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쿠바
이름 및 위치
쿠바의 정식 국가 명칭은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 / República de Cuba)이다. 쿠바는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서부, 서인도제도에 위치한 섬나라 국가이며, '카리브해의 진주' 또는 '앤틸열도의 진주'라고 불린다.
쿠바는 동쪽으로 윈드워드 해협을 사이에두고 히스파니올라섬(서쪽 1/3은 아이티, 동쪽 2/3은 도미니카공화국), 서쪽으로는 멕시코, 남쪽으로는 케이만 해협을 두고 케이만 제도와 자메이카, 북쪽으로는 플로리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미국 플로리다 주와 면하고 있다.
간략역사
쿠바는 수 천년 전에 과나아타베이(Guanahatebey), 시보네이(Siboney), 타이노(Taino) 세 종족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이후 스페인의 식민지로 편입되었고 19세기까지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었다. 콜럼버스 발견 당시 약 10만 명에 이르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스페인 정복자들의 착취와 질병으로 50년 만에 5,000명 수준으로 원주민 수가 격감했다. 1562년부터 사탕수수와 담배 재배를 위해 흑인 노예들을 수입했으며, 19세기까지 수입된 흑인 노예의 수만 100만 명에 이르렀다.
1868년 흑인들은 스페인에 대항한 제 1차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이 전쟁은 10년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스페인으로부터 정치 개혁 등을 양보받는 내용의 산혼(Zanjon)조약 체결로 종결되었다. 이어서 1886년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1895년부터 3년간 2차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1989년 2월, 쿠바를 넘보고 있던 미국은 미해군함정 Maine호가 아바나 항에서 정박중에 원인모를 폭발로 침몰한 사건을 구실로 독립전쟁에 개입을 했고, 이는 미-서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승리로 끝난 미-서전쟁은 1898년 12월 파리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스페인은 쿠바, 필리핀 등을 미국에 넘겨주게되었다. 이로 인해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였으나, 1899년~1902년 미군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쿠바는 4년 간의 미군정을 거친 뒤 1902년 5월 20일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정권 수립까지 정치·경제면에서 미국의 영향권하에 있었으며, 1903년 미국과 관타나모기지 조차협정을 체결하여 현재에도 미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독재, 부패, 쿠데타가 빈발하는 가운데 변호사 출신의 카스트로가 6년간의 혁명운동 끝에 1959년 정권을 장악하여, 소련을 비롯한 공산제국의 원조를 받아가며 극좌경성향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공산통치를 해 나갔다. 카스트로의 장기집권이 계속되었으나, 2006년 카스트로의 장출혈로 인한 수술 및 입원으로 동생인 라운 카스트로(Raul Castro)에게 한시적으로 권력을 이양했다. 이후 2008년 피델 카스트로는 국가평의회 의장을 사임한다는 발표를 하고 라울 카스트로가 의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이후 라울 카스트로는 많은 개혁 조치를 단행하였으며, 미국-쿠바간의 관계를 완화시킨 바 있다.
지리
쿠바의 수도는 아바나(Habana)이다. 총 국토면적은 약110,860km²로 한반도 면적의 1/2에 해당하며,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섬나라이다. 쿠바는 쿠바 섬(Cuba) 및 이슬라 데 후벤투드섬(Isla de Juventud) 등 3,71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180km, 멕시코 칸쿤에서 210km, 바하마에서 140km, 자메이카에서 146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동서간 길이 1,199km, 남북간 평균 폭 80km로 카리브 최대이며, 국토의 3/4은 평야이고 1/4은 산악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총 5,745km로 북쪽해안(3,209km)은 가파르고 바위가 많으며 남쪽해안(2,537km)은 지대가 낮고 다수의 늪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쿠바는 아열대성 기후 이지만, 연중 부는 북동쪽의 무역풍으로 온화한 편이다. 1년 중 가장 서늘한 1월 평균기온이 22.5°C, 가장 더운 8월 평균기온이 28°C로 연중 기온변화가 적은 편이며 연평균 기온은 24.5°C이다.
