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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Україна)
UkraineNK.png
인구 42,928,900명
면적 603,700㎢
언어 우크라이나어
정부 이원집정부제 공화국
통화 흐리브냐
GDP 3,373억 달러(2013년,29위)
HDI 0.740 (78위, 2012년 조사)
국제전화 +380
도메인 .ua


우크라이나동유럽의 국가이다.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흑해아조프 해, 동쪽과 북동쪽으로는 러시아,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벨라루스, 서쪽으로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남서쪽으로는 루마니아, 몰도바와 접한다. 키예프(Kyiv)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이다. 동유럽 평원과 이어져 있으며 기후는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인구의 절반(주로 동남부 지역)은 러시아어 사용자이다. 우크라이나의 화폐 단위는 흐리브냐이다.

우크라이나의 지리

개요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동슬라브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최소한 9세기 무렵 이후로는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중세 동슬라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키예프 공국으로 알려진 이 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나라가 되었으나 12세기에 분열되었다. 14세기부터 우크라이나 일대는 여러 지방 세력에 의해 분열되어 몽골족·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까지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부분이 러시아 제국에 통합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통제하에 놓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혁명 후의 혼란과 끊임 없는 전쟁 속에서 여러 차례 독립을 시도하여 1917년에 민족국가를 건설했으나, 1922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합병되었다. 1923년 소비에트 연방 헌법의 적용을 받았다.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하였다. 군사력 운영의 질적 수준은 아직 러시아벨라루스의 중간사이다. 지하자원도 풍부하여, 도네츠 탄전의 석탄, 크리보이로그의 철광석, 카르파티아 유전과 천연가스, 그 밖에 망간, 우라늄, 식염, 칼리염, 석회석 등을 산출한다. 주민은 73%가 우크라이나인, 22%가 러시아인이다. 산업으로는 석탄·철광·선철의 생산에 있어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풍부한 수력전기를 이용하여 기계제조공업·화학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유수의 공업지대를 이루고 있다. 석탄업, 철강업, 기계제조업, 화학공업의 중심은 돈바스·드네프르 주이며, 드네프르강의 하구에서 키예프까지의 사이에는 6개소의 수력발전소가 단계상(段階狀)으로 건설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지율은 약 70%에 이르고 있어, 겨울밀·옥수수·보리·사탕무·해바라기·포도의 재배, 가축사양 등에서는 구 소련 시절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온난한 크림반도 남단과 광천(鑛泉)이 솟는 카르파트 지방은 중요한 관광·보양지이다.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 〈타라스 부리바〉의 배경이 되기로도 알려졌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가 쓰이고, 국민의 대다수가 믿는 종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이다. 최근에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스킨헤드가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만큼 무시무시한 네오나치즘 스킨헤드가 활동하는 상태이다.

자연 환경

지리

국토 면적 603,700 km²에 해안선 길이는 2,782 km로,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44번째로 큰 나라(중앙아프리카공화국보다는 작고, 마다가스카르보다는 크다.)이다. 또한, 유럽에서는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유럽의 중심이 우크라이나 서쪽의 라키브 마을 인근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의 지리적 중심을 보는 관점에 대해 논쟁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광활한 평원이 있으며, 그들을 지나가는 강이 흑해로 흘러들어간다. 거의 남쪽 만으로 강이 빠져나가고 남동부 지방에는 다뉴브 삼각지가 루마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산은 카르파티아 산으로서 서부에 있으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오라 오벨라로서 2,061m다. 크림 반도를 따라서 넓은 해안선이 펼쳐진다.

기후

대개 온화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데 남쪽의 크림 반도 인근에서는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비는 북서부 지방에 가장 많이 내리고 동부와 남동부 지역은 덜 오는 편이다. 겨울은 흑해 인근 지방이라면 따뜻하지만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대체로 추워진다. 여름에는 전반적으로 따뜻하지만 남쪽 지방은 무덥다.

