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Oʻzbekiston Respublikasi) | |
인구 | 30,492,8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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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447,400㎢ |
언어 | 우즈벡어, 러시아어 |
정부 | 대통령제 공화국 |
통화 | 우즈베크 솜(UZS) |
GDP | 522.1억 달러(2005년,74위) |
HDI | 0.654 (114위, 2012년 조사) |
국제전화 | +998 |
도메인 | .uz |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내륙국이고,[1] 수도는 타슈켄트이다. 이 나라의 주민 다수는 우즈베크인이며,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교 신자이다. 공용어는 우즈베크어이지만,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공화국이었기 때문에 러시아어 사용자도 일부 있다. 현재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일원이다(1991년 12월 CIS에 가입). 이 나라는 1924년에 소련에 병합되었으며, 1991년 12월 8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현재의 국명으로 개칭하였다.
주요자원은 석탄·천연가스·금·동·텅스텐 등이며, 부존자원은 풍부한 편이다. 면화재배가 성하며, 그 밖에 쌀·양·누에고치의 생산도 많다. 천연가스와 석유·갈탄·구리·유황의 산출 및 전력이 있고, 기계제조(농기·방직기·광업기·화학·식료품 공업용 장치류), 질소·과린산비료, 직물(견·면), 식료품공업이 발달해 있다.
역사
우즈베키스탄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즈베크 족은 15세기까지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던 유목민이었으나 킵차크 한국이 붕괴되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16세기 초, 무함마드 샤이바니 때에 크게 팽창하여 카자흐 족과 모굴리스탄 한국을 격파하고 티무르 왕조를 멸망시켜 트란속시아나(現 우즈베키스탄 일대)를 장악했으며 호라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1510년, 샤이바니 칸이 사파비 왕조와의 마르브 전투에서 패하여 영토 확장이 중단된 이후 우즈베크 족은 기존에 점령한 중앙아시아 일대에 정착하여 부하라 한국, 히바 한국을 세웠으며 약 200년 뒤인 1709년엔 코칸트 지역에 코칸트 한국도 건국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남하 정책에 의해 침략을 받아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고 소련이 탄생한 직후인 1920년에 완전히 합병되었다. 소련 지배 기간 동안 유목민과 무슬림들은 스탈린의 집단 농장 체제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12월 8일에 독립 선언을 하였고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였다.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 12월 26일에 붕괴하였다.
지리
동쪽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은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은 투르크메니스탄, 북쪽과 북서쪽은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북서 일부는 아랄 해에 면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부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곳도 사막성 기후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곳이다. 아랄 해가 위치해 있지만, 소련 시절엔 강을 개간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는 호수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 구역
우즈베키스탄은 12개의 주(viloyat)와 1개의 자치 공화국(respublika), 1개의 특별시(shahar)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 구역 | 주도 | 면적 (㎢) | 인구 (2008년 기준)[2] |
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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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잔 주 (Andijon viloyati) | 안디잔 (Andijon) | 4,200㎢ | 2,477,900명 | 2 |
부하라 주 (Buxoro viloyati) | 부하라 (Buxoro) | 39,400㎢ | 1,576,800명 | 3 |
페르가나 주 (Farg'ona viloyati) | 페르가나 (Farg'ona) | 6,800㎢ | 2,997,400명 | 4 |
지자흐 주 (Jizzax viloyati) | 지자흐 (Jizzax) | 20,500㎢ | 1,090,900명 | 5 |
호레즘 주 (Xorazm viloyati) | 우르겐치 (Urganch) | 6,300㎢ | 1,517,600명 | 13 |
나망간 주 (Namangan viloyati) | 나망간 (Namangan) | 7,900㎢ | 2,196,200명 | 6 |
나보이 주 (Navoiy viloyati) | 나보이 (Navoiy) | 110,800㎢ | 834,100명 | 7 |
카슈카다리야 주 (Qashqadaryo viloyati) | 카르시 (Qarshi) | 28,400㎢ | 2,537,600명 | 8 |
카라칼파크스탄 (Qoraqalpog'iston Avtonom Respublikasi) | 누쿠스 (Nukus) | 160,000㎢ | 1,612,300명 | 14 |
사마르칸트 주 (Samarqand viloyati) | 사마르칸트 (Samarqand) | 16,400㎢ | 3,032,000명 | 9 |
시르다리야 주 (Sirdaryo viloyati) | 굴리스탄 (Gulistion) | 5,100㎢ | 698,100명 | 10 |
수르한다리야 주 (Surxondaryo viloyati) | 테르메스 (Termez) | 20,800㎢ | 2,012,600명 | 11 |
타슈켄트 주 (Toshkent viloyati) | 타슈켄트 (Toshkent) | 15,300㎢ | 2,537,500명 | 12 |
타슈켄트 (Toshkent shahri) | 타슈켄트 (Toshkent) | 335㎢ | 2,192,700명 | 1 |
기후
우즈베키스탄은 사막형 대륙성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연중 매우 건조하며 대체로 길게 지속되는 여름은 건기로서 열대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뜨겁고 건조하며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여름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미처 땅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라버리는 마른비가 내린다. 반면 겨울에는 우기로 비와 눈이 자주 내리면서 비교적 습도가 높고 강수량이 적은 편이고 굉장히 춥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 기후의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정치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비에트에서 독립하면서 독립당시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있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이 되었다. 헌법이 제정된 이후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하도록 개정하였으며, 이후 종신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1995년 12월에 신설되었다.
