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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2일 (일) 23:21 기준 최신판

벨라루스 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Беларусь)
BelarusNF.jpg
인구 약9,643,566(2012년)
면적 약207,600㎢(한반도와 유사)
언어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문자 끼릴문자
정부 대통령제
통화 벨라루스 루블(BYR)
GDP 전체 $791.3억 / 1인당 $7,700
HDI 0.793(50위, 2012년 기준)
국제전화 +375
도메인 .by




개요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북쪽으로는 라트비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수도는 민스크이다. 공용어는 벨라루스어러시아어이다. 1922년부터 1991년까지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 키예프공국 붕괴 후 여러 공국으로 분할되었다가 1922년 소련에 편입됐다. 1990년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독립을 선언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함께 독립 국가 연합 창설을 주도했다. 빙하 작용을 받은 평원국으로 기후는 대서양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하다. 주민은 벨라루스인이 78%, 러시아인이 13%, 폴란드인 4%, 우크라이나인 3% 등이다. 산업이 특히 발달했으며 기계공업이 전체 공업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트랙터, 농기계, 공작기계, 전기·무선기기 및 전자계산기 등이 유명하다. 반면에 석유, 가스화학공업은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1992년 가격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1]벨라루스 사람들은 흰 옷을 즐겨입는 풍습이 있으며 전통 무늬가 새겨진 옷은 전통 의상이다. 또한, 가옥도 흰 색으로 칠하는 문화도 있다. 이 나라는 흰색은 상징색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국명

벨라루스라는 국명은 하얀 루스(틀:Llang)라는 표현에서 왔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러시아어벨로루시야(Белоруссия, Belorussia)라고 불렀다. 또, 대한민국에서는 이로 인해 한때 백러시아(白러시아)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실제 벨라루스는 White Ruthenia 를 의미한다.

1991년 9월 19일 당시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소비에트 최고회의는 러시아어 국명을 Республика Беларусь (Respublika Belarus'), 줄여서 Беларусь (Belarus')로 표기하며 다른 언어로 표기할 때에도 이 발음을 따르도록 한다는 내용의 법을 고시하였다.[2] 이에 따라 영어 국명도 Belorussia에서 Belarus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1년 12월 10일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이 국명을 벨로루시로 표기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벨라루스 정부의 요청에 따라 2008년 12월 11일 제82차 회의에서 표기를 벨라루스로 수정하였다. 반대로 과거 러시아어를 따라 그루지야로 불린 조지아2010년 7월 해당국의 요청으로 국립국어원에서 조지아로 바뀌었다. [3]

러시아 제국소련 시절에는 현 벨라루스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하얀 러시아'라는 뜻으로 백러시아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다. 벨라루스를 이를 때 '하얀 러시아'라고 직역되는 명칭을 흔히 사용하는 경우로는 독일어의 바이스루슬란트(Weißrussland), 네덜란드어의 빗뤼슬란트(Wit-Rusland), 그리스어의 레프코로시아(Λευκορωσία) 등이 있다. 그러나 루시(Русь)와 러시아는 구별되는 개념이며 백러시아라는 명칭은 역사적으로 벨라루스 외에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 적이 있어 오늘날에는 백러시아라는 명칭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벨로루시 라는 국명으로 부르는 것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익숙하기 나름이다.

자연

벨라루스는 동유럽평원에 위치한 저지대국가로 국토가 낮고 평탄하며 가장 높은 제르진스카야산(山)이 350m에 불과하다. 총면적의 13%가 저습한 소택지이거나 습원이다. 경작가능지가 26.77%, 농경지가 0.6%, 기타 72.63%이다. 남부의 프리피아트강(드네프르강의 지류) 유역은 폴레시에라는 사질(砂質)의 습원으로 된 소택지가 많은데, 이 소택지를 농경지로 간척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북부에는 빙하작용을 받아 형성된 호소(湖沼)와 퇴석(堆石)이 많다. 폴란드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자연보호지는 유럽에서 가장 큰 혼합원시림의 일부로서 유럽들소 무리가 서식하고 있다.

내륙에 위치하여 기후가 한랭하고 습기가 많을 뿐만 아니라 토양이 척박하여 농업에 매우 부적합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가면서 더욱 극단적으로 혹독해지는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민스크의 1월 평균기온은 -5℃이며, 가장 따뜻한 달인 7월의 평균기온은 19℃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560∼660mm으로, 6월과 8월에 비가 가장 많이 내리며, 12월에서 4월까지는 눈으로 뒤덮인다. 1년 중 7, 8개월은 땅에 서리가 내리고 식물의 생육기간은 180~200일 정도이다.