1년 중 5~10월은 우기, 11~4월은 건기로 구분되며 8~10월에는 허리케인으로 인한 풍수해가 잦은 편이다.
사회
인구
2014년 기준으로 쿠바의 인구는 약11,047,251명이며, 인구밀도는 약 102명/km²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다.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곳은 수도인 아바나(Havana)이며, 2,200,000명(19.3%)이 거주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 1,046,000명(9.3%), 올긴(Holguín) 1,034,000명(9.2%) 등의 순으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인종
쿠바의 인종은 백인 64%, 물라토(흑인과 백인 혼혈) 및 메스티소 26%, 흑인 9%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쿠바 정부는 인종별 통계는 인종차별로 연결된다는 이유로 인종별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앞에 언급한 비율은 추정치이다.
쿠바 섬에는 원주민, 백인, 메스티소, 흑인에 동양인까지 다양한 인종이 혼합되어 새로운 혼혈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언어
쿠바는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본토에 가까운 곳, 호텔, 레스토랑, 그리고 도심 등에서는 영어가 통한다. 그 외 소수 사용언어로 러시아어, 아이티어 등이 있다.
종교
쿠바혁명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된 후 쿠바 정부는 종교를 탄압했으나, 현재는 종교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고 있다. 쿠바혁명 이전(피델 카스트로 집권 이전) 국민의 85%가 로마카톨릭 신자였지만, 현재는 그 수준에까지 미치지는 못한다. 그래도 현재 쿠바의 종교는 로마카톨릭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개신교, 여호와의 증인, 유대교, 산테리아(흑인 부족신 오릿샤(Orichas)와 카톨릭 신앙 결합) 등이 공존한다.
경제
쿠바의 통화는 페소(Peso, CUC[1]/CUP[2]를 사용하고 있다.
쿠바의 전체 GDP는 708억$(2015년 예상)이며, 1인당 GDP는 11,137$ (2015년 예상) 달한다.
쿠바의 경제는 중앙집권적 통제경제로 만성적 식량 부족, 제조업 부재, 외국인투자 제한, 미국의 봉쇄 정책 등으로 어려움에 도달했다.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나, 만성적인 외화 부족으로 수입대금 미결제 사태가 빈발하며, 물자 부족 상황 심화되었다. 수출은 광산물 및 농산물에 국한되어 무역 수지는 만성 적자이며, 상품수입에 필요한 외화는 해외 친척 송금(연간 U$26억), 관광수입(연간 U$20~25억), 교사 및 의사 서비스 수출 등으로 보전하고 있다.
외화부족 심화로 2009년 7월 전체 외국인회사의 쿠바 구좌를 동결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으며, 이를 통해 조달한 외화도 대부분 소진한 상태이다. 특히, 2008년 이후 쿠바의 주 수출품인 니켈가격의 하락과 최대 수입품인 쌀 가격의 상승, 관광수입 감소 등으로 외화부족 상태가 심화되고 있어 대외 미결제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니켈가격 상승 및 배급물량 축소에 따른 정부지출 감소 등으로 쿠바정부 재정이 다소 확충되었으며, 5만개에 불과하던 자영업을 30만개까지 확대함에 따라 배급축소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이 일정정도 활성화되는 추세이다. 자영업의 수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현지화인 CUP(불태환페소)로 운영되는 서비스업(스낵판매, 운송, 숙박업, 음식점)에 불과하여 근본적인 경제 활성화 조치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자영업 면허 취득자의 60%가 무직자였으므로 경제 활성화에는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력한 중앙통제경제 운영으로 모든 상점과 기업을 정부가 독점하고 있어 관료주의로 인한 폐해도 심각하다. 쿠바 국영기업에게만 수입권을 부여하는 것이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10년부터 쿠바정부가 표방한 공공부문 감축(단기 50만명, 중장기 100만명)은 실행이 매우 더딘 상황이었으나 2011년 4월 이후 교육과 보건부문을 필두로 점진적으로 이행 중에 있다. 그러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어 목표 달성 여부는 미지수이다.
