&gt;
|-&lt;br /&gt;
|환수 주체 || 문화유산을 환수한 주체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국가기관, 민간단체, 익명의 민간단체&lt;br /&gt;
|-&lt;br /&gt;
|문화유산의 환수 여부 || 문화유산이 환수되었는지 여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미환수 문화유산&lt;br /&gt;
|-&lt;br /&gt;
|현 소장처 || 현재 문화유산을 소장 중인 소장처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 익명의 현 소장처&lt;br /&gt;
|-&lt;br /&gt;
|문화유산 || 환수 또는 미환수된 문화유산을 정리하는 클래스이다. || 송광사 치성광여래도, 호렵도 팔폭병풍, 나한도, 몽유도원도, 독조도,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대동여지도, 직지심체요절, 양봉요지, 왕오천축국전, 보살 반가사유상, 얼굴무늬수막새, 조선시대문인석, 옥천사나한상, 장군석, 장명등,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혼례용단령, 앙부일구, 덕온공주 동제인장, 덕종어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Relation)===&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반출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 영국 →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 &lt;br /&gt;
**#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경매를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매입을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기증을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영구대여를 통해 환수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환수하지 못하였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속한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3F781&amp;quot;&amp;gt;'''소장하고 있다'''&amp;lt;/span&amp;gt;&lt;br /&gt;
**설명: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0420</id>
		<title>몽유도원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0420"/>
		<updated>2024-12-04T06:48: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환수시도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2023년 12월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는 일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몽유도원도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lt;br /&gt;
&lt;br /&gt;
해당 계약에서는 한국반환을 위한 사실상 일체 권한을 위임 받는 체결을 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보상을 위한 협상과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 등의 숙제가 남아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실제적인 반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실무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A7%81%EC%A7%80%EC%8B%AC%EC%B2%B4%EC%9A%94%EC%A0%88&amp;diff=50377</id>
		<title>직지심체요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A7%81%EC%A7%80%EC%8B%AC%EC%B2%B4%EC%9A%94%EC%A0%88&amp;diff=50377"/>
		<updated>2024-12-04T02:31: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직지.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프랑스 )&lt;br /&gt;
|- &lt;br /&gt;
| 시기 || 고려, 1377년&lt;br /&gt;
|- &lt;br /&gt;
|형태 || 금속활자본&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각 상권, 하권의 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현재 프랑스에 있는 원본은 하권에 해당하며, 상권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글자====&lt;br /&gt;
이 책은 활자의 주조술과 조판술이 아주 미숙하였던 고려시대에 관서가 아닌 지방의 한 사찰이 전통적인 밀랍주조법으로 주조하여 찍어낸 것이기 때문에 활자의 크기와 글자모양이 고르지 않고, 또 본문을 찍은 중자가 부족하여 소자와 나무보자로 충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조잡한 편이다.&lt;br /&gt;
&lt;br /&gt;
이와 같이 기술이 미숙한 단계의 책이지만, 문헌에만 전하여지고 있던 여러 종의 고려 주자본 중 유일하게 전래되고 있는 금속활자본으로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내용&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고려후기 승려 경한이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만든 불교교리서이다.&lt;br /&gt;
&lt;br /&gt;
이 책의 중심주제는 ‘직지심체(直指心體)’이다. 이것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깨달을 때 그 심성이 바로 부처의 실체라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사람의 본성은 그 자체가 본시 청정하므로 선지식의 도움에 의하여 자기 마음 속에서 그 심성이 자정함을 깨닫고 늘 스스로 닦고 행한다면 곧 불성을 체득하여 자기 자신이 바로 부처의 몸이 되며, 자기 마음이 바로 불심이 된다는 요지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즉, 사람이 눈을 외계로 돌리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올바로 가지면서 참선하여 도를 깨친다면 마음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가 됨을 뜻한다.&lt;br /&gt;
&lt;br /&gt;
스승이 주는 과제에 의하여 선을 공부하는 간화선보다는, 일체의 사심과 망념에서 떠난 마음을 중시하는 무심무념을 궁극의 경지로 삼음이 경한의 특징적인 선풍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와 같은 특색있는 선풍을 펼치기 위하여 경한은 이 책을 편찬한 것으로, 그가 주창한 무심선을 연구하는 데에 긴요한 자료가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경로&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직지심체요절은 구한말 당시 주한프랑스대리공사로서 서울에 부임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했던 고물품중에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이후 플랑시는 공사 임무를 수행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는데 이때 여러 고물품들을 수집해 갔고&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11년 경매에 올려 골동품상 브베르에게 180프랑으로 팔렸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골동품상이 다음해인 1943년에 죽으며 그의 상속인에게 넘어가 관리되어 오다가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프랑스 반환 거부====&lt;br /&gt;
&lt;br /&gt;
프랑스 입장에서는 약탈, 도난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도난·약탈 문화재는 반출 경위가 확인될 경우 본국에 되돌려 주는 것이 국제법 상의 관례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직지심체요절은 약탈, 도난 문화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는 반환을 거부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1886년 초대 주한프랑스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블랑시가 1880~1890년 사이에 국내에서 구매해 프랑스로 가져갔으며&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구매하게 된 경위나 구매처는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할 명목이 없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압류가능성 때문에 대여 불가====&lt;br /&gt;
