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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및 위치
파라과이의 정식 국가명칭은 파라과이공화국(República del Paraguay)는 동쪽으로 브라질, 남쪽과 남서쪽으로 아르헨티나,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볼리비아와 국경을 접한다. 남아메리카의 중앙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아르헨티나로 흐르는 파라나강(江)을 통해서만 바다로 나갈 수 있다. 파라과이의 국명은 어원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되는데, 첫째, 바다를 의미하는 ‘Para’, 기원을 의미하는 ‘Gua’, 강을 의미하는 ‘Y’가 합쳐져 ‘바다의 기원이 되는 강’이란 뜻과 둘째, 바다를 의미하는 ‘Para’, 꼬리를 의미하는 ‘Ruguay’를 합쳐 ‘바다의 꼬리’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셋째, 바다를 의미하는 ‘Para’, 거주자 또는 원주민을 의미하는 ‘Gua’, 물을 의미하는 ‘Y’가 합쳐져 ‘바다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과라니어로 말그대로 번역하자면 Para는 '여러 색깔의', Gua는 '~에서, ~에 속하는, 장소', Y는 '물, 강 혹은 호수'를 뜻한다. 즉 '강물의 여러 색깔'(가령 햇빛이 수면에 비친 색이나 물가의 앵무새 따위)이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간략역사
1525년 에스파냐의 A.가르시아가 과라니족의 거주지이었던 파라과이에 맨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후 1536∼1556년 사이에 에스파냐의 식민지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원주민 과라니족은 마테차(茶) 재배를 비롯한 농장이나 목장에서 혹사당하였다. 예수회는 이곳에 대신정국가(大神政國家)를 건설하고 20여 만의 과라니족을 1776년까지 착취하였다. 이와 같은 예수회의 특권은 식민지 출생 스페인인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켜 1719∼1735년에는 ‘코무네로스의 혁명’으로 이어졌고 1811년 5월 P.J.카바예로와 F.예그로스가 이끄는 민병대가 스페인 총독을 축출함으로써 독립을 획득하였다. 독립 후 1813∼1840년에는 프란시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부터의 경제적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경제 재편성을 꾀하였고, 1841∼1862년 C.A.로페스의 독재정치 기간 동안 개방정책을 취하여 외국자본에 의한 국력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862년 대통령이 된 F.S.로페스는 영토확장의 야망으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다. 1864∼1869년의 6년 간에 걸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3국동맹 전쟁에서는 전 인구의 1/2, 남성인구의 9/10를 상실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뒤 살아남은 남자는 2만 8000명에 불과하였다. 이 결과 파라과이 인구는 1864년의 130만에서 1870년에는 22만으로 줄어들었다. 그후 여러 차례 쿠데타와 역(逆)쿠데타가 잇따라 발생,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1954년에는 장군 A.스트로에스네르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 7차례의 선거에서 계속 당선되어 8차례나 대통령직에 올라 장기집권했다. 그러나 1989년 2월 자신의 측근이자 제1군사령관인 장군 A.로드리게스가 민주화를 내걸고 쿠데타를 일으켜 스트로에스네르는 실각하였고 브라질로 망명하였다. 로드리게스는 1989년 5월 총선을 실시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약속대로 1993년 8월 문민정부에 정권을 이양하였다. 이후 문민정부는 군부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지리
수도는 아순시온(Asunsión)이며, 국토면적은 406,752㎢로 한반도의 약 1.8배, 남한의 약 4배에 달한다.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서 ‘아메리카의 심장(Corazón de América)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토 중 초원이 55%, 산림지대가 32%를 차지하며, 파라과이 강(Río Paraguay )이 국토의 중심을 지나 파라나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연평균 23℃의 온화한 아열대 기후, 비옥한 토양, 풍부한 수자원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국가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
인구
2014년 기준으로 파라과이 인구는 약 6,703,860명이며, 인구밀도는 1km2당 15명을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구는 수도인 아순시온(Asunsión; 186만 명)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전 인구의 약 57.9%만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데, 가이아나,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함께 남미 지역 전체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한다.
인종
파라과이의 주민은 인디오의 과라니족(Guarani)과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압도적인 비중(95%)을 차지하고 있으며, 순수한 과라니족은 1.5%, 백인은 2% 정도이다. 일부 원주민들은 아직도 차코 지방에서 활과 화살을 사용하는 원시생활을 하고 있다.
언어
파라과이는 스페인어와 과라니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며, 일부 원주민들은 모헤뇨어도 사용한다.
