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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및 위치
공식명칭은 이스라엘국이다. 북쪽으로 레바논, 동쪽으로 시리아, 남서쪽으로 이집트와 국경을 접한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아랍 세계에 둘러싸여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유대인 공화국이며, 중동에서 하나뿐인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국명은 헤브라이어(語)로 '하느님이 지배하신다'는 뜻으로, 《구약성서》〈창세 32:28〉에 나오는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행정구역은 6개주(mehoz)로 되어 있다. 면적은 약20,770㎢, 인구는 약7,821,850명(2014년), 수도는 예루살렘(Jerusalem)이다.
간략역사
기원전 12∼8세기에 있었던 고대 이스라엘왕국의 멸망 후 전세계로 흩어졌던 유태민족이 민족국가 건설을 열망한 끝에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지역에서 건국되었다. 성문헌법은 없고, 기본법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대외적으로 이집트를 제외한 인접 아랍국가들과 적대관계에 있으며, 서유럽 나라들 외에는 외교관계가 단절상태이다. 그러나 1993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의 상호승인이 이루어지고 요르단과 시리아 등과도 관계가 개선되었다. 유태인과 아랍계 주민간의 마찰이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의회민주주의제도의 확립으로 정치적 안정도는 높은 편이다.대외적으로는 자유를 표방하며, 친서방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49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지리
이스라엘의 국토는 남북으로 길죽하며 지형과 지세는 매우 다양하다. 북쪽 끝에 레바논산맥에 이어지는 갈릴리 고원(高原)이 있는데 이 고원은 동쪽은 요르단 계곡, 서쪽은 지중해 연안평야, 남쪽은 에스드렐론 평야의 3방향으로 경사를 이룬다.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건조하고 기온이 30℃ 이상에 달하는 반면 겨울에는 강수량도 많고 온화한 기후가 된다. 겨울철에 북쪽 고원에서는 강설을 볼 수 있으며 강수량은 북쪽의 800mm 이상에서 남쪽 네게브 지방의 100mm 이하까지 심한 차이가 있다. 남부가 건조해지는 까닭은 남서탁월풍이 시나이 사막이나 북아프리카 사막지대의 건조한 공기를 몰아오기 때문이다. 경작 가능지는 15.45%, 농경지 3.88%, 기타 80.67% (2005년)이다.
사회
주민
유대인은 기본적으로는 지중해 인종과 아르메니아 인종의 혼혈이었으나 세계에 흩어져 살게 됨으로써 여러 인종과의 혼혈을 나타내게 되었다. 1948년의 건국 당시 유대인의 인구는 약 60만이었으나 그 뒤 아랍 여러 나라와 해외 70개국으로부터 인구가 대량 이주해와 크게 늘어났다. 전인구에 대한 유대인의 비율은 1948년의 83%에서 1965년의 87.5%로 늘어났다가 2000년 이후 77.8%로 줄어들었다. 1990년대 이후 구소련에서 약 85만의 유대인이 유입되었다. 아랍인은 건국 이전에는 120만이었으나 난민으로 유출되고, 팔레스티나 전쟁 후로는 20만 이하로 격감하였다. 그 뒤에는 조금씩 증가하여 1977년에는 약 57만, 2000년 이후에는 113만이 되었다. 전체 인구 중에서 유대인 비율이 76.4% (자국 출생 67.1%, 유럽-아메리카 출생 22.6%, 아프리카 출생 5.9%, 아시아 출생 4.2%), 비유대인 23.6% (대부분 아랍계) (2004년)이다.
문화
이스라엘의 문화는 종교적이었으며 최근에는 세계적인 소비자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세속적인 삶을 살지만 여전히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슬람교 문화가 두드러진다. 이스라엘은 고전음악으로 유명하며 바이올린 연주자인 이차크 페를만이 유명하다. 클레즈머는 이스라엘에서 매우 인기 있는 민속악이고 세계 각지의 유대인이 있는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시온주의자운동의 창시자는 작가들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팔레스타인 지역도 문학에는 전통을 가지고 있고 특히 시가 인기가 높다.
종교
낙천적이고 실무적이면서 근면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유대인의 대부분은 일신교(一神敎)인 오소독스-유대교를 믿는다. 정치와 종교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국민들은 사바스의 안식일(유대교의 휴일, 즉 토요일)을 의무적으로 엄수한다. 구소련 붕괴 이후 구소련에서 많은 유대인이 귀국하였으나 10월전쟁 이후 경제상태가 악화되자 이민 희망자가 격감하였다. 77.8%가 유대교도이고 나머지가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이다.