&lt;br /&gt;
프랑스와 문화재 협상의 특이점은 일시적 '대여'를 시도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프랑스에 유출된 문화재에는 병인양요를 비롯한 전쟁 전리품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구매를 통한 구물품이기 때문에 환수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대부분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국내에서의 전시와 연구를 위해서는 대여형식의 전시를 요청하고 있는데&lt;br /&gt;
&amp;lt;br/&amp;gt;&lt;br /&gt;
2010년대부터 프랑스에 여러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매번 무산됐다.&lt;br /&gt;
&lt;br /&gt;
그 이유는 프랑스 정부 측에서 직지심체요절을 대여해줄 경우 한국에서 압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br/&amp;gt;2021년 프랑스에 방문한 문화체육부장관이 정부 차원에서 압류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9%95%EC%98%A4%EC%B2%9C%EC%B6%95%EA%B5%AD%EC%A0%84&amp;diff=50376</id>
		<title>왕오천축국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9%95%EC%98%A4%EC%B2%9C%EC%B6%95%EA%B5%AD%EC%A0%84&amp;diff=50376"/>
		<updated>2024-12-04T02:31: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 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왕오천축국전.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프랑스 )&lt;br /&gt;
|- &lt;br /&gt;
| 시기 || 신라, 8세기 초&lt;br /&gt;
|- &lt;br /&gt;
|형태 || 한 권의 두루마리로 된 필사본 &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프랑스 국립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는 왕오천축국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여행기로 큰 가치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형태&amp;lt;/font&amp;gt;===&lt;br /&gt;
1권의 필사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질이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이 현존한다.&lt;br /&gt;
&lt;br /&gt;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존본은 그 약본이며,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내용&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신라의 승려 혜초가 723년부터 727년까지 다섯 천축국을 답사하고 이곳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여행기다. &lt;br /&gt;
&lt;br /&gt;
인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과 다른 남아시아 지역, 그리고 보통 중동으로 분류되는 이란까지 여행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또한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의 파키스탄, 시리아, 튀르키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경로에 나타난 지명은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지기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사료적 가치&amp;lt;/font&amp;gt;===&lt;br /&gt;
====중국과 인도와의 교역료 파악====&lt;br /&gt;
&lt;br /&gt;
이전에 서역을 방문하던 승려들은 해로만을 사용하거나 육로만을 이용했던 데 반해 혜초는 갈 때는 해로, 돌아올 땐 육로를 이용하여 당시의 여로를 모두 담고 있다.&lt;br /&gt;
&lt;br /&gt;
====희귀한 8세기 자료====&lt;br /&gt;
&lt;br /&gt;
전술한 여행기는 6세기와 7세기의 인도 정세를 말해 주는 자료이지만 이 책이 8세기 자료인 점은 가치가 매우 높다.&lt;br /&gt;
&lt;br /&gt;
특히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인도제국의 제왕들이 코끼리나 병력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었는지, 아랍의 제국이 얼마만큼 인도 쪽으로 세력을 펼쳤는가 하는 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뿐 아니라 튀르크족이나 한족의 지배하에 있던 나라들이 어디이며, 그 생활수준은 어떠하였는가 등도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당대 사회상 서술====&lt;br /&gt;
&lt;br /&gt;
불교의 대승이나 소승이 각각 어느 정도 행해지고 있는지, 또 음식 · 의상 · 습속 · 산물 · 기후 등도 각 지방마다 기록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중부 인도에서 어머니나 누이를 아내로 삼는다거나, 여러 형제가 아내를 공유하는 풍습이 있다는 등의 기록은 이 자료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또한 이국적인 풍취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인도에는 감옥이나 사형제도가 없고, 죄를 지은 이는 벌금으로 다스린다는 기록, 카슈미르지방에는 여자 노예가 없고, 인신매매가 없다는 등의 기록이 흥미롭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 경로&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왕오천축국전은 만들어진 후 정확한 유출 경로를 알 수 없다.&lt;br /&gt;
&lt;br /&gt;
처음 공식적으로 발견된 곳은 중국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08년 프랑스인 중국학자 폴 펠리오가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위안루에게서 구매한 7,000점의 유물 중에 섞여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것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관련 에피소드&amp;lt;/font&amp;gt;===&lt;br /&gt;
====필사본의 책명====&lt;br /&gt;
현재는 한 권의 두루마리로 된 필사본만이 남아 있는데, 책명도 저자명도 떨어져 나가 남아 있지 않으며 여러 글자가 사라졌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여러 불교 서적에 주석을 단 《일체경음의》에 “혜초왕오천축국전”이라는 제목 아래 여러 어휘가 설명되어 있는데,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들 어휘와 순서가 잔본과 많은 부분 일치하여 이것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임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혜초의 왕오천축국전====&lt;br /&gt;
처음에는 당나라 고승 현장 이외의 당나라 승려로 여겨지다가 당시의 일본 서본원사의 승려이자 돈황학자인 오타니 고즈이가 신라승 혜초의 것임을 밝혀내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내에서는 1943년 최남선이 이 원문과 해제를 붙임으로써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 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왕오천축국전이 중국에서 발견된 경위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구매' 형식을 통해 프랑스로 건너갔기 때문에 환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또한 공식적인 기록이 국내에서 반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할 명분이 없다.&lt;br /&gt;
&lt;br /&gt;
비밀리로 소장 중이었던 왕오천축국전은 2010년과 2023년 12월 17일부터 4월 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에 대여, 전시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립중앙박물관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출품을 요청하였고 대여 심사회의의 승인을 통해 국내에 반입하여 전시하였다.&lt;br /&gt;