부정부패와 지하경제는 지속 확대 추세이고, 특히, 최근 배급량 감소, 각종 보조금 폐지, 공무원 및 국영기업체 직원 감축 등으로 인해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국민들의 공공물자 절취 증가, 암거래 성행 및 지하경제활동이 확대되고 있다.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 경제개혁 프로그램에 명시된“결정하는 자는 협상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도 부정부패 근절을 위한 조치이다. 한편, 전기, 전화, 일부 식료품은 불태환페소(CUP)로 저가 공급되는 반면, 주요 공산품은 국영 상점에서 태환페소(CUC)로 판매되는 이중 시장구조 (환율 1CUC=24CUP)를 유지하고 있다.
쿠바경제는 최근 공무원 및 국영기업체 인원감축(100만 명) 및 자영업 허가 등을 정책으로 발표하는 등 외형적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적으로는 국가통제 강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쿠바 독점통신회사의 외국자본(이탈리아텔레콤) 지분을 국방부 산하 기업에서 인수하는 등 통신 분야도 국방부가 개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쿠바 정부는 최근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나, 세계 경제의 전반적 침체와 더불어 쿠바의 경제·사회적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 회피 현상으로 경제 성장 속도가 더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쿠바는 1차 산품이 주요 수출품목으로 니켈 등 광물(14억$), 사탕수수(설탕)관련 제품(3억$), 담배(씨가)관련 제품(2억$), 수산물, 농축산물 등 순으로, 주요 수출국으로는 캐나다(15.9%), 중국(15.1%), 베네수엘라(14.1%), 스페인(7.5%)이다. 주요 수입품목으로는 석유 및 광물(63억$), 자동차 및 교통관련 설비(19억$), 식료품(18억$), 산업 장비(13억$) 등이며, 주요 수입국으로는 베네수엘라(37.4%), 중국(12.2%), 스페인(9.3%)이다.
1990년대 이후 대외개방 확대에 따라 구소련 및 동구권 비중이 감소하고 미주·유럽으로 교역 대상이 확대되었으며, 2004년 이후에는 중국· 베네수엘라와의 교역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현재 지역별 무역비중은 미주지역 55%, 유럽 27%, 아시아 15%, 중동 및 아프리카가 3%를 차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제조업이 취약하여 주요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수출품은 광산물 및 농산물에 국한되어 있어 상품 무역수지는 만성적인 적자 상태이다. 상품수입에 필요한 외화는 해외거주 쿠바인 송금(연간 U$26억), 관광 수입(연간 U$20~25억), 교사 및 의료 서비스 수출 등으로 보전하고 있다.
정치
1976년 쿠바 헌법은‘전체 인민이 기본적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사회주의 노동자 국가’로 국체를 규정했으며, 정부형태는 1965년 창설된 유일 합법정당인 쿠바공산당 (Partido Comunista de Cuba)에 의한 1당 독재 체제이다.
의회는 단원제이며, 국가권력의 최고기관은 ‘인민권력국가회의’이다. 이는 전국의 자치구에서 선출되는 ‘인민권력 지방회의’ 대의원 중에서 5년 임기로 선출되는 대의원 612명으로 구성된다. 이 5년 임기의 의원 중 55%는 지방·주회의가 추천하며, 45%는 공산당이 직접 임명한다. 전국회의 폐회 기간중에는 회의에서 선출된 국가평의회가 그 기능을 대행하며, 평의회 의장이 국가원수(元首)가 된다. 행정의 최고책임은 평의회 의장을 의장으로 하는 각료회의에 있으며, 각료는 평의회 의장의 제안에 따라 전국회의에 의해서 임명된다.
