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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Tanzania)
Tanzania.png
인구 49,639,138명
면적 947,300㎢
언어 스와힐리어(통용어), 영어(공용어)
정부 대통령 rhdghkrnr
통화 실링(tzs)
GDP 전체 $537억/ 1인당 $1,351
HDI 0.476
국제전화 +256
도메인 .tz


이름 및 위치

탄자니아 위치

정식명칭은 탄자니아합중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이며, 영국연방의 일원이다. 본토인 탕카니카와 잔지바르섬(펨바섬 Pemba Island 포함)을 국토로 하며, 국명도 두 나라의 이름을 합쳐 만든 것이다. 서쪽으로 르완다·부룬디·콩고민주공화국, 남쪽으로 말라위·모잠비크·잠비아, 북쪽으로 케냐·우간다와 국경을 접하며, 동쪽으로는 인도양과 면한다. 잔지바르에서 잔지바르인(人)의 본토 자유왕래 문제, 공직 참여기회의 불균형, 경제적 격차 등에서 오는 불만 등으로 잦은 소요와 유혈사태가 일어나면서 연방 유지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행정구역은 26개주(region)로 되어 있다.

간략역사

탄자니아는 15세기 말까지 아랍·페르시아·인도 등의 이슬람 교도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슬람교도는 내륙에 침입하여 노예 사냥을 행하였고 잔지바르를 노예무역의 기지로 삼았다. 16∼17세기에 일시적으로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으나, 18세기 이후 동아프리카의 해안평야를 영토로 하는 잔지바르 왕국의 중심이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열강의 동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지화가 시작되면서, 탕가니카는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일부가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지역,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영국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54년에는 탕가니카 아프리카인 민족동맹(TANU)이 조직되어 탕가니카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1961년 영국연방 내의 자치국으로서 독립, 1962년 12월 탕가니카공화국을 선언하고, J.니에레레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한편 잔지바르는 1890년 이후 영국의 보호령이 되어 있다가, 1963년 12월 술탄이 지배하는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여 UN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독립 1개월 뒤인 1964년 1월 혁명이 발발하여 잔지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으며, 같은 해 4월 27일 탕가니카 공화국과 연합, 탕가니카·잔지바르 연합공화국이 선포되었고, 10월에는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으로 개칭하였다. 줄리어스 니에레레(Julius K. Nyerere)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니에레레 대통령은 초기 아루샤(Arusha) 선언(1967년)을 통해 대부분의 주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여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했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자 실용 노선으로 전환했다. 1977년 CCM(탄자니아 혁명당)을 결성하여 일당독재의 길을 열었다. 1980년 총선에서 니에레레가 제5대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1985년 사임하고, 줌베(Mwinyi Aboud Jumbe)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1990년 제7대 대통령에 재선된 줌베는 과감한 경제개혁을 진행하는 한편 30년간 진행되어온 일당제를 폐지하고 1992년 다당제를 도입,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995년 10월 다당제 하의 민주총선과 대선을 실시한 결과, 집권여당 CCM당 음카파(Mkapa) 후보가 62%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여당 CCM이 186개 의석을 획득함으로써 정세안정의 기반을 확보했다. 2000년 10월 음카파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다.

2001년 1월 잔지바르섬과 펨바섬을 근거지로 한 제1야당인 시민연합전선(CUF) 주도로 부정선거를 빌미로 한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군경에 의한 유혈 진압이 이루어지고 다수의 야당지도자와 지지자들이 에티오피아와 케냐로 탈출하면서 탄자니아는 독립 이후 최대의 정치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2001년 10월 CCM-CUF 간 정치화해를 위한 평화협정이 타결되고, 2003년 1월, 정부측에서 피해자보상과 해외탈출 시위가담자의 귀국보장 등 후유증 치유책을 발표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였다. 2005년 10월 CCM과 CUF 지지자간 일련의 충돌 속에서 치러진 잔지바르 대선에서 카루메(Amani Abeid Karume) CCM 후보가 53.2%의 지지를 얻어 잔지바르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2005년 12월 비교적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치러진 본토의 대선에서 개혁적 성향의 자카야 음리쇼 키크웨테(Jakaya Mrisho Kikwete) CCM 후보가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지리

