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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_edu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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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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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to2iL6sENfs?si=uityJwDuFSlt7ncF&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논문 -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 &amp;lt;p&amp;gt;&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 &amp;lt;p&amp;gt;&lt;br /&gt;
논문 - &amp;lt;구운몽&amp;gt;의 의미 구조 연구, 김병국, 건국대학겨, 어문연구학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각주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33</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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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4:10: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to2iL6sENfs?si=uityJwDuFSlt7ncF&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논문 -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 &amp;lt;p&amp;gt;&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 &amp;lt;p&amp;gt;&lt;br /&gt;
논문 - &amp;lt;구운몽&amp;gt;의 의미 구조 연구, 김병국, 건국대학겨, 어문연구학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각주 ==&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32</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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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4:09:5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to2iL6sENfs?si=uityJwDuFSlt7ncF&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논문 -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 &amp;lt;p&amp;gt;&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 &amp;lt;p&amp;gt;&lt;br /&gt;
논문 - &amp;lt;구운몽&amp;gt;의 의미 구조 연구, 김병국, 건국대학겨, 어문연구학회&lt;br /&gt;
&lt;br /&gt;
&lt;br /&gt;
== 각주 ==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31</id>
		<title>구운몽ᐧ༚̮ᐧ</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31"/>
		<updated>2025-06-16T04:09: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to2iL6sENfs?si=uityJwDuFSlt7ncF&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논문 -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 &amp;lt;p&amp;gt;&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 &amp;lt;p&amp;gt;&lt;br /&gt;
논문 - &amp;lt;구운몽&amp;gt;의 의미 구조 연구, 김병국, 건국대학겨, 어문연구학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30</id>
		<title>구운몽ᐧ༚̮ᐧ</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30"/>
		<updated>2025-06-16T04:09: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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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논문 -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논문 - &amp;lt;구운몽&amp;gt;의 의미 구조 연구, 김병국, 건국대학겨, 어문연구학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9</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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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4:08: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to2iL6sENfs?si=uityJwDuFSlt7ncF&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8</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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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내용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또한, 현실-꿈-현실이라는 다층적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 윤회라는 불교적 사유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to2iL6sENfs?si=uityJwDuFSlt7ncF&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세가지 흐름으로 정리된다. 현실에서의 성진의 번뇌와 꺠우침을 통한 구도생할, 꿈속에서의 양소유의 여덞 미인과의 사랑 이야기 및 입신양명을 성취한 내용 그리고 천상계로의 귀환 및 육관대사의 설파이다. 즉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amp;lt;p&amp;gt; &lt;br /&gt;
구운몽의 구성상의 또 다른 특징은 김만중이 '''복선이라는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진이 작품 초반부에 저지른 탈서으로 인해 풍도옥으로 압송되고 지상계로 보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육관대사는 ”네가 이곳에 돌아오고져 할진대 내가 친히 다려올지니“라는 구절을 통해 그의 복귀를 암시하고 성진이 지상계에서 보내는 삶의 말미 쯤 “ 불생불명하는 도를 얻어 인간의 괴로움을 벗고저 하나 “ 라는 구절을 통해 불교에 귀의하고자 하는 뜻을 드러내자 육관대사가 곧바로 그를 천상계로 데려옴으로써 복선을 수집한다.&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7</id>
		<title>구운몽ᐧ༚̮ᐧ</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7"/>
		<updated>2025-06-16T04:07: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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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또한, 현실-꿈-현실이라는 다층적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 윤회라는 불교적 사유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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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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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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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세가지 흐름으로 정리된다. 현실에서의 성진의 번뇌와 꺠우침을 통한 구도생할, 꿈속에서의 양소유의 여덞 미인과의 사랑 이야기 및 입신양명을 성취한 내용 그리고 천상계로의 귀환 및 육관대사의 설파이다. 즉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구운몽의 구성상의 또 다른 특징은 김만중이 복선이라는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진이 작품 초반부에 저지른 탈서으로 인해 풍도옥으로 압송되고 지상계로 보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육관대사는 ”네가 이곳에 돌아오고져 할진대 내가 친히 다려올지니“라는 구절을 통해 그의 복귀를 암시하고 성진이 지상계에서 보내는 삶의 말미 쯤 “ 불생불명하는 도를 얻어 인간의 괴로움을 벗고저 하나 “ 라는 구절을 통해 불교에 귀의하고자 하는 뜻을 드러내자 육관대사가 곧바로 그를 천상계로 데려옴으로써 복선을 수집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6</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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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3:56: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to2iL6sENfs?si=uityJwDuFSlt7ncF&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5</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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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to2iL6sENfs?si=uityJwDuFSlt7ncF&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4</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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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3:18: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amp;lt;ref&amp;gt;물론, 이것은 구운몽 같이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 한글로 창작되었길 바라는 학자들의 바램이 일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3</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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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2</id>
		<title>구운몽ᐧ༚̮ᐧ</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2"/>
		<updated>2025-06-16T03:06: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1</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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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3:05: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20</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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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3:00: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였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19</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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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2:39:5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218</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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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lt;br /&gt;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lt;br /&gt;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연정 구운몽&amp;gt;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 &amp;lt;몽자류 소설&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189</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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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2:27: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amp;lt;p&amp;gt;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amp;lt;ref&amp;gt;몽유록계 소설 역시 ‘몽(夢)’자가 붙지만 몽자류 소설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amp;lt;/ref&amp;gt;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amp;lt;p&amp;gt;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amp;lt;p&amp;gt;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amp;lt;ref&amp;gt;조신지몽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160</id>
		<title>구운몽ᐧ༚̮ᐧ</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160"/>
		<updated>2025-06-16T02:12: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amp;lt;p&amp;gt; &lt;br /&gt;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9134</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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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2:00: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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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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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는 인생무상&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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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amp;gt;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amp;lt;p&amp;gt;&lt;br /&gt;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는 인생무상&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8623</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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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9T06:22: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배경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의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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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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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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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의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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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8620</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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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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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의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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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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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amp;gt;입몽-&amp;gt;지상계-&amp;gt;각몽-&amp;gt;천상계의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amp;lt;ref&amp;gt;마찬가지로 환몽구조를 보여주는 몽유록류 고전소설과의 차이다. 몽유록에서는 주인공이 입몽하지만 동일한 자아를 유지한다.