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 | |
인구 | 2,082,370명(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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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약13만812㎢ |
언어 | 마케도니아어, 알바니아어 |
정부 | 단일 국가 의원 내각제 공화국 |
통화 | 마케도니아 데나르(denar) |
GDP | 전체 42억 달러/1인당 명목 GDP 10,717 달러(2012년) |
HDI | 0.791(52위, 2012년 기준) |
국제전화 | +389 |
도메인 | .mk |
이름 및 위치
정식명칭은 마케도니아 공화국(Republic of Macedonia)이며, 그리스와 국명 문제로 다툼이 계속되자 1995년부터 외교적으로는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약칭 FYROM)으로 불리기도 한다. 북쪽으로 유고슬라비아, 동쪽으로 불가리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는 알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98년 세르비아에 코소보 사태가 일어났을 때 알바니아계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 행정구역은 85개 자치시(opstina)로 이루어져 있다.
간략역사
마케도니아는 고대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 왕국 일부였다. 그러나 현재의 마케도니아인은 고대 그리스계가 아닌 6~7세기에 이주한 남슬라브인 계통이다. 동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을 당시 많은 주민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9세기에는 불가리아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1세기에는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중세에는 불가리아·세르비아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355년 오스만투르크에 정복되어 오랫동안 지배를 받아왔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자본주의가 대두함에 따라 남슬라브민족들은 외국의 지배자에 대항하여 민족해방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여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아왔던 그리스·세르비아·몬테네그로·불가리아가 독립하고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가운데 독립하지 못했던 마케도니아는 인접국가들의 영토확장의 목표가 되었다. 1878년 제정러시아는 러시아-투르크전쟁(1877∼1878)에서 승리한 후, 산 스테파노(San Stefano) 조약에 의해 마케도니아를 불가리아에 이양하였다. 제정러시아가 발칸반도의 중심에 강력한 기지를 세우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서방 강대국들은 불가리아에게 마케도니아를 오스만투르크에 반환하도록 강요하였다. 이에 1893년 마케도니아 민족주의자들은 오스만투르크로부터의 독립투쟁을 개시하였다.
1912년 그리스·세르비아·불가리아가 연합하여 오스만투르크에 대항했던 제1차 발칸전쟁이 발발하여 오스만투르크가 패배하고 1913년 제2차 발칸전쟁 때는 그리스와 세르비아가 불가리아를 배척하고 마케도니아를 분할했다. 이런 결과에 실망한 마케도니아 는 세르비아 왕권파에 대한 투쟁을 계속하였고 베오그라드의 전시정부는 마케도니아 언어는 물론 마케도니아란 이름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1918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성립되어 19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 정권 하에서 완전한 공화국의 지위를 갖게 된다는 것에 1943년 동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고사회주의 정권하에서 마케도니아인이 처음으로 민족으로 인정받아 스스로 공화국을 형성하여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 내의 일개 공화국이 되었다. 1952년 최초로 마케도니아어 문법서적이 출판되었고 독자적인 마케도니아 정교회의 설립이 허가되었다. 현재의 마케도니아공화국은 제2차 발칸전쟁 후 세르비아에 속했던 지역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1년 유고연방의 붕괴 이후, 9월 8일 마케도니아에서 실시된 국민투표의 결과 주민의 95%가 독립을 원하여 마케도니아 정부는 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고 같은 해 11월 헌법이 발효되었다. 1992년 3월에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이 완전히 철수하였고 분할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11월에는 알바니아계 주민이 세르비아의 코소보 자치주와의 통합을 요구하면서 자치확대·분리독립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내전이 발발하자 UN(국제연합)은 12월 천여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였다.
한편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지방명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가 마케도니아라는 국명 사용에 강력하게 반대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승인이 늦어졌으나 EU(유럽연합)의 중재로 타협되어 1993년 UN은 ‘구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FYROM: 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이라는 잠정적인 국명으로 승인하고 4월에 UN에 가입하였다. UN 가입 후 EU 국가 중에서는 덴마크가 승인하였고 1993년 12월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그리스와의 국명문제는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1993년 6월에 양국에 대해서 9월까지 해결하도록 하는 결의가 있었으나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리
남부 유럽 발칸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마케도니아는 해안선과 접하지 않는 내륙국으로, 영토의 대부분이 디나르알프스산맥과 로도피산맥을 중심으로 한 해발고도 2,500m에 이르는 산지와 해발고도 600~900m의 고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지의 대부분은 석회암지대로 이들 석회암은 주로 삼첩기·백악기·쥐라기로 불리는 지질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소위 카르스트(Karst) 대지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을 흐르는 하천들이 석회암지대를 용식하여 이루어낸 카르스트 지역 특유의 폴리에(polje)와 같은 지형과 호소(湖沼)가 다수 분포한다. 특히 알바니아와의 접경지대에 국경선을 따라서 오흐리드호(湖)·프레스파호와 같은 대규모 호수가 있다. 국토의 중앙부에는 바르다르강이 유고슬라비아의 국경지대 부근 북서쪽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관류하면서 브레갈니차강과 트레스카강 등의 지류와 합류한 다음, 그리스를 지나 에게해로 유입되고 있다. 기후는 온난습윤하며, 지중해성 기후이다. 지하자원으로는 크롬·철광석·망간 등이 매장되어 있다.
