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르완다
르완다(Rwanda) | |
인구 | 11,689,696(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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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26,338km² |
언어 | 키냐르완다어, 프랑스어, 영어 |
정부 | 공화제 |
통화 | 프랑(RWF) |
GDP | 전체 $112.4억 / 1인당 $1,300 |
HDI | 0.434 |
국제전화 | +250 |
도메인 | .rw |
이름 및 위치
정식명칭은 르완다 공화국(Republic of Rwanda)이다. 남쪽은 부룬디, 동쪽은 탄자니아, 북쪽은 우간다, 서쪽은 콩고민주공화국과 접한다. 1994년 이후 투치족과 후투족의 내전으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는 등 인종갈등 문제가 숙제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 최고의 인구 조밀지역이며 내전으로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
간략역사
19세기 말부터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1919년에 벨기에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 이후 1946년에 벨기에의 신탁 통치령이 되었다가 1962년에 벨기에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이후, 소수족인 투치족과 후투족의 종족간 갈등이 유혈사태 등으로 꾸준히 표출되었다. 1990년에는 종족간 내전이 일어나 1994년까지 지속되었었는데,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후투족과 투치족이 싸우게 되면서 르완다 내전이 일어나게 된다. 1994년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2009년에는 영국 연방에 가입하였다.
정치
1963년부터 강제추방된 부룬디의 투치족이 르완다를 기습공격하자 르완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르완다 내부의 투치족 수천 명을 죽이고 1만 명을 우간다와 부룬디로 추방하였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1973년 후투족 출신의 국방장관 주베날 하뱌리마나의 쿠데타로 국가개발혁명운동(MRND)이 결성되고 장기집권해온 카이반다가 실각(失脚)하였다. 같은 해에 하뱌리마나가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1978년 12월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된 이후부터는 민간인과 군 장교로 구성된 국가개발혁명운동이 단일정당이 되어 1당독재로 최고권력을 보유하였다.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집행권을 가지고, 18명의 각료를 지명하여 내각을 구성하는데, 입법권은 MRND가 추천한 후보자 가운데 보통선거를 거쳐 선출한 7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국가개발의회가 가지고, MRND 창립자이며 대통령인 하뱌리마나는 1988년 3선에 이른다. 1991년에는 복수정당제를 도입하였다. 1990년 10월부터 우간다에서 무장한 르완다인(투치족) 난민이 본국으로 들어오면서 내전이 격화되었으나 1993년 정부군과 반란군 간의 아루샤(Arusha) 평화협정체결로 종식되고 과도거국내각을 수립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4년 4월 하뱌리마나의 비행기를 대통령친위대가 격추시킨 것이 발단이 되어 내전이 거듭되는 대학살의 참사를 맞았다. 안팎의 개혁압력에 많은 것을 양보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가진 보수파의 정치적 목적에 인종갈등이 더하여 참사를 초래하였는데, 50∼100만 명에 이르는 투치족과 후투족 융화파 시민이 학살되었다. 내전 이후 1994년 7월에 투치족 반군조직인 르완다애국전선(RPF)이 정권을 획득하였다. 내전 동안에 투치족이 우세해지자 후투족 시민들은 보복이 두려워 필사적으로 탈출하였는데, 이후 난민 130만 명이 1996년부터 귀환하였고 모든 분야에서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2000년 3월 후투족 출신의 대통령 비지문구가 사임하고 4월에 투치족 출신인 폴 카가메(Paul Kagame)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양 종족간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의회제도는 양원제이며 상원 26석 하원 80석 등 총 106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 투치족의 르완다애국전선(RPF)과 후투족의 민주공화운동(MDR), 사회민주당(PSD), 자유당(PL), 온건민주당(PDC), 르완다대중민주연합(UDPR) 등이 있다. 2003년 실시된 하원의원 선거에서 RPF가 40석, PSD가 7석, PL이 6석을 차지했고, 그 외 27석은 간접 선거를 통해 채워졌다. 병역제도는 지원제이며, 1993년의 평화협정에 따라 1만 3000명의 통합군을 창설하였다.
지리
844만의 인구에 중앙동부 아프리카 의 5대호 지구 안에 있는 작은 내륙국이다. 르완다는 우간다, 부룬디 ,콩고 민주 공화국 및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천개의 언덕의 땅"이라 불리는 비옥하고 험한 지형이며 대륙 아프리카 안에서 가장 조밀한 인구분포를 나타낸다.
