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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_edu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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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14:02:4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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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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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3:41: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박정희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맞이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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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은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C%EC%A1%B1%EC%9E%90%EA%B2%B0%EC%A3%BC%EC%9D%98_%EC%84%A0%EC%96%B8&amp;diff=42108</id>
		<title>민족자결주의 선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C%EC%A1%B1%EC%9E%90%EA%B2%B0%EC%A3%BC%EC%9D%98_%EC%84%A0%EC%96%B8&amp;diff=42108"/>
		<updated>2024-06-21T13:40: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우드로 윌슨.jpeg|500px|우드로 윌슨]] &amp;lt;/br&amp;gt;&lt;br /&gt;
위 사진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의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자결주의의 역사===&lt;br /&gt;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도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의 명분, 독일의 1848년 혁명 등에서도 드러났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8년 1월 8일 1차 대전의 승전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된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민족 자결주의를 담고 있는 조항이다. &lt;br /&gt;
&lt;br /&gt;
===자결주의와 연관된 14개조 평화원칙 주요 조항===&lt;br /&gt;
5조: 식민지의 주권을 결정하는 데 그 주민의 이익과 수립하게 될 정부의 공평한 주장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모든 식민지 요구를 공평하게 조정한다.&lt;br /&gt;
&lt;br /&gt;
10조: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자치적인 발전을 하도록 자유스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lt;br /&gt;
&lt;br /&gt;
11조: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점령 지역은 회복된다. 세르비아는 해양을 통한 자유로운 진로가 보장된다. 발칸 국가들의 관계는 충성심과 민족성의 역사적인 분계선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들의 정치, 경제 독립과 영토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12조: 현재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의 지역은 확실한 주권이 보장되나 그 밖의 민족들은 생명의 확실한 보장, 자치적인 발전의 절대 안정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인 보장하에서 모든 국가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자유로이 통과하도록 영구히 개방되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3조: 폴란드인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독립 폴란드를 수립한다. 폴란드는 해양을 향한 자유롭고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치,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조약으로 보장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의의 및 한계==&lt;br /&gt;
===의의===&lt;br /&gt;
윌슨의 민족 자결권 개념은 1차 대전 협상국 측의 최종적 전쟁 목표 중 하나였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각국에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거나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여러 국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고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독립을 야기했다.&lt;br /&gt;
&lt;br /&gt;
===한계===&lt;br /&gt;
그러나 한계 또한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중립국과 전승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이 승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 운동, 5.4 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일어났으나,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 자결권을 이용하여 독일계 민족이 많은 지방을 수복하기 위한 2차 대전을 일으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1910년대의 강압적 통치와 총독부의 경제적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생 관리 실패로 인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조선 민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계열에도 활력이 돌았다. 특히 독립운동 지도자 여운형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앞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영어 능력이 뛰어난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어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 안팎에 있는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여러 방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을 상당히 고무시켰다. 결국, 광무 황제가 사망한 후, 황제 독살설로 민심은 더욱더 격앙되었고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MPyacAQpMo&amp;quot; title=&amp;quot;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환영 받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과연 그 실행은?&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민족자결주의 배경과 관련하여는 노경덕, 제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국제정치와 민족자결주의, 歷史學報 第245輯, 역사학보, 2020, pp.33-62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조선 정치에의 영향과 관련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amp;quot;3.1 운동&amp;quot;과 이병수, 3.1 운동과 보편적 가치, 통일인문학 제80집, 통일인문학, 2019, pp.151-180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8%EA%B5%B0%EC%A0%95&amp;diff=42107</id>
		<title>미군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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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3:17: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배경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파일:미군정 사진.jpeg|500px|미군정 사진]]&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중앙청에 성조기가 걸린 모습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존속한 남한 통치를 위한 미국의 군정청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얄타 회담, 카이로 회담과 광복===&lt;br /&gt;
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이 눈앞에 다가오자,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은 얄타 회담을 실시하여 독일의 항복 이후 2, 3달여 안에 소련의 일본 전선 개입을 약조했다. 또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화민국은 일제 해체 후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승인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광복하였다.&lt;br /&gt;
&lt;br /&gt;
===미국과 건국준비위원회===&lt;br /&gt;
여운형은 광복 이후 기존의 건국동맹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 확대했고 지방 세력의 호응에 힘 입어 그 세력을 넓혀 갔다. 9월 3일에는 내각 개편이 이루어지고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내각 개편 과정에서 좌익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중도 우파 세력이 탈퇴하였다. 우파, 극우 세력들은 애초부터 건준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결국 좌익 세력이 주를 이루는 좌경화된 단체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미국은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와해되었다. 미국은 가장 호응을 받은 건준뿐 아니라, 임시정부와 같은 여타 단체들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와 같은 공식적 정부 수립 절차를 갖추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단체들로 보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미군정의 경과===&lt;br /&gt;
점령 초기 기존 여러 독립 단체들, 기존에 존재했던 정부 기구 역할을 했던 단체들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 운영은 한국에 점거하는 미국인들에 의해 맡겨졌고 이들은 개혁보다는 현상 유지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띠었다. 이는 개혁을 바라는 백성들과 기존 독립운동 단체 지도자들의 기대에 반하는 것이었다. 또한, 반공 작업도 계속하여 남한에 있던 공산주의 단체들에 큰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미군정의 통치가 지속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미군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직후 남한에 미친 영향==&lt;br /&gt;
미군정은 늘 북한과 소련을 견제해야 했고 남한에서의 공산주의의 확산을 방지해야 했기 때문에 혼란을 방지하는 안정적, 체계적 통치를 우선시했다. 따라서 미국인들이 국가 운영에 슬슬 손을 뗄 즈음, 일제시대에 친일파로서 국가 운영을 했던 친일 부역자들이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자주성을 표방하는 여러 독립단체들보다 친일 관료들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효율적이고 통제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민족주의 성향으로 변모했고 공산주의를 비판, 경계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안성맞춤이었다. 따라서, 군, 정부,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친일 행각을 하던 자들은 친미로 변모하여 자리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 실패로까지 이어진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Ucgb3LeAsI&amp;quot; title=&amp;quot;&amp;amp;quot;친일해도 괜찮던데?&amp;amp;quot; 처벌보다 빨랐던 친일파의 태세전환! | 미군정과 반민특위&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德&amp;lt;&amp;lt;미군정의 경과와 한국에 미친 영향에 관하여는 송재경. (2014). 미군정 여론조사로 본 한국의 정치·사회동향(1945~1947)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3439285와 이계형. (2022). 미군정기 서울지역 좌·우익 정당·사회단체의 활동 공간 연구. 서울학연구,(87), 73-107, 10.17647/jss.2022.05.87.73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미군정의 배경과 해방 직후의 상황에 관하여는 윤덕영. (2010). 8·15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적 한계와 좌·우 분립의 배경. 사학연구,(100), 826-86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6</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6"/>
		<updated>2024-06-21T13:14: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도출한 결론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박정희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맞이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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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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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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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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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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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은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5</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5"/>
		<updated>2024-06-21T13:14: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도출한 결론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박정희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맞이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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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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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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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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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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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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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은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4</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4"/>
		<updated>2024-06-21T13:14: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도출한 결론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박정희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맞이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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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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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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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은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3</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3"/>
		<updated>2024-06-21T13:14: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아쉬운 점과 개선 점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박정희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맞이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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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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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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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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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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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은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2</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2"/>
		<updated>2024-06-21T13:13: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박정희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맞이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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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1</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1"/>
		<updated>2024-06-21T13:12: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박정희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맞이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0</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100"/>
		<updated>2024-06-21T13:11: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박정희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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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9</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9"/>
		<updated>2024-06-21T13:10: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미국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8</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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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3:06: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미국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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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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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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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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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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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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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7</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7"/>
		<updated>2024-06-21T13:06: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미국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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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6</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6"/>
		<updated>2024-06-21T13:05: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기대하는 바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기대하는 바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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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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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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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5</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5"/>
		<updated>2024-06-21T13:05: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기획 목적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4</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94"/>
		<updated>2024-06-21T13:05: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기획배경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1%EB%AF%B8%EC%A0%95%EC%83%81%ED%9A%8C%EB%8B%B4_%EA%B2%B0%EB%A0%AC&amp;diff=42093</id>
		<title>북미정상회담 결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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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3:04: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북미회담결렬.jpeg|500px|북미회담결렬]] &amp;lt;/br&amp;gt;&lt;br /&gt;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 김정은 국무위원장회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베트남 하노이에서 2019년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 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다. 1차 회담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지만, 2차 회담은 아무런 합의에 다다르지 못한 채로 결렬되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회담의 배경===&lt;br /&gt;
1차 북미회담과,여러 차례 남북 정상 회담의 여파로 남북은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고 북미 관계도 큰 진전을 보였다. 종전 선언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삼국 모두에게 부풀어 있었으며, 특히, 북한은 제재의 완화 혹은 완전한 철폐,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 선언 등을 기대하고 있었다. &lt;br /&gt;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가능한 한 빨리 개최하려고 했는데, 중간선거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의 관심거리이자 오랜 걱정인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객관적인 지지율을 알 수 있는 중간 선거의 성패가 달려 있을 수 있었다. 이는 장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관련되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 회담하여 진전된 비핵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문에 담는 것을 목표로 2차 북미회담을 계획했다.&lt;br /&gt;
