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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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공화국
(Portuguese Republic / República Portuguesa)
Portugalflag.jpg
인구 약10,813,834명(2014년)
면적 약92,090km²
언어 포르투갈어(공용어)
문자 Roman alphabet
정부 반대통령제(대통령중심제를 가미한 내각책임제) / 단원제
통화 유로euro(EUR, €)
GDP 전체 $2,010억 / 1인당 $19,324

(2015년 IMF기준)

HDI 0.830(23위, 2014년 기준)
국제전화 +351
도메인 .pt


이름 및 위치

포르투갈 위치

포르투갈의 정식 국가명칭은 포르투갈 공화국(Portuguese Republic/República Portuguesa)이며 유럽 남서부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나라로 이베리아 반도의 본토 이외에 대서양의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를 영토로 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북쪽과 동쪽으로 스페인과 인접하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은 대서양을 맞대고 있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이다.


간략역사

기원전 750년경 켈트족이 반도에 정착하여 그리스인·페니키아인 및 카르타고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2세기경 케사르(Caesar, J.) 및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원정으로 로마제국에 편입되었으며, 5세기 초에 서고트족이 이주하여 711년 무어족의 침공을 받을 때까지 제국을 건설하고 반도를 통치해왔다.

1137년 엥리케(Henrique,A.) 왕이 단일국가로 분립시켜 무어족을 축출하고 1139년 독립을 이루었으며, 1385년 스페인의 카스틸랴왕국에 승리함으로써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웠다.

15, 16세기에는 브라질·인도 및 아프리카 연안 등 해외탐험을 통하여 제해국(制海國)으로 등장하여 스페인과 경합하였으나, 1580년 왕가의 분규로 스페인에 합병(1580∼1640)되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후원으로 독립을 회복하였고, 1910년 혁명으로 마누엘 2세(Manuel Ⅱ)가 폐위되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32년 이래 강력한 독재체제를 유지해온 살라자르(Salazar, A. O.)가 죽고 카에타노(Caetano, M.)의 독재가 계속되었으나, 1974년 4월 25일 청년 장교단의 무혈쿠데타가 성공하여 독재정치는 끝났다.

1976년 4월 25일 헌법을 제정하고 총선 결과에 따라 소아레스 사회당 소수 단독내각이 제1차 합헌정부로 출범하였으며, 그 이후 1985년 11월 제10차 합헌 정부까지 매년 정권이 교체되는 등 민주정치의 외양은 유지되었으나 불안정한 국면이 계속되었다.

1986년 2월 16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소아레스 총리가 1926년 이래 최초의 민간인 출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1987년 7월 및 1991년 10월에 제11차 및 제12차 합헌정부가 사회민주당 단독 정부로 각각 수립되었다.


지리

수도는 리스본(Lisbon/Lisboa)이며, 국토면적은 92,090㎢로 세계에서 111번째로 큰 영토이다. 포르투갈의 대륙부는 유럽의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오직 스페인 한 국가와 국경을 접한다. 대륙부의 국토는 가장 중요한 하천인 테주 강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북쪽은 내륙으로 이 지역에서 농업이 발달한 사이사이 낀 고원을 가진 산악지역의 풍경을 보인다. 남쪽으로는 알가르브 지방까지 드문드문 산맥이 나타나는 평원이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

포르투갈은 본토, 아소르스 제도 그리고 데제르타스 제도, 셀바젱스 제도, 포르투산투 섬을 포함한 마데이라 제도로 구분되며, 긴 해안을 갖는다. 이러한 해안은 다양한 절벽과 모래사장과 함께 아름다운 해변을 형성하고 있다. 암석으로부터 생성된 본토의 해안과 달리, 포르투산투 섬에는 조개껍질과 같은 유기물로 만들어진 9km에 달하는 사구가 있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포르투갈 해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아베이루 가까이 위치한 보가 강 하구의 아베이루 히아(포르투갈어: ria de Aveiro)로, 길이 45 km, 최대 폭 11km에 달하며, 어류와 해양 조류가 풍부하다. 4개의 수로 사이에 여러 크고 작은 섬들이 있고, 4개의 강이 대서양으로 접어든다. 또한 사취가 형성되어 석호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포르투갈의 해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로 여겨진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도 큰 축에 속하는 약 1,683,000 km²에 달하는 배타적 경제 수역을 갖는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유럽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를 갖는 나라 중 하나이다. 포르투갈 본토의 연 평균 온도는 북부 내륙 산악지역이 13 °C, 남부 과디아나 강 유역이 18 °C 정도의 다양성을 보인다. 북부 지방 고지대와 최북단 해안 지방, 중부 지방에서의 여름은 온화한 편이다. 가을과 겨울은 보통 바람이 많이 불며, 비가 많이 내리고 선선하다. 중부와 북부 지방의 주에서 가장 추우며, 이들 가운데 일부에서는 가장 추운 기간 중에는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하지만 포르투갈 남부 지방의 도시에서는 온도가 0 °C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며, 대개의 경우 5 °C 정도에서 머문다.

