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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복만들기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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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9T02:06:4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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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dmin: 판 1개를 가져왔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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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12T13:51: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판 1개를 가져왔습니다&lt;/p&gt;
&lt;table class=&quot;diff diff-contentalign-left&quot; data-mw=&quot;interface&quot;&gt;
				&lt;tr class=&quot;diff-title&quot; lang=&quot;ko&quot;&gt;
				&lt;td colspan=&quot;1&quot; style=&quot;background-color: #fff; color: #222; text-align: center;&quot;&gt;← 이전 판&lt;/td&gt;
				&lt;td colspan=&quot;1&quot; style=&quot;background-color: #fff; color: #222; text-align: center;&quot;&gt;2021년 9월 12일 (일) 13:51 판&lt;/td&gt;
				&lt;/tr&gt;&lt;tr&gt;&lt;td colspan=&quot;2&quot; class=&quot;diff-notice&quot; lang=&quot;ko&quot;&gt;&lt;div class=&quot;mw-diff-empty&quot;&gt;(차이 없음)&lt;/div&gt;
&lt;/td&gt;&lt;/tr&gt;&lt;/table&gt;</summary>
		<author><name>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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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efia&gt;Ksnet: 판 1개를 가져왔습니다: 해외한국학지원(한국문화강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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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6-08-21T03:24: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판 1개를 가져왔습니다: 해외한국학지원(한국문화강좌)&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한복 (韓服)==&lt;br /&gt;
우리 나라 고유의 의복. 전통한복이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관습·행위·형태·기술 등의 양식과 정신이 깃든 한복으로, 우리 고유 의복인 치마·저고리·바지·저고리·두루마기에 조끼·마고자가 포함된다.&lt;br /&gt;
&lt;br /&gt;
==내용==&lt;br /&gt;
1600여년간 이어진 고유 한복의 전통성은 세계에서 제일 길며, 그것은 고구려 고분벽화(4∼6세기)와 신라·백제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전통의 선을 현대부터 그어보면, 영·정조시대 혜원(蕙園)신윤복(申潤福)·단원(檀園)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에 나타난 한복까지 그을 수 있으며, 다시 조선초기·고려·통일신라를 거쳐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본복(유·고·상·포)까지 이어진다. 더 나아가 가시적인 자료는 없으나 고조선까지도 이을 수 있다고 본다.&lt;br /&gt;
&lt;br /&gt;
기본복(基本服)의 원류는 스키타이계이며 북방민족의 복식이다. 고대 한국의 복식문화는 주변국가보다 매우 발달하여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예 중의 하나가 우리의 유(襦)와 고(袴)를 서기전 4세기경에 중국의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이 융복(戎服)으로 채용하였다.&lt;br /&gt;
&lt;br /&gt;
후한대(後漢代)에 고습(袴褶)이라고 불렸으며, 위진(魏晉) 이후 천자(天子), 백관의 융복과 사인(士人)·서민복으로, 당대(唐代)에는 삭망(朔望) 때 조회복(朝會服)으로도 입혀졌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집단으로 이주할 때 입고 간 우리 옷(유·고·상·포)을 계속 입었으며 원주민에게도 전했음을 하니와(稙輪)로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유의 기본형은 전개좌임착수(前開左袵窄袖)에 옷 길이는 둔부정도 길이［短衣］이고, 옷깃·섶·밑단·수구에 흑색 선(襈)이 둘러져 있고, 여밈은 깊지 않은데 선 넓이 내외로 여며진다.&lt;br /&gt;