북한 역시, 계속된 대북 제재로 경제가 악화된 상태에서 남북, 북미 화해 무드를 이용하여 제재를 완화 내지 해제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역시 2차 북미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거나, 더 나아가 종전 선언 및 추가적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 관계의 완전한 해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lt;br /&gt;
===결렬 이유===&lt;br /&gt;
그러나 회담은 완전히 결렬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요구가 미국 측이 들어주기에는 과도했던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핵 시설 전반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었으나, 미국은 이미 북한의 핵시설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이 내세운 핵 시설 철거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더 많은 핵시설의 완전한 철거를 원했다. 또한, 북한은 자신들이 내세운 것에 대한 요구로 제재의 전체 해제를 들었는데, 북한의 핵시설과 잠재적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는 미국 측에 과도한 요구였고 이를 받아들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다. 그에 따라 재협상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두 국가는 어느 합의점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당시 청와대는 정상회담이 하나의 합의점에도 이르지 못하고 완전히 결렬될 것이라는 결과를 전혀 예상치 못하고 여러 기대 점을 내세운 상태였는데 그만큼 회담 결과에 대한 반발도 거셌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회담 결렬 이후 정부가 설레발을 쳐 국민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으면서 아무 결과도 내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lt;br /&gt;
회담 결렬은 문재인 정부에 큰 악재가 되어 여러 악재로 지지율 하락 폭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반등을 실패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회담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났지만, 회담 직전까지 회담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예상만을 제시고 있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관계 조율자로서 입지가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야당의 비판이 심해졌고 지지율 반등에도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남북평화무드로 대북관계에서는 호평일색이었고 그를 기반으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계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의 잠재적 원인 중 하나로서, 만약 회담이 성공하여 계속 화해무드가 이어졌다면 정권교체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전망 또한 존재한다. 어쨌든 회담 결렬 이후로 북한과의 관계에 큰 진전이 없고 서서히 악화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어 남북관계는 최악을 달리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4X0_jzRuG9g&amp;quot; title=&amp;quot;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비핵화 조치·제재’ 이견 / KBS뉴스(News)&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개요 및 배경과 관련하여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0666063?sid=100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결렬 이유와 관련하여는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884021.html 참조&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2%A0%ED%8A%B8%EB%82%A8_%EC%A0%84%EC%9F%81&amp;diff=42092</id>
		<title>베트남 전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2%A0%ED%8A%B8%EB%82%A8_%EC%A0%84%EC%9F%81&amp;diff=42092"/>
		<updated>2024-06-21T12:59: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베트남전 파병 한국인들.jpeg|500px|베트남전 파병 한국인들]] &amp;lt;/br&amp;gt;&lt;br /&gt;
베트남전에 파병되는 한국 군인들의 모습이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은 1960년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지속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과 미국 사이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다.&amp;lt;/br&amp;gt; &lt;br /&gt;
남베트남 내의 반정부 세력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사이의 내전(內戰)으로 시작했으나, 1964년 8월 7일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한 뒤에 전쟁은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lt;br /&gt;
&lt;br /&gt;
==한국군 파병 배경==&lt;br /&gt;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 인정 욕구===&lt;br /&gt;
박정희는 5.16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었고 1961년 쿠데타 당시의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필수적이었고 주한미군의 규모 유지 요청 및 한미동맹 강화 의지를 보이고자 한국은 계속해서 베트남에 파병할 것을 요청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의 이해관계===&lt;br /&gt;
미국은 초반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크게 인정하지 않고 있었고 따라서 한국의 참전 제안에 미온적이었으나, 1964년 통킹만 사건 이후 자유진영 국가들에게 적극적으로 파병 요청을 하게 되며, 한국의 파병 요청에 대한 태도도 바뀐다. 또한, 자국 내 반전시위가 격화되어 병력 차출이 어려워지자, 파병 필요성이 커졌고 한국군은 같은 아시아인이면서도 유지 비용이 저렴했기 때문에 한국군의 파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파병 규모==&lt;br /&gt;
누계 합산 30만 이상 병력을 약 8년 6개월 동안 베트남에 파병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인해 베트남 특수가 왔고 신흥 대기업이 성장하는 등 한국의 경제 성장은 가속화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군인이나 노동자에 대한 보상이 불충분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박정희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거나, 노동자들이 빌딩에 불을 지르는 등의 혼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lt;br /&gt;
또한, 박정희 정부는 전투 파병 인원과 그로 인한 공백을 메울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21~30살의 청년들을 징병했다. 이 과정에서 징병 기피자들, 24살 이상 대학생들, 장기 휴학생들을 대상으로도 집요하게 징병하였고 예비역을 재입대 시키기도 했다. 이를 통해 박정희 정권에 불만을 품고 저항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대 중 하나인 20대 남성 청년 세대에 대한 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었다. 또한, 원활한 징병 등 여러 이유를 근거로 주민등록법을 시행하여, 전 세대를 대상으로 통제를 강화했다. 이러한 통제 시스템은 차후 박정희 정권의 유신 개헌에 대한 반대를 용이하게 통제하도록 했고 독재 체제 강화 및 유지의 밑거름이 되었다.&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hHlVSKdBxrA&amp;quot; title=&amp;quot;웃으며 작별 인사, 가족들도 알지 못했던 베트남전 파병의 의미 | 세계 다크투어 16회 | JTBC 220928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베트남전의 영향 및 배경과 관련하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베트남전쟁 파병&amp;quot;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베트남전의 파병 배경과 관련하여는 우리역사넷, &amp;quot;월남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amp;quot;, 노도희. (2015). 박정희 대통령의 베트남 파병에 내포된 국가정체성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3819087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8%EA%B5%B0%EC%A0%95&amp;diff=42091</id>
		<title>미군정</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8%EA%B5%B0%EC%A0%95&amp;diff=42091"/>
		<updated>2024-06-21T12:57: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파일:미군정 사진.jpeg|500px|미군정 사진]]&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중앙청에 성조기가 걸린 모습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존속한 남한 통치를 위한 미국의 군정청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얄타 회담, 카이로 회담과 광복===&lt;br /&gt;
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이 눈앞에 다가오자,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은 얄타 회담을 실시하여 독일의 항복 이후 2, 3달여 안에 소련의 일본 전선 개입을 약조했다. 또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화민국은 일제 해체 후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승인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광복하였다.&lt;br /&gt;
&lt;br /&gt;
===미국과 건국준비위원회===&lt;br /&gt;
여운형은 광복 이후 기존의 건국동맹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 확대했고 지방 세력의 호응에 힘 입어 그 세력을 넓혀 갔다. 9월 3일에는 내각 개편이 이루어지고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내각 개편 과정에서 좌익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중도 우파 세력이 탈퇴하였다. 우파, 극우 세력들은 애초부터 건준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결국 좌익 세력이 주를 이루는 좌경화된 단체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미국은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와해되었다. 미국은 가장 호응을 받은 건준뿐 아니라, 임시정부와 같은 여타 단체들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와 같은 공식적 정부 수립 절차를 갖추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단체들로 보았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미군정의 경과===&lt;br /&gt;
점령 초기 기존 여러 독립 단체들, 기존에 존재했던 정부 기구 역할을 했던 단체들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 운영은 한국에 점거하는 미국인들에 의해 맡겨졌고 이들은 개혁보다는 현상 유지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띠었다. 이는 개혁을 바라는 백성들과 기존 독립운동 단체 지도자들의 기대에 반하는 것이었다. 또한, 반공 작업도 계속하여 남한에 있던 공산주의 단체들에 큰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미군정의 통치가 지속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미군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직후 남한에 미친 영향==&lt;br /&gt;
미군정은 늘 북한과 소련을 견제해야 했고 남한에서의 공산주의의 확산을 방지해야 했기 때문에 혼란을 방지하는 안정적, 체계적 통치를 우선시했다. 따라서 미국인들이 국가 운영에 슬슬 손을 뗄 즈음, 일제시대에 친일파로서 국가 운영을 했던 친일 부역자들이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자주성을 표방하는 여러 독립단체들보다 친일 관료들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효율적이고 통제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민족주의 성향으로 변모했고 공산주의를 비판, 경계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안성맞춤이었다. 따라서, 군, 정부,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친일 행각을 하던 자들은 친미로 변모하여 자리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 실패로까지 이어진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Ucgb3LeAsI&amp;quot; title=&amp;quot;&amp;amp;quot;친일해도 괜찮던데?&amp;amp;quot; 처벌보다 빨랐던 친일파의 태세전환! | 미군정과 반민특위&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德&amp;lt;&amp;lt;미군정의 경과와 한국에 미친 영향에 관하여는 송재경. (2014). 미군정 여론조사로 본 한국의 정치·사회동향(1945~1947)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3439285와 이계형. (2022). 미군정기 서울지역 좌·우익 정당·사회단체의 활동 공간 연구. 서울학연구,(87), 73-107, 10.17647/jss.2022.05.87.73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미군정의 배경과 해방 직후의 상황에 관하여는 윤덕영. (2010). 8·15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적 한계와 좌·우 분립의 배경. 사학연구,(100), 826-86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C%EC%A1%B1%EC%9E%90%EA%B2%B0%EC%A3%BC%EC%9D%98_%EC%84%A0%EC%96%B8&amp;diff=42090</id>
		<title>민족자결주의 선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C%EC%A1%B1%EC%9E%90%EA%B2%B0%EC%A3%BC%EC%9D%98_%EC%84%A0%EC%96%B8&amp;diff=42090"/>
		<updated>2024-06-21T12:53: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의의 및 한계 */&lt;/p&gt;
&lt;hr /&gt;
&lt;div&gt;[[파일:우드로 윌슨.jpeg|500px|우드로 윌슨]] &amp;lt;/br&amp;gt;&lt;br /&gt;
위 사진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의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자결주의의 역사===&lt;br /&gt;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도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의 명분, 독일의 1848년 혁명 등에서도 드러났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8년 1월 8일 1차 대전의 승전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된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민족 자결주의를 담고 있는 조항이다. &lt;br /&gt;
&lt;br /&gt;
===자결주의와 연관된 14개조 평화원칙 주요 조항===&lt;br /&gt;
5조: 식민지의 주권을 결정하는 데 그 주민의 이익과 수립하게 될 정부의 공평한 주장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모든 식민지 요구를 공평하게 조정한다.&lt;br /&gt;
&lt;br /&gt;
10조: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자치적인 발전을 하도록 자유스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lt;br /&gt;
&lt;br /&gt;
11조: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점령 지역은 회복된다. 세르비아는 해양을 통한 자유로운 진로가 보장된다. 발칸 국가들의 관계는 충성심과 민족성의 역사적인 분계선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들의 정치, 경제 독립과 영토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12조: 현재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의 지역은 확실한 주권이 보장되나 그 밖의 민족들은 생명의 확실한 보장, 자치적인 발전의 절대 안정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인 보장하에서 모든 국가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자유로이 통과하도록 영구히 개방되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3조: 폴란드인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독립 폴란드를 수립한다. 폴란드는 해양을 향한 자유롭고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치,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조약으로 보장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의의 및 한계==&lt;br /&gt;
===의의===&lt;br /&gt;
윌슨의 민족 자결권 개념은 1차 대전 협상국 측의 최종적 전쟁 목표 중 하나였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각국에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거나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여러 국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고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독립을 야기했다.&lt;br /&gt;
&lt;br /&gt;
===한계===&lt;br /&gt;
그러나 한계 또한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중립국과 전승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이 승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 운동, 5.4 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일어났으나,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 자결권을 이용하여 독일계 민족이 많은 지방을 수복하기 위한 2차 대전을 일으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1910년대의 강압적 통치와 총독부의 경제적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생 관리 실패로 인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조선 민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계열에도 활력이 돌았다. 특히 독립운동 지도자 여운형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앞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영어 능력이 뛰어난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어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 안팎에 있는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여러 방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을 상당히 고무시켰다. 결국, 광무 황제가 사망한 후, 황제 독살설로 민심은 더욱더 격앙되었고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MPyacAQpMo&amp;quot; title=&amp;quot;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환영 받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과연 그 실행은?&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민족자결주의 배경과 관련하여는 노경덕, 제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국제정치와 민족자결주의, 歷史學報 第245輯, 역사학보, 2020, pp.33-62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조선 정치에의 영향과 관련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amp;quot;3.1 운동&amp;quot;과 이병수, 3.1 운동과 보편적 가치, 통일인문학 제80집, 통일인문학, 2019, pp.151-180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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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족자결주의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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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53: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우드로 윌슨.jpeg|500px|우드로 윌슨]] &amp;lt;/br&amp;gt;&lt;br /&gt;
위 사진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의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자결주의의 역사===&lt;br /&gt;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도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의 명분, 독일의 1848년 혁명 등에서도 드러났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8년 1월 8일 1차 대전의 승전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된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민족 자결주의를 담고 있는 조항이다. &lt;br /&gt;
&lt;br /&gt;
===자결주의와 연관된 14개조 평화원칙 주요 조항===&lt;br /&gt;
5조: 식민지의 주권을 결정하는 데 그 주민의 이익과 수립하게 될 정부의 공평한 주장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모든 식민지 요구를 공평하게 조정한다.&lt;br /&gt;
&lt;br /&gt;
10조: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자치적인 발전을 하도록 자유스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lt;br /&gt;
&lt;br /&gt;
11조: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점령 지역은 회복된다. 세르비아는 해양을 통한 자유로운 진로가 보장된다. 발칸 국가들의 관계는 충성심과 민족성의 역사적인 분계선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들의 정치, 경제 독립과 영토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12조: 현재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의 지역은 확실한 주권이 보장되나 그 밖의 민족들은 생명의 확실한 보장, 자치적인 발전의 절대 안정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인 보장하에서 모든 국가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자유로이 통과하도록 영구히 개방되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3조: 폴란드인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독립 폴란드를 수립한다. 폴란드는 해양을 향한 자유롭고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치,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조약으로 보장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의의 및 한계'''==&lt;br /&gt;
===의의===&lt;br /&gt;
윌슨의 민족 자결권 개념은 1차 대전 협상국 측의 최종적 전쟁 목표 중 하나였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각국에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거나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여러 국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고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독립을 야기했다.&lt;br /&gt;
&lt;br /&gt;
===한계===&lt;br /&gt;