쿠바의 국가원수는 현재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겸 각료회의 의장으로 2008년 2월 24일 취임하였다. 쿠바혁명이래 49년간 집권하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병환으로 인해 2008년 2월 19일 국가원수직을 사임하고 쿠바공산당 제1 서기직만 유지한다. 2008년 1월 20일 실시된 인민권력국가회의(의회) 총선에서 임기 5년의 614명의 의원들이 당선되었으며, 와병 중인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도 당선되었다. 이어 2월 24일에는 614명의 의원당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 7대 쿠바신국회 지도부를 선출하고 임기 5년의 국가평의회(31명)를 새로 구성하였다. 따라서 쿠바정부와 국민들 대표하는 국가원수격인 국가평의회 의장, 수석부의장 1명, 부의장 5명, 서기 및 일반 평위원들이 선출된다.
사법권의 정점인 인민최고재판소는 전국회의에 의해서 선출된다. 유일정당제인 쿠바에서는 쿠바 공산당(PCC)이 유일한 정당이다. 공산당 외에 쿠바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은 군사력으로, 육·해·공군의 총사령관은 국가평의회 의장이고, 17세부터 28세까지의 남녀에게 2년간의 병역의무가 과해진다(2006년). 국방 예산은 2006년 현재 GDP의 3.8%로, 12억 달러(2003년)가 국방비로 소요된다. 군사력은 2003년 기준으로 총 12만 1000명으로, 육군 3만 8000명, 해군 3000명, 공군 8만 명이다.
카스트로 집권 초기에는 모든 나라와의 평화공존, 내정 불간섭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아 중립정책을 선언하였으나, 1961년 미국과의 단교 이후 지금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독자노선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베트남·북한 등 공산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경제적으로는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동맹국가들과의 연대를 중시하고 서구 제국과의 관계 긴밀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1998년 1월에는 로마교황의 쿠바 방문이 실현되었고 2월에는 바티칸의 요청에 응하여 정치범을 포함한 죄수 약 300명을 석방하였다.
문화
쿠바 아바나는 쿠바혁명(카스트로 혁명) 이전 중남미의 라스베가스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휴양·관광도시로 각광받았고, 멕시코시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필적하는 중남미의 문화 거점으로서 문학, 미술, 음악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쿠바는 일찍부터 신·구대륙을 잇는 관문으로서의 역할하면서 기존 원주민 문화와 스페인 문화에 아프리카 흑인 문화가 혼합되고, 거기에 중국 문화까지 유입되면서 이종혼합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쿠바음악은 스페인으로부터 유입된 궁중음악 및 민속음악, 아프리카의 타악기와 춤 등이 쿠바 음악의 기원을 형성했다. 활기찬 선율과 반복을 강조함으로써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추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주로 경쾌한 타악기 리듬의 춤곡이 발달했다. 아프리카의 타악기 리듬을 활용하여 흑인노예들의 자유를 향한 몸짓을 표현한 룸바, 1950년대 미국 재즈의 영향으로 탄생한 쿠바 맘보(차차차), 미뉴에트, 왈츠 등 스페인 무곡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아바네라(아바나의 무곡) 등이 대표적이다. 쿠바 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19세기말 기원한 손(son)은 쿠바의 대표적 음악장르로서 악곡, 무곡, 합주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으며, 오늘날 유행하는 살사의 기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대의 대표적 음악가로는“쿠바의 비틀즈”로 불리는“로스 반 반(Los Van Van)”과 쿠바 재즈의 전설로 불리는 루벤 곤살레스(Ruben González), 쿠바 음악계의 거장 콤파이 세군도(Compay Segundo), 미국 음악계를 주름잡은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등이 유명하다.