역사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는 슬라브인들의 첫 국가인 키예프 공국의 남쪽 지방이었다. 이 중세 국가의 수도는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였다. 키예프 공국은 현재의 스웨덴 영토에서 온 바이킹들이 세웠으며 이들은 현지의 슬라브인들인 루시에 흡수되었다. 이들은 강력한 류리크 왕조를 세웠다. 그리하여 10세기와 11세기에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의 중심부가 되어 후의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키예프 공국은 내부 분열과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우크라이나 땅에는 갈리치아(Galicia, Halych)와 볼히니아(Volhynia, Volodymyr-Volynskii) 두 공국이 그 뒤를 이었다. 갈리치아와 볼히니아는 합쳐졌다 분열되고 결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정복되었다.

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코자크 헤티만국(Cossack Hetmanate)이 세워져 백년 이상 모스크바 공국(Muscovy)의 압력을 견뎌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배 하의 동부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을 선언, 1920년에는 동서 통일을 선언했으나 외부 군대의 침략으로 신생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1922년에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1921년-1922년 간, 1932년-1933년 간 두 차례에 걸쳐 큰 기근을 겪었다. 둘째 기근은 스탈린이 집단 농장 체제에 저항이 심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위적으로 부른 기근으로 홀로도모르(Holodomor)라 불린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적게는 8백만 명에서 많게는 1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비에트 연방은 폴란드를 침공, 우크라이나 서부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만들었다. 1941년에는 독일군과 추축군이 소비에트 연방의 적군을 쳐부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영웅 도시'라 칭한 키예프 전투에서는 66만 명이 넘는 소비에트 연방군이 포로로 잡혔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곧 대량 학살을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우크라이나인 민간인들을 죽이거나 강제 추방하였다. 마을 전체를 태워 없애기도 하였다. 결국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일의 지배가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보다도 악랄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전쟁 중과 독일 치하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5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포함, 7백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갈리치아 지방에서는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서로 집단 학살을 저지르기도 한 끔찍한 시기였다. 독일과의 전투로 소련군은 약 1천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는데 그 중 4분의 일(270만 명)이 우크라이나계였다. 우크라이나 민족은 추축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첫 민족이 되었고(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엄청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확장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는 땅을 거의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 1954년에는 우크라이나에 의해 러시아 본토와 단절되어 있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우애를 과시하기 위해 페레야슬라프 조약(코자크 헤티만국이 모스크바 차르의 보호를 요청)의 300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크림 반도를 할양한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독립 후 양국 간의 분쟁 소지가 된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에서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의 혼란 속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이는 결국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촉진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국기는 스텝 지방의 금빛 밀밭 위 푸른 하늘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청색과 황색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전통적으로 깃발에 많이 쓰던 색이다.

2005년 1월빅토르 유시첸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우크라이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역사를 기록하였다. 틀:모호 이 당시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정치가들의 인기가 폭발할 정도였다. 틀:모호 율리아 티모셴코는 2, 3차례나 총리로 선출되었다.

2010년 2월 7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가 실시 되었을 때, 빅토르 야누코비치율리아 티모셴코를 꺾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리하여, 빅토르 유시첸코율리아 티모셴코는 나라의 망신거리가 되어간 상태였다. 틀:모호 2012년 7월 4일에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러시아어를 지역공용어로 인정하는 법을 통과하고 준 공용어로 인정하는 것을 둘러싸고 충돌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러시아어를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으로 인해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고 2012년 8월 8일에 야누코비치가 동남부에서 러시아어를 공식언어로 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러시아어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공식언어가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총선을 치른지 2주만인 2012년 11월 11일에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우크라이나는 2013년EU와의 협정이 무산되자 친EU시위가 발생되었고, 시위진압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되었다. 2013년 12월 8일에는 반정부 시위대에 의해 레닌상이 철거되었다 2012년 5월, 유로 2012가 개최될 때 인종차별 폭력 행위가 발생하였다.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가 발생한 결과, 친러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러시아로 도망하였다. 이로 인해서 친러 성향이 강했던 크림 반도의 크림 자치 공화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선언과 함께 러시아로의 편입을 추진하였으며, 그 후 합병을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하였고 마침내 2014년 3월 18일에 러시아와 크림 공화국 합병 조약에 체결되었다. 유럽연합과 미국 등 서방 세계는 이 합병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다. 또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주는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를 주장하며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합병을 인정하지 않으며, 도네츠크를 비롯한 동부지방에 대해선 강력한 군사적행동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경계하고 있다.