그러나 한계 또한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중립국과 전승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이 승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 운동, 5.4 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일어났으나,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 자결권을 이용하여 독일계 민족이 많은 지방을 수복하기 위한 2차 대전을 일으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1910년대의 강압적 통치와 총독부의 경제적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생 관리 실패로 인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조선 민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계열에도 활력이 돌았다. 특히 독립운동 지도자 여운형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앞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영어 능력이 뛰어난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어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 안팎에 있는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여러 방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을 상당히 고무시켰다. 결국, 광무 황제가 사망한 후, 황제 독살설로 민심은 더욱더 격앙되었고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MPyacAQpMo&amp;quot; title=&amp;quot;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환영 받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과연 그 실행은?&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민족자결주의 배경과 관련하여는 노경덕, 제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국제정치와 민족자결주의, 歷史學報 第245輯, 역사학보, 2020, pp.33-62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조선 정치에의 영향과 관련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amp;quot;3.1 운동&amp;quot;과 이병수, 3.1 운동과 보편적 가치, 통일인문학 제80집, 통일인문학, 2019, pp.151-180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amp;diff=42088</id>
		<title>가쓰라-태프트 밀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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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52: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 */&lt;/p&gt;
&lt;hr /&gt;
&lt;div&gt;[[파일:가쓰라와 태프트.jpeg|500px|가쓰라와 태프트]] &amp;lt;/br&amp;gt;&lt;br /&gt;
왼쪽이 가쓰라, 오른쪽이 태프트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905년 7월 29일, 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 장관이자,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비밀리에 맺은 협정이다. &amp;lt;/br&amp;gt; &lt;br /&gt;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일본의 상황과 논리===&lt;br /&gt;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가 임박한 상태였다. 두 전쟁에서의 승리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으나, 큰 전쟁들을 치르며 국력이 피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존 열강의 동의 없는 급격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열강들의 견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에 대한 미, 영 양국의 협조를 기대하였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한국은 외교권을 가지고 또 다른 나라를 끌어드려 갈등을 일으키고 또 다른 동아시아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amp;quot;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lt;br /&gt;
&lt;br /&gt;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관계===&lt;br /&gt;
미국도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의했는데, 한 국가가 본인을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접촉하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에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영토인 필리핀을 침략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동아시아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육상에서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해전에서는 러시아함대를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임박하였다.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주선자로서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로 하여금 일본을 방문토록 하였다.&lt;br /&gt;
도쿄에 방문한 태프트는 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을 방문하였고, 이때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외교 판도에 변화가 야기될 것이 예상되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미국의 '거중조정'을 부탁하고자 이승만에게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밀서 형식이 아닌 공식 외교 서한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주미 공사관 김윤정에게 문서 작성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김윤정은 이미 일본에 매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amp;lt;/br&amp;gt;&lt;br /&gt;
또한, 한국에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를 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행은 명성황후 능에서 무례를 보임으로써 대한제국과의 우호 관계의 끝을 보여주었다.&amp;lt;/br&amp;gt;&lt;br /&gt;
이후 11월 17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은 계속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한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문서와 특사를 파견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그렇게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피탈로의 길이 가속화된다.&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RK3WwP-QgaM&amp;quot; title=&amp;quot;대한제국 식민 지배를 위한 일본의 밑그림, 포츠머스 조약#벌거벗은세계사 |  EP.11 | tvN 210320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전체적인 개요와 경과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쓰라 태프트 협약'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德川시대 말기 일본의 국내정세에 관하여는 백철현, 식민주의로 점철된 미일한 ‘동맹’, 현장과 광장, 현장과 광장 제 8호, 2023, pp.157-17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amp;diff=42087</id>
		<title>가쓰라-태프트 밀약</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amp;diff=42087"/>
		<updated>2024-06-21T12:52: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가쓰라와 태프트.jpeg|500px|가쓰라와 태프트]] &amp;lt;/br&amp;gt;&lt;br /&gt;
왼쪽이 가쓰라, 오른쪽이 태프트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905년 7월 29일, 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 장관이자,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비밀리에 맺은 협정이다. &amp;lt;/br&amp;gt; &lt;br /&gt;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일본의 상황과 논리===&lt;br /&gt;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가 임박한 상태였다. 두 전쟁에서의 승리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으나, 큰 전쟁들을 치르며 국력이 피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존 열강의 동의 없는 급격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열강들의 견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에 대한 미, 영 양국의 협조를 기대하였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한국은 외교권을 가지고 또 다른 나라를 끌어드려 갈등을 일으키고 또 다른 동아시아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amp;quot;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lt;br /&gt;
&lt;br /&gt;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관계===&lt;br /&gt;
미국도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의했는데, 한 국가가 본인을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접촉하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에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영토인 필리핀을 침략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동아시아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육상에서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해전에서는 러시아함대를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임박하였다.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주선자로서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로 하여금 일본을 방문토록 하였다.&lt;br /&gt;
도쿄에 방문한 태프트는 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을 방문하였고, 이때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외교 판도에 변화가 야기될 것이 예상되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미국의 '거중조정'을 부탁하고자 이승만에게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밀서 형식이 아닌 공식 외교 서한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주미 공사관 김윤정에게 문서 작성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김윤정은 이미 일본에 매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amp;lt;/br&amp;gt;&lt;br /&gt;
또한, 한국에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를 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행은 명성황후 능에서 무례를 보임으로써 대한제국과의 우호 관계의 끝을 보여주었다.&amp;lt;/br&amp;gt;&lt;br /&gt;
이후 11월 17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은 계속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한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문서와 특사를 파견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그렇게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피탈로의 길이 가속화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RK3WwP-QgaM&amp;quot; title=&amp;quot;대한제국 식민 지배를 위한 일본의 밑그림, 포츠머스 조약#벌거벗은세계사 |  EP.11 | tvN 210320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전체적인 개요와 경과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쓰라 태프트 협약'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德川시대 말기 일본의 국내정세에 관하여는 백철현, 식민주의로 점철된 미일한 ‘동맹’, 현장과 광장, 현장과 광장 제 8호, 2023, pp.157-17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amp;diff=42086</id>
		<title>가쓰라-태프트 밀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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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51: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파일:가쓰라와 태프트.jpeg|500px|가쓰라와 태프트]] &amp;lt;/br&amp;gt;&lt;br /&gt;
왼쪽이 가쓰라, 오른쪽이 태프트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905년 7월 29일, 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 장관이자,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비밀리에 맺은 협정이다. &amp;lt;/br&amp;gt; &lt;br /&gt;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일본의 상황과 논리===&lt;br /&gt;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가 임박한 상태였다. 두 전쟁에서의 승리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으나, 큰 전쟁들을 치르며 국력이 피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존 열강의 동의 없는 급격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열강들의 견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에 대한 미, 영 양국의 협조를 기대하였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한국은 외교권을 가지고 또 다른 나라를 끌어드려 갈등을 일으키고 또 다른 동아시아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amp;quot;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lt;br /&gt;
&lt;br /&gt;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관계===&lt;br /&gt;
미국도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의했는데, 한 국가가 본인을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접촉하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에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영토인 필리핀을 침략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동아시아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육상에서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해전에서는 러시아함대를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임박하였다.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주선자로서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로 하여금 일본을 방문토록 하였다.&lt;br /&gt;
도쿄에 방문한 태프트는 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을 방문하였고, 이때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외교 판도에 변화가 야기될 것이 예상되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미국의 '거중조정'을 부탁하고자 이승만에게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밀서 형식이 아닌 공식 외교 서한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주미 공사관 김윤정에게 문서 작성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김윤정은 이미 일본에 매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amp;lt;/br&amp;gt;&lt;br /&gt;
또한, 한국에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를 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행은 명성황후 능에서 무례를 보임으로써 대한제국과의 우호 관계의 끝을 보여주었다.&amp;lt;/br&amp;gt;&lt;br /&gt;
이후 11월 17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은 계속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한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문서와 특사를 파견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그렇게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피탈로의 길이 가속화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RK3WwP-QgaM&amp;quot; title=&amp;quot;대한제국 식민 지배를 위한 일본의 밑그림, 포츠머스 조약#벌거벗은세계사 |  EP.11 | tvN 210320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전체적인 개요와 경과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쓰라 태프트 협약'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德川시대 말기 일본의 국내정세에 관하여는 백철현, 식민주의로 점철된 미일한 ‘동맹’, 현장과 광장, 현장과 광장 제 8호, 2023, pp.157-17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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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쓰라-태프트 밀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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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51: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배경 */&lt;/p&gt;
&lt;hr /&gt;
&lt;div&gt;[[파일:가쓰라와 태프트.jpeg|500px|가쓰라와 태프트]] &amp;lt;/br&amp;gt;&lt;br /&gt;
왼쪽이 가쓰라, 오른쪽이 태프트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905년 7월 29일, 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 장관이자,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비밀리에 맺은 협정이다. &amp;lt;/br&amp;gt; &lt;br /&gt;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일본의 상황과 논리===&lt;br /&gt;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가 임박한 상태였다. 두 전쟁에서의 승리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으나, 큰 전쟁들을 치르며 국력이 피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존 열강의 동의 없는 급격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열강들의 견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에 대한 미, 영 양국의 협조를 기대하였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한국은 외교권을 가지고 또 다른 나라를 끌어드려 갈등을 일으키고 또 다른 동아시아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amp;quot;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lt;br /&gt;
&lt;br /&gt;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관계===&lt;br /&gt;
미국도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의했는데, 한 국가가 본인을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접촉하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에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영토인 필리핀을 침략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동아시아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육상에서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해전에서는 러시아함대를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임박하였다.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주선자로서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로 하여금 일본을 방문토록 하였다.&lt;br /&gt;
도쿄에 방문한 태프트는 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을 방문하였고, 이때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외교 판도에 변화가 야기될 것이 예상되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미국의 '거중조정'을 부탁하고자 이승만에게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밀서 형식이 아닌 공식 외교 서한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주미 공사관 김윤정에게 문서 작성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김윤정은 이미 일본에 매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amp;lt;/br&amp;gt;&lt;br /&gt;
또한, 한국에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를 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행은 명성황후 능에서 무례를 보임으로써 대한제국과의 우호 관계의 끝을 보여주었다.&amp;lt;/br&amp;gt;&lt;br /&gt;
이후 11월 17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은 계속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한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문서와 특사를 파견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그렇게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피탈로의 길이 가속화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RK3WwP-QgaM&amp;quot; title=&amp;quot;대한제국 식민 지배를 위한 일본의 밑그림, 포츠머스 조약#벌거벗은세계사 |  EP.11 | tvN 210320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전체적인 개요와 경과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쓰라 태프트 협약'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德川시대 말기 일본의 국내정세에 관하여는 백철현, 식민주의로 점철된 미일한 ‘동맹’, 현장과 광장, 현장과 광장 제 8호, 2023, pp.157-17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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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쓰라-태프트 밀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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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51: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가쓰라와 태프트.jpeg|500px|가쓰라와 태프트]] &amp;lt;/br&amp;gt;&lt;br /&gt;
왼쪽이 가쓰라, 오른쪽이 태프트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905년 7월 29일, 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 장관이자,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비밀리에 맺은 협정이다. &amp;lt;/br&amp;gt; &lt;br /&gt;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일본의 상황과 논리===&lt;br /&gt;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가 임박한 상태였다. 두 전쟁에서의 승리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으나, 큰 전쟁들을 치르며 국력이 피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존 열강의 동의 없는 급격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열강들의 견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에 대한 미, 영 양국의 협조를 기대하였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한국은 외교권을 가지고 또 다른 나라를 끌어드려 갈등을 일으키고 또 다른 동아시아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amp;quot;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lt;br /&gt;
&lt;br /&gt;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관계===&lt;br /&gt;
