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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 인민민주주의공화국
(ສາທາລະນະລັດ ປະຊາທິປະໄຕ ປະຊາຊົນລາວ)
LaosNK.png
인구 6,802,000명
면적 236,800km2
언어 라오어, 프랑스어
정부 일당제, 단원제, 사회주의 공화국
통화 킵(LAK)
GDP 192억 달러(2012년,126위)
HDI 0.543 (138위, 2012년 조사)
국제전화 +856
도메인 .la



라오 인민민주공화국또는 라오동남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며, 북서쪽에는 미얀마중화인민공화국, 동쪽에는 베트남, 남쪽은 캄보디아, 서쪽은 타이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내륙국이다. 인구는 2013년 기준으로 약 68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라오스의 역사는 14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존재하고 그 이후 세 개의 왕국으로 나뉜 란쌍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3년, 비엔티안 왕국, 루앙프라방 왕국, 참파싹 왕국이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면서 연합되었다. 1945년 3월 일본군의 점령 이후 잠시 독립을 했으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다시 프랑스의 통치를 받다가, 1946년 프랑스가 루앙프라방 왕의 통치하에 통일된 라오스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1949년 헌법이 공포되고 프랑스 연방 안에서 제한된 자치국가로 존재하다가 1950년 초부터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통해 실질적인 독립을 추진하였다. 좌파인 파테트라오의 군대가 북베트남과 연합해 라오스 정부군과 내전을 벌였고, 1975년 정권을 잡자 공산주의 국가인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설립하였다.

라오스는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 또는 공산주의이다. 수도는 비엔티안이다. 다른 큰 도시로는 루앙프라방, 사완나켓, 참빠삭 등이 있다. 공용어는 라오어이다. 라오스는 아시아 태평양 무역협정,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동아시아 정상회의,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이다. 2013년 2월 WTO에 가입했다.

역사

건국에서 멸망까지

라오스의 역사는 13세기에 중국 남부에서 살던 민족의 하나인 라오족이 지금의 라오스 영토로 이주해 온 것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메콩 강 유역에서 살았으며, 특히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참빠삭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353년에 크메르 왕국의 지원을 받고 메콩 강 유역에 란쌍 왕국이 등장하였다. 란쌍 왕국의 지도자였던 파눔 왕은 크메르 왕국이 약해지자 독립을 선언하였고, 불교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중반 술리나봉사 왕 때 크게 번영했지만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 18세기초에 급격히 몰락하여 란쌍 왕국은 3개로 분열되고 친 타이 세력과 친 베트남 세력의 대립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이때 비엔티안 왕국의 차오아누 왕은 영국이 타이를 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타이정벌에 나셨다. 하지만 1828년에 타이비엔티안 왕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심지어 국왕도 타이에 끌려가 감옥에서 살았다. 비엔티안 왕국의 왕 차오아누는 1829년 감옥에서 죽었다. 결국 분열된 라오스는 타이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60년대부터 프랑스인도차이나 침략이 시작되어 프랑스는 베트남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당시에 라오스 영토의 대부분이 타이의 지배를 받았는데, 프랑스는 무력을 사용하여 타이 정부로부터 메콩강 동쪽의 영토 지배권을 인정받았는데 이 영토가 현재의 라오스가 된다. 프랑스는 라오스의 3개 지방을 합쳐서 루앙프라방 왕국을 만들어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그 후 일본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미얀마로 가는 길을 개방하였다.

독립과 내전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라오스는 급격히 혼란해졌다. 라오스의 독립파는 라오읻싸라, 즉 공산정당을 만들어 라오스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라오읻싸라는 베트남 공산정권인 베트남민주공화국과 긴밀하게 유대했다. 프랑스와 라오스 독립파의 전쟁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1949년 7월 19일 프랑스라오스를 독립시켰지만 국방, 외교, 재정권을 프랑스가 가졌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독립이었다. 하지만 곧 우익과 좌익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우익의 지도자는 라오스 왕국의 총리가 된 수바나 푸마였고 좌익의 지도자는 수파누봉이었다. 1950년 라오스의 공산세력이 뭉쳐서 파테트 라오가 탄생했다. 1953년 10월 22일, 프랑스 라오스 조약에 의해 완전 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후 내전은 계속 심해졌고 결국 1954년스위스제네바에서 라오스의 왕실 유지, 파테트 라오가 참여하는 정부 수립을 골자로 하여 평화 조약이 맺어졌지만 중립은 실패하였고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라오스에서 우파, 중립파, 좌파(파테트 라오)가 갈라져 라오스 내전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1973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였고, 1974년 세 파 연합에 의한 라오스 민족 연합 정부가 성립되었지만, 1975년 남베트남의 사이공이 함락되고 라오스 국왕과 수바나 푸마가 물러나면서, 12월 연합 정부가 왕정의 폐지를 선언하면서,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이것으로 30년에 걸친 라오스 내전은 완전히 종식되었고 라오스는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현대

그러나 라오스의 공산주의 체제는 실패하여 경제는 악화되었다. 게다가 1980년, 태국과 국경 분쟁을 겪었고, 태국과 미국의 경제 봉쇄로 라오스 경제는 파탄되었다. 같은 해 라오인민혁명당중국 공산당과 관계를 단절하였다. 1986년, 신경제 정책을 도입하였다.

