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水晶)문중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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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문중은 속리산 법주사 수정암 출신 문도의 결집에서 유래한다. 개창조 제1대 관선(觀先)스님과 제2대 능행(能行)스님 이후 문중의 세계를 이어온 문도들이 대체로 수정암에서 출가득도하거나 그 계통을 이어온 내력에 따른 것이다.

수정문중의 종문본찰 수정암은 법주사 입구에 위치한 비구니 선방이다. 수정암은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義信祖師)가 본절인 법주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건립한 암자로서, 현재 남아있는 10여개 암자 중 그 역사가 가장 높다. 1914년 수정문중 제6대인 장태수(張泰守)스님이 극락전 등을 중창하고, 이어 선방과 요사 등을 중건하는 등 중수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정문중은 1960년대 말 7대손인 쾌유(快愈, 1907~1974)스님이 사숙 태수(泰守)스님과 함께 수정암 계보의 기초를 작성한 자료에 의거하여 출발하였다. 이 자료를 토대로 1972년경 󰡔수정문중계보󰡕를 발행했는데, 이는 비구니계 각 문도회 가운데 문중계보를 가장 먼저 발간한 사례이다. 수정문도회는 1990년 음력 9월 15일(쾌유스님의 기일 전날) 수정암에서 문중회의를 열고 문중계보 재정리와 재발행을 결의했다. 이에 1992년 9월 󰡔수정문중계보󰡕의 증보판을 발행하면서 그 세계를 구체화하였다.

수정문중은 제7,8,9대손이 문중성립의 중심문도이며, 초대부터 제6대까지의 문도는 다만 법명만 구전상승 되며 자세한 행적은 남아있지 않다. 수정문중은 18세기 중반기 인물로 추정되는 초조 관선스님이 유일한 제자 능행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제2대 능행스님이 응운(應雲)⋅정안(正眼)⋅상학(上學) 스님 등 3명의 제자를 두고, 제3대 항렬의 맏이인 응운스님이 10명의 상좌를 두면서 크게 일어났다. 응운스님의 상좌로서 문중 제4대에 해당하는 재일(載日)⋅자흡(慈洽)⋅도원(道圓)⋅덕진(德津)⋅실상(實相)⋅변홍(辯弘)⋅묘흥(妙興)⋅대전(大轉)⋅대흔(大欣)⋅대순(大順) 스님 가운데 맏상좌 재일계통과 막내상좌 대순계통이 번성하면서 오늘의 수정문중을 형성하였다.

(이상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p195~203 참조)

수정문중의 대표인물로는 봉녕사 묘엄스님, 삼선포교원 지광스님, 안양 안흥사 수현스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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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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