경제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소득은 36,067달러이다.(2014년) 산업별 GDP구성 비율은 농업 2.5%, 광공업 30.3%, 서비스업 67.2%이다. 1980년대까지의 첨단 농업은 생명공학 및 과학영농으로 탈바꿈하고, 1990년대 초반 이후 첨단산업 위주의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여 오늘날 자타가 공인하는 실리콘 밸리 중심의 경제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산품을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678만명의 인구를 가진 중소규모의 시장으로서 중화학공업, 제조업분야의 발전은 미약한 편이다. 최근 아랍국가와의 오랜 분쟁 상태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한 국방비 및 사회복지 비용의 과다지출이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게 되고, 세계시장 의존도가 강하여 세계경제의 부침에 큰 영향을 받는다. 2003년 말부터의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용창출로 연결되지 못하여 실업률이 비교적 높다. 실업문제 및 실질임금 하락문에에 대한 대응책으로 외국인노동자를 줄이는 정책을 취하였다. 무역 현황을 보면 수출 437.3 억 달러, 수입 469.6억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기계장비류, 소프트웨어, 다이아몬드 절단기, 농산물, 화학제품, 섬유 의류 등이며, 수입품목은 원료, 군사장비, 투자품목, 다이아몬드 원석, 연료, 곡물, 소비재 등 다수이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미국 38.4%, 벨기에 6.5%, 홍콩 5.9% 등이며, 수입대상국은 미국 12.4%, 벨기에 8.2%, 독일 6.7%, 스위스 5.9%, 영국 5.1%, 중국 5.1% 등이다(2006년). 이스라엘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대신 양질의 인적자원이 풍부하며,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상품인 하이테크 및 무기 등 방위산업 제품 수출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학기술
이스라엘의 과학기술 중에서 생명공학산업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분야이며 미국의 투자로 시작되었다. 생명공학의 출발은 1960년대 후반 이스라엘 내의 외국 제약회사의 자회사 설립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의 생명공학은 와이즈먼 공학학회(Weizmann Institute of Technology)와 함께 마일스 연구소(Miles Labratory)에 의해 만들어진 자회사 형태였다. 그 후 이것은 히부르 대학(Hebrew Univ.)-와이즈먼 공학학회(Weizmann Institute of Technology)의 자회사인 아메스-이썸(Ames-Yissum)으로 이어졌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러한 회사들은 이스라엘인만의 소유회사로 변하여갔다. 점차적으로 외국 벤처자본가들은 이스라엘 내에 그들만의 독립된 회사를 설립하였다. 반면,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의 벤처 자본가들은 과학에 기초를 둔 그들만의 회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생명공학은 이제 이스라엘 본래의 산업이라고 말한다. 단지 연구와 개발활동을 돕기 위해 미국의 자본이라는 요소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의 주요 생명공학 분야는 유전자 기술, 인간과 동물 진단법, 농업에 쓰이는 비료, 그리고 해양생물공학 등이 있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2년 4월 9일 수교를 하였으며, 1964년 8월 이스라엘의 주한 상주대사관이 설치되었다. 그 뒤 1978년 4월부터 대사관이 폐쇄되고 주일 이스라엘대사가 겸임을 하였으나, 1992년 1월 재개되었다. 우리나라는 1969년 4월 주 이탈리아 대사가 이스라엘 대사를 겸임하였으나 2008년 현재 상주공관을 설치하고 있다. 양국의 관계는 6·25전쟁 당시 17만 달러 상당의 의약품을 원조한 것으로부터 비롯되며, 1990년 6월 학술교류협력의정서를 체결한 이래, 1993년 9월 항공우주기술교류 협정, 1994년 11월 과학기술협력 협정, 1994년 12월 항공운수 협정, 문화협력 협정, 1995년 2월 비자면제 협정, 1995년 8월 군사기밀보호 협정, 1996년 9월 세관협력 협정, 1997년 3월 이중과세방지 협정, 1997년 8월 농업협력양해각서, 전기통신 및 우편협력양해각서, 1998년 11월 산업기술협력 협정, 1999년 7월 투자보장 협정, 2002년 10월 해운 협정, 2005년 1월 민간부문연구개발협력 협정, 2005년 11월 관광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정치적으로는 한국의 대아랍관계 때문에 긴밀한 편은 아니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쌍방의 민간친선협회를 중심으로 교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의 대 이스라엘 수출액은 2007년 현재 9억 6977만 달러로 주종목은 전자·무선통신·자동차 등이고, 수입액은 7억 3651만 달러로 주종목은 반도체·정밀기계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37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한편, 북한은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이는 북한의 아랍지지일변도 정책 때문이며,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북한의 대아랍군사 지원과 팔레스타인게릴라에 대한 북한의 무기지원으로 적대관계에 있다. 2007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현대상사,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대우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고, 16명의 한국민 교민과 354명의 체류자가 있다.
※ 위의 내용은 주이스라엘 대한민국대사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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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이스라엘 | 이스라엘 교육과정, 2014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이스라엘 | 이스라엘 사회과 교과서 총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