&amp;lt;/ref&amp;gt;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한다. &amp;lt;ref&amp;gt;이 부분에서 장자의 &amp;lt;호접몽&amp;gt;을 인용하기도 한다&amp;lt;/ref&amp;gt;&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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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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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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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amp;lt;사씨남정기&amp;gt;&amp;lt;ref&amp;gt;이 작품은 숙종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amp;lt;/ref&amp;gt;를 집필하였다.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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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배경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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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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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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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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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5%AC%EC%9A%B4%EB%AA%BD%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8601</id>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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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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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김만중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lt;br /&gt;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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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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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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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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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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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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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김만중(金萬重)&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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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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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운몽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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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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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ㄱㅇㅁ.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lt;br /&gt;
|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lt;br /&gt;
&amp;lt;p&amp;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lt;br /&gt;
[[파일:ㄱㅁㅈ.png]]&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637년 3월 6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692년 6월 14일&lt;br /&gt;
|-&lt;br /&gt;
| '''호''' || 서포(西浦)&lt;br /&gt;
|-&lt;br /&gt;
| '''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문신&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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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하일기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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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ㅇㅎㅇㄱ.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열하일기&lt;br /&gt;
|'''장르''' || 여행기&lt;br /&gt;
|-&lt;br /&gt;
| '''작가''' || 박지원&lt;br /&gt;
|-&lt;br /&gt;
| '''시대''' || 1780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 여행기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접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문학작품으로써의 여행기는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또다른 여행기로 1712년 김창업이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사행을 다녀온 후 당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상세히 기록한 '''가재연행록''' 등이 존재한다. &lt;br /&gt;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 외교 사행이나 이국 풍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떠나 ‘타자’와 마주하며, 조선이라는 체제와 문명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탐색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다. 여행기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행기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ㅈㅇ.jpg|ㅣ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805년 12월 5일&lt;br /&gt;
|-&lt;br /&gt;
| '''호''' || 연암(燕巖)&amp;lt;ref&amp;gt;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이다&amp;lt;/ref&amp;gt;,연상(煙湘)&lt;br /&gt;
|-&lt;br /&gt;
|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amp;lt;ref&amp;gt;열하일기 내부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amp;lt;/ref&amp;gt;&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실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정통 노론 가문의 양반&amp;lt;ref&amp;gt;실학자라는 점, 풍자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미천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amp;lt;/ref&amp;gt;으로 소설, 철학, 천문학, 농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amp;lt;p&amp;gt; 예조, 공조, 호조,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대사간에 임명되어 사도세자의 스승을 맡기도 했던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 1685~1760)의 셋째 아들 박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으며 처삼촌이자 성호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보인 그는 18세 무렵에 &amp;lt;광문자전(廣文者傳)&amp;gt;을 지었으며 1757년 &amp;lt;민옹전(閔翁傳)&amp;gt;을 지었고 1767년까지 &amp;lt;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amp;gt;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부터 양반 사회의 무능함, 위선 등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희천이 1771년 청나라 태학사(太學士) 주린(朱璘)이 1696년 편찬한 &amp;lt;명기집략(明紀輯略)&amp;gt;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자, 크게 상심한 후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금(柳琴),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희경(李喜慶)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라는 학풍, 문풍을 이룩한다. 청나라 방문 이후, 50살의 나이로 1786년 처음 벼슬에 올라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1790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제릉령(齊陵令), 1791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과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으며 자송문을 바치라는 명을 받은 이후에도 1796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와 의릉령(懿陵令),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에 응해 &amp;lt;과농소초(課農小抄)&amp;gt;(&amp;lt;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amp;gt;를 부록으로 붙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 생산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박지원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8세에 눈을 감았는데 손자가 조선 후기 개화파 형성의 거목인 환재 박규수. 사후 부여받은 시호는 문도(文度)로 순종 융희 3년(1909) 8월 20일 정약용, 권돈인, 남이 등과 함께 시호를 받았다.&lt;br /&gt;
안의현감 시절에는 북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시절의 경험은 『과농소초(課農小抄)』 ·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 『안설(按說)』 등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이 남긴 저술 중에서 특히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위의 책들은 박지원이 추구하던 현실 개혁의 포부를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작업의 하나이다. 박지원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 한 것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애착을 보인 결과였다. 이러한 관심은 홍대용과의 교유에서 보이는 우주론의 심화를 위한 작업이며, 실제로 북경을 여행할 때 천주당이나 관상대를 구경하면서 서양인을 만나고 싶어하였다.&lt;br /&gt;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박지원이 펼친 우주의 질서는 당시의 중국학자들도 놀라게 했으며 이는 박지원이 가진 세계관의 확대와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당시에 풍미하던 주자학(朱子學)의 사변적 세계에만 침잠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이론적 세계의 현실 적용, 곧 유학의 본질 속에서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lKb0PQI6MWw?si=xRUjjqlr5jTdS0Dg&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 &amp;lt;p&amp;gt;&lt;br /&gt;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에 조선은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를 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연암이 속한 사행단은 ‘진하 겸 사은을 위한 별사’라는 명칭을 지녔다. 진하는 황제의 생일이나 즉위 같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이고, 사은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려나 조치를 감사하기 위한 사행이다. 이 특별한 사행의 목적은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함과 동시에, 1년 전 조선사행의 실수로 북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청의 관용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
사행단의 총 인원은 270명. 『열하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함께 사행을 떠난 노이점이 쓴 『수사록』에는 “압록강을 건넌 사람은 총 270명이고 말은 194필이다”라고 기록돼 있다.&lt;br /&gt;
이 사행단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선진문물과 접촉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함을 깨닫고 귀국 후  &amp;lt;열하일기(熱河日記)&amp;gt;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1780년 당시 박지원은 아무런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청나라 파견단에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견단의 사신단장으로 뽑힌 박명원이 바로 박지원의 8촌형이었던 것이었고, 박지원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사신들이 자신을 호위할 군관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정사는 4명을, 부사는 3명, 서장관은 1명을 고를 수 있었다. 박명원은 잘 알고 지내던 무관을 지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전도 유망한 선비를 지명해도 되었기에 8촌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자제군관은 일종의 개인 수행원으로 공식 사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적어서, 중국 선비들과 교류하거나 유람을 하거나 서적 등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위로 박지원이 청의 문물, 문화 등과 매우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열하일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이었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amp;lt;ref&amp;gt;오늘 날의 허베이성 청더&amp;lt;/ref&amp;gt;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었다. 여름의 베이징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성 너머 북쪽에 황제 전용 여름 별장인 피서 산장이 있다.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amp;lt;열하일기&amp;gt;란 제목이 붙여졌다.&lt;br /&gt;
원래 조선 사신단은 건륭제가 연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연경에서 구색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조선 사신은 한 명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결국 열하까지 갔다 왔다. &lt;br /&gt;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 지 15일 만에 요양(遼陽)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7월 10일 십리하(十里河)를 출발하여 판교보(板橋堡), 장성점(長盛店), 사하보(沙河堡)를 거쳐 심양(瀋陽)에 이르렀다. 박지원은 심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거류하(巨流河)를 거쳐 14일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7월 15일에 신광녕(新廣寧)을 거쳐 산해관(山海關)까지 9일이 걸렸으며,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11일이 걸렸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약 2,300여 리로 긴 여정이었다.&lt;br /&gt;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열하로 가는 길에는 부사 서장관과 역관 3명, 비장 4명, 하인 등 모두 74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가 자주 와 시간이 지체되어 사신단 일행은 하룻밤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며 서두르기도 하였다. 말이 더위에 쓰러지고, 일행 역시 더위를 먹을 정도로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총 26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열하까지의 여정, 여행에서의 인상 깊었던 점, 가지각색의 체험, 청나라 사람들과의 필담 등이 담겨 있다. &lt;br /&gt;
