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해운스님(海雲, 1920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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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덕(海德) 해운(海雲)스님은 은사 금룡(金龍=금광金光)스님과 함께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부산 소림사를 재건했으나 병마를 견디지 못해 이른 나이에 속세의 인연을 마치신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20 서울 출생
1936 서울에서 중학교 졸업
1937 운문사에서 금룡(金龍, 金光)스님을 은사로 출가
1938 통도사에서 구하(九河)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39 부산 소림사 주석
1940 범어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41 소림사 가람 수호
1966 소림사 주지
1970 통도사 극락암] 하안거 성만
1971 소림사에서 입적(세수 52세, 법랍 36세)
문중 계민문중(戒珉)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종근(宗根)·종인·일현·명현·대안·성명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봉전(奉典, 8)→장홍(壯弘, 9)→선덕(善德, 10)→금룡(金龍, 11)해운(海雲, 12)종근(宗根, 13), 종인(宗仁, 13), 일현(一玄, 13), 명현(明鉉, 13), 대안(13), 성명(13)

활동 및 공헌

출가와 고난의 시작 계기

[자덕당 해운스님 법탑]
사진출처: 소림사 종인스님 제공(2023.2.20.)

해운(海雲)스님은 1920년 2월 7일 서울 대방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며, 이름은 김학희이다. 1936년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에 운문사에서 금룡스님(금광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출가 다음해인 1938년 통도사에서 구하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년 후 부산시 동 구 초량동 소림사에 주석하게 되었다. 스님이 소림사에 당도했을 때는 이름만 사찰이지 상황이 형편없어 도저히 머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당시 함께 갔던 스님은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 무애도승(無得道僧)은 가는 곳이 내 처소요, 이르는 곳이 내 집인데 구태여 머리 아플 정도로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에 왜 살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님의 의지는 결연했다. “가시려면 스님 혼자 가세요. 저는 여기 머물러서 완전한 절집을 만들어서 정화해놓고, 가더라도 그때 가겠습니다.” 그 후 스님은 부처님을 모시는 일꾼이 되어 원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참신하고 확실하게 하 나씩 일을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당시는 일제통치의 암울한 시대로서 절이라고는 일본식 건물로 지은 사찰이 예닐곱 개 정도 있었을 뿐, 홍법사를 비롯하여 토성동 묘심사 등은 전부 속가로 넘어가 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각사와 소림사만이 그 숱한 사연을 밟고 넘어서서 오늘날 까지 부처님의 전등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비구승들의 처소였던 대각사만 해도 주지가 수백 번도 더 바뀌면서 숱한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소림사 무량수전 건축불사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당시 3천 8백만 원의 불하금액은 현재의 개인 재산 30억 8천만 원보다 더 큰 금액이었다. 이 엄청난 부채를 스님은 묵묵히 기도를 드리며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청산해야 했다. 그러나 사찰 이전 등기를 완료했음에도 사찰 내에 입주해 있던 속인들은 방을 비워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스님은 집을 사서 내보내거나 수십 세대 전부를 전세집을 얻어주면서 돌려보내야만 했다. 스님은 이렇게 목탁을 두드려 부채를 갚아나가기를 거듭하면서 도량을 완전히 정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험난한 여정을 거치고 보니 정작 더 큰일이 남아 있었다. 건물이 노후해서 비만 오면 지붕 곳곳이 새는 것이었다. 비오는 날에는 세숫대야는 물론 양푼을 비롯한 양재기, 밥그릇 할 것 없이 그릇이란 그릇을 있는 대로 총동원해 빗물을 받아냈다. 그러다 보면 방바닥은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여기저기서 비가 철철 새니 지붕은 썩을 대로 썩어 일본식 건물의 마룻바닥까지 푹푹 꺼져 내려앉아 몇 번이나 갈아 넣었지만 결국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기존의 낡은 건물을 헐고 신축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썩은 마룻장 건물을 허물어야 했다. 불사를 위해 차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느라 웬만한 거리는 걸어가고, 먹는 것도 최대한 아껴 반찬은 조촐한 된장찌개로 대신했다. 문중의 객스님들에게 여비 한 푼 못 드리는 죄송한 마음을 가슴 에 묻어두며, 원력달성에 여념이 없었다. 시장에 나가 장을 볼 때는 객스님에게 여비를 못 드린 생각에 그 무거운 짐보따리도 스님이 손수 이고 지고 들고 다녔다. 이렇게 아끼고 절약하여 스님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너나없이 모두가 가난한 시절인지라 시주금이라야 얼마 되지 않았다. 법당은 그럭저럭 쓸 만했으므로 급한 대로 요사채를 완공하고 겨우 6년 주지로 일생을 마쳤다.