쿠바 문학은 19세기 초 발달하기 시작하여 반노예주의 성향을 띤 작품들이 많았으며 헤르트루디스 고메스 데 아베야네다(Gertrudis Gómez de Avellaneda)와 크리요 비야베르데(Cirilo Villaverde) 등이 대표적이다. 1886년 노예제 폐지이후 쿠바 문학의 주제는 독립과 자유로 옮아갔으며 중남미 모데르니스모 운동의 선구자이자 혁명가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는 쿠바인의 민족혼과 공동체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이후 쿠바 문학은 중남미 문학과 쿠바 붐(Boom)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알레호 카르펜티에르(Alejo Carpentier, 1904-1980)와“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들(Tres Tristes Tigres)”를 저술한 네오바로크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기예르모 카브레라 인판테(Guillermo Cabrera Infante, 1929-2005)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주요 작가들로는 비평가이자 시인으로 중남미 문학의 전설적 인물로 평가되는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Roberto Fernández Retamar, 1930년생), 비평가, 번역가 및 시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최초의 쿠바 흑인여성 작가 낸시 모레혼(Nancy Morejón, 1944년생), 증언문학의 개척자, 민속학자로 현대 증언문학의 효시인“도망친 노예의 일생”저술한 미겔 바르넷(Miguel Barnet, 1940년생), 그리고 스스로 쿠바인임을 자처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20여 년간 쿠바 아바나에 머물면서“노인과 바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만류속의 섬들”등 쿠바를 배경으로 한 주옥같은 작품을 저술했다.
쿠바 미술은 아프리카, 유럽, 북미 문화가 융합되어 20세기 초 유럽의 모더니즘과 사회주의적 전위예술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모더니스트인 아멜리아 펠라에스(Amelia Peláez, 1896-1968), 초현실주의자인 위프레도 람(Wifredo Lam, 1902-1982) 등이 국제적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쿠바 예술가는 사진작가인 알베르토 코르다(Alberto Korda)로 그가 찍은 베레모를 쓴 체게바라(Che Guevara)의 실물 사진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이미지가 되었으며, 수많은 젊은이들과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쿠바 요리는 스페인, 카리브해, 아프리카 식단을 고루 갖춘 요리이다. 쿠바 요리는 특이하게도 스페인과 아프리카식 요리법을 자국에 도입한 한편 타국과는 다른 독특한 향이 많이 나타나서 자국의 향취를 풍긴다. 적기는 하지만 중국 요리의 영향이 수도 아바나를 중심으로 나타난다. 쿠바요리는 멕시코 요리와 상당한 연관이 있으며 미국과 유럽 관광객이 많아서 특히 더 다양하다. 라틴 아메리카 요리와 미국 요리가 지니던 특색과는 또다른 묘미가 있다고들 한다.
서부 쿠바의 요리법은 스페인 요리에 기반을 둔 것으로서 별칭으로 크리오요(Criollo)로 칭해진다. 아바나에 해당되며 대륙의 영향과 특별히 유럽 요리의 특색이 최근 들어 거세지고 있다. 중국계 인구가 늘어나면서 아로스 살테아도(Arroz salteado, 볶음밥 일종)등으로 소비되고 있다. 콩이나 밀가루를 이용한 요리가 많으며 올리브기름도 많이 소비한다. 크로켓 요리도 상당수 존재하며 햄, 닭고기, 생선, 치즈가 상당수 포함된다. 해안지방이므로 오믈렛을 요리할 때도 달걀 외에 바나나를 비롯해 청어 등 생선 요리가 많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바닷가재 요리가 쿠바의 풍미를 장식했지만 최근에는 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보통 사람들이 소비하기는 어렵게 됐다. 쿠바 자체의 바닷가재 시장과 그 시설이 상당히 뛰어나기는 하지만 최근의 사정이 소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새우를 칠리소스로 요리한 비스카이나라는 요리는 토마토 소스를 요리한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대구를 이용한 바스크 지방의 요리로 그 뿌리를 찾는다. 