역사

6세기부터 슬라브족이 벨라루스 땅에 들어오면서 키예프 공국에 속하였다.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벨라루스 땅은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 후 폴란드 분할 때인 18세기 때 벨라루스 땅은 제정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이 벨라루스 땅을 차지하게 된 후인 1918년 3월 25일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하지만 이는 실질적 국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1919년 1월 5일 붉은 군대민스크에 들어오면서 해체되었다. 벨라루스는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나치 독일은 소련을 침략하면서 벨라루스 땅은 독일군의 점령하에 들어가고 벨라루스 공화국의 이름을 가진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가 세워졌다. 벨라루스인들의 게릴라식 저항은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벨라루스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독일의 패전 후 벨라루스는 다시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벨라루스는 1990년 7월 27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91년 12월 벨라루스는 독립국가연합의 회원국이 되었고 초대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센카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97년부터 러시아와 국가 연합을 결성하기로 하였다. 2001년에 루카셴카는 러시아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2004년에 루카셴카 대통령은 3선에 성공했다. 2007년에 러시아와 에너지 분쟁이 있었다. 2008년 9월 28일에 벨라루스는 총선을 시작했다. [4] 하지만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5]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는 공식행사에서 4살된 자신의 막내아들을 자주 데려가는 것을 보고 일부에선 그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6] 2010년 8월 3일에 루카셴카 대통령은 독립국가연합 정상들 앞에서 압하스 공화국남오세티야를 독립국으로 인정하겠다는 말을 했다. [7] 2010년 12월 19일에 있었던 선거에서 루카셴코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야당 지도자와 벨라루스 국민 수만명은 항의 시위를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고,[8] 미국과 EU는 벨라루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9] 2011년 1월 21일 벨라루스에서는 루카셴코의 4번째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지만, EU는 취임식을 보이콧하였다.[10][11] 그리고 미국은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 조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12] 2012년 9월 23일에 하원의원을 뽑는 총선이 실시되었지만, 야당이 전면보이콧하면서 반쪽짜리 선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13][14] 그리고 선거에서 여당후보자들이 전부 당선되면서 야당후보는 한명도 당선되지 못했다.[15] 하지만 러시아는 벨라루스의 총선을 지지했다.[16] EU는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를 2013년 10월말까지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17]

정치

벨라루스의 현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카

정치체제는 대통령제이다. 1991년 당시에 스타니슬라프 슈시케비치가 벨라루스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바 있으나, 3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슈시케비치는 알략산드르 루카셴카에게 자리를 넘겼다.

사회

벨라루스, 즉 하얀 러시아(White Russia)라는 뜻의 국명에서 드러나듯이 주민들은 흰색을 좋아하여, 흰옷을 입고 가옥의 벽도 희게 칠한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흰 피부와 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며 무료이다. 공공의료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인터넷 호스트수는 33,641세 (2006년) , 인터넷 사용자수는 339만 4000명(2005년)이다

문화

벨라루스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의 영향을 받았으며 전통 의상으로 햐안 바탕에 빨강색이 합쳐진 옷을 즐겨입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벨라루스 사람들은 가옥을 흰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특히 전통 무늬가 들어간 옷은 벨라루스의 전통 적인 의상이다. 이 밖에도 러시아의 지배 영향을 받아서 국민이 러시아인과 비슷하기도 하다.

언어

공용어는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이다. 1995년의 국민투표에 의해 러시아어가 정식으로 공용에서 추가되었다. 민스크에서는 대부분의 주민이 러시아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주민도 있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60%가 벨라루스어가 모국어였지만, 주민의 대부분(70%)는 집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했다[18]. 45만명은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고, 13만8,000명은 독일어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일부는 우크라이나어, 폴란드어 등 소수 민족어도 사용한다.

종교

종교는 러시아 정교회가 80%이다. 그 외 가톨릭교,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을 믿고 있다(1997년 추계).

교통

벨라루스의 철도와 도로는 동유럽~모스크바 간, 발트 해안~흑해 연안 간의 동서, 남북의 체계를 갖는다. 2005년 기준 철도 총연장은 5,512 km, 도로의 총연장은 93,310 km, 포장률은 97%이다. 북부에서 남부로는 목재·펄프 등의 수송이 많고, 그 반대 방향으로는 곡물·금속가공품·석탄 등의 수송이 많다. 수도 민스크에는 지하철이 운행된다. 벨라루스에서는 운하와 강을 이용한 내륙수로가 많이 개발되어 있다. 2006년 기준 공항은 86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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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한국과는 1992년 2월 10일, 북한과는 1992년 2월 3일 수교를 맺었다. 1992년 8월 최고소비에트 의장 수시케비치가, 1997년 4월에는 대통령 A.루카센카가 방한하였으며, 2002년 6월 이종남 감사원장 등이 벨라루스를 방문하였다.양국은 투자보장협정, 외무부간 협력의정서를 체결하였다. 2004년 기준 대한(對韓) 수출은 362만 달러이고 대한 수입은 1688만 달러이다. 2004년 현재 한국 교민은 30명 미만이다. 1998년 10월 북한은 주러시아대사 겸임으로 신임장을 제정하였다.

바깥 고리


연계 정보

관계 대상 문서 설명
uses 교육과정:벨라루스 벨라루스 교육과정, 2014년 조사 보고
uses 교과서목록:벨라루스 벨라루스 사회과 교과서 총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