&lt;br /&gt;
중국에서 발견된 경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불법적인 유출을 명목으로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과의 협력관계를 모색하며 다른 문화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amp;diff=50375</id>
		<title>반가사유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0%98%EA%B0%80%EC%82%AC%EC%9C%A0%EC%83%81&amp;diff=50375"/>
		<updated>2024-12-04T02:30: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반가사유상.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백제&lt;br /&gt;
|- &lt;br /&gt;
|형태 || 금동불상&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도쿄국립박물관&lt;br /&gt;
|}&lt;br /&gt;
&lt;br /&gt;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세계 약 70여점 정도가 남아있어 높은 희귀성을 가진 불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16.cm의 작은 불상이다.&lt;br /&gt;
&lt;br /&gt;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것과 유사하다.&lt;br /&gt;
&lt;br /&gt;
====재질====&lt;br /&gt;
반가사유상 본체의 청동성분은 모두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은 고대 한국 금동불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반가사유상의 가치&amp;lt;/font&amp;gt;===&lt;br /&gt;
공주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미가 매우 사실적이며 빼어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 과정&amp;lt;/font&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충남 공주의 사지 석탑 내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충청남도 공주 부근 산성의 탑 가운데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소장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한국문화재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해 편찬한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도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경성공소원 판사 미야케 조사쿠의 소장품으로 기록되어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1941년 도쿄에서 열린 소장품 전시 목록에는 오구라의 컬렉션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전에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오구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도굴꾼 사이에서는 값을 높이 쳐주기로 유명해 도굴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골동품을 들고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오구라의 행적을 살펴봤을 때 공주 절터의 탑에서 도굴된 금동반가사유상이 여러 루트를 거쳐 오구라의 수집품이 됐음을 추정이 가능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 시도&amp;lt;/font&amp;gt;===&lt;br /&gt;
오구라 컬렉션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 불법 수집품의 목록에 오구라 컬렉션의 소장품을 포함시켰고, 돌려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결국 양국 정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이 소유하는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권장하겠다”고 합의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하지만, 1981년 오구라 컬렉션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고,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 어떠한 의사타진도 하지 않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사유 재산이라서 돌려줄 수 없다는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정부의 국유 재산이 됐다.&lt;br /&gt;
&lt;br /&gt;
일본 국유재산이 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환수운동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lt;br /&gt;
====문화재제자리찾기====&lt;br /&gt;
2014년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라는 시민단체가 도쿄재판부에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오구라의 자필 목록을 근거로 오구라 컬렉션 중 34점이 명백한 도굴, 도난품임을 문헌적으로 입증하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은 결렬됐다.&lt;br /&gt;
&lt;br /&gt;
====지자체의 환수 노력====&lt;br /&gt;
2019년부터 충남도는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을 포함한 지역 유출 오구라 컬렉션의 환수를 위한 조사 등 환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lt;br /&gt;
&amp;lt;br/&amp;gt;충남도의회는 지난 2016년 충남도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지원 조례안을 가결하고 2017년에는 충남국외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을 구성해 국내외 반출문화재를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유출 출처의 불확실성, 개인 소장품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8F%85%EC%A1%B0%EB%8F%84&amp;diff=50374</id>
		<title>독조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8F%85%EC%A1%B0%EB%8F%84&amp;diff=50374"/>
		<updated>2024-12-04T02:30: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독조도.jpg|3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후반&lt;br /&gt;
|- &lt;br /&gt;
|형태 || 종이에 수묵&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도쿄박물관&lt;br /&gt;
|}&lt;br /&gt;
&lt;br /&gt;
독조도는 조선 전기의 유명한 문장가이자 화가로 알려진 강희맹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독조도는 전체 86 x 132 cm의 크기이다.&lt;br /&gt;
&lt;br /&gt;
====재질====&lt;br /&gt;
&lt;br /&gt;
족자비단에 담채를 한 것으로 먹의 농담 변화와 번지는 효과를 이용해 나무를 입체적으로 포현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독조도의 의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독조도는 홀로 낚시하는 그림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거룻배를 띄어 놓고 홀로 낚시하고 있는 고결한 선비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lt;br /&gt;
&lt;br /&gt;
강변의 말라죽은 교목 두 그루를 중심으로 갈대 숲, 강 위의 배와 배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인물 그리고 모래언덕 등 강가의 풍경을 화려하게 담아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가 갈대 밭 옆에 정박한 조각배 위에 낚싯대를 걷어 올린 채 노에 기대어 있는 선비는 쌀쌀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봄의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강 너머를 응시하며 상념에 잠겨있다.&lt;br /&gt;
