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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Rumania) | |
인구 | 21,848,504(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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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238391 |
언어 | 루마니아어 |
통화 | 레이(New Romanian leu) |
국명 및 개관
유럽의 남동부에 있는 나라이다.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몰다비아공국과 왈라키아공국이 1861년 합병하여 루마니아 공국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난 1881년에 투르크로부터 독립했다. 1948년 소련의 영향으로 인민공화국이 되었다가 1990년 민주화되었다. 영어로는 'Romania'로 표기하며, 루마니아어로는 로므니아(România)라고 한다.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동쪽으로는 몰도바, 서쪽으로는 헝가리, 남서쪽 및 남쪽은 도나우강을 경계로 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와 각각 국경을 접하며 남동쪽은 흑해에 면한다. 국명은 로마제국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고, 2007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였다. 행정구역은 41개 주(judet)와 1개 지방자치시(municipiu:부쿠레슈티)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
기원 전 카르파티아산맥 남부에서 도나우강에 이르는 지역, 즉 오늘날의 루마니아 국토에 살고 있던 다치아(dacia)인은 기원 전 1세기경에 트란실바니아·왈라키아·몰다비아를 통일하여 강대한 노예제국인 다치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도나우강 유역을 점령하려는 로마제국과 전쟁을 벌여오다가 106년 트라야누스 황제의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후 다치아인은 약 1세기 반에 걸친 로마 속주(屬州)의 시대를 겪게 되는데, 6세기 무렵 슬라브인이 북쪽에서 발칸반도로 진출해오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 오늘날의 루마니아인 조상인 다치아계(系) 로마인(人), 즉 루마니아인과 라틴속어(俗語)로부터 발전한 루마니아어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4세기에 카르파티아산맥의 동쪽 및 남쪽에 루마니아인의 봉건국가 몰다비아와 왈라키아가 성립되었으나, 발칸으로 진출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군사력에 눌려서, 19세기 후반까지 그들의 간접지배를 받으면서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18세기부터 자본주의적인 경제체제가 완만하게나마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또 19세기에 들어와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도 지식인들 사이에 보급되었다. 그리하여 1848∼1849년에는 전 유럽의 혁명운동의 영향을 받아, 몰다비아·왈라키아 양 공국에서 선진적인 시민층과 지식인이 주동이 되어 투르크로부터의 독립, 농노해방, 의회제도의 창설 등을 요구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혁명은 러시아-투르크 전쟁의 결과 양 공국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게 된 러시아의 무력 간섭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협상국측에 서서 참전한 루마니아는 국토의 대부분을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점령당하였고, . 제1차 세계대전 후 석유개발 등에 따른 외국자본의 유입, 볼셰비즘의 서점(西漸), 세계공황에 뒤따른 나치 독일의 대두, 소련·불가리아·헝가리의 영토반환요구 등 불안한 국내 정세를 겪으면서 루마니아는 1930년대부터 독일·이탈리아에 접근하게 되었고, 1940년에는 I.안토네스쿠 장군의 파시스트 정권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독일·이탈리아와 더불어 3국동맹을 맺고, 독일과 더불어 대(對)소련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루마니아의 공산화는 1944년 8월 소련군의 발칸 진출을 배경으로 일어난 쿠데타에 의해 안토네스쿠 정권이 타도됨으로써 실현되었다. 신정권은 소련과 강화를 맺고 독일에 선전 포고를 했으며, 1945년 3월 소련군 주둔 아래 최초의 인민정권이 탄생하여 농지개혁을 실시하였다. 1966~70년에 신 5개년경제개발계획 추진으로 국내 공업화 기반을 확충하고, 1968년에는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의 체코 침공을 비난하였다. 1968년 루마니아 공산당이 절대권력을 장악하면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와 개혁 협력을 강화하였다. 1970년 이후 다각적인 외교 노선을 전개하였으나 1974년 대통령 겸직으로 1인 지배체제가 공고화되었다. 1990년 5월 대통령선거와 복수정당제에 입각한 총선거 실시 결과, 이전 공산주의 지도세력의 연합인 국민해방전선이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점진적 전환을 주장하며 승리하고 일리에스쿠(Ion Iliescu)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 해 11월 3단계 가격자유화조치가 실시되었으나 경제사정 악화, 높은 인플레, 100만에 육박하는 실업자 문제로 정치적·경제적으로 과도기적 상황이 이어졌다. 1991년 12월 신헌법을 제정하였고, 1992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해방전선(NSF)은 지방에서, 민주연합은 도시에서 각각 기반을 구축하였다. 일리에스쿠 대통령이 재선되었고 경제학자인 바카로이우(Nicolae Vacaroriu) 내각이 구성되었으며 국민해방전선은 국민통일당, 사회노동당 등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였다.