사회
주민
1994년에 인구는 775만 명이었다. 약 89%가 후투족, 그 이외는 투치족이다. 82%가 기독교, 그 이외는 토착 종교 등이다. 공용어는 키냐르완다어, 프랑스어와 1996년에 추가된 영어 등 3개어다. 영어는 정부의 웹사이트의 공식어와 국립르완다대학교의 교수언어가 되어 가장 영향력있는 언어가 되었다. 2004년부터는 프랑스어와 르완다어로 표기된 지폐가 앞면에는 르완다어, 뒷면에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바뀌면서 명실상부한 영어사용국이 되었다. 르완다 정부의 공식홈페이지의 언어란을 보면, 영어, 키냐르완다어, 프랑스어 순으로 적고 있다.(2007년 5월 현재) 물론 정부의 공식홈페이지도 영어만으로 작성한다. 카가메 대통령이 인종학살의 과거심판 못지않게 언어표현권의 침해 및 문화다양성에 심히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은 중서부아프리카가 프랑스어사용국으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제고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음을 직시하고,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을 영어사용국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우간다에서 영어로 훈련받은 투치족 80만명이 입국하면서 권력을 장악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르완다는 2006년 가을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중단했다. 2009년 11월 28일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에서 개최된 영연방 정상회담에서 르완다는 54번째 영연방 회원국이 됐다. 이로써 진정한 영어사용국으로 거듭태어났다. 한편 르완다는 프랑스어의 사용이 명목적인 것이지만 국제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프랑코포니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데다가 대외활동을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등 영어권 동부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펼치고 있어서 프랑코포니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르완다에선 프랑스어는 거의 죽어가고 있는 언어다. 한편, 르완다는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2009년에 복원했다.
문화
르완다의 문화에는 옛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전통 문화유산으로는 투치 왕권의 합법성을 주장하기 위한 춤, 음악, 시가 많이 있고 1962년 독립 이후에는 후투족 유산을 강조하는 문화 흐름을 강조했다. 종교적인 춤이 각광받고 있고 바구니 공예, 세라믹 제품, 철 공예품, 직물 등은 과거의 전통을 살리고 있다. 국립발레단은 전통 민속춤을 주로 하며 현대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임파라 오케스트라는 국가 문화생활에 기여하고 있다. 르완다 국립박물관에는 전통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경제
르완다는 인구가 과밀하고 천연자원이 없는 내륙국이어서 경제적으로 불리한 편이며, 취업 인구의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커피가 주산물이다. 현 정부는 르완다의 실정에 맞게 경제 성장의 기본전략으로 인력개발 등 교육 분야 중점 육성 전략을 추진 중에 있다. 르완다는 건실한 경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여러 규제개혁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07년 GDP 성장률(추정치)는 6.0%이다. 르완다는 수도인 키갈리를 아프리카의 Dubai로 건설하여 무역 및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개발계획 추진 중에 있다. 산업별 GDP 비중을 살펴보면(2007년 추정치), 농업 38.2%, 제조업 20.1%, 서비스업 41.7%이다. 노동력의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르완다는 극심한 무역수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수출품은 커피, 차[茶], 주석광, 피혁, 중석, 텅스텐 등이고 수입품은 소비재, 식량, 원유, 의류 등이다. 주요 수출대상국은(2006년 기준) 중국(10.3%), 독일(9.7%), 미국(4.3%) 등이며, 주요 수입대상국은 케냐(19.6%), 독일(7.8%), 우간다(6.8%), 벨기에(5.1%) 등이다. 전력은 대부분 수력발전에 의존하며, 콩고민주공화국의 무루루 수력발전소에서 절반을 수입한다.
한국과의 관계
르완다는 한국과 1963년 3월 국교를 수립하였으며, 한국은 1970년,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소규모 원조를 제공하였다. 한국은 1972년 공관을 설치하고 1975년 철수하였고 1987년 재설치, 1990년 재철수를 하였다. 1970년 4월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함에 따라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 되었다. 2000년 이후 주요 인사의 교류가 활발해 지고 있는데 2006년 5월 반기문 당시 외무장관이 르완다를 방문했고, 2003~2006년 외무장관 등 주요 관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2005년 10월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및 KOICA 봉사단 파견 협정이 체결되었다. 2004년 대(對)한국 수입은 7만 달러, 수출은 50만달러이며 주요 수입품은 플라스틱, 전기기기, 섬유류 등이다.
※ 위의 내용은 주르완다 대한민국대사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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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르완다 | 교육과정, 2015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르완다 | 르완다 사회과 교과서 총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