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현스님(一玄, 1952生, 비구니)
일현(一玄)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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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일현(一玄) |
법호 | |
속명 | 이태자 |
출생 | 1952. 3. 17. |
출가 | 1966년 |
입적 | |
사찰 | 소림사(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974-2)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일현(一玄)스님은 평생을 선수행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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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 경북 구미 출생 |
1966 | 부산 소림사에서 해운(海雲)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7 | 소림사에서 철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72 |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
1977 | 통도사에서 일타(日陀)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운문사 강원 졸업 |
1977~1980 | 해인사(2년), 석남사(1년), 대원사(1철) 등 안거 성만 |
1980 | 세등선원, 범어사 대성암(2년), 불영사, 흥륜사(3철), 화운사, 상주 용흥사, 오대산 지장암, 동화사 부도암(3철), 내원암, 윤필암 등 안거 성만 |
1996~2004 | 경주 금련선원 안거 성만 |
2004 | 소림사 주석 |
문중 | 계민(戒珉)문중 |
수행지침 |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자. |
활동 및 공헌
출가
일현(一玄)스님은 1952년 3월 17일 경북 구미시 원평1동에서 아버지 경주 이씨 이종래와 어머니 송 보덕심 보살 사이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이태자이다.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1964년 스님은 집안 사정으로 부산 소림사에서 생활하면서 초량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절집 생활을 익히며 2년여를 보내고 1966년에 해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금룡스님과 은사스님 밑에서 교육받다
행자 때에는 금룡(金龍)스님을 일 년 동안 시봉하였는데, 그 시기에는 잠이 유독 많아서 노스님의 걱정을 자주 들었다. 스님은 죄송한 마음에 잠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스님의 은사스님은 매섭기 그지없을 정도로 엄격 하신 분이었다. 염불이란 염불은 모두 외우게 하셨고, 항시 염불을 마음에 품고 잊지 말라면서 매일 도량석과 쇳송을 30분씩 하도록 하셨다. 또 예불은 향수해례(화엄의 셰계인 연화장엄세계에 계시는 불보살과 조사들의 명호를 부르며 15배의 절을 하여 예경을 올리는 의식) 및 사성례(극락세계에 있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일체청정대해중보살님께 예를 올리는 종교의례)를 포함하여 1시간씩 하도록 하셨다. 이러한 출가 초기의 난행고행(難行苦行)은 훗날 스님의 사교입선 행각의 발판이 되어 구도 정진의 시작을 굳건히 다져주는 반석이 되었다.
스님은 1967년 16세 때 소림사에서 정철우 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이후 10년 뒤인 1977년에 통도사에서 일타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다.
사교입선(捨敎入禪)[1]
1972년 동학사에서 사집을 수료하였으며, 1977년 26세에는 운문사 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동학사 사집반 때는 『서장』과 『선요』를 접하면서 선에 대한 환희심이 일어나 발심을 하게 되었다. 결국 팔만대장경 안의 모든 가르침이 한 가지로 마음 찾는 공부가 아니겠냐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사교입선(捨敎入禪) 후에 참선을 하겠다는 심지를 세웠다.
일현스님은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교입선에 들어갔다. 해인사에서 2년 안거를 시작한 후 석남사에서 1년을 안거하였고, 고삐를 늦출 겨를도 없이 1978년에는 대원사에서 안거를, 1980년에는 세등선원에서 동안거를, 그리고 범어사 대성암에서 2년 안거를 성만하였다.
이후 불영사·경주 흥륜사 3철, 용인 화운사·상주 용흥사·오대산 지장암·동화사 부도암에서 3철을 나고, 내원암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였다.
스님은 선방에서의 공부가 기대하는 대로 쉬이 이루어지지는 않을지라도 수행자에게 선(禪) 공부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므로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가 지켜 행할 것을 권장한다. 또한 발심이 안 될 때는 선지식이나 조사 어록을 보면서 신심을 고취시켜 끝없이 정진하는 자세를 잃지 말기를, 또한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며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2004년 일현스님은 소림사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부산 소림사
소림사(少林寺)는 1913년 승려 송영(松永)이 창건하였으며, 해방 직후인 1945년 비구니 정금광(鄭金光)이 인수하였다. 1948년 순 한국식 불단으로 개조하여 가람을 수호하며 포교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50년 음력 2월 15일 저녁에 화엄 산림(華嚴山林) 법회를 열어 설법을 하던 중 방광(放光)을 하여 인근 소방서에서 소림사에 불이 난 줄 알고 소방차가 출동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 후 1995년 승려 정일(淨日)이 7년간의 불사 끝에 무량수전을 완공하였다.
소림사는 부산 지역의 지도적인 재가 불자를 양성한 대표적인 사찰로 꼽힌다. 소림사는 전통적인 신행 도량이다. 뿐만 아니라 1970~1980년 대불련 등 부산 지역 내에 있는 대중 신행 단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소림사를 대표하는 것은 60여 년간 지속해 오고 있는 산림 법회이다. 승려인 해운(海雲)과 정일의 원력으로 대덕 큰 스님들과 함께 하는 법화 산림 법회, 열반 산림 법회, 참회 산림 법회 등의 대법회를 끊임없이 개최하였다. 역대 고승들의 법문과 회주 정일의 대중 기도는 무척 유명하다.
또한 소림사는 부산 대중 불교의 산실과 같은 곳이다. 부산불교신도회, 거사림회 등이 소림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초 대부분의 사찰들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학생회 등을 사찰 내부에 두기를 꺼려할 때 과감하게 공간을 10년 넘게 제공한 곳이 바로 소림사이다.
소림사에서는 법회와 기도 등을 행하고 있다. 법회는 청년 법회, 대학생 법회, 어린이 법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동문 법회, 일요 법회, 부경대학교 불교 동문 법회 등이 있고, 연중 기도로는 정초 신중 기도, 참회 산림 법회, 자비 도량 참법 기도, 백중 기도, 관음 백일기도, 아미타 백일기도, 만년 위패 봉안 제자 천도재 등이 있다.
소림사의 전각은 무량수전과 대웅전이 있다. 무량수전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상과 좌우에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다. 무량수전 내에는 신중단, 칠성단, 독성단, 산신단 등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상과 관세음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지장보살상, 홍법대사상, 부동명왕상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 336~339.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379.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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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현(一玄)스님 | 본항목 | 일현스님(一玄, 1952~) | 一玄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일현스님(一玄,_1952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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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현(一玄)스님 | 계민(戒珉)문중 | ~의 일원이다 |
일현(一玄)스님 | 해운(海雲)스님 | ~의 제자이다 |
일현(一玄)스님 | 부산 소림사 | ~에서 출가하다 |
일현(一玄)스님 | 철우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일현(一玄)스님 | 일타(日陀)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지도
- 소림사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974-2)
주석
- ↑ 불교의 이치나 원리에 대한 일정한 연구를 다 마치고 전적으로 선 수행에 들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