힘겨운 투병생활

스님은 철저한 보살행으로서, 은사를 지극한 효성으로 떠받들어 모신 제자요, 효상좌로서, 또한 한 사찰을 책임지고 운영하던 원주로서 책임을 손색없이 완수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머리가 아파서 끈이나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살면서도 병원 문 앞에 간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오직 은사스님의 간호에 치중하다가 은사스님이 입적하신 뒤 3년 만에 중풍으로, 전신마비에 말문까지 닫혀버리고 입, 눈, 코까지 갈지자로 돌아가는 호된 병을 얻게 되었다. 스님의 세수 48세 때의 일이었다. 힘겨운 치료를 거쳐 차차 쾌차하여 다행히 육신을 움직일 정도로 회복되었지만 걸음걸이는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사중에 일손을 거들었다. 스님은 소림사 살림을 상좌에게 맡겨놓고 한 철 통도사 극락암 경봉 노스님 회상에서 결제에 참가했다. 스님은 병든 몸으로 끝 까지 공부에 임하여 하안거 한철을 난 후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6월에 고혈압 증세가 재발되어 고요히 입적했다.

비구 경봉노스님과의 일화

스님이 극락암에 머물 때에 경봉 노스님과 법담을 한 적이 있는데, 경봉 노스님이 “내가 보니 공부한다고 잠을 자지 않고 앉아 있더구나!” 하시자 “저도 보니 스님께서 저를 보시고 계셨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는 각방에서 추호도 서로 본 일이 없는 가운데 보지 못함이 없었고, 추호도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모를 것이 없다는 뜻이며, 모를 것이 없는 가운데는 또한 앎의 형체가 끊어진 지혜와 앎이 없는 지혜가 둘이 아닌 경계임을 뜻하는 것이리라.

이산가족 자매상봉

6·25전쟁 때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부산에 밀집해 있었는데 스님의 속가 식구들 또 한 부산으로 피난을 와 있었다. 가족들은 스님이 6·25전쟁 이전에 죽은 줄 알고 있었다. 당시 속가 식구들은 국제시장에서 스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으나 스님은 가족들을 봤으면서도 그냥 그곳을 지나쳐왔다. 출가자로서 혈육지정을 나눌 수 없어 냉정한 속눈물을 안으로 거듭 삼키면서 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줄달음질치고 말았다고 한다. 스님은 이미 속가의 인연을 끊고 출가자가 된 자신이 행여 동기간을 만나 애착하는 마음이 다시 생길까 염려했던 것이다. 다시 20년의 세월이 흘러 스님의 동기간이 초량에 이사 오게 되었다. 스님의 언니는 독실한 불자로서 절에 다니기를 좋아하여 집 근처에 있는 소림사에 나오게 되었다. 그때 스님을 보고 꼭 죽고 없는 동생을 영락없이 닮았다 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더니 동생이 분명한지라 그제야 비로소 자매의 상봉이 이뤄졌다고 한다.

입적

해운스님은 1971년, 힘들게 일으켜 세운 소림사에서 세수 52세, 법랍 35세로 입적했다. 해운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종근(宗根)·종인·일현·명현·대안·성명스님 등이 있다.