1994년 연립 정부는 국민통일당의 탈퇴위기를 맞았고, 1995년 12월 사회노동당이 탈퇴하였다. 1996년 지방 선거와 총선에서 부패척결과 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야당의 세력이 급속히 증가하여 헝가리 민주 동맹이 새롭게 연정을 구성하였다. 1996년 총선에서 에밀 콘스탄티에스쿠가 이온 일리에스쿠를 54.4%의 지지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0년 11월에는 의회 선거에서 좌파의 사회민주주의당(구공산당계)이 제1당이 되었고,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온 일리에스쿠가 승리하였다. 그 결과 2000년 12월 총리 아드리안 나스타세(Adrian Nastase)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민주주의당에 의한 소수 단독 정권이 발족하였다. 2004년 12월 실시된 대통령선거 및 총선에서 자유당(PNL)-민주당(PD) 연합의 버세스쿠(Traian Besescu)가 51%의 지지율로 89년 혁명 이후 세 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경제
다양한 자연환경에 기반을 둔 다양한 유형의 농업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1년 과거 집단화되어 있던 토지를 10ha 이내에서 전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법률을 제정하여 토지 사유화의 길을 열어주면서 토지 매매도 가능하게 되었다. 영농의 기계화도 상당히 진척되어 있다. 곡물로는 밀·옥수수·보리·호밀·귀리 등이 재배되고 또 포도·사과·배·복숭아·자두 등 과수재배가 성하다. 특히 포도 생산은 세계적이며 양질의 포도주 생산국으로도 유명하다. 축산업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산업으로 그 비중도 비교적 높다. 주요 가축은 양·돼지·소 등인데, 특히 트란실바니아알프스, 도나우 유역평야 및 산지 등의 초지에서 이루어지는 소 사육은 루마니아의 중요 산업의 하나다. 그 밖에 벌꿀·누에고치의 생산이 많고 흑해·도나우강 등에서 수산업 및 수산가공업이 활발하다. 또한 한때 COMECON(경제상호원조회의) 가맹국으로 러시아 연방 및 동유럽 국가와의 교역이 중요하였으나 1991년 COMECON의 해체와 더불어 서유럽과의 교역,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하여 플랜트 도입 등이 증가되고 있다.
1989년의 혁명 후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 등 서방의 경제원조가 확대되고, 경제 개방으로 문호를 확대하였으나 급격한 인플레로 인한 실질소득의 감소와 임금인상 투쟁 등이 겹쳐 아직도 경제가 불안정하다. 1992년에 출범한 N.바카로이우 내각도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다짐했으나 그 성과는 아직 미흡하다. 1993년은 1989년 이후로 침체되었던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 때이며 경제개혁이 시작된 해이다. 국내총생산은 3.4%(1994), 6.9%(1995), 4%(1996)로 계속 성장세를 보였지만 1997년에는 정부의 경제 개혁 철폐로 -6.6%의 성장을 보였고 1998년에는 -7.3%로 나타났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아래 경제개혁과 긴축재정을 실시하여 2000년에는 1.6%의 성장률을 보였다. 2004년에는 40%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이 9.3%로 떨어지고 경제성장률도 8%에 이르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로부터 시장경제를 인정받게 되었다. 유럽연합 가입을 목표로 하여 경제 개혁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몰도바, 터키,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의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CEFTA 회원국으로서 대외 교류가 활발하다.
2004년 수출은 189.3억 유로로서 주요 수출 품목은 섬유류(22.3%), 각종 기계류 및 전기 제품(17.6%), 철강 및 금속류(15.4%), 광물 및 석유자원(7.2%)이며, 주요 수출국은 이탈리아(21.2%), 독일(15%), 프랑스(8.5%), 터키(7%), 영국(6.7%), 헝가리(3.8%) 등이다. 수입은 262.8억 유로로서 각종기계류 및 전기제품(23.8%), 광물 및 석유 자원(13.4%), 섬유류(12.6%), 차량 및 운송장비(9.3%), 철강 및 금속류(8.4%)이며, 주요 수입국은 이탈리아(17.2%), 독일(14.9%), 프랑스(7.1%), 러시아(7.8%), 터키(4.2%) 등이다.
한국과의 관계
루마니아는 북한과 1948년 11월에 먼저 수교했고 대한민국과는 1990년 3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994년 3월 I일 일리에스쿠 대통령, 2001년 외무장관·상원의장, 2005년 바세스쿠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한하여 강한 우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1990년 체육교류협정·무역협정·경제과학기술협정·투자보장협정, 1991년 항공협정·문화협정, 1993년 이중과세방지협정·비자면제협정, 1996년 일반사증면제협정, 1997년 투자보장협정 개정 각서, 항공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2005년 양국 간 교역액은 468백만불로서, 대루마니아 수출 381백만불, 대루마니아 수입 87백만불이다. 수출품은 수송기계, 산업용전자제품, 철강제품, 기초산업기계이며 수입품은 농산물(밀, 옥수수), 철강제품, 기초산업기계, 섬유제품 등이다. 우리나라의 루마니아에 대한 투자액은 총 220백만불로서 제16위의 투자국이며, 루마니아 전체 외국인 투자의 1.5%를 차지한다.
출처 및 참고문헌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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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루마니아 | 루마니아 교육과정, 2015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루마니아 | 루마니아 사회과 교과서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