큰 틀에서 열하일기는 날짜 별로 서술이 되어있다. 의주에서 연경까지를 도강록(渡江錄), 성경잡지(盛京雜識), 일신수필(馹汛隨筆), 관내정사(關內程史)로 나누어 기록했으며, 연경에서 열하까지의 여정은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우선, 도강록에는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압록강에서 요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7월 10일부터 7월 14일까지의 기록인 성경잡지에서는 조선 유학자들의 화이론과 춘추대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이용후생하는 중국인들의 자세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amp;lt;p&amp;gt; 열하일기에는 주제별로 항목을 정해 청 학자들과의 교류내용과 정책에 대한 논평, 경험한 것들에 대한 박지원의 생각이 들어있기도 하다. 망양록(忘羊錄)에서는 청 학자들과 음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심세편(審勢篇)에서는 조선사람의 다섯 가지 허망된 일[五妄]과 중국 선비들의 세 가지 어려운 일[三難] 등에 대해 상호 토론하였다. 혹정필담(鵠汀筆談)에서는 윤가전(尹嘉銓)과 천문 및 역법, 서학(西學) 등에 관해 얘기하였고, 찰십륜포(札什倫布), 반선시말(班禪始末), 황교문답(黃敎問答)에서는 열하에서 체험한 반선(班禪)에 대한 내용과 건륭제의 반선 정책, 청과 주변 이민족이 지닌 각종 종교에 대해 정리하였다.&amp;lt;p&amp;gt;&lt;br /&gt;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열하일기의 가장 주요한 주제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이라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은 청나라 마을의 커다란 가옥과 반듯한 거리, 벽돌로 쌓은 담장, 수레, 책문의 규모나 시설에 놀라움을 표현하고 마을 내 우물의 모습, 물을 깃는 방법, 기와를 잇는 방법, 벽돌을 사용하는 데 이로운 점, 가마제도 등 청 사람들의 사소한 생활 모습까지도 세세히 기록하며 조선 백성들이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 등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함과 동시에 청의 선진문물이 가진 실용성과 효용성에 주목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열하일기의 많은 부분은 청나라 사람들과의 필담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청의 학자, 상인, 농민 등 다양한 계층과 교류함으로써 당시 조선에 팽배했던 반청사상에서 벗어나 청의 문화를 사실적,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연암을 따라, 사유의 자취를 걷다(1) 연암, 조선을 넘어 청나라로 - 김경민·곽영군 기자 https://www.hynews.kr/news/view.php?idx=74157 &amp;lt;p&amp;gt;&lt;br /&gt;
우리역사넷 - 열하일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735&amp;amp;code=kc_age_3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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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lt;br /&gt;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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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김만중&lt;br /&gt;
|-&lt;br /&gt;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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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불교, 도교 사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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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lt;br /&gt;
&lt;br /&gt;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amp;lt;옥루몽&amp;gt;, &amp;lt;옥련몽&amp;gt;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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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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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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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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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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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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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 여행기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접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문학작품으로써의 여행기는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또다른 여행기로 1712년 김창업이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사행을 다녀온 후 당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상세히 기록한 '''가재연행록''' 등이 존재한다. &lt;br /&gt;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 외교 사행이나 이국 풍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떠나 ‘타자’와 마주하며, 조선이라는 체제와 문명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탐색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다. 여행기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행기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ㅈㅇ.jpg|ㅣ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805년 12월 5일&lt;br /&gt;
|-&lt;br /&gt;
| '''호''' || 연암(燕巖)&amp;lt;ref&amp;gt;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이다&amp;lt;/ref&amp;gt;,연상(煙湘)&lt;br /&gt;
|-&lt;br /&gt;
|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실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정통 노론 가문의 양반&amp;lt;ref&amp;gt;실학자라는 점, 풍자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미천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amp;lt;/ref&amp;gt;으로 소설, 철학, 천문학, 농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amp;lt;p&amp;gt; 예조, 공조, 호조,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대사간에 임명되어 사도세자의 스승을 맡기도 했던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 1685~1760)의 셋째 아들 박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으며 처삼촌이자 성호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보인 그는 18세 무렵에 &amp;lt;광문자전(廣文者傳)&amp;gt;을 지었으며 1757년 &amp;lt;민옹전(閔翁傳)&amp;gt;을 지었고 1767년까지 &amp;lt;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amp;gt;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부터 양반 사회의 무능함, 위선 등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희천이 1771년 청나라 태학사(太學士) 주린(朱璘)이 1696년 편찬한 &amp;lt;명기집략(明紀輯略)&amp;gt;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자, 크게 상심한 후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금(柳琴),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희경(李喜慶)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라는 학풍, 문풍을 이룩한다. 청나라 방문 이후, 50살의 나이로 1786년 처음 벼슬에 올라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1790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제릉령(齊陵令), 1791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과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으며 자송문을 바치라는 명을 받은 이후에도 1796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와 의릉령(懿陵令),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에 응해 &amp;lt;과농소초(課農小抄)&amp;gt;(&amp;lt;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amp;gt;를 부록으로 붙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 생산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박지원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8세에 눈을 감았는데 손자가 조선 후기 개화파 형성의 거목인 환재 박규수. 사후 부여받은 시호는 문도(文度)로 순종 융희 3년(1909) 8월 20일 정약용, 권돈인, 남이 등과 함께 시호를 받았다.&lt;br /&gt;
안의현감 시절에는 북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시절의 경험은 『과농소초(課農小抄)』 ·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 『안설(按說)』 등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이 남긴 저술 중에서 특히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위의 책들은 박지원이 추구하던 현실 개혁의 포부를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작업의 하나이다. 박지원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 한 것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애착을 보인 결과였다. 이러한 관심은 홍대용과의 교유에서 보이는 우주론의 심화를 위한 작업이며, 실제로 북경을 여행할 때 천주당이나 관상대를 구경하면서 서양인을 만나고 싶어하였다.&lt;br /&gt;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박지원이 펼친 우주의 질서는 당시의 중국학자들도 놀라게 했으며 이는 박지원이 가진 세계관의 확대와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당시에 풍미하던 주자학(朱子學)의 사변적 세계에만 침잠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이론적 세계의 현실 적용, 곧 유학의 본질 속에서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lKb0PQI6MWw?si=xRUjjqlr5jTdS0Dg&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 &amp;lt;p&amp;gt;&lt;br /&gt;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에 조선은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를 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연암이 속한 사행단은 ‘진하 겸 사은을 위한 별사’라는 명칭을 지녔다. 진하는 황제의 생일이나 즉위 같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이고, 사은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려나 조치를 감사하기 위한 사행이다. 이 특별한 사행의 목적은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함과 동시에, 1년 전 조선사행의 실수로 북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청의 관용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
사행단의 총 인원은 270명. 『열하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함께 사행을 떠난 노이점이 쓴 『수사록』에는 “압록강을 건넌 사람은 총 270명이고 말은 194필이다”라고 기록돼 있다.&lt;br /&gt;
이 사행단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선진문물과 접촉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함을 깨닫고 귀국 후  &amp;lt;열하일기(熱河日記)&amp;gt;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1780년 당시 박지원은 아무런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청나라 파견단에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견단의 사신단장으로 뽑힌 박명원이 바로 박지원의 8촌형이었던 것이었고, 박지원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사신들이 자신을 호위할 군관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정사는 4명을, 부사는 3명, 서장관은 1명을 고를 수 있었다. 박명원은 잘 알고 지내던 무관을 지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전도 유망한 선비를 지명해도 되었기에 8촌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자제군관은 일종의 개인 수행원으로 공식 사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적어서, 중국 선비들과 교류하거나 유람을 하거나 서적 등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위로 박지원이 청의 문물, 문화 등과 매우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열하일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이었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amp;lt;ref&amp;gt;오늘 날의 허베이성 청더&amp;lt;/ref&amp;gt;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었다. 여름의 베이징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성 너머 북쪽에 황제 전용 여름 별장인 피서 산장이 있다.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amp;lt;열하일기&amp;gt;란 제목이 붙여졌다.&lt;br /&gt;
원래 조선 사신단은 건륭제가 연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연경에서 구색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조선 사신은 한 명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결국 열하까지 갔다 왔다. &lt;br /&gt;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 지 15일 만에 요양(遼陽)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7월 10일 십리하(十里河)를 출발하여 판교보(板橋堡), 장성점(長盛店), 사하보(沙河堡)를 거쳐 심양(瀋陽)에 이르렀다. 박지원은 심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거류하(巨流河)를 거쳐 14일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7월 15일에 신광녕(新廣寧)을 거쳐 산해관(山海關)까지 9일이 걸렸으며,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11일이 걸렸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약 2,300여 리로 긴 여정이었다.&lt;br /&gt;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열하로 가는 길에는 부사 서장관과 역관 3명, 비장 4명, 하인 등 모두 74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가 자주 와 시간이 지체되어 사신단 일행은 하룻밤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며 서두르기도 하였다. 말이 더위에 쓰러지고, 일행 역시 더위를 먹을 정도로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총 26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열하까지의 여정, 여행에서의 인상 깊었던 점, 가지각색의 체험, 청나라 사람들과의 필담 등이 담겨 있다. &lt;br /&gt;
큰 틀에서 열하일기는 날짜 별로 서술이 되어있다. 의주에서 연경까지를 도강록(渡江錄), 성경잡지(盛京雜識), 일신수필(馹汛隨筆), 관내정사(關內程史)로 나누어 기록했으며, 연경에서 열하까지의 여정은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우선, 도강록에는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압록강에서 요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7월 10일부터 7월 14일까지의 기록인 성경잡지에서는 조선 유학자들의 화이론과 춘추대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이용후생하는 중국인들의 자세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amp;lt;p&amp;gt; 열하일기에는 주제별로 항목을 정해 청 학자들과의 교류내용과 정책에 대한 논평, 경험한 것들에 대한 박지원의 생각이 들어있기도 하다. 망양록(忘羊錄)에서는 청 학자들과 음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심세편(審勢篇)에서는 조선사람의 다섯 가지 허망된 일[五妄]과 중국 선비들의 세 가지 어려운 일[三難] 등에 대해 상호 토론하였다. 혹정필담(鵠汀筆談)에서는 윤가전(尹嘉銓)과 천문 및 역법, 서학(西學) 등에 관해 얘기하였고, 찰십륜포(札什倫布), 반선시말(班禪始末), 황교문답(黃敎問答)에서는 열하에서 체험한 반선(班禪)에 대한 내용과 건륭제의 반선 정책, 청과 주변 이민족이 지닌 각종 종교에 대해 정리하였다.&amp;lt;p&amp;gt;&lt;br /&gt;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열하일기의 가장 주요한 주제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이라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은 청나라 마을의 커다란 가옥과 반듯한 거리, 벽돌로 쌓은 담장, 수레, 책문의 규모나 시설에 놀라움을 표현하고 마을 내 우물의 모습, 물을 깃는 방법, 기와를 잇는 방법, 벽돌을 사용하는 데 이로운 점, 가마제도 등 청 사람들의 사소한 생활 모습까지도 세세히 기록하며 조선 백성들이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 등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함과 동시에 청의 선진문물이 가진 실용성과 효용성에 주목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열하일기의 많은 부분은 청나라 사람들과의 필담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청의 학자, 상인, 농민 등 다양한 계층과 교류함으로써 당시 조선에 팽배했던 반청사상에서 벗어나 청의 문화를 사실적,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연암을 따라, 사유의 자취를 걷다(1) 연암, 조선을 넘어 청나라로 - 김경민·곽영군 기자 https://www.hynews.kr/news/view.php?idx=74157 &amp;lt;p&amp;gt;&lt;br /&gt;