&lt;br /&gt;
이 작품은 은유자적하는 선비의 은일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능란한 수묵을 구사한 조선 초기 회화의 돋보이는 수작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먹의 농담 변화와 번지는 효과를 이용한 나무의 표현과 갈대 숲과 강변의 모래언덕 그리고 인물 묘사 등 빠른 붓질의 대담한 수법이 나타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리고 전체적으로 진한 수묵의 과량감은 ''''선종화적 표현''''을 연상시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독조도를 그린 인물, 강희맹&amp;lt;/font&amp;gt;===&lt;br /&gt;
====문인 강희맹====&lt;br /&gt;
&lt;br /&gt;
강희맹은 조선 초기의 선비화가로 세종에서 성종때까지 6대에 걸쳐 관직생활을 한 조선초기 문인이자 문장가이며 화가였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 29년(1447)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나랏일에서는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면서도 겸손하여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또한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취향과 섬세한 감각을 가진 문인이면서도 농촌 사회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와 설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관인문학의 틀을 스스로 깨뜨려 버리는 면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lt;br /&gt;
&lt;br /&gt;
특히 소나무와 대나무 및 산수화를 잘 그렸는데 현존하는 그의 그림은 '독조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강희맹의 가족관계 ====&lt;br /&gt;
&lt;br /&gt;
강희맹의 가계도를 바라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강희맹의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의 딸로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의 동생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따라서 세종이 강희맹의 이모부였으며 세조와는 이종사촌이 된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세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또한 그의 형은 강희안으로 조선 초기의 실력있는 화가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이라고 불렸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희맹 형제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기질을 갖고 태어났으며 형제가 모두 그 실력을 자랑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유출루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독조도는 오구라 다케노스케라는 재조일본인이 한반도에서 수집해 일본에 가져가면서 유출되었다.&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 남선합동전기회사 사장이던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조선에서 몇 천여점의 유물들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의 이름으로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1100여점 등 공식 확인된 것만 2200여점이다. 이 중 39점은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이 높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수많은 유물들을 오구라 컬렉션이라 부르며 도쿄국립박물관에 대다수를 기증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 컬렉션의 유물들은 현재 환수가능성이 낮다. 왜냐하면 한·일 협정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문제는 해결되었다는 논리 때문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에 있는 문화재이기 때문에 아예 실태파악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데. 어떤 문화재가 어디에 있는지, 약탈된 것인지, 어떻게 유통됐는지 실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지만 환수 논란으로 일본 기관들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시흥문화원 주도하의 반환운동====&lt;br /&gt;
2009년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시흥문화원에 의해 '독조도 반환 운동'이 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강희맹은 시흥에 연고를 둔 인물이다. 이에 지방 단위의 단체인 시흥문화원에서 독조도 반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9년 기관 자체 예산을 통해 반환 운동을 전개하였다. &lt;br /&gt;
&lt;br /&gt;
2009년 8월 10일부터 12월까지의 약 4개월 간의 서명운동을 펼쳤고 시민들의 호응을 통해 반환 필요성을 알리고 일본 도쿄 박물관에 항의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1천여 명의 서명을 받으며 시민들과 함께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독조도는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lt;br /&gt;
====반환 실패 원인====&lt;br /&gt;
초반에는 시흥문화원 자체 예산으로 반환 운동을 펼쳤지만 지속적인 자금이나 정부 지원이 없기 때문에 시민들이 환수 활동을 이어나가기 힘들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시민들은 문화재청 산하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 재단 공모사업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에 떨어지면 사실상 사업을 유지해 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경기도는 2016년 도내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 활동기관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했지만 실질적인 예산 지원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지자체 입장에서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예산을 삭감해야하고 약탈 문화재 환수 가능성을 높게 책정할 수 없어 예산을 세울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345</id>
		<title>일본(JAPA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345"/>
		<updated>2024-12-04T02:15:0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br /&gt;
&lt;br /&gt;
[[분류:옷차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343</id>
		<title>일본(JAPA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343"/>
		<updated>2024-12-04T02:13: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오구라 다케노스케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0202</id>
		<title>몽유도원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0202"/>
		<updated>2024-12-04T01:17: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2023년 12월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는 일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몽유도원도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lt;br /&gt;
&lt;br /&gt;
해당 계약에서는 한국반환을 위한 사실상 일체 권한을 위임 받는 체결을 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보상을 위한 협상과 일본 정부의 중요문화재 지정 해제 등의 숙제가 남아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물론 실제적인 반환까지 이뤄지기 위해서는 바통을 정부가 이어받아 많은 실무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lt;br /&gt;
