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약수암죽림선원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 명칭 : 해인사 약수암 죽림선원(海印寺 藥水庵 竹林禪院)
  • 소재지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산1-1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82-23)

약수암(藥水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부속 암자로 가야산 그윽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절 부근 밭 가운데서 약물이 나와 약수암이라 이름하였다.
비구니 차성주(車性主)스님이 원당암 남쪽에 지모암(智母庵)을 짓고 정진하다가 1904년 현 약수암 터에 칠성각을 창건하였으며 1928년에는 도삼(道三) 스님이 노전채인 큰방을 지었다. 1970년 법공(法空) 스님이 선방을 지었고, 1975년 묘관(妙觀) 스님이 60여 평 규모의 요사를 신축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가야산 내 비구니 처소로서 삼선암(三仙庵)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약수암에는 초창기부터 비구니 납자들이 수선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1909년 용성(龍城) 스님이 성주 스님의 청에 의해 약수암에 올라가 참선 정진중인 비구니 납승들에게 법문을 내린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용성 스님은 약수암에 머물던 비구니 회현, 남전 수좌들의 선문답에 자상하게 선의 정수를 일러주며 선지식 역할을 하였다.
1922년 회전 스님을 비롯해 7명의 스님이 세 칸짜리 선방을 지어 참선 정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선원이 개설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940년부터 홍선유(洪善乳) 스님이 감원(監院)이 되어 대중 외호의 원을 세워 산내 비구니 선방으로서의 터전을 다져 나갔다. 1945년 해방이 되던 해 회전 스님이 열반하고 난 뒤 본방 대중 스님 25명이 탁발을 하면서 참선에 들어 수행도량으로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70년 법공 스님이 선원을 개원하여 본격적으로 정진 대중을 받기 시작해 지금까지 결제 철마다 큰방 대중 50명을 포함하여 70명의 대중이 수선 안거에 들어 실참 수행하고 있다.
약수암 죽림선원은 대웅전 오른편에 담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터에 장중하게 앉아 있다.
선원은 큰방과 목욕탕과 다각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방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앞 뒷면과 한쪽 옆면에 마루가 쭉 놓여 있다. 65평 규모이며 수용인원은 50명이다.
약수암 선원은 예로부터 노스님들이 정진대중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선에 들 수 있도록 힘쓰고 있으며 또한 선원 터도 안정되어 있기에 마음 놓고 공부하며 정진하기엔 더없이 훌륭한 도량이다. 구참 납자와 신참 납자 사이도 화목하여 화합이 잘 되니 화합 대중으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예로부터 좋은 수행처란 첫째 토지연, 둘째 도반연, 셋째 단월연이라 했는데 이 세 가지 조건을 죽림선원은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결제 시에는 일반정진하다가 하안거 때는 7월 1일부터 8일까지 용맹정진하며, 동안거 때는 납월 1일부터 8일까지 용맹정진한다. 일반정진 기간에도 정진 시간 외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참선에 들 수 있도록 큰방은 항상 개방되어 있다.
매달 그믐날에는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해인사 전 대중과 《범망경》 포살을 하고 보름에는 삼선암이나 약수암에서 결제중인 산내 비구니 스님들이 모여 비구니계 포살을 하고 있다. 결제, 해제 시 해인사에서 방장 법전 스님으로부터 상당법문을 들으며 공부를 점검한다.
1999년도 하안거 때는 선덕 상덕(尙德)스님을 비롯하여 52명이 정진하였으며 도감 일운(日芸) 스님이 선원을 외호하였다.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p. 803, 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