우리역사넷 - 열하일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735&amp;amp;code=kc_age_3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7%B4%ED%95%98%EC%9D%BC%EA%B8%B0%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8491</id>
		<title>열하일기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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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9T02:03: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ㅇㅎㅇㄱ.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열하일기&lt;br /&gt;
|'''장르''' || 여행기&lt;br /&gt;
|-&lt;br /&gt;
| '''작가''' || 박지원&lt;br /&gt;
|-&lt;br /&gt;
| '''시대''' || 1780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 여행기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접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문학작품으로써의 여행기는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또다른 여행기로 1712년 김창업이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사행을 다녀온 후 당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상세히 기록한 '''가재연행록''' 등이 존재한다. &lt;br /&gt;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 외교 사행이나 이국 풍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떠나 ‘타자’와 마주하며, 조선이라는 체제와 문명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탐색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다. 여행기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행기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ㅈㅇ.jpg|ㅣ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805년 12월 5일&lt;br /&gt;
|-&lt;br /&gt;
| '''호''' || 연암(燕巖)&amp;lt;ref&amp;gt;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이다&amp;lt;/ref&amp;gt;,연상(煙湘)&lt;br /&gt;
|-&lt;br /&gt;
|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실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정통 노론 가문의 양반&amp;lt;ref&amp;gt;실학자라는 점, 풍자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미천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amp;lt;/ref&amp;gt;으로 소설, 철학, 천문학, 농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amp;lt;p&amp;gt; 예조, 공조, 호조,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대사간에 임명되어 사도세자의 스승을 맡기도 했던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 1685~1760)의 셋째 아들 박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으며 처삼촌이자 성호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보인 그는 18세 무렵에 &amp;lt;광문자전(廣文者傳)&amp;gt;을 지었으며 1757년 &amp;lt;민옹전(閔翁傳)&amp;gt;을 지었고 1767년까지 &amp;lt;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amp;gt;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부터 양반 사회의 무능함, 위선 등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희천이 1771년 청나라 태학사(太學士) 주린(朱璘)이 1696년 편찬한 &amp;lt;명기집략(明紀輯略)&amp;gt;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자, 크게 상심한 후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금(柳琴),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희경(李喜慶)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라는 학풍, 문풍을 이룩한다. 청나라 방문 이후, 50살의 나이로 1786년 처음 벼슬에 올라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1790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제릉령(齊陵令), 1791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과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으며 자송문을 바치라는 명을 받은 이후에도 1796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와 의릉령(懿陵令),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에 응해 &amp;lt;과농소초(課農小抄)&amp;gt;(&amp;lt;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amp;gt;를 부록으로 붙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 생산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박지원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8세에 눈을 감았는데 손자가 조선 후기 개화파 형성의 거목인 환재 박규수. 사후 부여받은 시호는 문도(文度)로 순종 융희 3년(1909) 8월 20일 정약용, 권돈인, 남이 등과 함께 시호를 받았다.&lt;br /&gt;
안의현감 시절에는 북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시절의 경험은 『과농소초(課農小抄)』 ·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 『안설(按說)』 등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이 남긴 저술 중에서 특히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위의 책들은 박지원이 추구하던 현실 개혁의 포부를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작업의 하나이다. 박지원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 한 것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애착을 보인 결과였다. 이러한 관심은 홍대용과의 교유에서 보이는 우주론의 심화를 위한 작업이며, 실제로 북경을 여행할 때 천주당이나 관상대를 구경하면서 서양인을 만나고 싶어하였다.&lt;br /&gt;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박지원이 펼친 우주의 질서는 당시의 중국학자들도 놀라게 했으며 이는 박지원이 가진 세계관의 확대와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당시에 풍미하던 주자학(朱子學)의 사변적 세계에만 침잠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이론적 세계의 현실 적용, 곧 유학의 본질 속에서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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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에 조선은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를 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연암이 속한 사행단은 ‘진하 겸 사은을 위한 별사’라는 명칭을 지녔다. 진하는 황제의 생일이나 즉위 같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이고, 사은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려나 조치를 감사하기 위한 사행이다. 이 특별한 사행의 목적은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함과 동시에, 1년 전 조선사행의 실수로 북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청의 관용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
사행단의 총 인원은 270명. 『열하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함께 사행을 떠난 노이점이 쓴 『수사록』에는 “압록강을 건넌 사람은 총 270명이고 말은 194필이다”라고 기록돼 있다.&lt;br /&gt;
이 사행단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선진문물과 접촉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함을 깨닫고 귀국 후  &amp;lt;열하일기(熱河日記)&amp;gt;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1780년 당시 박지원은 아무런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청나라 파견단에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견단의 사신단장으로 뽑힌 박명원이 바로 박지원의 8촌형이었던 것이었고, 박지원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사신들이 자신을 호위할 군관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정사는 4명을, 부사는 3명, 서장관은 1명을 고를 수 있었다. 박명원은 잘 알고 지내던 무관을 지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전도 유망한 선비를 지명해도 되었기에 8촌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자제군관은 일종의 개인 수행원으로 공식 사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적어서, 중국 선비들과 교류하거나 유람을 하거나 서적 등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위로 박지원이 청의 문물, 문화 등과 매우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열하일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이었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amp;lt;ref&amp;gt;오늘 날의 허베이성 청더&amp;lt;/ref&amp;gt;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었다. 여름의 베이징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성 너머 북쪽에 황제 전용 여름 별장인 피서 산장이 있다.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amp;lt;열하일기&amp;gt;란 제목이 붙여졌다.&lt;br /&gt;
원래 조선 사신단은 건륭제가 연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연경에서 구색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조선 사신은 한 명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결국 열하까지 갔다 왔다. &lt;br /&gt;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 지 15일 만에 요양(遼陽)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7월 10일 십리하(十里河)를 출발하여 판교보(板橋堡), 장성점(長盛店), 사하보(沙河堡)를 거쳐 심양(瀋陽)에 이르렀다. 박지원은 심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거류하(巨流河)를 거쳐 14일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7월 15일에 신광녕(新廣寧)을 거쳐 산해관(山海關)까지 9일이 걸렸으며,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11일이 걸렸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약 2,300여 리로 긴 여정이었다.&lt;br /&gt;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열하로 가는 길에는 부사 서장관과 역관 3명, 비장 4명, 하인 등 모두 74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가 자주 와 시간이 지체되어 사신단 일행은 하룻밤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며 서두르기도 하였다. 말이 더위에 쓰러지고, 일행 역시 더위를 먹을 정도로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총 26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열하까지의 여정, 여행에서의 인상 깊었던 점, 가지각색의 체험, 청나라 사람들과의 필담 등이 담겨 있다. &lt;br /&gt;
큰 틀에서 열하일기는 날짜 별로 서술이 되어있다. 의주에서 연경까지를 도강록(渡江錄), 성경잡지(盛京雜識), 일신수필(馹汛隨筆), 관내정사(關內程史)로 나누어 기록했으며, 연경에서 열하까지의 여정은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우선, 도강록에는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압록강에서 요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7월 10일부터 7월 14일까지의 기록인 성경잡지에서는 조선 유학자들의 화이론과 춘추대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이용후생하는 중국인들의 자세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amp;lt;p&amp;gt; 열하일기에는 주제별로 항목을 정해 청 학자들과의 교류내용과 정책에 대한 논평, 경험한 것들에 대한 박지원의 생각이 들어있기도 하다. 망양록(忘羊錄)에서는 청 학자들과 음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심세편(審勢篇)에서는 조선사람의 다섯 가지 허망된 일[五妄]과 중국 선비들의 세 가지 어려운 일[三難] 등에 대해 상호 토론하였다. 혹정필담(鵠汀筆談)에서는 윤가전(尹嘉銓)과 천문 및 역법, 서학(西學) 등에 관해 얘기하였고, 찰십륜포(札什倫布), 반선시말(班禪始末), 황교문답(黃敎問答)에서는 열하에서 체험한 반선(班禪)에 대한 내용과 건륭제의 반선 정책, 청과 주변 이민족이 지닌 각종 종교에 대해 정리하였다.&amp;lt;p&amp;gt;&lt;br /&gt;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열하일기의 가장 주요한 주제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이라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은 청나라 마을의 커다란 가옥과 반듯한 거리, 벽돌로 쌓은 담장, 수레, 책문의 규모나 시설에 놀라움을 표현하고 마을 내 우물의 모습, 물을 깃는 방법, 기와를 잇는 방법, 벽돌을 사용하는 데 이로운 점, 가마제도 등 청 사람들의 사소한 생활 모습까지도 세세히 기록하며 조선 백성들이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 등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함과 동시에 청의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연암을 따라, 사유의 자취를 걷다(1) 연암, 조선을 넘어 청나라로 - 김경민·곽영군 기자 https://www.hynews.kr/news/view.php?idx=74157 &amp;lt;p&amp;gt;&lt;br /&gt;
우리역사넷 - 열하일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735&amp;amp;code=kc_age_3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7%B4%ED%95%98%EC%9D%BC%EA%B8%B0%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8481</id>
		<title>열하일기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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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내용 */&lt;/p&gt;
&lt;hr /&gt;
&lt;div&gt;[[파일:ㅇㅎㅇㄱ.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열하일기&lt;br /&gt;
|'''장르''' || 여행기&lt;br /&gt;
|-&lt;br /&gt;
| '''작가''' || 박지원&lt;br /&gt;
|-&lt;br /&gt;
| '''시대''' || 1780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 여행기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접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문학작품으로써의 여행기는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또다른 여행기로 1712년 김창업이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사행을 다녀온 후 당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상세히 기록한 '''가재연행록''' 등이 존재한다. &lt;br /&gt;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 외교 사행이나 이국 풍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떠나 ‘타자’와 마주하며, 조선이라는 체제와 문명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탐색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다. 여행기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행기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ㅈㅇ.jpg|ㅣ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805년 12월 5일&lt;br /&gt;