&lt;br /&gt;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0201</id>
		<title>몽유도원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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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4T01:05:5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환수시도&amp;lt;/font&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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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몽유도원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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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4T01:05: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에는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비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환수 시도===&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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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몽유도원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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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4T01:03: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외관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는 안견의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題書)와 발문, 그리고 1450년(세종 32)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당대 문사(文士)들과 1명의 고승(高僧)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찬문(讚文)이 곁들여져 있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환수 시도===&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A%BD%EC%9C%A0%EB%8F%84%EC%9B%90%EB%8F%84&amp;diff=50198</id>
		<title>몽유도원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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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4T01:00: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독조도는 비단 바탕에 먹으로 채색한 것으로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그림의 줄거리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진행되며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른쪽의 대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통해 표현하였다.&lt;br /&gt;
&amp;lt;br/&amp;gt;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제작과정&amp;lt;/font&amp;gt;===&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환수 시도===&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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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몽유도원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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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4T00:49: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기본정보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독조도는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환수 시도===&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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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몽유도원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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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4T00:49: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기본정보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background:white; &lt;br /&gt;
|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15세기 최고의 화가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독조도는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환수 시도===&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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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몽유도원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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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기본정보&amp;lt;/font&amp;gt;===&lt;br /&gt;
[[파일:몽유도원도.jpg|600픽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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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lt;br /&gt;
|- &lt;br /&gt;
| 시기 || 조선, 15세기 중반&lt;br /&gt;
|- &lt;br /&gt;
|형태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lt;br /&gt;
|-&lt;br /&gt;
|현소장처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외관&amp;lt;/font&amp;gt;===&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독조도는 전체 38.7 x 106.5cm 크기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복숭아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었고 이를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lt;br /&gt;
&lt;br /&gt;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몽유도원도'라는 제목을 직접 써서 두루마리의 앞부분을 장식했고 기문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손수 적어둔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잠이 들자마자 도달한 왼쪽 골짜기의 오솔길, 험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절벽,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동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산세가 달리 표현되어 현실과 이상의 대조를 이룬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산천의 형상을 비단 폭에 섬세하게 담아냈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화단의 선구자, 안견====&lt;br /&gt;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기른 화가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조선 초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산수화에 특히 뛰어낳고 초상화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lt;br /&gt;