사회
마케도니아는 동부유럽 중에서도 그리스와 발칸반도를 연결하는 교차로에 위치한 지리적 관계로 말미암아 주변 강대 민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아 정치·사회적인 불안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구유고슬라비아 연방내의 독립공화국으로 자리잡은 다음 구유고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민족 국가의 독립여망이 실현되어 독립국으로 살아남은 마케도니아는 순조로운 경제 발전과 사회적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세계은행 조사보고에 따르면 마케도니아의 비정부기구(NGO)는 2003년 3,000여개에 이른다. 이들의 증가는 최근 수년 내에 이루어진 것으로 미국국제개발기구(USAID) 및 재구축유럽기구(EAR)의 재정원조에 힘입은 바 크다. 이들은 다른 중,동부 유럽국가에 비하여 뒤떨어져 있는 마케도니아의 시민 사회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언론기관으로는 주요 일간지인 《노버 마케도니아》(2만 부), 《베케르》(1만 5000부) 등이 있고, 주간지로는 《플스》, 《델로》 등이 있다. 신문은 알바니아어(語), 영어, 터키어, 마케도니아어 등으로 발행된다. 마케도니아에서의 언론 출판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독일미디어그룹이 주요 일간지 《드네브니크》, 《우트린스키 베스니크》, 《베스트》 등의 신문사를 합병하는 일에서 보듯이 외국 자본의 침투에 따른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 마케도니아 의회에서 설립한 MRTV(라디오와 TV) 국영방송국도 있다. 인터넷호스트수는 3,716개, 사용자는 392,671명이다 (2006). 공항은 17개소, 철도 699 km, 도로 8,684 km이다. 마케도니아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2003년 반부패위원회 설립 및 개혁 입법이 마련되었지만 국가 기관들 사이의 공조가 필요하다.
인구
인구는 약 203만 4,000명으로, 인종은 마케도니아계(64.2%), 알바니아계(25.2%), 터키계(3.9%), 로마계(2.7%), 세르비아계(1.8%), 기타(2.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종
마케도니아의 주민은 마케도니아인 64.2%, 알바니아인 25.2%, 터키인 3.9%, 집시 2.7%, 세르비아인 1.8%, 기타 2.2%(2002년)로 구성되어 있다. 마케도니아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마케도니아인은 마케도니아 슬라브인으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고대 마케도니아인들과는 관련이 없다. 다수의 인종학자들은 마케도니아인을 불가리아인종으로 여기며, 불가리아정부의 공식 입장도 마케도니아인을 불가리아인으로 생각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소수의 마케도니아인만이 지지한다. 북부 그리스에 거주하는 5만 명의 마케도니아인들은 스스로를 '슬라브말을 쓰는 그리스인(Slavophone Greeks)'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리스정부에 의해 동화압력을 받고 있다.
언어
언어는 문법적으로 불가리아어와 매우 유사한 마케도니아어(語)가 공용어이나 알바니아인들은 알바니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케도니아어는 남부 슬라브언어의 일종으로 서부와 동부 방언으로 나누어진다. 마케도니아 문어(文語)는 벨레스(Veles), 프릴레프(Prilep), 비톨라(Bitola) 등에서 사용되는 중부 방언에 근거한다. 마케도니아어는 불가리아어와는 연관성이 많으므로 다른 슬라브어와 구별되는 불가리아어의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다. 마케도니아어에서 쓰이는 키릴문자는 테살로니키 출신의 두 형제 성 키릴(St. Cyril)과 성 메토디우스(St. Methodius)에 의해 9세기에 개발된 알파벳에 근간을 두고 있다.