|-&lt;br /&gt;
| '''호''' || 연암(燕巖)&amp;lt;ref&amp;gt;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이다&amp;lt;/ref&amp;gt;,연상(煙湘)&lt;br /&gt;
|-&lt;br /&gt;
|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실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정통 노론 가문의 양반&amp;lt;ref&amp;gt;실학자라는 점, 풍자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미천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amp;lt;/ref&amp;gt;으로 소설, 철학, 천문학, 농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amp;lt;p&amp;gt; 예조, 공조, 호조,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대사간에 임명되어 사도세자의 스승을 맡기도 했던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 1685~1760)의 셋째 아들 박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으며 처삼촌이자 성호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보인 그는 18세 무렵에 &amp;lt;광문자전(廣文者傳)&amp;gt;을 지었으며 1757년 &amp;lt;민옹전(閔翁傳)&amp;gt;을 지었고 1767년까지 &amp;lt;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amp;gt;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부터 양반 사회의 무능함, 위선 등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희천이 1771년 청나라 태학사(太學士) 주린(朱璘)이 1696년 편찬한 &amp;lt;명기집략(明紀輯略)&amp;gt;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자, 크게 상심한 후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금(柳琴),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희경(李喜慶)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라는 학풍, 문풍을 이룩한다. 청나라 방문 이후, 50살의 나이로 1786년 처음 벼슬에 올라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1790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제릉령(齊陵令), 1791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과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으며 자송문을 바치라는 명을 받은 이후에도 1796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와 의릉령(懿陵令),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에 응해 &amp;lt;과농소초(課農小抄)&amp;gt;(&amp;lt;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amp;gt;를 부록으로 붙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 생산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박지원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8세에 눈을 감았는데 손자가 조선 후기 개화파 형성의 거목인 환재 박규수. 사후 부여받은 시호는 문도(文度)로 순종 융희 3년(1909) 8월 20일 정약용, 권돈인, 남이 등과 함께 시호를 받았다.&lt;br /&gt;
안의현감 시절에는 북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시절의 경험은 『과농소초(課農小抄)』 ·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 『안설(按說)』 등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이 남긴 저술 중에서 특히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위의 책들은 박지원이 추구하던 현실 개혁의 포부를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작업의 하나이다. 박지원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 한 것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애착을 보인 결과였다. 이러한 관심은 홍대용과의 교유에서 보이는 우주론의 심화를 위한 작업이며, 실제로 북경을 여행할 때 천주당이나 관상대를 구경하면서 서양인을 만나고 싶어하였다.&lt;br /&gt;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박지원이 펼친 우주의 질서는 당시의 중국학자들도 놀라게 했으며 이는 박지원이 가진 세계관의 확대와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당시에 풍미하던 주자학(朱子學)의 사변적 세계에만 침잠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이론적 세계의 현실 적용, 곧 유학의 본질 속에서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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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에 조선은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를 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연암이 속한 사행단은 ‘진하 겸 사은을 위한 별사’라는 명칭을 지녔다. 진하는 황제의 생일이나 즉위 같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이고, 사은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려나 조치를 감사하기 위한 사행이다. 이 특별한 사행의 목적은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함과 동시에, 1년 전 조선사행의 실수로 북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청의 관용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
사행단의 총 인원은 270명. 『열하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함께 사행을 떠난 노이점이 쓴 『수사록』에는 “압록강을 건넌 사람은 총 270명이고 말은 194필이다”라고 기록돼 있다.&lt;br /&gt;
이 사행단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선진문물과 접촉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함을 깨닫고 귀국 후  &amp;lt;열하일기(熱河日記)&amp;gt;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1780년 당시 박지원은 아무런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청나라 파견단에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견단의 사신단장으로 뽑힌 박명원이 바로 박지원의 8촌형이었던 것이었고, 박지원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사신들이 자신을 호위할 군관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정사는 4명을, 부사는 3명, 서장관은 1명을 고를 수 있었다. 박명원은 잘 알고 지내던 무관을 지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전도 유망한 선비를 지명해도 되었기에 8촌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자제군관은 일종의 개인 수행원으로 공식 사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적어서, 중국 선비들과 교류하거나 유람을 하거나 서적 등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위로 박지원이 청의 문물, 문화 등과 매우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열하일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이었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amp;lt;ref&amp;gt;오늘 날의 허베이성 청더&amp;lt;/ref&amp;gt;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었다. 여름의 베이징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성 너머 북쪽에 황제 전용 여름 별장인 피서 산장이 있다.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amp;lt;열하일기&amp;gt;란 제목이 붙여졌다.&lt;br /&gt;
원래 조선 사신단은 건륭제가 연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연경에서 구색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조선 사신은 한 명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결국 열하까지 갔다 왔다. &lt;br /&gt;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 지 15일 만에 요양(遼陽)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7월 10일 십리하(十里河)를 출발하여 판교보(板橋堡), 장성점(長盛店), 사하보(沙河堡)를 거쳐 심양(瀋陽)에 이르렀다. 박지원은 심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거류하(巨流河)를 거쳐 14일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7월 15일에 신광녕(新廣寧)을 거쳐 산해관(山海關)까지 9일이 걸렸으며,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11일이 걸렸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약 2,300여 리로 긴 여정이었다.&lt;br /&gt;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열하로 가는 길에는 부사 서장관과 역관 3명, 비장 4명, 하인 등 모두 74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가 자주 와 시간이 지체되어 사신단 일행은 하룻밤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며 서두르기도 하였다. 말이 더위에 쓰러지고, 일행 역시 더위를 먹을 정도로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총 26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열하까지의 여정, 여행에서의 인상 깊었던 점, 가지각색의 체험, 청나라 사람들과의 필담 등이 담겨 있다. &lt;br /&gt;
큰 틀에서 열하일기는 날짜 별로 서술이 되어있다. 의주에서 연경까지를 도강록(渡江錄), 성경잡지(盛京雜識), 일신수필(馹汛隨筆), 관내정사(關內程史)로 나누어 기록했으며, 연경에서 열하까지의 여정은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우선, 도강록에는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압록강에서 요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7월 10일부터 7월 14일까지의 기록인 성경잡지에서는 조선 유학자들의 화이론과 춘추대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이용후생하는 중국인들의 자세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amp;lt;b&amp;gt; 열하일기에는 주제별로 항목을 정해 청 학자들과의 교류내용과 정책에 대한 논평, 경험한 것들에 대한 박지원의 생각이 들어있기도 하다. 망양록(忘羊錄)에서는 청 학자들과 음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심세편(審勢篇)에서는 조선사람의 다섯 가지 허망된 일[五妄]과 중국 선비들의 세 가지 어려운 일[三難] 등에 대해 상호 토론하였다. 혹정필담(鵠汀筆談)에서는 윤가전(尹嘉銓)과 천문 및 역법, 서학(西學) 등에 관해 얘기하였고, 찰십륜포(札什倫布), 반선시말(班禪始末), 황교문답(黃敎問答)에서는 열하에서 체험한 반선(班禪)에 대한 내용과 건륭제의 반선 정책, 청과 주변 이민족이 지닌 각종 종교에 대해 정리하였다.&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연암을 따라, 사유의 자취를 걷다(1) 연암, 조선을 넘어 청나라로 - 김경민·곽영군 기자 https://www.hynews.kr/news/view.php?idx=74157 &amp;lt;p&amp;gt;&lt;br /&gt;
우리역사넷 - 열하일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735&amp;amp;code=kc_age_3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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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하일기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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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9T01:50: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lt;/p&gt;
&lt;hr /&gt;
&lt;div&gt;[[파일:ㅇㅎㅇㄱ.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열하일기&lt;br /&gt;
|'''장르''' || 여행기&lt;br /&gt;
|-&lt;br /&gt;
| '''작가''' || 박지원&lt;br /&gt;
|-&lt;br /&gt;
| '''시대''' || 1780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 여행기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접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문학작품으로써의 여행기는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또다른 여행기로 1712년 김창업이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사행을 다녀온 후 당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상세히 기록한 '''가재연행록''' 등이 존재한다. &lt;br /&gt;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 외교 사행이나 이국 풍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떠나 ‘타자’와 마주하며, 조선이라는 체제와 문명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탐색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다. 여행기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행기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ㅈㅇ.jpg|ㅣ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805년 12월 5일&lt;br /&gt;
|-&lt;br /&gt;
| '''호''' || 연암(燕巖)&amp;lt;ref&amp;gt;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이다&amp;lt;/ref&amp;gt;,연상(煙湘)&lt;br /&gt;
|-&lt;br /&gt;
|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실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정통 노론 가문의 양반&amp;lt;ref&amp;gt;실학자라는 점, 풍자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미천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amp;lt;/ref&amp;gt;으로 소설, 철학, 천문학, 농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amp;lt;p&amp;gt; 예조, 공조, 호조,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대사간에 임명되어 사도세자의 스승을 맡기도 했던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 1685~1760)의 셋째 아들 박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으며 처삼촌이자 성호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보인 그는 18세 무렵에 &amp;lt;광문자전(廣文者傳)&amp;gt;을 지었으며 1757년 &amp;lt;민옹전(閔翁傳)&amp;gt;을 지었고 1767년까지 &amp;lt;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amp;gt;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부터 양반 사회의 무능함, 위선 등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희천이 1771년 청나라 태학사(太學士) 주린(朱璘)이 1696년 편찬한 &amp;lt;명기집략(明紀輯略)&amp;gt;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자, 크게 상심한 후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금(柳琴),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희경(李喜慶)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라는 학풍, 문풍을 이룩한다. 청나라 방문 이후, 50살의 나이로 1786년 처음 벼슬에 올라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1790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제릉령(齊陵令), 1791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과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으며 자송문을 바치라는 명을 받은 이후에도 1796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와 의릉령(懿陵令),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에 응해 &amp;lt;과농소초(課農小抄)&amp;gt;(&amp;lt;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amp;gt;를 부록으로 붙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 생산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박지원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8세에 눈을 감았는데 손자가 조선 후기 개화파 형성의 거목인 환재 박규수. 사후 부여받은 시호는 문도(文度)로 순종 융희 3년(1909) 8월 20일 정약용, 권돈인, 남이 등과 함께 시호를 받았다.&lt;br /&gt;