종교
1992년 개헌 이전까지 파라과이의 국교는 가톨릭이었으나, 현재는 공식 국교는 없고,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다. 파라과이 주민의 90%가 로마 가톨릭을 믿는다.
경제
파라과이 통화는 과라니(Guarani, G)를 사용하고 있으며, GDP는 313억 달러(세계 98위), 1인당 GDP는 4,536달러(세계 105위)[1]에 달한다. 파라과이의 경제는 방대하고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농업, 목축업 등 1차산업이 중심이다. 노동인구 가운데 약 4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농목업은 국내총생산의 22.4%, 수출의 80%를 차지한다. 주요 생산품은 콩, 목화(수출총액의 40%), 목재, 커피, 잎담배 등이다. 임업도 발달하여 목재는 수출총액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철광석, 망간, 구리가 매장되어 있으나 수송상의 문제 등으로 개발이 되지 않고 있다. 풍부한 수자원과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림자원 및 조림개발 잠재력도 풍부하다.
또한, 이타이푸 수력발전소 건설에 힘입어 건설업 및 제조업이 크게 성장하였다. 이타이푸 발전소는 발전능력 1260만kW로 세계 최대이며 브라질과의 합작으로 1982년 10월에 완성하였다.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전량 수입하고 있는 파라과이는 자국 내 농산물 자원을 이용하여 에탄올 등 바이오에너지 대량생산을 통해 농업 및 에너지 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대체에너지 수출국가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제조업은 주로 식품가공업과 가죽제품과 관련되며, 최근 의류제조업도 남미공동시장(MERCOSUR) 국가에 대한 수출증가로 활기를 띠고 있다. 파라과이는 일찍부터 대외통상이 개방된 나라로 관세 및 수량제한 등 비관세 장벽이 없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 ↑ 2014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기준
정치
정치체제는 대통령중심제로,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5년 임기로 단임제이다.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 45석, 하원 8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회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며, 상원은 전국구 비례대표제, 하원은 지방별 비례대표제로 선출되고, 임기는 5년이다. 주요 정당으로 현 여당인 홍당(PC: Partido Colorado)과 야당인 급진정통자유당(PLRA: Partido Liberal Radical Autentico) 등이 있다.
한국과의 관계
파라과이는 1962년에 한국과 수교하였으며 북한과는 수교하지 않았다. 한국과 문화협정(1973), 과학·기술협력협정(1975), 무역협정(1981), 사증면제협정(1982), 투자보장협정(1992), 범죄인 인도협정(1996) 등을 체결하였다. 전통적으로 한국에 대해 우호정책을 취하고 각급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왔으며,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의 투자진출 및 경제, 기술, 교육 등의 분야에서 한국과의 실질적인 협력관계 증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파라과이의 주요 수입 품목은 승용차, 자동차 부품, 가전기기, 합성수지, 섬유제품, 타이어, 컴퓨터 관련 제품 등이며, 한국으로의 주요 수출 품목은 대두, 참깨, 가공제품, 목재류, 피혁 등 이다. 그 외, 2008년 6월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Fernando Lugo) 대통령이 방한하여 한국과 파라과이의 농업협력과 농업진흥청 농업과학기술 이전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이후 2009년 3월 파라과이 농업목축부와 한국 농업진흥청을 주축으로 한국-파라과이 농업기술협력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었다.
이어서 2009년 12월 파라과이 농축산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농업기술센터(KOPIA, Korea Project on International Agriculture) 개소식이 개최되었고, 2010년 5월 파라과이의 프랑시스코 리바스 알마다(Francisco Rivas Almada) 산업통신부 장관이 방한하여 농업진흥청을 방문하였으며, 2010년 8월부터 9월까지 파라과이 농촌지도자 로베르토 알론소(Roberto Alonso)의 농업진흥청 초청 연수가 시행되었다.
카아쿠페(Caacupé)시 소재 파라과이 국립농업연구소에 설치된 농업기술센터는 주요 시범사업으로 참깨 및 스테비아 신품종 육성, 감자 및 양파 병충해방제 기술 개발 등의 맞춤형 기술을 지원(현지진출 국내 농산업체 기술지원 포함)하고 있으며, 전문가 1명과 인턴 8명이 파견 근무하고 있다.
※ 위의 내용은 주파라과이대한민국대사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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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파라과이 | 파라과이 교육과정, 2014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파라과이 | 파라과이 사회과 교과서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