반드시 옷을 겹쳐 입었으며, 유의 안쪽 옷은 둥근 깃과 곧은 깃 2가지 형태가 보인다. 기본형 이외에 무릎 길이 정도의 장유(長襦)와 우임(右衽)을 많이 착용하였다. 소매길이는 상류층은 길고 하류층은 짧다.&lt;br /&gt;
통일신라 때의 유는 이색선(異色襈)보다 동색선(同色襈)을 댄 옷을 많이 착용하게 되었다. 상류층은 당(唐)의 착용법인 저고리 위에 치마 차림이었으나, 서민은 치마 위에 저고리를 입는 차림새였다.&lt;br /&gt;
&lt;br /&gt;
고려시대 말기 짧은 저고리가 유행되고 고름이 생겼다.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긴저고리는 계속 서민들이 착용하였고, 조선 중기까지도 계속되면서 옆 트임이 생기고 겉옷화 한다.&lt;br /&gt;
조선 숙종조에 팔꿈치 길이까지 짧아지고 영조대에는 가슴을 덮는 45㎝ 정도에서 점차 짧아지기 시작하여 정조대에는 약 26㎝ 정도였으며, 1890∼1900년대는 19㎝까지 짧아 겨드랑이가 보였고, 1920년대에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였다.&lt;br /&gt;
&lt;br /&gt;
1930년대를 전후해서 저고리 길이는 더욱 길어져 옆선이 7∼8㎝ 정도까지 내려갔고 배래선이 오늘날과 비슷한 곡선이 되었다. 1940년대에는 저고리가 배꼽까지 오는 길이였으나, 1950년을 전후해서 차츰 짧아지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오늘날의 저고리 길이 정도로 고정되었다.&lt;br /&gt;
삼국시대의 치마는 밑단까지 주름이 잡힌 주름치마와 여러 쪽을 이은 치마, 색동치마가 있었으며, 밑단에 선을 댄 치마도 있었다. 상류층의 치마는 길고 하류층은 짧았는데, 치마 속에 여러 가지 속옷을 입어 A라인이 되었다.&lt;br /&gt;
&lt;br /&gt;
통일신라시대에는 상류층은 당나라의 치마 형태와 입음새를 따랐다. 현대 치마와 같게 허리부분에만 주름을 잡은 내상(內裳)과 표상(表裳) 2개를, 유 위에 입었으며, 치마 말기가 보이므로 좋은 옷감으로 만들었다. 서민의 입음새는 상 위에 유를 입는 방법이었다.&lt;br /&gt;
&lt;br /&gt;
고려시대에도 이 두가지 입음새가 계속되다가 고려말에는 우리 전통 입음새로 돌아가 현재까지 이른다. 치마길이는 저고리가 길 때는 짧았고 저고리가 짧을 때는 치마가 길었다.&lt;br /&gt;
삼국시대 바지의 기본형은 바지통이 좁고 발목에서 대님을 맨 것이었으나, 넓은 바지, 짧은 바지가 있었고, 바지 부리에 이색선이나 동색선을 댄 바지 등이 있었다.&lt;br /&gt;
여자도 유와 바지를 입은 모습이 많다. 치마 속에 여러 겹의 바지를 입어 치마를 부풀린 시대는 삼국시대·고려·조선중기이다. 특히 조선중기에는 속속곳·바지·단속곳을 입어 항아리형을 만들었다. 유물을 통해 살펴 본 남자의 사폭바지는 임진왜란 전후에 생긴 것이다.&lt;br /&gt;
&lt;br /&gt;
포의 기본형태는 유와 같으나 길이만 긴 것으로, 종아리 아래 길이이다. 유·고와 유·상 위에 입는 예복용이었다. 상류층 남자는 중국풍의 포를 입었으나 서민남자와 여자들은 기본포를 입었다.&lt;br /&gt;
통일신라·고려·조선 초기의 서민 남녀는 계속해서 우리 고유 포를 입어 현대에 이르고 있다. 고려말기에 고름이 생겼고, 포의 용어가 두루마기로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유교가 강화되면서 여자들의 외출이 금지된 후 여자의 포 착용대신 쓰개로 장의와 쓰개치마가 사용되다가 개화기에 방한복으로 두루마기를 착용하게 되었다.&lt;br /&gt;
조끼와 마고자는 개화기 때 생긴 옷으로 현재 우리 전통 한복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끼는 1880년대 이후 남자 양복이 들어오면서 한복에 도입되었다. 한복에는 주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주머니가 달린 조끼는 매우 급속히 보급되었다.&lt;br /&gt;
&lt;br /&gt;
마고자는 저고리 위에 덧 입는 옷으로, 1887년(고종 24)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만주에서 귀국할 때 청나라 옷이었던 마괘(馬褂)를 입고 온 것에서 유래되었다. 모습은 저고리와 비슷하나 깃과 동정이 없다.&lt;br /&gt;
&lt;br /&gt;
==한복만들기 체험 사진==&lt;br /&gt;
[[file:hanbok 1.JPG |400px]] &lt;br /&gt;
[[file:hanbok2.JPG |400px]]&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file:hanbok3.JPG |400px]] &lt;br /&gt;
[[file:hanbok4.JPG |400px]]&lt;br /&gt;
&lt;br /&gt;
== 참가자 한마디 ==&lt;br /&gt;
&lt;br /&gt;
*[[Nova Putri (노바 뿌뜨리)_한복]]&lt;br /&gt;
*[[Xu MengMeng (서몽몽)_한복]]&lt;br /&gt;
*[[Nguyen Thi Huong Giang (응우엔 티 흐엉 장)_한복 만들기 수업]]&lt;/div&gt;</summary>
		<author><name>cefia&gt;Ksne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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