앞서 언급했듯이, 포르투갈의 기온은 대체로 온난하나 산악지대는 극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국토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연평균강수량 500mm 이하의 건조지역으로 바뀌며,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지중해성이 된다. 또한 포르투갈은 알프스 히말라야 지진대에 속하기 때문에 유사 이래 몇 차례의 대지진이 기록되고 있으며, 특히 1775년 리스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삼림면적은 국토의 28%로 주로 북부 해안지대에 산림이 많고 남부의 코르크나무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원이다.


사회

인구

2014년 기준으로 포르투갈 인구는 약 10,813,834명이다. 인구밀도는 동부 내륙지방보다 서부 해안지방이 높으며 특히 북서부의 풍요한 농업지대가 가장 높다.

인종

포르투갈의 주민은 지중해 인종에 속하며 예로부터 켈트계 이베리아인이 중심이 되어 형성되었다. 민족적으로는 에스파냐의 갈리시아 지방의 주민과 유사하다.

언어

포르투갈의 공용어는 1290년 국왕 동 디니스의 선포에 따라 채택된 포르투갈어다. 포르투갈어는 2억 1천만 명의 모국어 사용자가 있으며, 세계에서 5번째, 서양에서 3번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이다. 포르투갈, 브라질, 앙골라,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상투메 프린시페의 공용어이며, 동티모르, 마카오, 적도 기니에서도 다른 언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으며, 옛 포르투갈령 인도 (고아 주, 다만 디우, 다드라 나가르하벨리)에서도 사용되며, 유럽 연합,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 (UNASUL), 메르코수르, 아프리카 연합에서 공용어 지휘를 갖는다.

또한 포르투갈어 수화 역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보호되며, 아스투리아스레온어에서 유래한 미란다어는 미란다두도루에서 공식적으로 보호되며, 미란다두도루와 비미오주 일부에서 제2 선택 언어로 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러나 본 언어의 사용은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사용자 공동체에 언어적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포르투갈어는 카스티야어, 카탈루냐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루마니아어, 스위스 로망슈어 등과 함께 로망스어로, 이베리아로망스어 집단에 속한다.

포르투갈어는 우스 루지아다스의 작가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이름을 따 "카몽이스의 언어", 올라부 빌락의 소네트 "Língua Portuguesa"에서 사용된 표현인 "라티움의 마지막 꽃" 또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사용한 표현인 "달콤한 언어"로도 알려져 있다.

종교

포르투갈 전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84.6%는 가톨릭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가톨릭 교회의 2001년 자체 연구에 따르면 일요일 미사는 1,933,677명(전체 인구의 18.7%)의 가톨릭 신자가 참여하며, 영성체를 받은 사람은 1,065,036명(전체 인구의 10.3%)이다. 혼인의 절반 가까이가 자동적으로 효력을 갖는 가톨릭식 혼인으로 이뤄진다. 동성간 결혼 및 이혼 또한 민법에 따라 상호 동의 및 이혼의 경우 배우자 중 한 명이 법원에 요청 시 허용되지만, 교회 혼인법에서는 이러한 동성간 결혼을 제공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에는 브라가, 리스본, 에보라 세 대교구로 묶인 20개의 교구가 있다. 다른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2004년 포르투갈의 가톨릭 인구는 90.41%이며, 포르탈레그르-카스텔루브랑쿠 교구에서 가장 많은 99.35%, 베자 교구에서 가장 적은 83.42%의 수치를 보여줬다. 리스본 교구와 포르투 교구는 각각 85%와 90.59%의 가톨릭 인구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르투갈의 개신교는 주로 신오순절주의적 복음주의에 기원한 포르투갈 하나님의 성회, 마나 교회와 브라질인 이민으로 유입된 하나님의 왕국 세계 교회(포르투갈어: 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 등 여러 종파가 있다.

포르투갈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650여개 교회에 퍼진 50,000명에 가까운 신도를 보유하며, 비슷한 수의 지지자를 얻고 있다. 95,000만 명 이상이 2007년 최후의 만찬을 주요 행사로 여겼다. 본 종교는 1925년 이래로 포르투갈에 존재해 왔고, 1961년에서 197년 사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이 기간 중에는 비밀리에 운영되었다. 1974년 12월 여호와의 증인 협회가 합법적으로 인정되어, 오늘날 알카비데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 포르투갈은 본 종파가 현재 활동 하는 236개국 중 하나이다.