미국도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의했는데, 한 국가가 본인을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접촉하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에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영토인 필리핀을 침략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동아시아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육상에서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해전에서는 러시아함대를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임박하였다.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주선자로서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로 하여금 일본을 방문토록 하였다.&lt;br /&gt;
도쿄에 방문한 태프트는 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을 방문하였고, 이때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외교 판도에 변화가 야기될 것이 예상되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미국의 '거중조정'을 부탁하고자 이승만에게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밀서 형식이 아닌 공식 외교 서한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주미 공사관 김윤정에게 문서 작성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김윤정은 이미 일본에 매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amp;lt;/br&amp;gt;&lt;br /&gt;
또한, 한국에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를 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행은 명성황후 능에서 무례를 보임으로써 대한제국과의 우호 관계의 끝을 보여주었다.&amp;lt;/br&amp;gt;&lt;br /&gt;
이후 11월 17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은 계속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한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문서와 특사를 파견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그렇게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피탈로의 길이 가속화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RK3WwP-QgaM&amp;quot; title=&amp;quot;대한제국 식민 지배를 위한 일본의 밑그림, 포츠머스 조약#벌거벗은세계사 |  EP.11 | tvN 210320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전체적인 개요와 경과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쓰라 태프트 협약'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德川시대 말기 일본의 국내정세에 관하여는 백철현, 식민주의로 점철된 미일한 ‘동맹’, 현장과 광장, 현장과 광장 제 8호, 2023, pp.157-17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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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족자결주의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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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50: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분류 */&lt;/p&gt;
&lt;hr /&gt;
&lt;div&gt;[[파일:우드로 윌슨.jpeg|500px|우드로 윌슨]] &amp;lt;/br&amp;gt;&lt;br /&gt;
위 사진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의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자결주의의 역사===&lt;br /&gt;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도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의 명분, 독일의 1848년 혁명 등에서도 드러났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8년 1월 8일 1차 대전의 승전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된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민족 자결주의를 담고 있는 조항이다. &lt;br /&gt;
&lt;br /&gt;
===자결주의와 연관된 14개조 평화원칙 주요 조항===&lt;br /&gt;
5조: 식민지의 주권을 결정하는 데 그 주민의 이익과 수립하게 될 정부의 공평한 주장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모든 식민지 요구를 공평하게 조정한다.&lt;br /&gt;
&lt;br /&gt;
10조: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자치적인 발전을 하도록 자유스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lt;br /&gt;
&lt;br /&gt;
11조: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점령 지역은 회복된다. 세르비아는 해양을 통한 자유로운 진로가 보장된다. 발칸 국가들의 관계는 충성심과 민족성의 역사적인 분계선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들의 정치, 경제 독립과 영토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12조: 현재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의 지역은 확실한 주권이 보장되나 그 밖의 민족들은 생명의 확실한 보장, 자치적인 발전의 절대 안정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인 보장하에서 모든 국가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자유로이 통과하도록 영구히 개방되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3조: 폴란드인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독립 폴란드를 수립한다. 폴란드는 해양을 향한 자유롭고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치,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조약으로 보장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의의 및 한계'''==&lt;br /&gt;
===의의===&lt;br /&gt;
윌슨의 민족 자결권 개념은 1차 대전 협상국 측의 최종적 전쟁 목표 중 하나였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각국에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거나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여러 국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고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독립을 야기했다.&lt;br /&gt;
&lt;br /&gt;
===한계===&lt;br /&gt;
그러나 한계 또한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중립국과 전승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이 승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 운동, 5.4 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일어났으나,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 자결권을 이용하여 독일계 민족이 많은 지방을 수복하기 위한 2차 대전을 일으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1910년대의 강압적 통치와 총독부의 경제적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생 관리 실패로 인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조선 민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계열에도 활력이 돌았다. 특히 독립운동 지도자 여운형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앞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영어 능력이 뛰어난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어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 안팎에 있는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여러 방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을 상당히 고무시켰다. 결국, 광무 황제가 사망한 후, 황제 독살설로 민심은 더욱더 격앙되었고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MPyacAQpMo&amp;quot; title=&amp;quot;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환영 받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과연 그 실행은?&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민족자결주의 배경과 관련하여는 노경덕, 제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국제정치와 민족자결주의, 歷史學報 第245輯, 역사학보, 2020, pp.33-62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조선 정치에의 영향과 관련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amp;quot;3.1 운동&amp;quot;과 이병수, 3.1 운동과 보편적 가치, 통일인문학 제80집, 통일인문학, 2019, pp.151-180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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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족자결주의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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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49: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우드로 윌슨.jpeg|500px|우드로 윌슨]] &amp;lt;/br&amp;gt;&lt;br /&gt;
위 사진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의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자결주의의 역사===&lt;br /&gt;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도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의 명분, 독일의 1848년 혁명 등에서도 드러났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8년 1월 8일 1차 대전의 승전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된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민족 자결주의를 담고 있는 조항이다. &lt;br /&gt;
&lt;br /&gt;
===자결주의와 연관된 14개조 평화원칙 주요 조항===&lt;br /&gt;
5조: 식민지의 주권을 결정하는 데 그 주민의 이익과 수립하게 될 정부의 공평한 주장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모든 식민지 요구를 공평하게 조정한다.&lt;br /&gt;
&lt;br /&gt;
10조: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자치적인 발전을 하도록 자유스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lt;br /&gt;
&lt;br /&gt;
11조: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점령 지역은 회복된다. 세르비아는 해양을 통한 자유로운 진로가 보장된다. 발칸 국가들의 관계는 충성심과 민족성의 역사적인 분계선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들의 정치, 경제 독립과 영토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12조: 현재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의 지역은 확실한 주권이 보장되나 그 밖의 민족들은 생명의 확실한 보장, 자치적인 발전의 절대 안정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인 보장하에서 모든 국가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자유로이 통과하도록 영구히 개방되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3조: 폴란드인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독립 폴란드를 수립한다. 폴란드는 해양을 향한 자유롭고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치,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조약으로 보장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의의 및 한계'''==&lt;br /&gt;
===의의===&lt;br /&gt;
윌슨의 민족 자결권 개념은 1차 대전 협상국 측의 최종적 전쟁 목표 중 하나였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각국에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거나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여러 국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고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독립을 야기했다.&lt;br /&gt;
&lt;br /&gt;
===한계===&lt;br /&gt;
그러나 한계 또한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중립국과 전승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이 승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 운동, 5.4 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일어났으나,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 자결권을 이용하여 독일계 민족이 많은 지방을 수복하기 위한 2차 대전을 일으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1910년대의 강압적 통치와 총독부의 경제적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생 관리 실패로 인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조선 민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계열에도 활력이 돌았다. 특히 독립운동 지도자 여운형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앞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영어 능력이 뛰어난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어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 안팎에 있는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여러 방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을 상당히 고무시켰다. 결국, 광무 황제가 사망한 후, 황제 독살설로 민심은 더욱더 격앙되었고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MPyacAQpMo&amp;quot; title=&amp;quot;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환영 받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과연 그 실행은?&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민족자결주의 배경과 관련하여는 노경덕, 제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국제정치와 민족자결주의, 歷史學報 第245輯, 역사학보, 2020, pp.33-62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조선 정치에의 영향과 관련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amp;quot;3.1 운동&amp;quot;과 이병수, 3.1 운동과 보편적 가치, 통일인문학 제80집, 통일인문학, 2019, pp.151-180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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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족자결주의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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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49: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우드로 윌슨.jpeg|500px|우드로 윌슨]] &amp;lt;/br&amp;gt;&lt;br /&gt;
위 사진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의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자결주의의 역사===&lt;br /&gt;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도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의 명분, 독일의 1848년 혁명 등에서도 드러났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8년 1월 8일 1차 대전의 승전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된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민족 자결주의를 담고 있는 조항이다. &lt;br /&gt;
&lt;br /&gt;
===자결주의와 연관된 14개조 평화원칙 주요 조항===&lt;br /&gt;
5조: 식민지의 주권을 결정하는 데 그 주민의 이익과 수립하게 될 정부의 공평한 주장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모든 식민지 요구를 공평하게 조정한다.&lt;br /&gt;
&lt;br /&gt;
10조: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자치적인 발전을 하도록 자유스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lt;br /&gt;
&lt;br /&gt;
11조: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점령 지역은 회복된다. 세르비아는 해양을 통한 자유로운 진로가 보장된다. 발칸 국가들의 관계는 충성심과 민족성의 역사적인 분계선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들의 정치, 경제 독립과 영토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12조: 현재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의 지역은 확실한 주권이 보장되나 그 밖의 민족들은 생명의 확실한 보장, 자치적인 발전의 절대 안정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인 보장하에서 모든 국가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자유로이 통과하도록 영구히 개방되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3조: 폴란드인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독립 폴란드를 수립한다. 폴란드는 해양을 향한 자유롭고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치,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조약으로 보장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의의 및 한계'''==&lt;br /&gt;
===의의===&lt;br /&gt;
윌슨의 민족 자결권 개념은 1차 대전 협상국 측의 최종적 전쟁 목표 중 하나였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각국에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거나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여러 국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고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독립을 야기했다.&lt;br /&gt;
&lt;br /&gt;
===한계===&lt;br /&gt;
그러나 한계 또한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중립국과 전승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이 승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 운동, 5.4 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일어났으나,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 자결권을 이용하여 독일계 민족이 많은 지방을 수복하기 위한 2차 대전을 일으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1910년대의 강압적 통치와 총독부의 경제적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생 관리 실패로 인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조선 민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계열에도 활력이 돌았다. 특히 독립운동 지도자 여운형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앞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영어 능력이 뛰어난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어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 안팎에 있는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여러 방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을 상당히 고무시켰다. 결국, 광무 황제가 사망한 후, 황제 독살설로 민심은 더욱더 격앙되었고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MPyacAQpMo&amp;quot; title=&amp;quot;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환영 받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과연 그 실행은?&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민족자결주의 배경과 관련하여는 노경덕, 제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국제정치와 민족자결주의, 歷史學報 第245輯, 역사학보, 2020, pp.33-62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조선 정치에의 영향과 관련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amp;quot;3.1 운동&amp;quot;과 이병수, 3.1 운동과 보편적 가치, 통일인문학 제80집, 통일인문학, 2019, pp.151-180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C%EC%A1%B1%EC%9E%90%EA%B2%B0%EC%A3%BC%EC%9D%98_%EC%84%A0%EC%96%B8&amp;diff=42080</id>
		<title>민족자결주의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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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48: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우드로 윌슨.jpeg|500px|우드로 윌슨]] &amp;lt;/br&amp;gt;&lt;br /&gt;
위 사진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의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자결주의의 역사===&lt;br /&gt;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도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의 명분, 독일의 1848년 혁명 등에서도 드러났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8년 1월 8일 1차 대전의 승전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된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민족 자결주의를 담고 있는 조항이다. &lt;br /&gt;
&lt;br /&gt;
===자결주의와 연관된 14개조 평화원칙 주요 조항===&lt;br /&gt;
5조: 식민지의 주권을 결정하는 데 그 주민의 이익과 수립하게 될 정부의 공평한 주장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모든 식민지 요구를 공평하게 조정한다.&lt;br /&gt;
&lt;br /&gt;
10조: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자치적인 발전을 하도록 자유스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lt;br /&gt;
&lt;br /&gt;
11조: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점령 지역은 회복된다. 세르비아는 해양을 통한 자유로운 진로가 보장된다. 발칸 국가들의 관계는 충성심과 민족성의 역사적인 분계선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들의 정치, 경제 독립과 영토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12조: 현재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의 지역은 확실한 주권이 보장되나 그 밖의 민족들은 생명의 확실한 보장, 자치적인 발전의 절대 안정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인 보장하에서 모든 국가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자유로이 통과하도록 영구히 개방되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3조: 폴란드인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독립 폴란드를 수립한다. 폴란드는 해양을 향한 자유롭고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치,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조약으로 보장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의의 및 한계==&lt;br /&gt;
===의의===&lt;br /&gt;