파에야(Paella)나 닭고기로 요리한 아로스 콘 포요(Arroz con pollo), 엠파나다(Empanada) 등도 쿠바 내에서 많이 소비된다. 스페인의 갈리시아(Galicía) 지방과 아스투리아스(Austurias) 지방의 요리가 많다고 하는데 20세기 초반 이 지방의 이민자가 상당히 많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동쪽 지방은 과거 토착주민의 뿌리가 내렸던 곳이므로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토착 식단에 근거한 요리가 특히 강하다. 따라서 쿠바 원래의 맛을 느낀다면 동부 지방으로 가야할 것이다. 콘그리 오리엔탈(Congrí oriental)이라는 요리는 팥과 쌀로 요리하는 것으로 팥으로 지은 볶음밥이다. 대개 스페인 영향을 받았던 섬국가에서는 팥이 콩보다 더 많이 쓰이는데 쿠바에서는 두 재료 모두 빈번하게 쓰인다. 쿠바 요리가 콩과 상응한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콩의 사용은 아프리카 출신의 민족 영향 때문이다. 쿠바를 빼고 남아메리카에서 검은콩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브라질뿐이다. 때문에 브라질 요리와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은 편이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에서 기타 음식이 많이 존재하는데 돼지고기로 바나나 잎을 채워서 바나나와 같이 요리하는 모폰고(Mofongo)는 닭고기나 생선을 재료로 쓰기도 한다.
한국과의 관계
쿠바는 1949년 7월 대한민국을 승인하고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1959년 카스트로 정권 수립 후 쿠바는 미군 주둔을 이유로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간주,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북한과 공고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서울올림픽에도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는 등 대한(對韓)기피 태도를 고수했다. 1999년 제54차 유엔총회 대 쿠바 금수해제 결의안 표결 시 우리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종전 입장(기권)을 변경하여 찬성 투표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태도는 호전되었다. 냉전 종식 후, 쿠바는 북한과는 정치·군사협력, 한국과는 경제협력을 목표로 2005년 KOTRA 아바나 사무소 개설을 허용하는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 교류를 시작했다.
쿠바에는 주대한민국 대사관이 설립되지 않았기에, 주멕시코대한민국대사관을 공식 대화채널로 하여 양국관계 개선 방안, 인사교류, 국제기구 입후보 지지 등 주요 현안을 협의했다. 한국 정부는 2008년 8월 구스타브 등 3개의 허리케인이 쿠바를 강타, 이재민 120만명, 가옥 14만채 파괴, 사망 4명 등 피해가 발생하자 이를 복구하는데 필요한 인도적 지원(10만불)을 실시했으며, 2013년 쿠바를 강타한 허리케인(샌디)으로 11명이 사망하자, 우리 정부는 2013년 7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20만불 상당의 쌀을 전달한 바 있다. 또한, 기타 국제회의 계기 등을 통한 양자 접촉 및 국제기구 입후보 교환 지지(또는 일방 지지) 등을 통해 점차 정무 분야에서도 관계 증진 추진 중에 있다.
한국의 대 쿠바 수출입 통계는 정치적 미수교 및 여타 대외관계로 인해 국내에서 공개되지 않았으나, 2005년 9월 아바나무역관 개설을 계기로 2006년 통계부터 공개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 쿠바 수출은 2005년까지 4천만$ 수준이었으나, 2006년~ 2008년 3년간 매년 2억~3억$ 수준으로 증가했다. 2006년부터 대 쿠바 수출이 급증한 이유는 쿠바 정부의 정책 품목인 발전기(현대중공업), 에어컨 및 냉장고(LG전자)등의 대형 수출이 있었기 때문으로 현대중공업의 발전기 납품이 2008년 대부분 종료됨에 따라 2009년 상반기 수출액은 감소세로 돌아갔다. 한국의 대 쿠바 수입은 전통적으로 담배류, 금속 스크랩 등으로 1-3백만$에 불과한 실정(40위권)이었으나, 2011년부터 나프타 수입이 개시됨에 따라 수입액이 증가했다.