종교
종교는 마케도니아인은 70% 정도가 동방정교회 계통인 마케도니아정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나머지 주민들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동방교회, 이슬람교, 가톨릭교, 유대교, 감리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마케도니아의 종교 활동은 국가로부터 동등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태어난 마더 테레사 수녀는 가톨릭의 전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맹률은 약 4%이다.
경제
마케도니아는 산업구조가 2006년 국내총생산 규모면에서 농업 9%, 공업 29%, 서비스업 62%의 분포을 보이지만 산업노동력면에서 농업 21.7%, 공업 32.6%, 서비스업 45.7%을 보여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토지이용면에서는 전 국토의 약 39%인 7991만㎢가 산림이고, 목장과 목초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농경지가 24%이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붕괴 이후 다른 국가들처럼 중앙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바뀌는 동안 어려움을 겪었으나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의 관리 아래 1993년부터 경제가 점차 안정되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대한 UN(국제연합)의 무역제재가 풀려 교역이 재개되면서 1996년 이후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플러스로 변했다. 인플레이션률은 1992년 1,780%에서 1993년 248%, 1994년 55%로 낮아졌고 1995년에는 18%, 2006년에는 3%로 낮아졌다. 절대빈곤층의 비율이 30%에 달한다.
수출품으로는 식료품, 음료, 담배,섬유류 등이, 수입품은 기계, 장비, 자동차, 화학, 연료 등이 있다. 2005년 기준 주요 수출 상대국은 세르비아 및 몬테네그로 22.5%, 독일 17.8%, 그리스15.3%, 이탈리아 8.3% 이며, 수입상대국은 러시아 13.2%, 독일 10.4%, 그리스 9.2%, 세르비아 및 몬테네그로 8.2%, 불가리아 7.3%, 이탈리아 6% 등이다.
정치
마케도니아의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대통령중심제이고, 국가의 원수는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이다. 1999년 12월 보리스 트라이코프스키(Boris Trajkovski)가 임기 5년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2004년 브란코 크벤코브스키(Branko Crvenkovski)가 당선되었다. 2006년 8월에 니콜라 그루에브스키(Nikola Gruevski)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국회는 정원 120석의 단원제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민주당·민주번영당·자유당 등이 있다.
알바니아계 주민의 지위 개선 등을 요구하는 무장세력이 2001년 2월까지 북서부를 중심으로 마케도니아 정부군과 전투를 벌였다. 같은 해 7월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의 중재로 정전합의와 알바니아계 주민의 지위개선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헌법개정에 대한 마케도니아계의 저항이 강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무 병역은 6개월로서 18세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으며 정규군 1만 6000명이 있다. 군비 지출은 GDP의 6%이다.
문화
많은 민족지(民族誌) 학자들은 마케도니아인을 불가리아인이라 여긴다. 마케도니아어는 세르비아어보다 불가리아어에 더 가깝기 때문에, 불가리아 정부도 공식적으로 마케도니아인은 불가리아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케도니아어는 남슬라브어로서 서부 마케도니아어와 동부 마케도니아어의 두 가지로 나뉜다. 마케도니아어는 다른 슬라브어와 불가리아어의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르비아어와 불가리아어의 사용을 자제하는 노력을 벌이기도 하였다. 마케도니아어 표기는 키릴문자와 로마문자 모두 인정되지만 키릴문자의 사용이 더 우세하다.
마케도니아의 문화에서는 미술을 빼놓을 수 없는데, 중세 마케도니아 미술은 세르비아와 함께 미술의 중심이었다. 수도 스코페와 오흐리드의 교회는 비잔틴미술의 보고(寶庫)로, 특히 오흐리드의 성소피아교회의 벽화 '파란 천사'는 마케도니아 미술의 최고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유명한 유적으로는 1466년에 건설된 다우드 파샤(Daud Pasha) 목욕탕과 이콘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스베티 스파스(Sveti Spas) 교회 그리고 지진으로 깨진 돔(dome)이 있는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Mustafa Pasha Mosque) 등이 있다.
한국과의 관계
마케도니아는 현재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았으나 실질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9년 6월 마케도니아의 부총리 키프리야노바가 방한하여 외교관계 수립에 대해 논의하였다. 2005년 현재 대한(對韓) 수출은 233.2만 달러, 대한 수입은 336.8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동, 납, 아연 등이며 수입품은 승용차, 섬유류, 기계류 등이다. 북한과는 93년에 수교하였다.
※ 위의 내용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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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몬테네그로 | 몬테네그로 교육과정, 2015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몬테네그로 | 몬테네그로 사회과 교과서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