1987년 태국과 다시 국경 분쟁을 벌여 태국 공군기 1대가 격추된다. 1988년, 라오인민혁명당이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다시 개선하게 된다.

1990년대소련의 해체와 공산주의 몰락으로 인해서 라오스도 시장경제를 허용하게 된다. 1991년 헌법을 제정하고, 라오스 혁명당의 일당 독재 체제 유지를 확인하였다. 1992년 2월 태국과 우호 협력 조약을 맺었다. 7월 베트남과 함께 ASEAN에 옵서버로 참석했다. 11월 21일, 까이썬 폼위한 국가 주석(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의 제2대 대통령)이 사망하였다.

1997년 7월 23일,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에 가입하였다.

2006년 4월 30일 투표로 제6대 국회(단원제, 임기 5년) 선거 결과 선출된 국회의원 115명 중 114 명 라오 인민 혁명당 당원이었고, 비당원은 단지 한 명만 존재하였다. 같은 해 6월에 소집된 제6대 국회 제1차 회의에서 라오스 인민 혁명당 서기장에 군부 출신의 쭘마리 싸이냐선이 국가 주석에, 라오스 인민 혁명당 정치국원인 부아썬 붑파반이 총리에 선출되었다.

2007년 6 월 미국으로 망명했던 먀오족의 원래 왕국군 장군과 미군 퇴역 소령에 의한 쿠데타 계획이 발각되었고, 관계자는 미국 사법 당국에 의해 제삼자 중립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2010년 12월 23일 제6대 국회 제10차 회의 폐회식에서 부아손 총리는 임기 중간에 사임하였고, 국회 의장인 통싱 탐마봉이 새 총리로 취임하였다.

지리

이 나라는 인도차이나 반도 내륙부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 중 유일하게 바다가 면한 부분이 없다. 지형은 중국에서 남하하는 안남산맥이 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야는 메콩강 및 그 지류에 연해서 약간 펼쳐져 있을 뿐이다. 기후는 대다수 지역이 열대 몬순 기후이나 내륙 지방이므로 하계와 동계의 기온차가 크다. 사반나켓 등 남부 지역은 열대 몬순 기후이며(평균 25도) 북부의 루앙프라방 지역은 온대 동계 건조 기후이다. 그리고 중국과 인접한 산악 도시 무옹싱 지역은 겨울에도 이따금 서리도 내린다(1월 평균기온 10도). 5월부터 10월까지가 남서몬순이 부는 우기로, 약 2,000㎜의 강우가 있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북동몬순이 부는 건조기이다.[1]

정치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 또는 공산주의 국가이다. 현재 라오스의 정당은 라오인민혁명당 하나뿐이다. 국가 원수는 5년 임기로 선거로 뽑히는 국가 주석이며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가 주석이 임명하는 국무총리가 있다.

옛날에는 정부의 정책을 당 정치국(11명)과 당 중앙 위원회(61명)에서 결정했다. 1991년 라오스는 헌법을 바꾸어 국회의원(85명, 임기는 5년)을 비밀 선거로 뽑도록 개정했다. 라오스 국회는 1997년 99석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모든 새로운 입법안을 가결하였다. 라오스 국회의 의석 수는 2006년 115석으로 다시 확대되었고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11년 4월 선거에서는 다시 132명으로 늘어났다.

행정 구역

라오스의 행정 구역은 17개의 주(쿠앙, ແຂວງ)와 1개의 도(캄펭 나콘, ນະຄອນຫລວງ)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비엔티안(위양짠)이다.