휴먼라이트워치와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체제인사에 대한 심문과 고문을 비판하고 있으며, 카리모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독재자로 비난받고 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또한 2005년 5월 13일 안디잔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 발포명령을 내리는 등 무력으로 강경진압하여 500~1500명(추정)을 학살하여 국제사회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러시아와도 가깝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적대적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집단 안보 조약 기구에서 탈퇴했다
사회
주민
우즈벡족은 원래 타지크 민족과 15세기에 그들을 정복한 몽골 민족의 혼혈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의 세력이 위축되던 시기인 1312년에서 1340년까지 시르다리야 강의 북부 유목지역을 통치한 사람의 이름이 ‘우즈벡 칸’ 이었다. 우즈벡 칸이 이슬람을 강력히 전파하면서 우즈벡이라는 말이 무슬림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이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우즈벡이라는 이름의 왕조와 국가의 명칭 그리고 민족명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14세기까지 이 지역 사람들을 ‘큽착인’이라 불렀으며 ‘우즈벡’이 민족명으로 사용된 것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된다. 14세기 중엽 이후 차가타이 칸국이, 14세기 말에는 큽착왕국이 쇠잔해짐으로써 중앙아시아의 힘에 공백상태가 나타났다. 15세기 중반에 이르자 투르크계 장군 압알하일 칸이 큽착초원에 강력한 국가를 건설함에 따라 그의 일족들과 그를 따르던 자들을 ‘우즈벡’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2760만 6007명(2009년 추정치)이며, 13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 민족의 이슬람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러시아 인들과 다른 소수 민족들의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고, 옛 소련의 다른 나라에서 우즈벡인이 돌아오고 있어서, 소수 민족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통계에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35%였으나, 2005년에는 3.7%로 대폭 감소하였다. 2005년에 전체 인구 중 우즈벡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가장 많으며 그 밖의 타지크인(5%), 러시아인(3.7%), 카자흐족(3.6%), 타타르족(0.61%), 고려인(0.6%)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동부지역, 특히 페르가나 분지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사마르칸트 주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페르가나 주와 타슈켄트 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인구밀도 면에서 수도 타슈켄트를 제외하면 안디잔 주와 페르가나 주가 가장 높은 편이다.
참고로 인접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인구는 현재 1,518만 명이다.