포르투갈의 유대 공동체는, 강제 개종, 추방, 감금 및 이어진 포르투갈 종교 재판을 통해 행해진 처벌을 선택하도록 한 1496년 국왕 동 마누엘의 포고에 따른 유대인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공동체 중 하나였던 포르투갈 공동체는 몰락하였다. 국경지대 마을인 벨몬트에서 이 종교가 발전한 형태는 포르투갈에서의 유대인이 하나로 뭉쳐 견뎌낸 예 중 하나이다. 1506년 리스본에서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난혹한 수준의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 2000명에서 4000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주로 이민자의 자손으로 구성된 만 오천명 가량의 소수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가 있으며, 또한 간간히 또는 지역적 수준에서 불교도, 영지주의자, 영성주의자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경제

포르투갈의 통화는 유로(EUR, €)를 사용하고 있으며, GDP는 2,010억 달러(세계 47위), 1인당 GDP는 19,324달러(세계 39위)[1]에 달한다.


정치

현직 대통령 마르셀루 헤벨루 지 소자(Marcelo Rebelo de Sousa)
*재임기간: 2016. 3. ~
현직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Antonio Costa)
*재임기간: 2015. ~

1976년 4월 2일 제정되어 몇 차례에 걸쳐 수정된 헌법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대통령제가 가미된 의원내각제 공화국이다. 단원제 국회는 230석의 4년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다. 1999년 10월 총선거에서 총리 안토니우 구테헤스가 이끄는 사회당이 승리하여 2기에 들어갔으나 2001년 초부터 경제부진, 정권운영의 혼란 등으로 인하여 총리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일어났다.

2001년 12월 실시된 통일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이 최대 야당인 사회민주당에 대패하였고 총리는 사임을 표명하였다. 그 결과 2002년 3월 조기 총선거를 실시하여 사회민주당이 1995년 이후 7년 만에 승리함으로써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고 사회민주당 총재 호세 마누엘 듀라오 바로소가 총리에 선출되었다. 그후 사회민주당은 2005년 2월 20일 총선에서 패배하였다. 당시 선출된 당별 의석 분포는 포르투갈 사회당(PS) 121석, 사회민주당(PSD) 75석, 통일민주연합(CDU) 14석, 대중당(PP) 12석, 좌익블록(BE) 8석 등이다. 포르투갈 사회당 당수 조제 소크라트스(José Sócrates)가 다수당 대표로서 2005년 3월 12일 이후 총리으로 선출되었고, 재임이 가능한 5년 임기의 대통령은 2006년 1월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카바코 실바(Anibal Cabaco Silva)가 당선되어 2015년까지 역임했다,

2016년 1월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 없이 마르셀루 헤벨루 지 소자(Marcelo Rebelo de Sousa)가 당선되었으며, 안토니우 코스타(Antonio Costa)가 현재 총리를 맡고 있다.


문화

1949년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는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하였고 1998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포르투갈어권 최초로 사라마구가 선정되었다. 사라마구는 1947년 첫소설인 《죄의 나라》를 발표하였고, 1982년에는 《발다사르와 블리문다》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포르투갈의 문화는 전통적인 지방문화와 리스본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문화로 구분된다. 다양한 역사적 사건은 고딕 양식, 바로크 양식, 로마 양식 등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겼다. 특히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은 18세기의 경제적 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민요인 파두(Fado)의 여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과의 관계

1961년 4월 15일 정식수교한 후 1975년 6월 11일 주 포르투갈 대사관을 개설하였으며, 2015년 현재도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있다.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포르투갈인은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항해 도중 폭풍으로 난파된 무역선장으로, 1577년 조선에 입국한 바 있으나 그 뒤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학계의 통설로는 1593년 입국한 신부 세스페데스(Sespedes)가 최초의 서양인으로 되어 있다.

포르투갈은 종래 아시아지역에 대하여는 마카오와 관련하여 중국, 경제대국인 일본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고는 극동정세에 무관심한 입장이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널리 알려져 많은 관심과 협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1977년 12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79년 9월 사증면제 협정, 1984년 6월 경제산업 및 기술협력 협정, 1985년 1월 경제기술 협정, 1991년 7월 문화 협정, 1996년 8월 투자보장협정, 1997년 12월 이중과세방지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한국은 1979년 9월 민속예술단을, 1980년 9월에는 국악연주단을 파견하여 공연하였으며, 1983년 1∼2월에는 리스본에서 미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한국의 대 포르투갈 주요 수출품목은 플라스틱·고무, 기계·장치, 금속, 차량·운송장비 등으로 전체 수출의 약 92%를 차지하며, 주요 수입품목은 플라스틱·고무, 기계·장치, 화학제품, 미네랄·광석, 목재·코르크 등으로 전체 수입에 약 80%를 차지한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99명의 포르투갈선수단이 참가하였고, 1980년에 개교한 한글학교도 현재 운영 중이다. 현재 약 190명 가량의 체류자(주재원, 동포, 유학생 등)들이 있다.(2014년 기준)


 ※ 위의 내용은 주포르투갈대사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대상 문서 설명
uses 교육제도:포르투갈 포르투갈 교육과정, 2015년 조사 보고
uses 교과서목록:포르투갈 포르투갈 사회과 교과서 목록
  1. 2015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