윌슨의 민족 자결권 개념은 1차 대전 협상국 측의 최종적 전쟁 목표 중 하나였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각국에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거나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여러 국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고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독립을 야기했다.&lt;br /&gt;
&lt;br /&gt;
===한계===&lt;br /&gt;
그러나 한계 또한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중립국과 전승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이 승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 운동, 5.4 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일어났으나,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 자결권을 이용하여 독일계 민족이 많은 지방을 수복하기 위한 2차 대전을 일으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1910년대의 강압적 통치와 총독부의 경제적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생 관리 실패로 인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조선 민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계열에도 활력이 돌았다. 특히 독립운동 지도자 여운형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앞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영어 능력이 뛰어난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어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 안팎에 있는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여러 방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을 상당히 고무시켰다. 결국, 광무 황제가 사망한 후, 황제 독살설로 민심은 더욱더 격앙되었고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MPyacAQpMo&amp;quot; title=&amp;quot;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환영 받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과연 그 실행은?&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민족자결주의 배경과 관련하여는 노경덕, 제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국제정치와 민족자결주의, 歷史學報 第245輯, 역사학보, 2020, pp.33-62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조선 정치에의 영향과 관련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amp;quot;3.1 운동&amp;quot;과 이병수, 3.1 운동과 보편적 가치, 통일인문학 제80집, 통일인문학, 2019, pp.151-180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amp;diff=42079</id>
		<title>가쓰라-태프트 밀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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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2:43: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가쓰라와 태프트.jpeg|500px|가쓰라와 태프트]] &amp;lt;/br&amp;gt;&lt;br /&gt;
왼쪽이 가쓰라, 오른쪽이 태프트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905년 7월 29일, 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 장관이자,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비밀리에 맺은 협정이다. &amp;lt;/br&amp;gt; &lt;br /&gt;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일본의 상황과 논리===&lt;br /&gt;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가 임박한 상태였다. 두 전쟁에서의 승리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으나, 큰 전쟁들을 치르며 국력이 피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존 열강의 동의 없는 급격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열강들의 견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에 대한 미, 영 양국의 협조를 기대하였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한국은 외교권을 가지고 또 다른 나라를 끌어드려 갈등을 일으키고 또 다른 동아시아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amp;quot;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lt;br /&gt;
&lt;br /&gt;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관계===&lt;br /&gt;
미국도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의했는데, 한 국가가 본인을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접촉하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에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영토인 필리핀을 침략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동아시아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육상에서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해전에서는 러시아함대를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임박하였다.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주선자로서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로 하여금 일본을 방문토록 하였다.&lt;br /&gt;
도쿄에 방문한 태프트는 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을 방문하였고, 이때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외교 판도에 변화가 야기될 것이 예상되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미국의 '거중조정'을 부탁하고자 이승만에게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밀서 형식이 아닌 공식 외교 서한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주미 공사관 김윤정에게 문서 작성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김윤정은 이미 일본에 매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amp;lt;/br&amp;gt;&lt;br /&gt;
또한, 한국에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를 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행은 명성황후 능에서 무례를 보임으로써 대한제국과의 우호 관계의 끝을 보여주었다.&amp;lt;/br&amp;gt;&lt;br /&gt;
이후 11월 17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은 계속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한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문서와 특사를 파견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그렇게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피탈로의 길이 가속화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RK3WwP-QgaM&amp;quot; title=&amp;quot;대한제국 식민 지배를 위한 일본의 밑그림, 포츠머스 조약#벌거벗은세계사 |  EP.11 | tvN 210320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전체적인 개요와 경과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쓰라 태프트 협약'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德川시대 말기 일본의 국내정세에 관하여는 백철현, 식민주의로 점철된 미일한 ‘동맹’, 현장과 광장, 현장과 광장 제 8호, 2023, pp.157-17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78</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78"/>
		<updated>2024-06-21T12:37: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 시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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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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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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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amp;diff=42077</id>
		<title>가쓰라-태프트 밀약</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amp;diff=42077"/>
		<updated>2024-06-21T12:34: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파일:가쓰라와 태프트.jpeg|500px|가쓰라와 태프트]] &amp;lt;/br&amp;gt;&lt;br /&gt;
왼쪽이 가쓰라, 오른쪽이 태프트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905년 7월 29일, 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 장관이자,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테프트가 비밀리에 맺은 협정이다. &amp;lt;/br&amp;gt; &lt;br /&gt;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일본의 상황과 논리===&lt;br /&gt;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 이여 러일전쟁에서도 승리가 임박한 상태였다. 두 전쟁에서의 승리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으나, 큰 전쟁들을 치르며 국력이 피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존 열강의 동의 없는 급격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열강들의 견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에 대한 미, 영 양국의 협조를 기대하였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한국은 외교권을 가지고 또다른 나라를 끌어드려 갈등을 일으키고 또다른 동아시아의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라 주장하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lt;br /&gt;
&lt;br /&gt;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 관계===&lt;br /&gt;
미국도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의했는데, 한 국가가 국가를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접촉하려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에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영토인 필리핀을 침략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동아시아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육상에서 연일 승전보를 울리고 해전에서는 러시아함대를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가 임박하였다.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주선자로서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로 하여금 일본을 방문토록 하였다.&lt;br /&gt;
도쿄에 방문한 태프트는 가쓰라 다로 일본수상을 방문하였고, 이때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외교 판도에 변화가 야기될 것이 예상되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미국의 '거중조정'을 부탁하고자 이승만에게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밀서 형식이 아닌 공식 외교서한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주미 공사관 김윤정에게 문서 작성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한다. 김윤정은 이미 일본에 매수되어 있었던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또한, 한국에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를 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행은 명성황후릉에서 무례를 보임으로써 대한제국과의 우호 관계의 끝을 보여주었다.&amp;lt;/br&amp;gt;&lt;br /&gt;
이후 11월 17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은 계속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한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문서와 특사를 파견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그렇게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피탈로의 길이 가속화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RK3WwP-QgaM&amp;quot; title=&amp;quot;대한제국 식민 지배를 위한 일본의 밑그림, 포츠머스 조약#벌거벗은세계사 |  EP.11 | tvN 210320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전체적인 개요와 경과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쓰라 태프트 협약'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德川시대 말기 일본의 국내정세에 관하여는 백철현, 식민주의로 점철된 미일한 ‘동맹’, 현장과 광장, 현장과 광장 제 8호, 2023, pp.157-17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8%EA%B5%B0%EC%A0%95&amp;diff=42076</id>
		<title>미군정</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8%EA%B5%B0%EC%A0%95&amp;diff=42076"/>
		<updated>2024-06-21T12:33: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파일:미군정 사진.jpeg|500px|미군정 사진]]&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중앙청에 성조기가 걸린 모습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존속한 남한 통치를 위한 미국의 군정청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얄타 회담, 카이로 회담과 광복===&lt;br /&gt;
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이 눈 앞에 다가오자,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은 얄타 회담을 실시하여 독일의 항복 이후 2, 3달여 안에 소련의 일본 전선 개입을 약조했다. 또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화민국은 일제 해체 후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승인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광복하였다.&lt;br /&gt;
&lt;br /&gt;
===미국과 건준===&lt;br /&gt;
여운형은 광복 이후 기존의 건국동맹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 확대했고 지방 세력의 호응에 힘 입어 그 세력을 넓혀 갔다. 9월 3일에는 내각 개편이 이루어지고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내각 개편 과정에서 좌익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중도 우파 세력이 탈퇴하였다. 우파, 극우 세력들은 애초부터 건준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결국 좌익 세력이 주를 이루는 좌경화된 단체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미국은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와해되었다. 미국은 가장 호응을 받은 건준뿐 아니라, 임시정부와 같은 여타 단체들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와 같은 공식적 정부 수립 절차를 갖추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단체들로 보았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미군정의 경과===&lt;br /&gt;
점령 초기 기존 여러 독립 단체들, 기존에 존재했던 정부 기구 역할을 했던 단체들을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 운영은 한국에 점거하는 미국인들에 의해 맡겨졌고 이들은 개혁보다는 현상유지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띠었다. 이는 개혁을 바라는 백성들과 기존 독립운동 단체 지도자들의 기대에 반하는 것이었다. 또한, 반공 작업도 계속하여 남한에 있던 공산주의 단체들에 큰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미군정의 통치가 지속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미군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직후 남한에 미친 영향==&lt;br /&gt;
미군정은 늘 북한과 소련을 견제해야 했고 남한에서의 공산주의의 확산을 방지해야 했기 때문에 혼란을 방지하는 안정적, 체계적 통치를 우선시했다. 따라서 미국인들이 국가 운영에 슬슬 손을 땔 즈음, 일제시대에 친일파로서 국가 운영을 했던 친일 부역자들이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자주성을 표방하는 여러 독립단체들보다 친일 관료들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효율적이고 통제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민족주의 성향으로 변모했고 공산주의를 비판, 경계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안성맞춤이었다. 따라서, 군, 정부,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친일 행각을 하던 자들은 친미로 변모하여 자리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 실패로까지 이어진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Ucgb3LeAsI&amp;quot; title=&amp;quot;&amp;amp;quot;친일해도 괜찮던데?&amp;amp;quot; 처벌보다 빨랐던 친일파의 태세전환! | 미군정과 반민특위&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德&amp;lt;&amp;lt;미군정의 경과와 한국에 미친 영향에 관하여는 송재경. (2014). 미군정 여론조사로 본 한국의 정치·사회동향(1945~1947)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3439285와 이계형. (2022). 미군정기 서울지역 좌·우익 정당·사회단체의 활동 공간 연구. 서울학연구,(87), 73-107, 10.17647/jss.2022.05.87.73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미군정의 배경과 해방 직후의 상황에 관하여는 윤덕영. (2010). 8·15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적 한계와 좌·우 분립의 배경. 사학연구,(100), 826-86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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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8%EA%B5%B0%EC%A0%95&amp;diff=42074</id>
		<title>미군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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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0:57:0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개요 */&lt;/p&gt;
&lt;h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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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군정 사진.jpeg|500px|미군정 사진]]&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중앙청에 성조기가 걸린 모습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존속한 남한 통치를 위한 미국의 군정청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얄타 회담, 카이로 회담과 광복===&lt;br /&gt;
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이 눈 앞에 다가오자,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은 얄타 회담을 실시하여 독일의 항복 이후 2, 3달여 안에 소련의 일본 전선 개입을 약조했다. 또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화민국은 일제 해체 후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승인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광복하였다.&lt;br /&gt;
&lt;br /&gt;
===미국과 건준===&lt;br /&gt;
여운형은 광복 이후 기존의 건국동맹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 확대했고 지방 세력의 호응에 힘 입어 그 세력을 넓혀 갔다. 9월 3일에는 내각 개편이 이루어지고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내각 개편 과정에서 좌익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중도 우파 세력이 탈퇴하였다. 우파, 극우 세력들은 애초부터 건준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결국 좌익 세력이 주를 이루는 좌경화된 단체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미국은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와해되었다. 미국은 가장 호응을 받은 건준뿐 아니라, 임시정부와 같은 여타 단체들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와 같은 공식적 정부 수립 절차를 갖추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단체들로 보았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미군정의 경과===&lt;br /&gt;
점령 초기 한국인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각종 자치기구들이 미군정에 의해 부정된 이후 밑으로부터 한국인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기구는 없었다.  미군사령부 및 군정장관, 그리고 각 부서에 배치된 미국인 고문들이 중요 인사 임면, 법령 포고,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과 최종 결재권을 행사하였다. 특히 미군정기 내내 주한미군사령관과 군정장관이 최고 실권을 행사했다. 과도정부 설치 후에도 미군정은 재정, 귀속재산 관리, 원조물자 배분 등 점령통치의 물적 기반에 대한 부분은 행정권 이양에서 제외하여 최후까지 직접 관리하였으며, 치안분야에 대한 통제권도 계속 장악했다.&lt;br /&gt;
&lt;br /&gt;
미군정청은 남한 점령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점령지 남한의 급격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상유지 정책에 입각해 안정을 추구했다. 미군정청은 미국 대한정책의 대리인으로서 점령정책의 현지 집행자 역할에 충실했으며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소련에 대응하는 활동에 역점을 둔 해방공간에 있어서 과도기적 산물이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직후 남한에 미친 영향==&lt;br /&gt;
미군정은 일제 식민지 통치조직보다 더 중앙집권화 되고, 효율적인 조직을 추구했고, 미군정 기구 개편은 그러한 의도를 반영했다. 경찰은 이른 시기에 미군정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게 중앙집중화 되고, 확대되었다. 각급 행정기구는 중앙의 군정청으로부터 일사불란한 체계를 갖추었으며, 점령 당국인 미군정의 요구를 지방에 그대로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들 행정기구를 움직이는 관료의 충원은 ‘훈련되고 경험 있는 관리들의 재임명’이 일반원칙이었고, 따라서 대부분 일제하의 관료들, 또는 우파 보수세력 중심으로 충원되었다. 미군정은 1945년 12월에 미국인한국인 양국장제도를 시행했고, 1946년 3월부터 군정의 한인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이는 점령당국이 충원한 구식민지관료 및 우익세력에게 행정실권을 부여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이로 인해 남한은 친일파 축출 및 처벌의 적정 시기를 놓치게 된다. 또한, 한국의 통치를 두고 계속해서 소련과 논의하며 모스크바 3상회의, 미소 공동위원회 등이 개최되었으나, 원활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고 오히려 신탁통치 오보사건으로 인해 찬탁, 반탁 운동으로 좌우익 세력이 본격적으로 분열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이승만은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정읍발언을 하여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위기감을 고조시켜 좌우합작운동을 유발하기도 했으나, 여운형의 죽음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제 1공화국이 출범하며 한반도 남쪽에는 자본주의,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Ucgb3LeAsI&amp;quot; title=&amp;quot;&amp;amp;quot;친일해도 괜찮던데?&amp;amp;quot; 처벌보다 빨랐던 친일파의 태세전환! | 미군정과 반민특위&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德&amp;lt;&amp;lt;미군정의 경과와 한국에 미친 영향에 관하여는 송재경. (2014). 미군정 여론조사로 본 한국의 정치·사회동향(1945~1947)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3439285와 이계형. (2022). 미군정기 서울지역 좌·우익 정당·사회단체의 활동 공간 연구. 서울학연구,(87), 73-107, 10.17647/jss.2022.05.87.73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미군정의 배경과 해방 직후의 상황에 관하여는 윤덕영. (2010). 8·15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적 한계와 좌·우 분립의 배경. 사학연구,(100), 826-86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1%EB%AF%B8%EC%A0%95%EC%83%81%ED%9A%8C%EB%8B%B4_%EA%B2%B0%EB%A0%AC&amp;diff=42073</id>