&lt;br /&gt;
그는 세종 때 정4품 호군까지 무리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화원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모든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을 평가하고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안견은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존하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lt;br /&gt;
&lt;br /&gt;
===환수 시도===&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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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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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3T13:07:2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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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콘텐츠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여러분은 우리 문화유산이 아직 해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어떻게 환수해왔는지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봅시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기획의도'''==&lt;br /&gt;
  부당하게 국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amp;quot;문화유산을 환수한다&amp;quot;'''는 것은 현대인이 근대적 정신을 가지고 전근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외로 불법, 부당 반출 되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환수 조치한 사례에 대하여 알아본다. 역사적 가정에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국외 문화유산의 국내 환수는 매우 중요하다. 환수된 문서 및 회화, 공예품은 역사적 왜곡 및 과장을 방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국외로 부당하게 반출되었던 사례를 살펴보고, 국외 문화유산을 환수해온 경로 및 방식을 알아본다. 추가적으로 아직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은 무엇이 있는지 조사한다. 이를 통해 아직까지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을 더 효과적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문화유산 환수사업을 향한 시민의 관심을 촉진시킴으로써 국외 문화유산 환수의 필요성을 알린다.&lt;br /&gt;
&lt;br /&gt;
=='''환수 주체'''==&lt;br /&gt;
===국가기관===&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lt;br /&gt;
&lt;br /&gt;
===민간===&lt;br /&gt;
=='''어디서 왔는가'''==&lt;br /&gt;
===*'''''[[독일(GERMANY)]]'''''===&lt;br /&gt;
====[[양봉요지]]====&lt;br /&gt;
====[[조선시대문인석]]====&lt;br /&gt;
====[[혼례용단령]]====&lt;br /&gt;
&lt;br /&gt;
===*'''''[[미국(USA)]]'''''===&lt;br /&gt;
====[[나한도]]====&lt;br /&gt;
====[[덕온공주 동제인장]]====&lt;br /&gt;
====[[덕종어보]]====&lt;br /&gt;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lt;br /&gt;
====[[앙부일구]]====&lt;br /&gt;
====[[옥천사나한상]]====&lt;br /&gt;
====[[호렵도 팔폭병풍]]====&lt;br /&gt;
&lt;br /&gt;
===*'''''[[영국(UK)]]'''''===&lt;br /&gt;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lt;br /&gt;
===*'''''[[일본(JAPAN)]]'''''===&lt;br /&gt;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lt;br /&gt;
====[[대동여지도]]====&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얼굴무늬수막새]]====&lt;br /&gt;
&lt;br /&gt;
====[[장군석]]====&lt;br /&gt;
====[[장명등]]====&lt;br /&gt;
&lt;br /&gt;
=== *'''''[[프랑스(FRANCE)]]'''''===&lt;br /&gt;
====[[휘경원원소도감의궤]]====&lt;br /&gt;
&lt;br /&gt;
=='''앞으로의 과제'''==&lt;br /&gt;
==='''''[[일본(JAPAN)]]'''''===&lt;br /&gt;
====[[독조도]]====&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반가사유상]]====&lt;br /&gt;
&lt;br /&gt;
==='''''[[프랑스(FRANCE)]]'''''===&lt;br /&gt;
====[[왕오천축국전]]====&lt;br /&gt;
====[[직지심체요절]]====&lt;br /&gt;
&lt;br /&gt;
=='''환수 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ZC4gAfcj9UNWuc3dNDTiM6lUHLM_0Y2-owcK441Wtfw&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마인드맵'''==&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NetworkGraph | title=잃어버린_문화재를_찾아서.lst}}&lt;br /&gt;
&lt;br /&gt;
=='''팀원'''==&lt;br /&gt;
*'''권지은'''&lt;br /&gt;
*'''김선응'''&lt;br /&gt;
*'''임은혜'''&lt;br /&gt;
*'''정영서'''&lt;br /&gt;
*'''최원준'''&lt;br /&gt;
&lt;br /&gt;
=='''분류 정보 기록'''==&lt;br /&gt;
=='''주석'''==&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E%83%EC%96%B4%EB%B2%84%EB%A6%B0_%EB%AC%B8%ED%99%94%EC%9E%AC%EB%A5%BC_%EC%B0%BE%EC%95%84%EC%84%9C&amp;diff=50147</id>
		<title>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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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3T13:06: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콘텐츠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F79F81&amp;quot;&amp;gt;'''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여러분은 우리 문화유산이 아직 해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어떻게 환수해왔는지 알고 계신가요?'''&amp;lt;/br&amp;gt;&lt;br /&gt;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봅시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기획의도'''==&lt;br /&gt;