탄자니아의 면적은 945,087 km²로서 세계에서 31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나이지리아의 크기와 비슷하며 이집트 다음가는 넓이이다. 북동부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산을 비롯해 산악 지대가 주를 이루며, 북서쪽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빅토리아 호와 아프리카에서 가장 깊은 탕가니카 호등 호수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중부 지방은 넓은 평원과 경작 지대가 펼쳐져 있다. 동쪽 해안 지대는 덥고 습하다. 웅구자 섬(잔지바르 섬)은 바로 동쪽 해안에 접해 있다. 탄자니아에는 북쪽의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 국립공원, 남쪽의 셀로우스 사냥 제한지역과 미쿠미 국립 공원 등을 포함해 생태학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광대한 규모의 야생 공원이 여럿 있다. 서쪽의 곰베 국립공원은 제인 구달 박사의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곳이다. 한편, 탄자니아 정부는 관광부를 통해 남서부의 칼람보 폭포를 탄자니아의 주요 관광지중 하나로 육성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칼람보 폭포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폭포이며, 탕가니카 호수의 남쪽 끝단에 위치하고 있다.


사회

주민

탄자니아의 아프리카인 주민들은 120개가 넘는 여러 민족에 속한다. 이 가운데 수쿠마족, 하야족, 니아큐사족, 니암웨지족, 차가족은 그 수가 1백만이 넘는다. 수쿠마족과 니암웨지족을 비롯한 대부분의 탄자니아인들은 반투족 계열이며 마사이족, 루오족 등 닐로트족 계열 민족도 있다. 이외에 코이산어족과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일파인 쿠시어군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도 있다. 또 남아시아인, 아랍인, 유럽인들을 포함한 비 아프리카인 주민들도 전체 인구의 1%를 차지한다.

언어

각 민족마다 고유의 언어가 있다. 1984년 헌법엔 지정된 공용어는 없으나 각 민족간 융합을 위하여 줄리어스 니에레레가 스와힐리어를 국민 언어로 육성하여서 국민 대다수가 스와힐리어를 쓴다. 또 탄자니아 정부의 누리집에 의하면 영어도 공식어중 하나다. 모든 정부 업무는 스와힐리어로 집행되며 부처에 따라 스와힐리어와 영어가 동시에 사용되기도 한다. 초등학교의 교수언어는 스와힐리어이고, 중등학교 이상에서는 영어가 대신한다, 탄자니아는 영연방의 회원국이다.


문화

탄자니아의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로 국제 경기에도 출전하고 있으며 육상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구전되는 전설과 민속춤은 시골 주민의 문화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르에스 살렘대학에는 연극반이 있다. 바구니 공예와 도자기, 악기만들기 등이 시골에서 성행하고 있다. 해안지역 사람들은 조그만 돌을 사용하는 장기의 일종인 음바오를 즐기며, 여자들은 축제와 결혼식 때 차카차춤을 춘다.