		<title>북미정상회담 결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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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0:54: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당시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 */&lt;/p&gt;
&lt;hr /&gt;
&lt;div&gt;[[파일:북미회담결렬.jpeg|500px|북미회담결렬]] &amp;lt;/br&amp;gt;&lt;br /&gt;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 김정은 국무위원장회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베트남 하노이에서 2019년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 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다. 1차 회담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지만, 2차 회담은 아무런 합의에 다다르지 못한 채로 결렬되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회담의 배경===&lt;br /&gt;
1차 북미회담과, 여러 차례 남북 정상 회담의 여파로 남북은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고 북미 관계도 큰 진전을 보였다. 종전 선언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삼국 모두에게 부풀어 있었으며, 특히, 북한은 제재의 완화 혹은 완전한 철폐,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 선언 등을 기대하고 있었다. &lt;br /&gt;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가능한 한 빨리 개최하려고 했는데, 중간선거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의 관심 거리이자 오랜 걱정인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객관적인 지지율을 알 수 있는 중간 선거의 성패가 달려 있을 수도 있었다. 이는 장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관련되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 회담하여 진전된 비핵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문에 담는 것을 목표로 2차 북미회담을 계획했다.&lt;br /&gt;
북한 역시, 계속된 대북제재로 경제가 악화된 상태에서 남북, 북미 화해 무드를 이용하여 제재를 완화 내지 해제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역시 2차 북미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거나, 더 나아가 종전 선언 및 추가적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 관계의 완전한 해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lt;br /&gt;
===결렬 이유===&lt;br /&gt;
그러나 회담은 완전히 결렬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요구가 미국 측이 들어주기에는 과도했던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게 핵 시설 전반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었으나, 미국은 이미 북한의 핵시설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이 내세운 핵 시설 철거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더 많은 핵시설의 완전한 철거를 원했다. 또한, 북한은 자신들이 내세운 것에 대한 요구로 제재의 전체 해제를 들었는데, 북한의 핵시설과 잠재적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는 미국 측에 과도한 요구였고 이를 받아들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다. 그에 따라 재협상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두 국가는 어느 합의점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당시 청와대는 정상회담이 하나의 합의점에도 이르지 못하고 완전히 결렬될 것이라는 결과를 전혀 예상치 못하고 여러 기대점을 내세운 상태였는데 그만큼 회담 결과에 대한 반발도 거셌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회담 결렬 이후 정부가 설레발을 쳐 국민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으면서 아무 결과도 내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lt;br /&gt;
회담 결렬은 문재인 정부에 큰 악재가 되어 여러 악재로 지지율 하락폭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반등을 실패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회담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났지만, 회담 직전까지 회담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예상만을 제시고 있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관계 조율자로서 입지가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야당의 비판이 심해졌고 지지율 반등에도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남북평화무드로 대북관계에서는 호평일색이었고 그를 기반으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계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의 잠재적 원인 중 하나로서, 만약 회담이 성공하여 계속 화해무드가 이어졌다면 정권교체 안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전망 또한 존재한다. 어쨌든 회담 결렬 이후로 북한과의 관계에 큰 진전이 없고 서서히 악화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어 남북관계는 최악을 달리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4X0_jzRuG9g&amp;quot; title=&amp;quot;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비핵화 조치·제재’ 이견 / KBS뉴스(News)&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개요 및 배경과 관련하여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0666063?sid=100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결렬 이유와 관련하여는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884021.html 참조&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1%EB%AF%B8%EC%A0%95%EC%83%81%ED%9A%8C%EB%8B%B4_%EA%B2%B0%EB%A0%AC&amp;diff=42072</id>
		<title>북미정상회담 결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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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0:52: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파일:북미회담결렬.jpeg|500px|북미회담결렬]] &amp;lt;/br&amp;gt;&lt;br /&gt;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 김정은 국무위원장회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베트남 하노이에서 2019년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 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다. 1차 회담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지만, 2차 회담은 아무런 합의에 다다르지 못한 채로 결렬되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회담의 배경===&lt;br /&gt;
1차 북미회담과, 여러 차례 남북 정상 회담의 여파로 남북은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고 북미 관계도 큰 진전을 보였다. 종전 선언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삼국 모두에게 부풀어 있었으며, 특히, 북한은 제재의 완화 혹은 완전한 철폐,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 선언 등을 기대하고 있었다. &lt;br /&gt;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가능한 한 빨리 개최하려고 했는데, 중간선거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의 관심 거리이자 오랜 걱정인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객관적인 지지율을 알 수 있는 중간 선거의 성패가 달려 있을 수도 있었다. 이는 장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관련되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 회담하여 진전된 비핵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문에 담는 것을 목표로 2차 북미회담을 계획했다.&lt;br /&gt;
북한 역시, 계속된 대북제재로 경제가 악화된 상태에서 남북, 북미 화해 무드를 이용하여 제재를 완화 내지 해제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역시 2차 북미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거나, 더 나아가 종전 선언 및 추가적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 관계의 완전한 해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lt;br /&gt;
===결렬 이유===&lt;br /&gt;
그러나 회담은 완전히 결렬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요구가 미국 측이 들어주기에는 과도했던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게 핵 시설 전반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었으나, 미국은 이미 북한의 핵시설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이 내세운 핵 시설 철거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더 많은 핵시설의 완전한 철거를 원했다. 또한, 북한은 자신들이 내세운 것에 대한 요구로 제재의 전체 해제를 들었는데, 북한의 핵시설과 잠재적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는 미국 측에 과도한 요구였고 이를 받아들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다. 그에 따라 재협상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두 국가는 어느 합의점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당시 청와대는 정상회담이 하나의 합의점에도 이르지 못하고 완전히 결렬될 것이라는 결과를 전혀 예상치 못하고 여러 기대점을 내세운 상태였는데 그만큼 회담 결과에 대한 반발도 거셌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회담 결렬 이후 정부가 설레발을 쳐 국민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으면서 아무 결과도 내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lt;br /&gt;
회담 결렬은 문재인 정부에 큰 악재가 되어 여러 악재로 지지율 하락폭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반등을 실패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회담이 결렬되었고 그 점을 미리 파악하지 못 하고 낙관적인 전망만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 대통령의 중재자로서의 입지가 위태로졌다. 그리고 그 결과로 청와대가 주장하는 굳건한 한미공조에 대한 의문과 대북 온건책에 대한 회의론에 힘이 실리며 야당의 공세가 심해졌고 지지율 반등에도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남북평화무드로 대북관계에서는 호평일색이었고 그를 기반으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계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의 잠재적 원인 중 하나로서, 만약 회담이 성공하여 계속 화해무드가 이어졌다면 정권교체 안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전망 또한 존재한다. 어쨌든 회담 결렬 이후로 북한과의 관계에 큰 진전이 없고 서서히 악화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어 남북관계는 최악을 달리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4X0_jzRuG9g&amp;quot; title=&amp;quot;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비핵화 조치·제재’ 이견 / KBS뉴스(News)&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개요 및 배경과 관련하여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0666063?sid=100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결렬 이유와 관련하여는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884021.html 참조&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2%A0%ED%8A%B8%EB%82%A8_%EC%A0%84%EC%9F%81&amp;diff=42071</id>
		<title>베트남 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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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0:50: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파병 규모 */&lt;/p&gt;
&lt;hr /&gt;
&lt;div&gt;[[파일:베트남전 파병 한국인들.jpeg|500px|베트남전 파병 한국인들]] &amp;lt;/br&amp;gt;&lt;br /&gt;
베트남전에 파병되는 한국 군인들의 모습이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 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배트남 전쟁은 한국1960년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지속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과 미국 사이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다.&amp;lt;/br&amp;gt; &lt;br /&gt;
남베트남 내의 반정부 세력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사이의 내전(內戰)으로 시작했으나, 1964년 8월 7일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한 뒤에 전쟁은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lt;br /&gt;
&lt;br /&gt;
==한국군 파병 배경==&lt;br /&gt;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 인정 욕구===&lt;br /&gt;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었고 1961년 쿠데타 당시의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필수적이었고 주한미군의 규모 유지 요청 및 한미동맹 강화 의지를 보이고자 한국은 계속해서 베트남에 파병할 것을 요청했다.&lt;br /&gt;
===미국의 이해관계===&lt;br /&gt;
미국은 초반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크게 인정하지 않고 있었고 따라서 한국의 참전 제안에 미온적이었으나, 1964년 통킹만 사건 이후 자유진영 국가들에게 적극적으로 파병 요청을 하게 되며, 한국의 파병 요청에 대한 태도도 바뀐다. 또한, 자국 내 반전시위가 격화되어 병력 차출이 어려워지자, 파병 필요성이 커졌고 한국군은 같은 아시아인이면서도 유지 비용이 저렴했기 때문에 한국군의 파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파병 규모==&lt;br /&gt;
누계 합산 30만 이상 병력을 약 8년 6개월 동안 베트남에 파병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인해 베트남 특수가 왔고 신흥 대기업이 성장하는 등 한국의 경제 성장은 가속화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군인이나 노동자에 대한 보상이 불충분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박정희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거나, 노동자들이 빌딩에 불을 지르는 등의 혼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lt;br /&gt;
또한, 박정희 정부는 전투 파병 인원과 그로 인한 공백을 메울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21~30살의 청년들을 징병했다. 이 과정에서 징병 기피자들, 24살 이상 대학생들, 장기 휴학생들을 대상으로도 집요하게 징병하였고 예비역을 재입대 시키기도 했다. 이를 통해 박정희 정권에 불만을 품고 저항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대 중 하나인 20대 남성 청년 세대에 대한 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었다. 또한, 원활한 징병 등 여러 이유를 근거로 주민등록법을 시행하여, 전 세대를 대상으로 통제를 강화했다. 이러한 통제 시스템은 차후 박정희 정권의 유신 개헌에 대한 반대를 용이하게 통제하도록 했고 독재 체제 강화 및 유지의 밑거름이 되었다.&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hHlVSKdBxrA&amp;quot; title=&amp;quot;웃으며 작별 인사, 가족들도 알지 못했던 베트남전 파병의 의미 | 세계 다크투어 16회 | JTBC 220928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베트남전의 영향 및 배경과 관련하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베트남전쟁 파병&amp;quot;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베트남전의 파병 배경과 관련하여는 우리역사넷, &amp;quot;월남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amp;quot;, 노도희. (2015). 박정희 대통령의 베트남 파병에 내포된 국가정체성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3819087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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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베트남 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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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0:48: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파일:베트남전 파병 한국인들.jpeg|500px|베트남전 파병 한국인들]] &amp;lt;/br&amp;gt;&lt;br /&gt;
베트남전에 파병되는 한국 군인들의 모습이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 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배트남 전쟁은 한국1960년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지속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과 미국 사이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다.&amp;lt;/br&amp;gt; &lt;br /&gt;
남베트남 내의 반정부 세력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사이의 내전(內戰)으로 시작했으나, 1964년 8월 7일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한 뒤에 전쟁은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lt;br /&gt;
&lt;br /&gt;
==한국군 파병 배경==&lt;br /&gt;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 인정 욕구===&lt;br /&gt;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었고 1961년 쿠데타 당시의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필수적이었고 주한미군의 규모 유지 요청 및 한미동맹 강화 의지를 보이고자 한국은 계속해서 베트남에 파병할 것을 요청했다.&lt;br /&gt;
===미국의 이해관계===&lt;br /&gt;
미국은 초반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크게 인정하지 않고 있었고 따라서 한국의 참전 제안에 미온적이었으나, 1964년 통킹만 사건 이후 자유진영 국가들에게 적극적으로 파병 요청을 하게 되며, 한국의 파병 요청에 대한 태도도 바뀐다. 또한, 자국 내 반전시위가 격화되어 병력 차출이 어려워지자, 파병 필요성이 커졌고 한국군은 같은 아시아인이면서도 유지 비용이 저렴했기 때문에 한국군의 파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파병 규모==&lt;br /&gt;
한국은 1964년 9월 의료진을 중심으로 한 비전투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만 8년 6개월 동안 30만 명이 넘는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당시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인해 베트남 특수가 왔고 신흥 대기업이 성장하는 등 한국의 경제 성장은 가속화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군인이나 노동자에 대한 보상이 불충분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박정희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거나, 노동자들이 빌딩에 불을 지르는 등의 혼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lt;br /&gt;
또한, 박정희 정부는 전투 파병 인원과 그로 인한 공백을 메울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21~30살의 청년들을 징병했다. 이 과정에서 징병 기피자들, 24살 이상 대학생들, 장기 휴학생들을 대상으로도 집요하게 징병하였고 예비역을 재입대 시키기도 했다. 이를 통해 박정희 정권에 불만을 품고 저항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대 중 하나인 20대 남성 청년 세대에 대한 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었다. 또한, 원활한 징병 등 여러 이유를 근거로 주민등록법을 시행하여, 전 세대를 대상으로 통제를 강화했다. 이러한 통제 시스템은 차후 박정희 정권의 유신 개헌에 대한 반대를 용이하게 통제하도록 했고 독재 체제 강화 및 유지의 밑거름이 되었다.&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hHlVSKdBxrA&amp;quot; title=&amp;quot;웃으며 작별 인사, 가족들도 알지 못했던 베트남전 파병의 의미 | 세계 다크투어 16회 | JTBC 220928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베트남전의 영향 및 배경과 관련하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베트남전쟁 파병&amp;quot;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베트남전의 파병 배경과 관련하여는 우리역사넷, &amp;quot;월남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amp;quot;, 노도희. (2015). 박정희 대통령의 베트남 파병에 내포된 국가정체성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3819087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AF%BC%EC%A1%B1%EC%9E%90%EA%B2%B0%EC%A3%BC%EC%9D%98_%EC%84%A0%EC%96%B8&amp;diff=42069</id>
		<title>민족자결주의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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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0:46: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우드로 윌슨.jpeg|500px|우드로 윌슨]] &amp;lt;/br&amp;gt;&lt;br /&gt;
위 사진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의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우리역사넷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자결주의의 역사===&lt;br /&gt;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도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의 명분, 독일의 1848년 혁명 등에서도 드러났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8년 1월 8일 1차 대전의 승전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된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민족 자결주의를 담고 있는 조항이다. &lt;br /&gt;
&lt;br /&gt;
===자결주의와 연관된 14개조 평화원칙 주요 조항===&lt;br /&gt;