  1. 앗타푸(앗따쁘) 주 (Attapu)
  2. 보케오(버깨우) 주 (Bokeo)
  3. 볼리캄사이(버리캄싸이) 주 (Bolikhamxai)
  4. 참빠삭(짬빠싹) 주 (Champasak)
  5. 후아판 주 (Houaphan)
  6. 캄무안 주 (Khammouan)
  7. 루앙남타 주 (Louang Namtha)
  8. 루앙프라방 주 (Louang Prabang)
  9. 우돔싸이 주 (Oudomxai)
  10. 퐁살리(퐁쌀리) 주 (Phongsali)
  11. 사이냐불리(싸이냐불리) 주 (Sainyabuli)
  12. 살라완(쌀라완) 주 (Salavan)
  13. 사완나켓(싸완나켓) 주 (Savannakhet)
  14. 세콩(쎄껑) 주 (Sekong)
  15. 비엔티안(위양짠) 도 (Vientiane Prefecture)
  16. 비엔티안(위양짠) 주 (Vientiane Province)
  17. 씨앙쿠앙 주 (Xiangkhoang)
  18. 싸이솜분(싸이쏨분) 주 (Xaysomboun)

경제

농업

국민의 생활은 거의 전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며 공업은 미발달 상태에 있다. 농업은 수도작(水稻作)이 중심이지만 생산성이 낮아 국민의 주식인 쌀의 공급이 부족한 해도 있다. 티크의 임업자원이 있으나 아직 충분히 개발되고 있지 않다.[2] 라오스는 베트남처럼 쌀을 수출한다.

상업

1975년부터 공산주의 통제경제를 지켜오다가 1990년에 외국인 투자법을 재정하여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2003년부터 광물과 전기의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라오스 경제가 8%의 높고 안정적인 성장세를 달성하고 있다. 2013년에는 경제 성장이 가장 높은 나라 중에 하나로 부상하기도 했다. 2014년의 경제 성장은 약 7.6%로 예상되고 있다.

사회

주민

주민의 대부분은 라오족이며 이외 48개 소수민족(공식적인 발표로 실제는 이보다 더 많다고 한다)이 거주한다(2005년 인구조사). 비록 인구는 적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라오스 특유의 고립성과 병존하는 이러한 다양성은 라오스가 문화·정치적으로 통합되는 데 심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나라는 지배족인 라오족에 의해 항상 통치되어 왔다. 그들의 통치는 최근까지도 소수민족의 생각이나 활동보다는 라오족 엘리트 집단의 생각이나 열망을 반영해 왔다.그러나 라오스 정부는 라오스 국적을 가지는 라오스인을 국민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으로는 소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라오스인은 사는 지역의 고도에 따라 저지 라오족(라오룸), 구릉 라오족(라오텅), 고지 라오족(라오쑹)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

라오어프랑스어공용어이다. 그 외에도 영어,태국어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인도차이나에서는 유일하게 프랑스어가 우위를 점하는 라오스는 프랑스어 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 소속에 있다. 다만, 영어로 된 의사소통은 제한적이다. 또, 베트남어는 일부 베트남에서 건너온 베트남인 자손들만 사용하지만, 태국어는 라오어와 매우 흡사하고 라오스 내 텔레비전 방송 채널이 대부분이 태국방송이라 라오스에서 태국어를 사용해도 별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라오스는 그리스어로 '백성'이라는 뜻이다.

문화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승 불교가 라오스 문화의 핵심이다. 1975년 공산화 이후 불교는 그 세력이 위축되었으나 1991년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 그 세를 회복하였다. 라오스 국민의 67%가 소승 불교를 믿는다. 각 마을마다 사찰이 있으며 이 사찰은 종교행사뿐 아니라 주민들의 교육도 담당한다. 라오스는 공기가 매우 맑아 산림욕을 즐기기에 충분한 곳이다.

종교

남방상좌부 불교가 60%, 애니미즘이나 그 외의 종교가 40%이지만, 불교와 애니미즘이 혼합되어서 믿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몽쪽은 다른 민족과 달리 유교이다. 그 외 라오스 남부에서는 기독교도 소수 믿고 있으며 무슬림도 소수 존재한다. 공산주의 정권의 집권 이후 종교의 자유를 탄압했지만, 1991년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이후 남방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종교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도 2003년 미국과의 협정 이후 현지 교회의 예배가 자유로워지는 등,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대외 관계

대 한국 관계

1974년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나 1975년 라오스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단교하다가 1995년 10월 25일에 재수교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75년에 수교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선수 및 임원단을 파견하였다. 비엔티안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서울에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모두 833명의 한민족들이 라오스에 거주[3] 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으로 오려고 했다고 알려진 탈북 청소년 9명을 라오스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강제 추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2013년 라오스 탈북청소년 북송 사건) 이로 인해, 라오스 정부와 대한민국 외교부간에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4]

바깥 고리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라오스의 자연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라오스의 산업
  • 2010년 12월 기준
  • 신보영, 외교부·라오스 당국 ‘진실 공방’…양국 관계 파탄 오나, 문화일보, 2013년 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