안의현감 시절에는 북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시절의 경험은 『과농소초(課農小抄)』 ·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 『안설(按說)』 등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이 남긴 저술 중에서 특히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위의 책들은 박지원이 추구하던 현실 개혁의 포부를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작업의 하나이다. 박지원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 한 것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애착을 보인 결과였다. 이러한 관심은 홍대용과의 교유에서 보이는 우주론의 심화를 위한 작업이며, 실제로 북경을 여행할 때 천주당이나 관상대를 구경하면서 서양인을 만나고 싶어하였다.&lt;br /&gt;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박지원이 펼친 우주의 질서는 당시의 중국학자들도 놀라게 했으며 이는 박지원이 가진 세계관의 확대와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당시에 풍미하던 주자학(朱子學)의 사변적 세계에만 침잠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이론적 세계의 현실 적용, 곧 유학의 본질 속에서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lKb0PQI6MWw?si=xRUjjqlr5jTdS0Dg&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 &amp;lt;p&amp;gt;&lt;br /&gt;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에 조선은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를 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연암이 속한 사행단은 ‘진하 겸 사은을 위한 별사’라는 명칭을 지녔다. 진하는 황제의 생일이나 즉위 같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이고, 사은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려나 조치를 감사하기 위한 사행이다. 이 특별한 사행의 목적은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함과 동시에, 1년 전 조선사행의 실수로 북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청의 관용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
사행단의 총 인원은 270명. 『열하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함께 사행을 떠난 노이점이 쓴 『수사록』에는 “압록강을 건넌 사람은 총 270명이고 말은 194필이다”라고 기록돼 있다.&lt;br /&gt;
이 사행단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선진문물과 접촉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함을 깨닫고 귀국 후  &amp;lt;열하일기(熱河日記)&amp;gt;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1780년 당시 박지원은 아무런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청나라 파견단에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견단의 사신단장으로 뽑힌 박명원이 바로 박지원의 8촌형이었던 것이었고, 박지원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사신들이 자신을 호위할 군관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정사는 4명을, 부사는 3명, 서장관은 1명을 고를 수 있었다. 박명원은 잘 알고 지내던 무관을 지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전도 유망한 선비를 지명해도 되었기에 8촌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자제군관은 일종의 개인 수행원으로 공식 사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적어서, 중국 선비들과 교류하거나 유람을 하거나 서적 등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위로 박지원이 청의 문물, 문화 등과 매우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열하일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이었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amp;lt;ref&amp;gt;오늘 날의 허베이성 청더&amp;lt;/ref&amp;gt;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었다. 여름의 베이징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성 너머 북쪽에 황제 전용 여름 별장인 피서 산장이 있다.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amp;lt;열하일기&amp;gt;란 제목이 붙여졌다.&lt;br /&gt;
원래 조선 사신단은 건륭제가 연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연경에서 구색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조선 사신은 한 명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결국 열하까지 갔다 왔다. &lt;br /&gt;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 지 15일 만에 요양(遼陽)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7월 10일 십리하(十里河)를 출발하여 판교보(板橋堡), 장성점(長盛店), 사하보(沙河堡)를 거쳐 심양(瀋陽)에 이르렀다. 박지원은 심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거류하(巨流河)를 거쳐 14일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7월 15일에 신광녕(新廣寧)을 거쳐 산해관(山海關)까지 9일이 걸렸으며,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11일이 걸렸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약 2,300여 리로 긴 여정이었다.&lt;br /&gt;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열하로 가는 길에는 부사 서장관과 역관 3명, 비장 4명, 하인 등 모두 74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가 자주 와 시간이 지체되어 사신단 일행은 하룻밤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며 서두르기도 하였다. 말이 더위에 쓰러지고, 일행 역시 더위를 먹을 정도로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총 26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열하까지의 여정, 여행에서의 인상 깊었던 점, 가지각색의 체험, 청나라 사람들과의 필담 등이 담겨 있다. &lt;br /&gt;
큰 틀에서 열하일기는 날짜 별로 서술이 되어있다. 의주에서 연경까지를 도강록(渡江錄), 성경잡지(盛京雜識), 일신수필(馹汛隨筆), 관내정사(關內程史)로 나누어 기록했으며, 연경에서 열하까지의 여정은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우선, 도강록에는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압록강에서 요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7월 10일부터 7월 14일까지의 기록인 성경잡지에서는 조선 유학자들의 화이론과 춘추대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이용후생하는 중국인들의 자세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amp;lt;b&amp;gt; 열하일기에는 주제별로 항목을 정해 청 학자들과의 교류내용과 정책에 대한 논평, 경험한 것들에 대한 박지원의 생각이 들어있기도 하다. 망양록(忘羊錄)에서는 청 학자들과 음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심세편(審勢篇)에서는 조선사람의 다섯 가지 허망된 일[五妄]과 중국 선비들의 세 가지 어려운 일[三難] 등에 대해 상호 토론하였다. 혹정필담(鵠汀筆談)에서는 윤가전(尹嘉銓)과 천문 및 역법, 서학(西學) 등에 관해 얘기하였고, 찰십륜포(札什倫布), 반선시말(班禪始末), 황교문답(黃敎問答)에서는 열하에서 체험한 반선(班禪)에 대한 내용과 건륭제의 반선 정책, 청과 주변 이민족이 지닌 각종 종교에 대해 정리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연암을 따라, 사유의 자취를 걷다(1) 연암, 조선을 넘어 청나라로 - 김경민·곽영군 기자 https://www.hynews.kr/news/view.php?idx=74157 &amp;lt;p&amp;gt;&lt;br /&gt;
우리역사넷 - 열하일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735&amp;amp;code=kc_age_3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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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ㅇㅎㅇㄱ.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열하일기&lt;br /&gt;
|'''장르''' || 여행기&lt;br /&gt;
|-&lt;br /&gt;
| '''작가''' || 박지원&lt;br /&gt;
|-&lt;br /&gt;
| '''시대''' || 1780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 여행기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접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문학작품으로써의 여행기는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또다른 여행기로 1712년 김창업이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사행을 다녀온 후 당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상세히 기록한 '''가재연행록''' 등이 존재한다. &lt;br /&gt;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 외교 사행이나 이국 풍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떠나 ‘타자’와 마주하며, 조선이라는 체제와 문명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탐색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다. 여행기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행기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ㅈㅇ.jpg|ㅣ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805년 12월 5일&lt;br /&gt;
|-&lt;br /&gt;
| '''호''' || 연암(燕巖)&amp;lt;ref&amp;gt;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이다&amp;lt;/ref&amp;gt;,연상(煙湘)&lt;br /&gt;
|-&lt;br /&gt;
|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실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정통 노론 가문의 양반&amp;lt;ref&amp;gt;실학자라는 점, 풍자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미천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amp;lt;/ref&amp;gt;으로 소설, 철학, 천문학, 농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amp;lt;p&amp;gt; 예조, 공조, 호조,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대사간에 임명되어 사도세자의 스승을 맡기도 했던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 1685~1760)의 셋째 아들 박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으며 처삼촌이자 성호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보인 그는 18세 무렵에 &amp;lt;광문자전(廣文者傳)&amp;gt;을 지었으며 1757년 &amp;lt;민옹전(閔翁傳)&amp;gt;을 지었고 1767년까지 &amp;lt;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amp;gt;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부터 양반 사회의 무능함, 위선 등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희천이 1771년 청나라 태학사(太學士) 주린(朱璘)이 1696년 편찬한 &amp;lt;명기집략(明紀輯略)&amp;gt;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자, 크게 상심한 후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금(柳琴),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희경(李喜慶)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라는 학풍, 문풍을 이룩한다. 청나라 방문 이후, 50살의 나이로 1786년 처음 벼슬에 올라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1790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제릉령(齊陵令), 1791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과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으며 자송문을 바치라는 명을 받은 이후에도 1796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와 의릉령(懿陵令),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에 응해 &amp;lt;과농소초(課農小抄)&amp;gt;(&amp;lt;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amp;gt;를 부록으로 붙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 생산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박지원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8세에 눈을 감았는데 손자가 조선 후기 개화파 형성의 거목인 환재 박규수. 사후 부여받은 시호는 문도(文度)로 순종 융희 3년(1909) 8월 20일 정약용, 권돈인, 남이 등과 함께 시호를 받았다.&lt;br /&gt;
안의현감 시절에는 북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시절의 경험은 『과농소초(課農小抄)』 ·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 『안설(按說)』 등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이 남긴 저술 중에서 특히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위의 책들은 박지원이 추구하던 현실 개혁의 포부를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작업의 하나이다. 박지원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 한 것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애착을 보인 결과였다. 이러한 관심은 홍대용과의 교유에서 보이는 우주론의 심화를 위한 작업이며, 실제로 북경을 여행할 때 천주당이나 관상대를 구경하면서 서양인을 만나고 싶어하였다.&lt;br /&gt;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박지원이 펼친 우주의 질서는 당시의 중국학자들도 놀라게 했으며 이는 박지원이 가진 세계관의 확대와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당시에 풍미하던 주자학(朱子學)의 사변적 세계에만 침잠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이론적 세계의 현실 적용, 곧 유학의 본질 속에서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lKb0PQI6MWw?si=xRUjjqlr5jTdS0Dg&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 &amp;lt;p&amp;gt;&lt;br /&gt;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에 조선은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를 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연암이 속한 사행단은 ‘진하 겸 사은을 위한 별사’라는 명칭을 지녔다. 진하는 황제의 생일이나 즉위 같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이고, 사은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려나 조치를 감사하기 위한 사행이다. 이 특별한 사행의 목적은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함과 동시에, 1년 전 조선사행의 실수로 북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청의 관용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
사행단의 총 인원은 270명. 『열하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함께 사행을 떠난 노이점이 쓴 『수사록』에는 “압록강을 건넌 사람은 총 270명이고 말은 194필이다”라고 기록돼 있다.&lt;br /&gt;
이 사행단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선진문물과 접촉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함을 깨닫고 귀국 후  &amp;lt;열하일기(熱河日記)&amp;gt;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1780년 당시 박지원은 아무런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청나라 파견단에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견단의 사신단장으로 뽑힌 박명원이 바로 박지원의 8촌형이었던 것이었고, 박지원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사신들이 자신을 호위할 군관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정사는 4명을, 부사는 3명, 서장관은 1명을 고를 수 있었다. 박명원은 잘 알고 지내던 무관을 지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전도 유망한 선비를 지명해도 되었기에 8촌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자제군관은 일종의 개인 수행원으로 공식 사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적어서, 중국 선비들과 교류하거나 유람을 하거나 서적 등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위로 박지원이 청의 문물, 문화 등과 매우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열하일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이었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amp;lt;ref&amp;gt;오늘 날의 허베이성 청더&amp;lt;/ref&amp;gt;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었다. 여름의 베이징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성 너머 북쪽에 황제 전용 여름 별장인 피서 산장이 있다.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amp;lt;열하일기&amp;gt;란 제목이 붙여졌다.&lt;br /&gt;
