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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정식 명칭은 알제리민주인민공화국(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Algeria)이며, 지중해 연안 해안선 길이는 990㎞이다. 면적은 238만 1741㎢, 인구는 3954만 2166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알제(Alger)이다. 주민의 99%가 아랍계 베르베르인(Berber)이며, 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고, 나머지 2%만이 가톨릭과 개신교를 신봉한다. 언어는 아랍어가 공용어로 되어 있으나 프랑스어도 많이 사용되고, 베르베르어도 소수민족 내에서 통용된다.
기후는 지중해 연안지방의 기후이므로 연중 온화하나 남부의 내륙지방에서는 사막성기후이다. 주요 자원으로 매장량이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고, 국토 가운데 경작지가 적기 때문에 농업보다는 임산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871억 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4,741달러이다.
이 나라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인민공화제로서,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6년의 상원(144석)과 임기 5년의 하원(38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민족민주동맹(RND), 민족해방전선(FLN), 사회주의세력전선(FFS), 평화사회운동(MSP), 문화민주동맹(RCD) 등이 있다.
2. 약사
기원전 고대국가시대부터 무역의 요충지로 2세기 이후 15세기까지 로마·아랍·스페인·터키 등 당시의 상대국들에게 침공을 받았고, 1830년대에는 프랑스가 마지막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알제리를 침입하여 합병하였다. 그 뒤 1942년에는 직할식민지로 만들어 강압정책으로 지배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그동안 산발적으로 전개되어 오던 독립운동이 1954년민족해방전선(FLN)의 결성을 계기로 알제리 전민족의 무장봉기로 발전하였다.
1962년 7월 5일 프랑스와의 휴전협정 체결과 국민투표를 거쳐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으로 독립하여 민족해방전선의 유일당체제, 폐쇄적인 회교 사회주의노선을 고수해 왔다.
독립 이후 쿠데타 등 국내 정치의 불안정을 겪으면서 1976년에 새로운 헌법인 국민헌장을 제정하여 채택하고, 민족해방전선이 알제리의 단일정당으로 정치·경제·사회 등 국가전반에 걸쳐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이어서 1986년에 국민투표의 형식을 거쳐 국민헌장을 개정하였는데, 여기에서 원래의 기본이념은 고수하되, 제한된 개방과 실용적인 정책을 채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2004년 4월 재선에 성공한 부테풀리카(Bouteflika) 대통령이 실권자로서 정부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알제리에는 아직도 실용주의정책을 반대하는 군부 내의 수구파, 소수민족인 베르베르족의 반발 및 회교원리주의자들의 불만 등 불안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다.
독립 이후 세 차례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외교기조로 좌경중립의 태도를 견지하며, 독립·반제국주의·비동맹의 3대원칙을 일관성 있게 고수해 왔다. 특히 이 나라는 전 세계의 민족해방투쟁을 지원하고 반식민 반제국주의 및 자원 민족주의운동의 기수로서, 제3세계의 지도자적 소임을 수행해 왔다.
1962년유엔에, 1961년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으며, 비동맹회의를 비롯하여 아랍연맹·아프리카단결기구·석유수출국기구·세계은행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세계 비동맹운동의 성격이 온건·실용주의로 변모해 가고 있고, 국내 정치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제국과의 경제협력 외교를 강화하는 등 이념보다는 실리 위주로 외교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3. 한국과의 관계
알제리는 1962년 독립 이래 우리나라를 이스라엘·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기피 대상국가로 설정하고, 반한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서 온건·실용노선으로 부분적으로 자세를 전환함에 따라, 한국에 대해서도 유엔·비동맹 등 국제무대에서 공개적인 반대표명을 자제하였다. 그 뒤에 체육·경제 분야의 정부 인사들이 방한하게 되었고, 1985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와 경제협력 및 통상교류가 추진되어, 1990년 1월 15일 공식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다.
이후 1997년 4월에는 경제과학기술 및 문화협력 협정을 체결하였고, 2001년 11월에는 이중과세방지 협정, 2007년 1월에는 스포츠교류 협정, 2007년 6월에는 형사사범공조조약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알제리 수출액은 2015년 현재 8억 5000만 달러로 자동차, 선박해양부품, 전자제품 등이 주종목이며, 수입액은 8억 6500만 달러로 원유와 나프타 등이 주종목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62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15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LG전자·삼성전자 등이 진출해 있고, 1,000여 명의 한국인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58년 독립 이전부터 알제리의 임시정부를 승인한 뒤, 1958년 9월 25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사관을 개설하였으나 2006년 현재 주 리비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측은 처음부터 외교·군사·문화·경제 등 전반에 걸쳐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1964년 9월 문화협력 협정을 체결하였고, 1966년 7월에는 우편물교환 협정, 1972년 11월에는 보건 협정, 1974년 5월에는 과학기술 협정, 1978년 9월에는 장기무역 협정, 1987년 4월에는 문화협력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양측 간의 실질적인 쌍무관계는 별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고, 무역거래는 2002년 현재 대 북한 수출액이 16만 4000달러 정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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