언어
틀:본문 우즈베키스탄은 공식적으로 우즈벡어를 사용하며 우즈벡어는 우즈베키스탄의 공용어이다. 우즈베크어가 74.3%가 되어 있지만, 민족 간의 소통언어로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아직까지 러시아어만 알아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독립 이후에 우즈베크어 사용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공용어에서 배제된 러시아어의 중요도는 떨어졌다. 특히, 지방, 농촌으로 가면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꽤 많고, 청년층에서는 러시아어를 말할 수 없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우즈벡 정부의 민족주의 노선에 따라 거리의 대부분 간판이나 공식서류가 거의 우즈벡어로 되어 있으며 2004년부터는 100% 우즈벡어로만 공식 서류가 발행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계와 고려인 등 우즈벡어를 모르는 소수 민족들은 생활의 불편과 함께 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영어 사용률은 1%도 되지 않는채 그 사용률이 적다. 그러나 정부 홈페이지는 영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러시아어는 이민족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잡을 때에 중요한 언어이며, 특히 도시에서 이 경향이 강하다. 또, 사업, 학술 등의 분야에서는 러시아어사용이 필수적인 경우도 많고, 대부분의 대학교육에서 러시아어가 교수언어가 되고 있다. 러시아어는 전인구의 14.2%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의 사람들도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지방에서 러시아어사용은 제한되어 있으며, 심지어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도시중심부에서조차 러시아어에 숙달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2003년 보고에 의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어를 말하거나 또는 이해할 수 있으며,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밀접한 외교관계가 생겨난 때부터, 정부에 의한 러시아어사용을 비권장이라고 판단하는 운동은 급속히 시들고 있다 초등교육에서 교수언어는 우즈베크어와 러시아어로 나뉘어져 있으며, 대학진학이나 사업에서 유리하게 되기 때문에, 우즈베크인이라도 교수언어로 러시아어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으며, 영어 사용률은 거의 없다.
우즈베크어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된 언어이며 1992년 이후 로마자에 의한 표기법이 도입되었다.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샤흐리삽스, 키타브 등 남부 지역, 나망간, 코칸트, 페르가나, 카산, 카니바담 등의 페르가나 분지지역, 바기스탄 등의 시르다리야 강 연안지역에서는 타지크어가 광범위하게 걸쳐서 사용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에서 타지크어교육은 금지되어 있으며, 가정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타지크어는 대부분 우즈베크어화가로도 있기 때문에 통계에서는 타지크어의 비율은 4.4%로 낮아졌다. 하지만, 전인구의 20%~30%전후가 타지크인이기 때문에, 타지크어화자도 엇비슷하게 있을거라고 추정되고 있다.
1920년대 이전에 우즈베크어 표기로 아랍 문자 필기체인 나스탈리크 체로 사용하고 있었다. 1926년에 새롭게 로마자가 도입되었고, 1930년대를 통해 몇차례의 문자계정을 거쳤다. 1940년에는 다시 문자개정이 행해지고, 소련정부에 의해 키릴 문자로 바뀌었다. 키릴 문자의 사용은 소련붕괴까지 계속되었지만, 1993년 우즈베키스탄은 재차 로마자를 정서법으로 제정, 1996년에 법제화가 행해지며 2005年년이후에는 학교에서 가르칠 때에 로마자를 사용한 지도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공식출판물 등에서는 로마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키릴 문자를 사용한 간판이 자주 눈에 띄는 등 키릴 문자 사용은 널리 행해지고 있다.
우즈베크어(74.3%), 러시아어(14.2%), 기타 언어(타지크어, 카자흐어, 투르크멘어(4.4%))순으로 되어 있으며 그 외, 부하라어, 카라칼파크어,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크림타타르어, 중앙아시아 한국어 등도 사용되고 있는 다언어국가이다.
종교
주민의 88%가 무슬림이며, 이 중 다수(70%)가 수니파이다. 원래 불교와 조로아스터 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8 ~ 9세기 경,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이슬람화 되었다. 1991년 독립 이후에는 이슬람 부흥 운동으로 자발적인 이슬람 교육과 여성들의 베일 착용이 증가하였다. 소수 종교 중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포함한 기독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교육
1991년 이후, 로마 문자 차용, 의무 교육의 단축 등을 시행하여 교육 제도를 개혁하였다. 학생 수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2001년 기준)하며, 평균 취학 기간이 11.4년, 문자 해독률이 99.1%, 교육 비용이 국내총생산의 7.9%를 차지한다.
경제
과거 우즈벡 민족은 실크로드 상의 무역에 종사했던 민족이다. 우즈벡 민족에 대해서 "우즈벡 사람들은 달나라에 가서도 장사를 할 사람들이다."라는 카자흐 속담이 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면화 재배가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이 석유자원의 개발을 통하여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우즈벡 민족이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서 경제적인 부를 가장 많이 축적했었다고 여겨진다.
문화
1991년 독립 이후, 이슬람 문화가 복원되었다. 전통 문화로는, 4분의 3박자의 민요와 '차반'을 입고 노래와 춤을 추는 것이 있다. 또한, '바자르'라 불리는 노천 시장과, '유르트'격인 '마할라'라 불리는 마을 단위 조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