원래 조선 사신단은 건륭제가 연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연경에서 구색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조선 사신은 한 명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결국 열하까지 갔다 왔다. &lt;br /&gt;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 지 15일 만에 요양(遼陽)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7월 10일 십리하(十里河)를 출발하여 판교보(板橋堡), 장성점(長盛店), 사하보(沙河堡)를 거쳐 심양(瀋陽)에 이르렀다. 박지원은 심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거류하(巨流河)를 거쳐 14일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7월 15일에 신광녕(新廣寧)을 거쳐 산해관(山海關)까지 9일이 걸렸으며,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11일이 걸렸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약 2,300여 리로 긴 여정이었다.&lt;br /&gt;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열하로 가는 길에는 부사 서장관과 역관 3명, 비장 4명, 하인 등 모두 74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가 자주 와 시간이 지체되어 사신단 일행은 하룻밤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며 서두르기도 하였다. 말이 더위에 쓰러지고, 일행 역시 더위를 먹을 정도로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연암을 따라, 사유의 자취를 걷다(1) 연암, 조선을 넘어 청나라로 - 김경민·곽영군 기자 https://www.hynews.kr/news/view.php?idx=74157 &amp;lt;p&amp;gt;&lt;br /&gt;
우리역사넷 - 열하일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735&amp;amp;code=kc_age_3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6%8C%EC%84%A4%EA%B0%80_%EA%B5%AC%EB%B3%B4_%EC%94%A8%EC%9D%98_%EC%9D%BC%EC%9D%BC%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8118</id>
		<title>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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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장르 */&lt;/p&gt;
&lt;hr /&gt;
&lt;div&gt;[[파일:ㄱㅂ.jpg|200px|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lt;br /&gt;
|'''장르''' || 모더니즘 소설&lt;br /&gt;
|-&lt;br /&gt;
| '''작가''' || 박태원&lt;br /&gt;
|-&lt;br /&gt;
| '''시대''' || 1934년 - [[근대]]   &lt;br /&gt;
|-&lt;br /&gt;
| '''배경'''||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무력함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모더니즘'''은 19세기 말과 20세기에 유럽에서 전방위적으로 나타난 예술운동이자 현상으로 모더니즘 문학은 전통과의 단절 및 개인주의 등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한다. 제 1차 세계 대전 및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야기된 사회적 변화가 문학 주제에서의 ‘ 19세기 기성 전통과의 단절 ‘ 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때, 19세기의 문학 전통은 '''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인간의 삶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모방 및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리얼리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모더니즘은 전적인 주관성과 개인적 경험을 작품의 근원으로 여긴다. 이는 곧 문학의 탈도구성과 독자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19세기 리얼리즘 하에서 문학은 독자들을 계몽시키거나 그들에게 오락을 제공하려는 뚜렷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던 반면 모더니즘 문학은 그 어떠한 목적성에서도 벗어나 ''' 문학만을 위한 문학''', 즉 자기목적성만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ㅌㅇ.jpg|100px|left]]&lt;br /&gt;
== 배경 ==&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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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ㄱㅂ.jpg|200px|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lt;br /&gt;
|'''장르''' || 모더니즘 소설&lt;br /&gt;
|-&lt;br /&gt;
| '''작가''' || 박태원&lt;br /&gt;
|-&lt;br /&gt;
| '''시대''' || 1934년 - [[근대]]   &lt;br /&gt;
|-&lt;br /&gt;
| '''배경'''||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무력함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모더니즘은 19세기 말과 20세기에 유럽에서 전방위적으로 나타난 예술운동이자 현상으로 모더니즘 문학은 전통과의 단절 및 개인주의 등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한다. 제 1차 세계 대전 및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야기된 사회적 변화가 문학 주제에서의 ‘ 19세기 기성 전통과의 단절 ‘ 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때, 19세기의 문학 전통은 '''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인간의 삶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모방.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리얼리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모더니즘은 전적인 주관성과 개인적 경험을 작품의 근원으로 여긴다.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ㅌㅇ.jpg|100px|left]]&lt;br /&gt;
== 배경 ==&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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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ㅇㅎㅇㄱ.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열하일기&lt;br /&gt;
|'''장르''' || 여행기&lt;br /&gt;
|-&lt;br /&gt;
| '''작가''' || 박지원&lt;br /&gt;
|-&lt;br /&gt;
| '''시대''' || 1780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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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 여행기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접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문학작품으로써의 여행기는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또다른 여행기로 1712년 김창업이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사행을 다녀온 후 당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상세히 기록한 '''가재연행록''' 등이 존재한다. &lt;br /&gt;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 외교 사행이나 이국 풍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떠나 ‘타자’와 마주하며, 조선이라는 체제와 문명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탐색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다. 여행기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행기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ㅈㅇ.jpg|ㅣ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805년 12월 5일&lt;br /&gt;
|-&lt;br /&gt;
| '''호''' || 연암(燕巖)&amp;lt;ref&amp;gt;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이다&amp;lt;/ref&amp;gt;,연상(煙湘)&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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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실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정통 노론 가문의 양반&amp;lt;ref&amp;gt;실학자라는 점, 풍자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미천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amp;lt;/ref&amp;gt;으로 소설, 철학, 천문학, 농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amp;lt;p&amp;gt; 예조, 공조, 호조,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대사간에 임명되어 사도세자의 스승을 맡기도 했던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 1685~1760)의 셋째 아들 박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으며 처삼촌이자 성호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보인 그는 18세 무렵에 &amp;lt;광문자전(廣文者傳)&amp;gt;을 지었으며 1757년 &amp;lt;민옹전(閔翁傳)&amp;gt;을 지었고 1767년까지 &amp;lt;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amp;gt;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부터 양반 사회의 무능함, 위선 등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희천이 1771년 청나라 태학사(太學士) 주린(朱璘)이 1696년 편찬한 &amp;lt;명기집략(明紀輯略)&amp;gt;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자, 크게 상심한 후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금(柳琴),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희경(李喜慶)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라는 학풍, 문풍을 이룩한다. 청나라 방문 이후, 50살의 나이로 1786년 처음 벼슬에 올라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1790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제릉령(齊陵令), 1791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과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으며 자송문을 바치라는 명을 받은 이후에도 1796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와 의릉령(懿陵令),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에 응해 &amp;lt;과농소초(課農小抄)&amp;gt;(&amp;lt;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amp;gt;를 부록으로 붙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 생산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박지원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8세에 눈을 감았는데 손자가 조선 후기 개화파 형성의 거목인 환재 박규수. 사후 부여받은 시호는 문도(文度)로 순종 융희 3년(1909) 8월 20일 정약용, 권돈인, 남이 등과 함께 시호를 받았다.&lt;br /&gt;
안의현감 시절에는 북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시절의 경험은 『과농소초(課農小抄)』 ·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 『안설(按說)』 등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이 남긴 저술 중에서 특히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위의 책들은 박지원이 추구하던 현실 개혁의 포부를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작업의 하나이다. 박지원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 한 것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애착을 보인 결과였다. 이러한 관심은 홍대용과의 교유에서 보이는 우주론의 심화를 위한 작업이며, 실제로 북경을 여행할 때 천주당이나 관상대를 구경하면서 서양인을 만나고 싶어하였다.&lt;br /&gt;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박지원이 펼친 우주의 질서는 당시의 중국학자들도 놀라게 했으며 이는 박지원이 가진 세계관의 확대와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당시에 풍미하던 주자학(朱子學)의 사변적 세계에만 침잠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이론적 세계의 현실 적용, 곧 유학의 본질 속에서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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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에 조선은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를 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연암이 속한 사행단은 ‘진하 겸 사은을 위한 별사’라는 명칭을 지녔다. 진하는 황제의 생일이나 즉위 같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이고, 사은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려나 조치를 감사하기 위한 사행이다. 이 특별한 사행의 목적은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함과 동시에, 1년 전 조선사행의 실수로 북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청의 관용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
사행단의 총 인원은 270명. 『열하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함께 사행을 떠난 노이점이 쓴 『수사록』에는 “압록강을 건넌 사람은 총 270명이고 말은 194필이다”라고 기록돼 있다.&lt;br /&gt;
이 사행단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선진문물과 접촉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함을 깨닫고 귀국 후  &amp;lt;열하일기(熱河日記)&amp;gt;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1780년 당시 박지원은 아무런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청나라 파견단에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견단의 사신단장으로 뽑힌 박명원이 바로 박지원의 8촌형이었던 것이었고, 박지원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사신들이 자신을 호위할 군관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정사는 4명을, 부사는 3명, 서장관은 1명을 고를 수 있었다. 박명원은 잘 알고 지내던 무관을 지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전도 유망한 선비를 지명해도 되었기에 8촌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자제군관은 일종의 개인 수행원으로 공식 사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적어서, 중국 선비들과 교류하거나 유람을 하거나 서적 등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위로 박지원이 청의 문물, 문화 등과 매우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열하일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이었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amp;lt;ref&amp;gt;오늘 날의 허베이성 청더&amp;lt;/ref&amp;gt;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었다. 여름의 베이징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성 너머 북쪽에 황제 전용 여름 별장인 피서 산장이 있다.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amp;lt;열하일기&amp;gt;란 제목이 붙여졌다.&lt;br /&gt;