해운스님의 출가와 수계연도에 대한 다른 자료

법보신문에는 해운스님의 출가와 수계연도가 약간의 출입이 있다. 아래는 법보신문 자료이다.

해운 스님은 금룡(금광)스님을 은사로 1941년 소림사에서 출가해 1945년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해 온 스님은 1950년부터 소림사에 머물면서 정진하셨으며 1966년 소림사 제2대 주지를 맡았다. 특히 해운 스님은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밀려온 피난민들과 학도병을 위해 피난가구 15가구의 자력 이주를 지원했고 국유지를 불하받아 소림사의 중창불사에 진력했다. 스님은 1971년 법랍 30, 세수 52세로 소림사에서 입적했다. 출처 : 법보신문 2014.11.7.일자 (기사제목 : 부산 소림사, 11월7일 금룡(금광) 스님 탑비 제막)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341)

부산 소림사

[소림사무량수전]
사진출처: 소림사 종인스님 제공(2023.2.19.)
[소림사1]
사진출처: 소림사 종인스님 제공(2023.2.19.)
[소림사2]
사진출처: 소림사 종인스님 제공(2023.2.19.)
[소림사 전경] 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 https://m.blog.naver.com/010iooi/221271988916

소림사(少林寺)는 1913년 승려 송영(松永)이 창건하였으며, 해방 직후인 1945년 비구니 정금광(鄭金光)이 인수하였다. 1948년 순 한국식 불단으로 개조하여 가람을 수호하며 포교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50년 음력 2월 15일 저녁에 화엄 산림(華嚴山林) 법회를 열어 설법을 하던 중 방광(放光)을 하여 인근 소방서에서 소림사에 불이 난 줄 알고 소방차가 출동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 후 1995년 승려 정일(淨日)이 7년간의 불사 끝에 무량수전을 완공하였다.
소림사는 부산 지역의 지도적인 재가 불자를 양성한 대표적인 사찰로 꼽힌다. 소림사는 전통적인 신행 도량이다. 뿐만 아니라 1970~1980년 대불련 등 부산 지역 내에 있는 대중 신행 단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소림사를 대표하는 것은 60여 년간 지속해 오고 있는 산림 법회이다. 승려인 해운(海雲)과 정일의 원력으로 대덕 큰 스님들과 함께 하는 법화 산림 법회, 열반 산림 법회, 참회 산림 법회 등의 대법회를 끊임없이 개최하였다. 역대 고승들의 법문과 회주 정일의 대중 기도는 무척 유명하다.
또한 소림사는 부산 대중 불교의 산실과 같은 곳이다. 부산불교신도회, 거사림회 등이 소림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초 대부분의 사찰들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학생회 등을 사찰 내부에 두기를 꺼려할 때 과감하게 공간을 10년 넘게 제공한 곳이 바로 소림사이다.
소림사에서는 법회와 기도 등을 행하고 있다. 법회는 청년 법회, 대학생 법회, 어린이 법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동문 법회, 일요 법회, 부경대학교 불교 동문 법회 등이 있고, 연중 기도로는 정초 신중 기도, 참회 산림 법회, 자비 도량 참법 기도, 백중 기도, 관음 백일기도, 아미타 백일기도, 만년 위패 봉안 제자 천도재 등이 있다.
소림사의 전각은 무량수전과 대웅전이 있다. 무량수전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상과 좌우에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다. 무량수전 내에는 신중단, 칠성단, 독성단, 산신단 등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상과 관세음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지장보살상, 홍법대사상, 부동명왕상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출처: 부산역사문화대전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6052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425~430.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11.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343.
  • 법보신문 2014.11.7.일자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해운(海雲)스님 본항목 해운스님(海雲,1920~1971) 海雲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해운스님(海雲,_192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해운스님(海雲)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해운스님(海雲) 금룡스님(金龍) ~의 수계제자이다
해운스님(海雲) 청도 운문사 ~에서 출가하다
해운스님(海雲) 구하스님(九河)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해운스님(海雲) 석암스님(昔巖)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해운스님(海雲) 부산 소림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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