5조: 식민지의 주권을 결정하는 데 그 주민의 이익과 수립하게 될 정부의 공평한 주장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모든 식민지 요구를 공평하게 조정한다.&lt;br /&gt;
&lt;br /&gt;
10조: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자치적인 발전을 하도록 자유스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lt;br /&gt;
&lt;br /&gt;
11조: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점령 지역은 회복된다. 세르비아는 해양을 통한 자유로운 진로가 보장된다. 발칸 국가들의 관계는 충성심과 민족성의 역사적인 분계선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들의 정치, 경제 독립과 영토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12조: 현재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의 지역은 확실한 주권이 보장되나 그 밖의 민족들은 생명의 확실한 보장, 자치적인 발전의 절대 안정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인 보장하에서 모든 국가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자유로이 통과하도록 영구히 개방되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3조: 폴란드인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독립 폴란드를 수립한다. 폴란드는 해양을 향한 자유롭고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치,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조약으로 보장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의의 및 한계==&lt;br /&gt;
===의의===&lt;br /&gt;
윌슨의 민족 자결권 개념은 1차 대전 협상국 측의 최종적 전쟁 목표 중 하나였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각국에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거나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는 등 그 가치가 인정받는다. 또한, 여러 국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고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독립을 야기했다.&lt;br /&gt;
&lt;br /&gt;
===한계===&lt;br /&gt;
그러나 한계 또한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중립국과 전승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이 승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 운동, 5.4 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일어났으나,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 자결권을 이용하여 독일계 민족이 많은 지방을 수복하기 위한 2차 대전을 일으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에 미친 영향==&lt;br /&gt;
&lt;br /&gt;
1910년대의 강압적 통치와 총독부의 경제적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생 관리 실패로 인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조선 민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계열에도 활력이 돌았다. 특히 독립운동 지도자 여운형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앞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영어 능력이 뛰어난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어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 안팎에 있는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여러 방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을 상당히 고무시켰다. 결국, 광무 황제가 사망한 후, 황제 독살설로 민심은 더욱 더 격앙되었고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OMPyacAQpMo&amp;quot; title=&amp;quot;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환영 받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과연 그 실행은?&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민족자결주의 배경과 관련하여는 노경덕, 제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국제정치와 민족자결주의, 歷史學報 第245輯, 역사학보, 2020, pp.33-62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조선 정치에의 영향과 관련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amp;quot;3.1 운동&amp;quot;과 이병수, 3.1 운동과 보편적 가치, 통일인문학 제80집, 통일인문학, 2019, pp.151-180 참조 &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8</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8"/>
		<updated>2024-06-21T10:39: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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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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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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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amp;diff=42067</id>
		<title>가쓰라-태프트 밀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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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0:37: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가쓰라와 태프트.jpeg|500px|가쓰라와 태프트]] &amp;lt;/br&amp;gt;&lt;br /&gt;
왼쪽이 가쓰라, 오른쪽이 태프트이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905년 7월 29일, 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 장관이자,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테프트가 비밀리에 맺은 협정이다. &amp;lt;/br&amp;gt; &lt;br /&gt;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일본의 상황과 논리===&lt;br /&gt;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 이여 러일전쟁에서도 승리가 임박한 상태였다. 두 전쟁에서의 승리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으나, 큰 전쟁들을 치르며 국력이 피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존 열강의 동의 없는 급격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열강들의 견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에 대한 미, 영 양국의 협조를 기대하였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한국은 외교권을 가지고 또다른 나라를 끌어드려 갈등을 일으키고 또다른 동아시아의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라 주장하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lt;br /&gt;
&lt;br /&gt;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 관계===&lt;br /&gt;
미국도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의했는데, 한 국가가 국가를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접촉하려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에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영토인 필리핀을 침략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동아시아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육상에서 연일 승전보를 울리고 해전에서는 러시아함대를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가 임박하였다.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주선자로서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로 하여금 일본을 방문토록 하였다.&lt;br /&gt;
도쿄에 방문한 태프트는 가쓰라 다로 일본수상을 방문하였고, 이때 진행된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조선 정치에 미친 영향==&lt;br /&gt;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외교 판도에 변화가 야기될 것이 예상되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미국의 '거중조정'을 부탁하고자 이승만에게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밀서 형식이 아닌 공식 외교서한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주미 공사관 김윤정에게 문서 작성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한다. 김윤정은 이미 일본에 매수되어 있었던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또한, 한국에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를 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행은 명성황후릉에서 무례를 보임으로써 대한제국과의 우호 관계의 끝을 보여주었다.&amp;lt;/br&amp;gt;&lt;br /&gt;
이후 11월 17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은 계속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한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문서와 특사를 파견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그렇게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피탈로의 길이 가속화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관련 영상==&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0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RK3WwP-QgaM&amp;quot; title=&amp;quot;대한제국 식민 지배를 위한 일본의 밑그림, 포츠머스 조약#벌거벗은세계사 |  EP.11 | tvN 210320 방송&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amp;lt;&amp;lt;전체적인 개요와 경과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쓰라 태프트 협약' 참조&amp;gt;&amp;gt;&lt;br /&gt;
&amp;lt;&amp;lt;德川시대 말기 일본의 국내정세에 관하여는 백철현, 식민주의로 점철된 미일한 ‘동맹’, 현장과 광장, 현장과 광장 제 8호, 2023, pp.157-177.&amp;gt;&amp;gt;&lt;br /&gt;
==분류==&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6</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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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21T10:25: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꼐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4%EB%A5%98:%EB%82%AD%EB%A7%8C%EA%B0%80&amp;diff=42065</id>
		<title>분류:낭만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4%EB%A5%98:%EB%82%AD%EB%A7%8C%EA%B0%80&amp;diff=42065"/>
		<updated>2024-06-21T10:24: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새 문서: ==''프로필 틀''== 2023년 가을 즈음 찍은 사진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 style=...&lt;/p&gt;
&lt;hr /&gt;
&lt;div&gt;==''프로필 틀''==&lt;br /&gt;
[[파일:사진.jpeg|200픽셀|섬네일|왼쪽|2023년 가을 즈음 찍은 사진]]&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 style=&amp;quot;width:50%&amp;quot;&lt;br /&gt;
|+&amp;lt;낭만가&amp;gt;&lt;br /&gt;
|-&lt;br /&gt;
| '''이름''' || 박건이&lt;br /&gt;
|-&lt;br /&gt;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amp;lt;ref&amp;gt;부모님과 동생이 사시는 본가는 경기도 용인시이며, 이주에 한 번은 본가에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 '''출생년월''' || 2004. 03. 09. (만 20세)&lt;br /&gt;
|-&lt;br /&gt;
| '''출생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lt;br /&gt;
|- &lt;br /&gt;
| '''본관''' || 밀양박씨 (密陽 朴氏)&amp;lt;ref&amp;gt;형산공파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 '''학력''' || 구성초등학교&amp;lt;ref&amp;gt;본래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중탑초등학교에 다녔으나, 2학년 때 성남 제일초등학교로 전학 갔고 4학년 때 구성초등학교로 다시 전학을 가서 졸업했다.&amp;lt;/ref&amp;gt;, [http://eondong-m.goeyi.kr/eondong-m/sitemap.do 언동중학교], [http://snfl-h.goesn.kr/snfl-h/main.do 성남외국어고등학교] , [http://www.korea.ac.kr 고려대학교]&lt;br /&gt;
|-&lt;br /&gt;
| '''가족''' || 아버지(1976년생), 어머니(1977년생) &amp;lt;ref&amp;gt;빠른 77이다. 그래서 남편과 친구이다.&amp;lt;/ref&amp;gt;, 남동생(2012년생)&lt;br /&gt;
|-&lt;br /&gt;
| '''별명''' || 낭만가&amp;lt;ref&amp;gt;이 위키의 닉네임이기도 하며, 중학교 시절 쓴 시를 보고 짝사랑하던 여자 아이가 붙여준 별명으로, 매우 마음에 들어 대부분의 게임, 사이트 닉네임으로 쓰인다.&amp;lt;/ref&amp;gt;, 진보 전사&amp;lt;ref&amp;gt;&amp;lt;font color=#0000f&amp;gt;선명한 정치성향&amp;lt;/font&amp;gt;(한국 정치의 특정 정당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상적인 성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때문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붙인 별명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 '''MBTI''' || [https://namu.wiki/w/ENFJ ENFJ]&lt;br /&gt;
|-&lt;br /&gt;
| '''사이트''' || [https://blog.naver.com/guni040309 블로그]&amp;lt;ref&amp;gt;현재는 과거 대부분의 게시물을 삭제했고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기타 SNS는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amp;lt;/ref&amp;gt;&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대한민국의 대학생, 사회운동가.&lt;br /&gt;
2023년부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자, 늘 사색하는 걸 즐기는 꼬마 철학자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유아, 어린이 시절'''===&lt;br /&gt;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서 태어났다. 유치원 시절을 보냈으며 초등학교 1학년을 여기서 다녔다. 8살까지만 산 지역이지만, 유아기를 모두 보낸 지역이라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며, 아직 이때의 많은 기억이 남겨져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성남시 중원구로 이사를 가면서 전학을 가게 되었다. 4학년 중반까지 성남제일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이때 사귄 한 친구는 지금까지 연락하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 아버지를 따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http://www.doosanbears.com/ 두산베어스]의 경기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광적인 두산베어스 팬이 되었다. 야구, 포켓몬 딱지, 유희왕 카트에만 빠져 살았던 행복했던 시기이다. 4학년 중반 경기 용인시, 현재 본가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전 학교에서 많은 친구를 사귄 상태였기 때문에 전학 초반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금박 적응하여 5, 6학년 때 반장직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청소년 시절'''===&lt;br /&gt;
중학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언동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중학교 때는 말 그대로 &amp;lt;del&amp;gt;게임 중독자였다.&amp;lt;/del&amp;gt; 오버워치부터 FIFA ONLINE, 리그오브레전드, 배틀그라운드 등 하루에 6시간 이상 PC방 혹은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즐겼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정신을 차리고 외국어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때가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이다. 이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지금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그가 존재했을 것이다. 성남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하고 기숙사생활을 시작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아끼는 친구들을 여럿 만들었고 '''[[Andyungoesto]]'''도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외국어고등학교 특유의 경쟁, 견제 문화와 위선적인 일부 사람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 시기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 등을 보며 본격적으로 정치와 사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관련 공부를 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리고 최인훈의 '광장'을 읽은 것을 계기로 국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경험으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고 진학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학생 시절'''===&lt;br /&gt;
1학년 시절, 여러 대학교 축제와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다니며 그야말로 광란의 시기...를 보냈다. '정치, 법을 쓰는 직업'과 같이 애매했던 꿈이 '판사'로 확고해지며, 로스쿨 진학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 목표를 위해, 그리고 법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연합법학회 [http://cafe.naver.com/lawlaw2020 로우로우]에 지원하여 합격하였고 2024년 1학기 현재 두 학기 째 활동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취미 및 관심사'''==&lt;br /&gt;
박건이는 취미가 다양한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취미 중 그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오랜 기간 해온 것들만 추렸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독서'''===&lt;br /&gt;
독서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이어진 주된 취미이며, 그의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취미이기도 하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때 완독한 최인훈의 '광장'을 보고 철학을 해야겠다고, 국문과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밑의 영상은 광장을 다룬 영상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51&amp;quot; height=&amp;quot;53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_2AFFJTpLAY&amp;quot; title=&amp;quot;[알릴레오 북&amp;amp;#39;s 3회] 광장 / 광장의 첫문장을 아시나요? - 방민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스포츠'''===&lt;br /&gt;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스포츠에 관심이 많지만, 그중 야구와 축구가 독보적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야구'''====&lt;br /&gt;
야구는 [http://www.doosanbears.com/ 두산베어스]의 팬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첫 직관 경기 팀이기도 하며, 아버지가 응원하는 팀이기도 하다. 야구에 대한 그의 사랑은 지극한데, 고등학교 시절 빼고 중학교, 대학교 1학년 시절은 1주일에 직관을 두 번 이상 갈 정도로 야구 직관을 즐긴다. [https://namu.wiki/w/%EB%8D%94%EC%8A%A4%ED%8B%B4%20%EB%8B%88%ED%8D%BC%ED%8A%B8/ 더스틴 니퍼트]의 개인팬이기도 했으나, 그의 은퇴 이후에는 명확한 최애 선수 없이 팀 자체를 응원하는 중이다. 야구 때문에 울기도 할 정도로 찐팬이어서 대학교 2학년 시절에도 야구를 진심으로 즐기고자, 야구 동아리 야호를 만들었고 현재 초대 부장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축구'''====&lt;br /&gt;
야구만큼은 아니지만, 축구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야구 같은 경우에는 국내 리그를 중심으로 본다면, 축구는 해외 리그, 그 중에서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본다. [https://www.manutd.com/ko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팬이며, 경기가 꼭두 새벽에 진행되더라도 맨유의 경기는 꼭 챙겨본다. 따라서, 대학교에서 졸업하기 전 영국 맨체스터에 가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 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K-POP'''===&lt;br /&gt;
스포츠를 좋아하는 만큼, 음악, 특히 K-POP에 대한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이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가 설립한 야호 동아리의 K-POP 애호 소그룹 격인 케호 또한 그가 설립하였고 운영 중이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에이핑크의 [https://namu.wiki/w/Pink%20Blossom?from=Mr.%20Chu#Mr.%20Chu 핑크블라썸 앨범]에 수록된 Mr. Chu라는 곡에 푹 빠져, 에이핑크의 팬이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951&amp;quot; height=&amp;quot;53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SBSeNveqpx0&amp;quot; title=&amp;quot;[Show Champion] 여자친구 - 인트로+귀를 기울이면 (GFRIEND - INTRO+LOVE WHISPER) l EP.239(EN/VI/TW)&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이후 계속해서 에이핑크의 팬이다가 중학교 1학년 시절, 우연히 본 위의 직캠 때문에 그는 완고한 [https://namu.wiki/w/BUDDY 여자친구의 팬클럽 버디]가 되었다. 이때의 팬심은 대단해서, 응원봉, 포토카드 등 여러 굿즈는 닥치는 대로 사들였으며, 앨범을 50장 가까이 구매해 팬싸인회에 가기도 하고 시험 전 날에 팬미팅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친구가 2021년 갑작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고 &amp;lt;ref&amp;gt;자세한 것은 [https://namu.wiki/w/%EC%97%AC%EC%9E%90%EC%B9%9C%EA%B5%AC%20%EC%8F%98%EC%8A%A4%EB%AE%A4%EC%A7%81%20%EC%A0%84%EC%86%8D%EA%B3%84%EC%95%BD%20%EC%A2%85%EB%A3%8C%20%EB%85%BC%EB%9E%80?from=%EC%97%AC%EC%9E%90%EC%B9%9C%EA%B5%AC%20%ED%95%B4%EC%B2%B4 여자친구 전속 계약 해지 논란이 정리된 나무위키 문서]를 참조&amp;lt;/ref&amp;gt;이 때의 갑작스러운 충격에 그는 학업 공부까지 어려움을 겪으며, 인생의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이후 한동안 아무 그룹도 좋아하고 있지 않다가 최근 르세라핌, 키스 오브 라이프, 아일릿 등의 그룹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진로'''==&lt;br /&gt;
플랜 A, B, C는 어느 정도의 우선 순위는 있지만, 언제든 그 우선 순위가 바뀔 수 있다. 세 분야에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꼭 A가 안 되어서 B, 그것도 안 되어서 C라기 보다는 관심의 수준의 정도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A가 가능함에도 갑작스럽게 C에 강한 끌림을 느끼면 우선 순위가 바뀔 수 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플랜 A'''===&lt;br /&gt;