  부당하게 국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amp;quot;문화유산을 환수한다&amp;quot;'''는 것은 현대인이 근대적 정신을 가지고 전근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외로 불법, 부당 반출 되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환수 조치한 사례에 대하여 알아본다. 역사적 가정에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국외 문화유산의 국내 환수는 매우 중요하다. 환수된 문서 및 회화, 공예품은 역사적 왜곡 및 과장을 방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국외로 부당하게 반출되었던 사례를 살펴보고, 국외 문화유산을 환수해온 경로 및 방식을 알아본다. 추가적으로 아직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은 무엇이 있는지 조사한다. 이를 통해 아직까지 환수 하지 못한 문화유산을 더 효과적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문화유산 환수사업을 향한 시민의 관심을 촉진시킴으로써 국외 문화유산 환수의 필요성을 알린다.&lt;br /&gt;
&lt;br /&gt;
=='''환수 주체'''==&lt;br /&gt;
===국가기관===&lt;br /&gt;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lt;br /&gt;
&lt;br /&gt;
===민간===&lt;br /&gt;
=='''어디서 왔는가'''==&lt;br /&gt;
===*'''''[[독일(GERMANY)]]'''''===&lt;br /&gt;
====[[양봉요지]]====&lt;br /&gt;
====[[조선시대문인석]]====&lt;br /&gt;
====[[혼례용단령]]====&lt;br /&gt;
&lt;br /&gt;
===*'''''[[미국(USA)]]'''''===&lt;br /&gt;
====[[나한도]]====&lt;br /&gt;
====[[덕온공주 동제인장]]====&lt;br /&gt;
====[[덕종어보]]====&lt;br /&gt;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lt;br /&gt;
====[[앙부일구]]====&lt;br /&gt;
====[[옥천사나한상]]====&lt;br /&gt;
====[[호렵도 팔폭병풍]]====&lt;br /&gt;
&lt;br /&gt;
===*'''''[[영국(UK)]]'''''===&lt;br /&gt;
====[[송광사 치성광여래도]]====&lt;br /&gt;
&lt;br /&gt;
===*'''''[[일본(JAPAN)]]'''''===&lt;br /&gt;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lt;br /&gt;
====[[대동여지도]]====&lt;br /&gt;
====[[얼굴무늬수막새]]====&lt;br /&gt;
&lt;br /&gt;
====[[장군석]]====&lt;br /&gt;
====[[장명등]]====&lt;br /&gt;
&lt;br /&gt;
=== *'''''[[프랑스(FRANCE)]]'''''===&lt;br /&gt;
====[[휘경원원소도감의궤]]====&lt;br /&gt;
&lt;br /&gt;
=='''앞으로의 과제'''==&lt;br /&gt;
==='''''[[일본(JAPAN)]]'''''===&lt;br /&gt;
====[[독조도]]====&lt;br /&gt;
====[[몽유도원도]]====&lt;br /&gt;
====[[반가사유상]]====&lt;br /&gt;
&lt;br /&gt;
==='''''[[프랑스(FRANCE)]]'''''===&lt;br /&gt;
====[[왕오천축국전]]====&lt;br /&gt;
====[[직지심체요절]]====&lt;br /&gt;
&lt;br /&gt;
=='''환수 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ZC4gAfcj9UNWuc3dNDTiM6lUHLM_0Y2-owcK441Wtfw&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마인드맵'''==&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NetworkGraph | title=잃어버린_문화재를_찾아서.lst}}&lt;br /&gt;
&lt;br /&gt;
=='''팀원'''==&lt;br /&gt;
*'''권지은'''&lt;br /&gt;
*'''김선응'''&lt;br /&gt;
*'''임은혜'''&lt;br /&gt;
*'''정영서'''&lt;br /&gt;
*'''최원준'''&lt;br /&gt;
&lt;br /&gt;
=='''분류 정보 기록'''==&lt;br /&gt;
=='''주석'''==&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46</id>
		<title>일본(JAPA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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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3T13:05: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44</id>
		<title>일본(JAPA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44"/>
		<updated>2024-12-03T13:04:4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43</id>
		<title>일본(JAPA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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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3T13:04: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42</id>
		<title>일본(JAPA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42"/>
		<updated>2024-12-03T13:03: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br /&gt;
박진이. 2016.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의 대응｣. 국내석사학위논문 강원대학교, 강원특별자치도.&lt;br /&gt;
이은화. 2019. ｢한국문화재의 일본 반출과 환수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광주.&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20</id>
		<title>일본(JAPA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20"/>
		<updated>2024-12-03T12:32: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오구라 다케노스케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19</id>
		<title>일본(JAPA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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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03T12:31: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오구라 다케노스케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18</id>
		<title>일본(JAPA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18"/>
		<updated>2024-12-03T12:31:1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오구라 다케노스케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다.&lt;br /&gt;
&lt;br /&gt;
그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이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그가 죽고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대부분 정당한 매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굴에 의한 것이다.&lt;br /&gt;
&amp;lt;br/&amp;gt;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대구와 서울의 집앞에는 골동상인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고&lt;br /&gt;
&amp;lt;br/&amp;gt;조선인 도굴꾼들도 고용하여 고분의 유물들을 쓸어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가 수탈해간 유물의 공식적인 숫자는 광복 후 가져가지 못한 것, 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포함하면&lt;br /&gt;
&amp;lt;br/&amp;gt;2천 2백여 점으로 파악하지만 숨기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4천 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mp;lt;ref&amp;gt;대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도 수도 공사를 하다가 매장해놓은 유물들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놓은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amp;lt;/ref&amp;gt;&lt;br /&gt;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시 한국 측에서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 우리나라에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amp;lt;ref&amp;gt;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반환을 거부했지만 국유재산이 된 이후에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01</id>