양국간 직교역은 쿠바가 미수교국이며, 정치적 측면에 따른 시장 위험이 크고 대금 결제가 담보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으나,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및 현대중공업이 쿠바와 직거래를 개시했다. 그러나 현대 및 기아자동차 및 부품은 스페인 및 도미니카의 에이전트를 통해 간접 교역 형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2010년 한국제품의 중개무역상 2개사가 부정부패로 인해 쿠바정부에 의해 사업장이 폐쇄됨에 따라 2011~2012년간 한국수출이 타격(수출 감소 품목: 자동차, 타이어, 중장비, 자동차 부품)을 입었다. 현대중공업 발전기 부품, 의료기기 등 한국 제품을 많이 취급하던 암펠로스사가 2012.12.24 자로 쿠바 상공회의소에 의해 쿠바 내 면허가 정지되면서 2013년 한국의 대쿠바 수출에 어려움을 직면했다.
쿠바로의 주요 수출품목은 다젤엔진 및 발전 관련제품,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타이어, 냉동오징어, 엘리베이터 등이며, 쿠바로부터의 주요 수입품목은 알루미늄 및 동(銅)의 처리물, 시가 등으로 2009년 상반기부터는 신규 품목 나프타와 커피를 수입하였고, 바닷가재, 천연꿀, 맥주 등이 수입 관심품목으로 올라왔다.
2012년 10월부터 아바나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강좌를 개설(수업은 호세마르티문화원에서 실시) 했다. 2013년 10월부터는 아바나국립대와는 별도로 호세마르티문화원과 합의하여 한국어 강좌를 계속해서 실시하였고, 초급 2반(각 35명) 및 중급 1반(35명) 등 총 105명이 수강하였다. 2014년 4월에는 쿠바에서 최초로 한국어능력시험이 실시되었으며, 총 83명이 지원하며 71명이 응시하였다.
최근 '내조의 여왕', '아가씨를 부탁해', '드림하이', '시크릿가든', '궁' 등의 한국 드라마가 Canal Habana 방송사에서 방영되어 쿠바 내 한류 문화가 확산되었다. 이러한 한류 열풍에 힘입어 미수교국임에도 불구, 쿠바 내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 및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 상승 추세이며, 쿠바 정부는 마리엘 항구 현대화 사업에 한국 기업들의 참여를 요청하는 등 한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에 관심을 표명했다.
쿠바 내 한국 국적자들은 2014년 6월 기준 20여명으로, KOTRA KBC센터 직원, 동포 투자기업 직원, 한-쿠바교류협회 직원, 아바나대 유학생, 선교사, 발전기 수출 관련 현대중공업 파견 직원 등이다.
그 외 2013년 12월 기준 쿠바거주 한인후손은 1,104명으로 아바나 270명, 카르데나스 321명, 마탄사스 162명, 카마기 145명, 마르카네 74명, 마나띠 41명, 올긴 56명 등 거주(순수 한국 혈통자는 83명)하고 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선인장 농장에서 일하던 300여명의 한인들이 1921년 3월 쿠바‘마딴사스’와‘카르데나스’의 사탕수수 농장에 취업하기 위해 이주했다. 쿠바 한인들은 1937-1944년간 1,289달러의 성금을 모아 국민회 중앙총회에, 264달러를 백범 김구 주석에게 보내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한 바 있으며, 특히 이민 2세인 前한인회 회장 임은조(1926년생, 쿠바명: 에로니모 임)는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前의장과 아바나대 법대 동기생으로 1959년 쿠바 혁명을 주도하고 산업차관과 키테라스 시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 8월 우리 정부 지원으로 아바나에‘쿠바한인후손문화회관’을 개관했다.
※ 위의 내용은 주멕시코대한민국대사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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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쿠바 | 쿠바 교육과정, 2016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쿠바 | 쿠바 사회과 교과서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