일생 파트에서 다룬 대로, 그는 현재 [https://namu.wiki/w/%ED%8C%90%EC%82%AC?from=%EB%B2%95%EA%B4%80 법관]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약자의 권리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 나라의 법, 법리 적용이 아직까지 완전히 평등하지 못함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고등학교 이후로 계속해서 이 꿈을 가지고 법과 철학 등을 공부해왔고 또 그러한 과목에 흥미를 느껴왔기 때문에 법관이라는 꿈과 비교적 명확한 진로를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이 길을 가게 된다면, 신념을 바탕으로 한 여러 판결 등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이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플랜 B'''===&lt;br /&gt;
그러나 생각이 바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대안을 여럿 마련해 두는 그의 신중한 성격과 다양한 관심사로 인해 그는 플랜 B와 플랜 C까지 마련해 놓았다. 플랜 B의 경우 마케팅 관련 회사원이 되는 것이다. 법학, 철학, 문학 만큼은 아니지만, 마케팅에도 관심을 가져 왔고 성격 상 마케팅이나 영업을 잘 할 거 같다는 추천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마련한 진로이다. 이를 위해 곧 있을 이중전공 지원에서 경영학과에 지원하기로 마음 먹고 준비 중인 상태이다. 만약 이 길을 가게 된다면, 마케팅 관련 대기업에 취직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플랜 C'''===&lt;br /&gt;
플랜 C의 경우 국문학도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고전 문학 교수님께서 그가 [[디지털 인문학 입문]]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디지털 인문학과 관련하여 대학원에서 더 깊게 공부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며 간접적으로 나마 제의 하셨고, 디지털 인문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어느 정도의 흥미를 느끼기에 하나의 플랜이 되었다. 만약 이 길을 가게 된다면,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디지털 인문학을 깊게 공부하고 컴퓨터 관련 공부도 하면서 디지털 인문학도가 되고자 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발자취를 표현한 구글 지도''==&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amp;quot;https://www.google.com/maps/d/embed?mid=1yPCUKiOB4INk89g1uLHAjUhmwUgJF4E&amp;amp;ehbc=2E312F&amp;quot; width=&amp;quot;64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지도에 표시된 모든 장소는 그의 인생이 남긴 발자취이자, 그에게 강한 영향을 미쳐온 곳들이며, 그가 인생의 발자취가 되도록 희망하는 곳들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드러나는 곳들로, 지도를 따라가며 그의 인생을 좇아볼 것을 추천한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4</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4"/>
		<updated>2024-06-21T10:21: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미국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꼐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분류:개항부터_현재까지의_정치_교류]] [[분류:낭만가]]&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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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참고문헌==&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3</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3"/>
		<updated>2024-06-21T10:21: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미국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꼐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참고문헌==&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2</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2"/>
		<updated>2024-06-21T10:19: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미국'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꼐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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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참고문헌==&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1</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1"/>
		<updated>2024-06-21T10:19: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미국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꼐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참고문헌==&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0</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60"/>
		<updated>2024-06-21T10:18: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꼐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사진 첨부   ※ 수업에 했던 포스트잇 사진 가능&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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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부&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여==&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 6분반 정치교류조&lt;br /&gt;
|+ style=&amp;quot;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팀원 || 기여내용&lt;br /&gt;
|-&lt;br /&gt;
| [[낭만가]] || 주제 선정, 전체적인 내용 설정, 미국 문서 작성, 관계 설정 및 작성, 동기 및 결론 작성, 발표&lt;br /&gt;
|-&lt;br /&gt;
| [[텀블러]] || 전체적인 내용 구상 기여, 전체적인 위키 문서 틀 작성, 온톨로지 작성, 일본 관련 문서 작성, 역할분담 작성, 발표용 ppt 제작&lt;br /&gt;
|-&lt;br /&gt;
| [[소금토마토]] || 추가예정&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정치교류사'''==&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NfjKF8MdQEGWKD4zQXAOvIxaqYsUcQGp7kQ_QSU4sq4&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참고문헌==&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59</id>
		<title>개항부터 현재까지의 정치 교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9C%ED%95%AD%EB%B6%80%ED%84%B0_%ED%98%84%EC%9E%AC%EA%B9%8C%EC%A7%80%EC%9D%98_%EC%A0%95%EC%B9%98_%EA%B5%90%EB%A5%98&amp;diff=42059"/>
		<updated>2024-06-21T10:18: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낭만가: /*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font size='5'&amp;gt;'''개항부터 현재까지 한국과 타국의 정치 교류'''&amp;lt;/font&amp;g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기획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조원 두 명이 합쳐져 조를 형성하였다. '교류’와 ‘정치’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여 절충안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획 목적===&lt;br /&gt;
&amp;lt;br/&amp;gt;&lt;br /&gt;
 정치 교류사를 되돌아보며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 흐름을 바라보고자 함. 이를 통해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미친 영향을 통시적으로 알아보고 주요 사건의 결과도 보고자 함. 특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우라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제안함.&lt;br /&gt;
&amp;lt;/br&amp;gt;&lt;br /&gt;
===기대하는 바===&lt;br /&gt;
&amp;lt;br/&amp;gt;&lt;br /&gt;
 타국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일련의 탐구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lt;br /&gt;
&amp;lt;br/&amp;gt;&lt;br /&gt;
==국가별 통시적 설명==&lt;br /&gt;
&amp;lt;br/&amp;gt;&lt;br /&gt;
===일본===&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미국은 현재 한국의 최우방국이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대립 국가가 있는 지금, 미국은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고작 80년도 되지 않았다. 80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 속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처음 조우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주요 사건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의 첫 조우와 무시''''====&lt;br /&gt;
&lt;br /&gt;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첫 관심은 1834년 로비츠 아시아 특파원의 보고이다. 이때 로비츠는 &amp;quot;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amp;quot;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되던 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057&amp;amp;cid=46623&amp;amp;categoryId=46623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의 승리에도 조선은 개항하지 않았고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 때야 개항하게 된다. 개항 이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조선과 미국은 본격적인 교류를 실시한다. &lt;br /&gt;
그러나 일본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조선과 미국은 단교한다. 이후 미국은 조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묵인하거나 일본을 두둔하게 되고 조선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1910년 나라를 빼앗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강점기에서 희망을 주다''''====&lt;br /&gt;
&lt;br /&gt;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가 발표되고 식민지 조선은 이 선언에 희망을 가지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 3.1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비록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lt;br /&gt;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적으로 만나게 되고 전후 일본의 상황을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 그러나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직후 밀접한 관계가 되다'''====&lt;br /&gt;
&lt;br /&gt;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미군정 시절,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결국 이승만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143&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정읍 발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된다. 이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43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은 UN연합군과 함께 남한을 위해 참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화통일을 막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안보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한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해방 후 혼란기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과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케네디 시대를 맞이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했던 케네디는 박정희 정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 정권이 바뀐 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정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은 경제 성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박정희 독재 체제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431&amp;amp;cid=62048&amp;amp;categoryId=62048 10.26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지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343 6월 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노태우의 6.29 선언 발표에 기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lt;br /&gt;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다 노무현 정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46&amp;amp;cid=43667&amp;amp;categoryId=43667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해빙 무드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북미회담 결렬]]된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을 들이며,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과 미국은 밀접한 동맹국이니만큼 한미관계는 다른 여느 외교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히며, 한미관계의 조율 여부가 그 정부의 외교적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미국이 이권에 따라 때로는 우리를 무시하고 저버린 적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관꼐를 원활하게 유지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너무 미국에게만 종속되지 않도록 자주적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꼐의 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러시아===&lt;br /&gt;
&amp;lt;br/&amp;gt;&lt;br /&gt;
===중국===&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re&amp;gt;&lt;br /&gt;
{{NetworkGraph | title=정치교류.lst}}&lt;br /&gt;
&amp;lt;/pr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나라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나라들이다. 각 문서에 각 나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사건 || 주요 사건들을 노드로 만들었다. 각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각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갑신정변_1884년]] [[을사조약]] [[한일기본조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임오군란]] [[톈진 조약]]&amp;l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한국전쟁]] [[코로나19]] [[아관파천]]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냉전 종식]] [[가쓰라-태프트 밀약]] [[민족자결주의 선언]] [[미군정]] [[베트남 전쟁]] [[북미정상회담 결렬]] &lt;br /&gt;
|-&lt;br /&gt;
|시기|| 시기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노드를 만들었다.  || [[개항부터 국권피탈]]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leads'''&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해당 나라가 관련된 사건을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운요호사건&lt;br /&gt;
***#일본 → 강화도 조약&lt;br /&gt;
***#일본 → 갑신정변_1885년&lt;br /&gt;
***#일본 → 을사조약&lt;br /&gt;
***#일본 → 한일기본조약&lt;br /&gt;
***#일본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일본 →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lt;br /&gt;
***#일본 → 임오군란&lt;br /&gt;
***#일본 → 톈진 조약&lt;br /&gt;
***#일본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중국 → 갑신정변&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임오군란&lt;br /&gt;
***#중국 → 톈진 조약&lt;br /&gt;
***#중국 →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중국 →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lt;br /&gt;
***#중국 → 카이로 회담&lt;br /&gt;
***#중국 → 한국 전쟁&lt;br /&gt;
***#중국 → 코로나19&lt;br /&gt;
***#중국 → 냉전 종식&lt;br /&gt;
***#러시아 → 한국 전쟁&lt;br /&gt;
***#러시아 → 아관파천&lt;br /&gt;
***#러시아 →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lt;br /&gt;
***#러시아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가쓰라-태프트 밀약&lt;br /&gt;
***#미국 → 민족자결주의 선언&lt;br /&gt;
***#미국 → 카이로 회담&lt;br /&gt;
***#미국 → 한국 전쟁&lt;br /&gt;
***#미국 → 냉전 종식&lt;br /&gt;
***#미국 → 미군정&lt;br /&gt;
***#미국 → 베트남 전쟁&lt;br /&gt;
***#미국 → 북미정상회담 결렬&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lt;br /&gt;
***설명: 나라와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일본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일본 → 일제강점기&lt;br /&gt;
***#일본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일본 → 6공화국 이후&lt;br /&gt;
***#중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 → 일제강점기&lt;br /&gt;
***#중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중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러시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러시아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러시아 → 6공화국 이후&lt;br /&gt;
***#미국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미국 → 일제강점기&lt;br /&gt;
***#미국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국 → 6공화국 이후&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green&amp;quot;&amp;gt;'''happenedAt'''&amp;lt;/span&amp;gt;&lt;br /&gt;
***설명: 해당 사건과 특정 시기를 연결한다.&lt;br /&gt;
***해당노드: &lt;br /&gt;
***#운요호 사건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강화도 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갑신정변_1884년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가쓰라-태프트 밀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아관파천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임오군란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톈진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을사조약 → 개항부터 국권피탈&lt;br /&gt;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민족자결주의 선언 → 일제강점기&lt;br /&gt;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 일제강점기&lt;br /&gt;
***#러시아의 독립운동 지원 → 일제강점기&lt;br /&gt;
***#카이로 회담 → 일제강점기&lt;br /&gt;
***#한일기본조약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미군정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베트남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한국 전쟁 →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lt;br /&gt;
***#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 6공화국 이후&lt;br /&gt;
***#코로나19 → 6공화국 이후&lt;br /&gt;
***#냉전 종식 → 6공화국 이후&lt;br /&gt;
***#북미정상회담 결렬 → 6공화국 이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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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출한 결론'''==&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국내 정세 안정화 선행 필요성'''===&lt;br /&gt;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안정되기 전까지는 타국이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타국의 정치적 영향도, 타국이 영향을 준 경우도 줄었다. 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타국이 영향을 줘서 흔들릴 만큼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없어졌고 따라서 타국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국의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으로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즉, 국제 사회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희가 다룬 네 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때론 우호적이기도 때론 적대적이기도 했는데, 그 관계의 이면에는 늘 치밀한 각국의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타국은 우리 나라가 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용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피탈 당할 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를 너무 믿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 움직인 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외교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혼란을 막으면서 우리 문제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동시에 실리적인 외교 방안을 모색하여 평화와 국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아쉬운 점과 개선 점'''===&lt;br /&gt;
&lt;br /&gt;
주제 자체를 양이 너무 많고 내용도 어려운 주제로 정한 데다 잘 하고 싶은 의욕으로 많은 문서를 만들고자 한 탓에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위키로만 할 수 있는 여러 툴이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또 위키 관련 활동을 한다면, 시간과 수준에 알맞는 적절한 주제, 적절한 개수의 노드를 미리 설정해서 자료 조사와 내용 작성에만 할애했던 시간을 위키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툴을 활용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yellow; margin: 0; border: 3px solid yellow;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참고문헌==&lt;/div&gt;</summary>
		<author><name>낭만가</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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