경제

1986년이래 추진해 온 경제재건 계획과 외국차관의 대량 유입, 농민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 국유산업의 합리화, 경제부분에 대한 정부 개입의 축소 등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1990년대 중반 연 4.0%의 꾸준한 경제 성장세를 유지했다. 줌베 신정부도 1985년이래 추진해 온 시장경제 편입정책의 기조를 이어나갔으며,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권고를 적극 수용하고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에 주력하였다. 1990년 외국인투자증진 보호법 제정이래, 25억불 규모의 투자를 승인(외국인 투자 122건, 합작투자 259건 등 총 854건 투자 승인)하고 1993년이래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 550여 개의 민영화 대상을 선정하여 2004년 현재 266개의 공기업 민영화, 150여개 사의 민영화를 추진 중에 있다. 농산물, 광산물 등 1차상품의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상 국제가격불안정의 영향을 크게 받고 만성적 인플레이션, 정부 경상지출의 38%를 외국 원조에 의존하는 재정상태, 만성적 수입초과 및 외채 부담, 비합리적 경제구조, 관리들의 관리능력 부족과 관료주의 등은 경제회복의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6%를 상회하는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여 주고 있는 가운데(2007년 추정 실질GDP성장률은 6.9%), 2005년 1월 1일부터 EAC 관세동맹이 출범하여 역내 외국인 투자 촉진 및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나아가 정치 통합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07년(추정치) 기준으로 GDP 비중에 따른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농업이 42.8%, 광공업이 18.4%, 서비스업이 38.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력 비중으로 보면 80%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업은 GDP의 46%(2004년 기준), 외화획득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탄자니아 경제의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토지면적은 국토의 8%(6.2백만ha)에 불과하고, 그 중 3%만 관개시설을 갖추고 있어, 자연 강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카사바, 쌀, 사탕수수 등이며, 주요 곡물은 대부분 소규모 자영농민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주요 수출작물은 커피, 차, 면화, 사이살, 담배 및 캐쉬넛이며, 커피, 면화, 담배는 소규모로, 차와 사이살은 대규모로 경작되고 있다. 최근 탄자니아 정부는 수출작물 재배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고, 국제금융과 개발기구의 원조를 통해 수출작물의 생산성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주요 제조업분야는 양조, 담배제조, 육류 통조림, 제충제, 비료 및 농기구 등 농산품 가공, 방적, 설탕정제, 시멘트, 석유화학 제품, 알루미늄, 제철, 페인트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고 1982년부터 중국과의 합작으로 트럭 등 운반용 자동차와 트랙터 조립공장이 가동되었으나, 운영은 부진하다. 탄자니아는 대규모 면적에 산재된 취락구조로 인해 교통과 통신발달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국가 중 인프라 구조가 가장 열악한 국가 중 하나이다. 다르에스살람, 킬리만자로, 잔지바르 등 3대 국제공항이 있으며, 1977년 설립된 국영항공사 Air Tanzania가 화물 여객운송 담당하고 있다. 도로 총연장은 78,891km이나 포장도로는 6,808km에 불과한 실정이며(2003년), 재정부족으로 도로 보수유지가 불량하다. 철도 총연장은 3,690km로(2006년) 상당 구간은 1914년 독일 지배당국에 의해 부설된 것이며, 간선 철도라 할 수 있는 TAZARA선(탄자니아의 다르에서살람과 잠비아의 카피리를 연결한 노선)이 중국의 원조로 1975년 부설되었다. 11개 부두를 갖춘 다르에서살람항은 탄자니아의 최대 항구이며 케냐의 몸바사항과 더불어 동부 아프리카 최대의 항구이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는 1992년에 수교하였다. 1998년에 투자보장협정,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2005년 발효), 문화협정(2006년 발표)을 체결하였고, 1999년에 이중과세방지협정에 가서명하였다. 1998년 대통령 줌베, 1999년 상공장관, 2001년 자연자원 관광장관, 2002년 외교국제협력부장관, 2004년 산업통상장관, 2006년 키크웨테 대통령이 방한하였고, 2004년과 2006년 반기문 외무장관이 탄자니아를 방문하였다. 우리나라 정부는 1989년 이후 매년 연수생을 받고 있으며, 무상기자재와 구호금을 지원하고, NGO 사업 지원과 국제협력단 파견을 시행하고 있다.



 ※ 위의 내용은 주탄자니아 대한민국대사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대상 문서 설명
uses 교육제도:탄자니아 탄자니아 교육과정, 2015년 조사 보고
uses 교과서목록:탄자니아 탄자니아 사회과 교과서 총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