원래 조선 사신단은 건륭제가 연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연경에서 구색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조선 사신은 한 명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결국 열하까지 갔다 왔다. &lt;br /&gt;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 지 15일 만에 요양(遼陽)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7월 10일 십리하(十里河)를 출발하여 판교보(板橋堡), 장성점(長盛店), 사하보(沙河堡)를 거쳐 심양(瀋陽)에 이르렀다. 박지원은 심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거류하(巨流河)를 거쳐 14일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7월 15일에 신광녕(新廣寧)을 거쳐 산해관(山海關)까지 9일이 걸렸으며,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11일이 걸렸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약 2,300여 리로 긴 여정이었다.&lt;br /&gt;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열하는 황제가 임시로 머무는 곳인 행재소(行在所)가 있는 지역으로, 연경에서 동북쪽으로 420리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지역은 강희제(康熙帝) 이후 황제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는 피서지였다. 박지원이 연경을 거쳐 열하에 온 이유는 봄에 건륭제(乾隆帝)가 남방을 순행하였다가 이곳으로 피서를 왔기 때문이다. 열하로 가는 길에는 부사 서장관과 역관 3명, 비장 4명, 하인 등 모두 74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가 자주 와 시간이 지체되어 사신단 일행은 하룻밤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며 서두르기도 하였다. 말이 더위에 쓰러지고, 일행 역시 더위를 먹었다. 열하까지의 길은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lt;br /&gt;
&lt;br /&gt;
== 참고문헌 ==&lt;br /&gt;
연암을 따라, 사유의 자취를 걷다(1) 연암, 조선을 넘어 청나라로 - 김경민·곽영군 기자 https://www.hynews.kr/news/view.php?idx=74157 &amp;lt;p&amp;gt;&lt;br /&gt;
우리역사넷 - 열하일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735&amp;amp;code=kc_age_3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치찌개</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7%B4%ED%95%98%EC%9D%BC%EA%B8%B0%E1%90%A7%E0%BC%9A%CC%AE%E1%90%A7&amp;diff=57910</id>
		<title>열하일기ᐧ༚̮ᐧ</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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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4T01:57: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치찌개: /* 참고문헌 */&lt;/p&gt;
&lt;hr /&gt;
&lt;div&gt;[[파일:ㅇㅎㅇㄱ.jpg|righ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열하일기&lt;br /&gt;
|'''장르''' || 여행기&lt;br /&gt;
|-&lt;br /&gt;
| '''작가''' || 박지원&lt;br /&gt;
|-&lt;br /&gt;
| '''시대''' || 1780년 - [[조선 후기]]   &lt;br /&gt;
|-&lt;br /&gt;
|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lt;br /&gt;
&lt;br /&gt;
== 장르 ==&lt;br /&gt;
&lt;br /&gt;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 여행기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접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문학작품으로써의 여행기는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또다른 여행기로 1712년 김창업이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사행을 다녀온 후 당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상세히 기록한 '''가재연행록''' 등이 존재한다. &lt;br /&gt;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 외교 사행이나 이국 풍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떠나 ‘타자’와 마주하며, 조선이라는 체제와 문명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탐색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다. 여행기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행기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작가 ==&lt;br /&gt;
[[파일:ㅂㅈㅇ.jpg|ㅣlef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 '''사망''' || 1805년 12월 5일&lt;br /&gt;
|-&lt;br /&gt;
| '''호''' || 연암(燕巖)&amp;lt;ref&amp;gt;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이다&amp;lt;/ref&amp;gt;,연상(煙湘)&lt;br /&gt;
|-&lt;br /&gt;
|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 &lt;br /&gt;
|- &lt;br /&gt;
| '''직업''' || 소설가, 실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실학으로 대표되는 '''북학'''(北學)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정통 노론 가문의 양반&amp;lt;ref&amp;gt;실학자라는 점, 풍자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미천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amp;lt;/ref&amp;gt;으로 소설, 철학, 천문학, 농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amp;lt;p&amp;gt; 예조, 공조, 호조,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대사간에 임명되어 사도세자의 스승을 맡기도 했던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 1685~1760)의 셋째 아들 박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으며 처삼촌이자 성호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보인 그는 18세 무렵에 &amp;lt;광문자전(廣文者傳)&amp;gt;을 지었으며 1757년 &amp;lt;민옹전(閔翁傳)&amp;gt;을 지었고 1767년까지 &amp;lt;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amp;gt;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부터 양반 사회의 무능함, 위선 등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희천이 1771년 청나라 태학사(太學士) 주린(朱璘)이 1696년 편찬한 &amp;lt;명기집략(明紀輯略)&amp;gt;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자, 크게 상심한 후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금(柳琴),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희경(李喜慶)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라는 학풍, 문풍을 이룩한다. 청나라 방문 이후, 50살의 나이로 1786년 처음 벼슬에 올라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1790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제릉령(齊陵令), 1791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과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으며 자송문을 바치라는 명을 받은 이후에도 1796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와 의릉령(懿陵令),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에 응해 &amp;lt;과농소초(課農小抄)&amp;gt;(&amp;lt;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amp;gt;를 부록으로 붙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 생산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박지원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8세에 눈을 감았는데 손자가 조선 후기 개화파 형성의 거목인 환재 박규수. 사후 부여받은 시호는 문도(文度)로 순종 융희 3년(1909) 8월 20일 정약용, 권돈인, 남이 등과 함께 시호를 받았다.&lt;br /&gt;
안의현감 시절에는 북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시절의 경험은 『과농소초(課農小抄)』 ·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 『안설(按說)』 등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이 남긴 저술 중에서 특히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위의 책들은 박지원이 추구하던 현실 개혁의 포부를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작업의 하나이다. 박지원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 한 것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애착을 보인 결과였다. 이러한 관심은 홍대용과의 교유에서 보이는 우주론의 심화를 위한 작업이며, 실제로 북경을 여행할 때 천주당이나 관상대를 구경하면서 서양인을 만나고 싶어하였다.&lt;br /&gt;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박지원이 펼친 우주의 질서는 당시의 중국학자들도 놀라게 했으며 이는 박지원이 가진 세계관의 확대와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당시에 풍미하던 주자학(朱子學)의 사변적 세계에만 침잠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이론적 세계의 현실 적용, 곧 유학의 본질 속에서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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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에 조선은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를 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연암이 속한 사행단은 ‘진하 겸 사은을 위한 별사’라는 명칭을 지녔다. 진하는 황제의 생일이나 즉위 같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이고, 사은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려나 조치를 감사하기 위한 사행이다. 이 특별한 사행의 목적은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함과 동시에, 1년 전 조선사행의 실수로 북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청의 관용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
사행단의 총 인원은 270명. 『열하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함께 사행을 떠난 노이점이 쓴 『수사록』에는 “압록강을 건넌 사람은 총 270명이고 말은 194필이다”라고 기록돼 있다.&lt;br /&gt;
이 사행단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선진문물과 접촉하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함을 깨닫고 귀국 후  &amp;lt;열하일기(熱河日記)&amp;gt;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1780년 당시 박지원은 아무런 관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청나라 파견단에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견단의 사신단장으로 뽑힌 박명원이 바로 박지원의 8촌형이었던 것이었고, 박지원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사신들이 자신을 호위할 군관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정사는 4명을, 부사는 3명, 서장관은 1명을 고를 수 있었다. 박명원은 잘 알고 지내던 무관을 지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전도 유망한 선비를 지명해도 되었기에 8촌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자제군관은 일종의 개인 수행원으로 공식 사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적어서, 중국 선비들과 교류하거나 유람을 하거나 서적 등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위로 박지원이 청의 문물, 문화 등과 매우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열하일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이었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amp;lt;ref&amp;gt;오늘 날의 허베이성 청더&amp;lt;/ref&amp;gt;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었다. 여름의 베이징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성 너머 북쪽에 황제 전용 여름 별장인 피서 산장이 있다.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amp;lt;열하일기&amp;gt;란 제목이 붙여졌다.&lt;br /&gt;
원래 조선 사신단은 건륭제가 연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연경에서 구색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조선 사신은 한 명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결국 열하까지 갔다 왔다. &lt;br /&gt;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 지 15일 만에 요양(遼陽)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7월 10일 십리하(十里河)를 출발하여 판교보(板橋堡), 장성점(長盛店), 사하보(沙河堡)를 거쳐 심양(瀋陽)에 이르렀다. 박지원은 심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거류하(巨流河)를 거쳐 14일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7월 15일에 신광녕(新廣寧)을 거쳐 산해관(山海關)까지 9일이 걸렸으며,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11일이 걸렸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약 2,300여 리로 긴 여정이었다.&lt;br /&gt;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열하는 황제가 임시로 머무는 곳인 행재소(行在所)가 있는 지역으로, 연경에서 동북쪽으로 420리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지역은 강희제(康熙帝) 이후 황제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는 피서지였다. 박지원이 연경을 거쳐 열하에 온 이유는 봄에 건륭제(乾隆帝)가 남방을 순행하였다가 이곳으로 피서를 왔기 때문이다. 열하로 가는 길에는 부사 서장관과 역관 3명, 비장 4명, 하인 등 모두 74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가 자주 와 시간이 지체되어 사신단 일행은 하룻밤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며 서두르기도 하였다. 말이 더위에 쓰러지고, 일행 역시 더위를 먹었다. 열하까지의 길은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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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lt;br /&gt;
연암을 따라, 사유의 자취를 걷다(1) 연암, 조선을 넘어 청나라로 - 김경민·곽영군 기자 https://www.hynews.kr/news/view.php?idx=74157 &amp;lt;p&amp;gt;&lt;br /&gt;
우리역사넷 - 열하일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735&amp;amp;code=kc_age_30&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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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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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lt;br /&gt;
|'''장르''' || 여행기&lt;br /&gt;
|-&lt;br /&gt;
| '''작가''' || 박지원&lt;br /&gt;
|-&lt;br /&gt;
| '''시대''' || 1780년 - [[조선 후기]]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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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청나라 답사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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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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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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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 박지원 朴趾源&lt;br /&gt;
|'''출생''' || 1737년 3월 5일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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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열하일기, 양반전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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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사절로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amp;lt;font color=&amp;quot;background:red&amp;quot;&amp;gt;여행기&amp;lt;/font&amp;gt;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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