정치

우크라이나는 입법, 사법, 행정 등 3권이 분리된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통령은 직접선거를 통해 뽑히며 임기는 5년이며, 중임은 한 번 가능하다. 그 대신 대통령총리와 내각을 지명하며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의회

우크라이나 의회는 단원제 최고회의(Verkhovna Rada)이며 450석이 있는데 그중 225석은 전국 유권자의 4% 이상 지지를 얻는 정당에게 비례대로 돌아간다. 나머지 225석은 선거구에서 직접선거로 결정된다. 모든 의원들의 임기는 5년이다. 의회는 총리를 뽑고, 법률을 발의하고, 국제 협정을 비준하며 예산안을 승인한다. 2015년 2월 현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정렬은 2014년 10월 26일의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순).

국회(최고회의)구성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인해, 여-야 합의에 의하여 2007년 9월 30일에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렀다. 우크라이나는 2007년 12월 9일에 새 연립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율리아 티모셴코 블록율리아 티모셴코 총리가 유임되었다.

대통령

우크라이나는 금융위기와 정국불안으로 대통령 선거가 2010년 1월 17일에 치러졌으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를 하였다. 과반 득표가 나오지 않자 또 다시, 2010년 2월 7일결선 투표가 시작했을 때, 이미 결과는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를 차지하였다. 율리아 티모셴코는 패배를 맞이하였다. 이로써, 오렌지 혁명의 과정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페트로 포로셴코가 정식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행정 구역

우크라이나는 24개 주(오블라스티 oblast'), 주와 같은 지위를 갖는 2개의 도시(미스토, misto; 아래에는 '*'로 표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몇 개는 유령 도시가 있다.

대외 관계

유즈노예 로켓엔진 설계업체는 액체부분 세계 최고 로켓 엔진 설계 업체이다. 소련 시절 전략 로켓군의 지상 발사 전략 탄도탄은 모두 여기서 설계되었다.

경제

우크라이나의 경제는 그나마, 독립국가연합 안에서만 해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하다. 하지만, 정치 등 여러가지로 경제도 불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의존은 유럽 연합이나 러시아, 미국 등에 의존하고 있다. 밀의 총생산량은 22,323,600톤이다.

사회

주민

2001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민족 구성 비율은 우크라이나인이 77.8%, 러시아인이 17.3%이다. 약 12,000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며, 벨라루스인 역시 거주한다. 종교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며 가톨릭교회이지만, 동방정교회 전례 즉, 예배방식을 따르는 동방전례가톨릭과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개신교가 있다.

2001년 국제조사에 따른 모어분포를 보면 67.5%가 '법적' 공용어인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어를, 29.6%가 '실제적' 공식어인 러시아어를 쓴다. 루마니아어·폴란드어·헝가리어 등 소수민족어도 쓰인다. 러시아어는 하르키우도네치크, 루한시크 등의 동부, 오데사 등의 남부, 크림 반도 전역에서 주로 쓰이며, 동부와 남부의 지역 공식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2014년 2월 23일에 최고의회가 러시아어 등 소수민족어를 지역 공식어로 인정하는 법률을 다수결로 폐지하는 것을 결정하면서 지역공식어 지위를 박탈당했다. 하지만, 2014년 5월 20일에 의회에서 다시 러시아어가 제2국어로 지정될 예정이다. [리비우]] 등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만 쓰인다. 수도 키예프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모두 쓰인다.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를 모두 이해한다.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는 둘 다 동슬라브어군에 속하지만 우크라이나어는 폴란드어나 체코어 등 서슬라브어와도 가까운 면이 있으며, 벨라루스어와의 문법도 비슷하다. 벨라루스어도 약간은 사용되며, 북부 지방에서 주로 사용된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2006년부터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 되었다.

바깥 고리

우크라이나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