		<title>일본(JAPA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D%BC%EB%B3%B8(JAPAN)&amp;diff=50101"/>
		<updated>2024-12-03T12:09: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옷차림: /*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 */&lt;/p&gt;
&lt;hr /&gt;
&lt;div&gt;===일본의 문화재 약탈===&lt;br /&gt;
현재 일본에는 7만 여점이 넘는 한국 문화유산이 다양한 배경과 원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립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현존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는 문화 교류 외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일본의 지도계층과 상인들까지 행한 약탈 행위가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렇게 유출된 문화유산 중에는 일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많으며 국립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위키 페이지에서는 어떻게 일본은 국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임진왜란&amp;lt;/font&amp;gt;===&lt;br /&gt;
일본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의 대장경을 부러워하였고 이러한 기술전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lt;br /&gt;
&lt;br /&gt;
그 횟수가 무려 107회 다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문물교류 형식으로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를 보급받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발달시켜왔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러나 1510년 삼포왜란 이후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기 어려워졌다.&lt;br /&gt;
&lt;br /&gt;
====약탈을 위한 전쟁====&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해 '약탈을 위한 전쟁'의 사전계획을 세웠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란 당시 장수들에게 도서, 공예, 포로, 금속, 보물, 축부 6개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였고 조선의 보물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러한 문화재 약탈 계획에서는 특히 출판 문화유산과 불교 관련 유물에 중점을 두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그 만큼 일본에서는 서적이 귀했으며 조선의 불교 및 서적 양식을 가치 있게 평가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귀한 서적류 약탈을 위해 일본의 승려들을 동원했으며 주요 장수 옆에 위치하여 수 천권의 서적들을 약탈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끝난 이후 이러한 약탈 서적들을 몰수하였고 본인이 직접 보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다.&lt;br /&gt;
&lt;br /&gt;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많은 서적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철학과 정책을 만들었고 265년 간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새로운 집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막부와 각 번의 기초사상을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cc3333&amp;quot;&amp;gt;일제강점기&amp;lt;/font&amp;gt;===&lt;br /&gt;
일제강점기 전반에 거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문화유산 반출에는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행해졌을 뿐만아니라 일본인 개인의 도굴이나 밀거래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t;br /&gt;
&amp;lt;br/&amp;gt;이들은 당시 문화재의 이동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반출해갔다.&lt;br /&gt;
&amp;lt;br/&amp;gt;일본인들이 반출해간 문화유산에는 고적조사 중 발견된 유물, 석조유물, 건조물, 도자기, 서적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현재까지 파악된 반출 수량은 약 7만 여점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lt;br /&gt;
이토 히로부미 다음으로 부임한 조선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과 총독의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하고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그가 가져간 문화유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소중한 공예품을 비롯해 그림, 글씨, 서적 등 1,500여 점에 달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반출된 문화유산은 데라우치의 고향인 야마구치에 세운 도서관에 '오호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돼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도서관은 데라우치 가문에서 운영해다가 데라우치가 죽자 인근에 세워진 아마구치 대학에 기증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 가운데 그나마 135점의 문화유산만이 1996년 데라우치 문고에서 경남대학교로 기증되었다.&lt;br /&gt;
&lt;br /&gt;
====야마나카상회====&lt;br /&gt;
야마나카상회는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이다.&lt;br /&gt;
&lt;br /&gt;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점포를 차려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인 또는 도굴꾼 등에 의해 뜯겨지고 빼돌려져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lt;br /&gt;
&amp;lt;br/&amp;gt;이들 문화재 중 상당수가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고 야마니카 상회는 약탈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보정한 뒤 일본인에게 되팔거나 미국 경매시장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전세계로 유출된 문화유산=====&lt;br /&gt;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야마나카상회가 미국내에 보관하던 모든 문화재를 몰수하였고 패전국인 일본의 재산으로 전락하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패전국의 자산으로 인식된 이 문화유산들은 결국, 모두 뉴욕 경매시장에서 처분됐다. 이때 약탈된 문화재 상당수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유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오구라 다케노스케====&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김정숙, 2018,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4(5), 5-27.&lt;/div&gt;</summary>
		<author><name>옷차림</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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