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지훈스님(志訓, 1947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9월 18일 (수) 07:13 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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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지훈(志訓)스님은 수행에 전념하고 대한불교 조계종 제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7 경북 청도 출생
1964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서 법인(法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5 부산 연화사에서 무불(無佛)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6~1970 동학사 강원 졸업
1969 해인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5 진주 대원사 하안거 성만
1979~1983 정릉 청련선원 주석
1983 동국대학교 선학과 졸업
1984~1987 충청도 귀룡사 토굴에서 수행(3년간)
1987~1990 서울 혜원사 총무
1991 부산 금정구 보덕사 중창 불사(은사스님 도와서 보덕사 불사)
1991~2001 보덕사 총무 역임
1995~1998 대한불교 조계종 제11대 종회의원
2004~ 부산 금정구 보덕사 주석
문중 두옥문중(斗玉)
수행지침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성실, 근면
생활신조 신심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항상 재신심, 재발심하라.
취미 등산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도영(道瑛)·자선(慈善)·수암(守岩)·휴담(休潭)·범견(梵見)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경윤(5)→혜원(慧圓, 6)→광호(光毫, 7)법인(法印, 8)지훈(志訓, 9)→도영(道暎, 10), 자선(慈善, 10), 수암(守岩, 10), 휴담(休潭, 10), 범견(梵見, 10)

활동 및 공헌

출가

[법인스님 육순 기념일. 앞줄 왼쪽부터 보은, 법인, 성각, 법능, 진우스님 뒷줄 왼쪽부타 상현, 현경, 지훈, 지형, 지언, 선덕, 지명, 도림, 상일스님 ]
사진 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하) p.241
[보덕사 대웅전]
사진 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하) p.240

부산 보덕사에서 정진 중인 지훈(志訓)스님은 1947년 1월 19일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며, 이름은 김명순이다. 1964년 17세 되던 해에 스님은 청도 운문사 나한님(나반존자)이 계신 사리암에 우연히 가보게 되었는데, 그곳에 계신 부처님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만 집으로 가자고 재촉을 하셨지만 스님은 안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버티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3가지 조건을 이행한다면 스님 생활을 허락하겠다고 하셨다.


      첫째, 자신이 선택한 이상 스님 노릇을 끝까지 할 것.
      둘째, 가문에 대한 책임을 잊지 말 것.
      셋째, 부모에 대한 책임을 잊지 말 것.

아버지는 반드시 이 세 가지를 지키라고 하고는 산을 내려가셨다. 곧이어 스님은 힘든 행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새벽 두시 반에 일어나 찬바람을 헤치고 정진할 때면 여우 울음소리와 밀려오는 졸음을 극복하기가 무엇보다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채찍이 되어 참고 견디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자 비로소 구도의 길을 걷는 출가자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은 1964년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서 법인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1965년 부산 연화사에서 무불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약인욕요지(若人慾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약 사람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근원을 꿰뚫어 볼지니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것이 마음으로 지어졌음이라!!

강원 생활

동학사 강원 생활을 할 때는 사찰의 전통 놀이인 성불도나 윷놀이를 하는 것까지도 대중을 위해서 함께 즐거워하였다. 또한 대중 울력 등 힘든 일에 동참할 때는 자신을 낮추며 열심히 대중과 화합하였다.

스님의 강원 재학 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강원을 지을 당시 법당 옆 요사채에는 윗반 스님들이 거처하면서 공부를 하고 아랫반들은 미타암에 머물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 스님은 치문반이었는데, 어느 날 화엄반 스님들이 다락에 팥죽을 몰래 숨겨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뜩이나 배가 고프던 차에 이 소식을 들은 스님과 도반들은 팥죽을 훔쳐 먹기 위해 화엄반 스님들 눈을 피해 다락에 몰래 올라갔다. 정신없이 한참 팥죽 옹심이를 꺼내 먹다 보니 얼굴에도 팥죽이 묻어 서로를 바라보며 웃다가 들키는 바람에 108배 참회를 하였다. 당시 선배 스님들은 바다와 같이 너른 이해심과 자비심으로 후배들을 보살펴주어서 지금까지도 그때의 선후배 사랑이 가슴에 아련이 남아 있다고 한다.

스님은 먹물들인 승복과 스님의 모습이 너무 멋있지만, 아무에게나 스님이 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확고한 신심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모든 것을 인내하며 새롭게 출발하려는 각오가 서면, 그때에는 스님이 되라고 권한다. 서울 혜원사 총무, 부산 보덕사 총무, 대한불교 조계종 제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한 지훈스님은 2004년 부산 보덕사에 주석하고 있다.

수계제자로는 도영(道瑛)·자선(慈善)·수암(守岩)·휴담(休潭)·범견(梵見)스님 등이 있다.

부산 보덕사

[부산 보덕사]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한국불교사진연구소’https://blog.naver.com/w5065/40177566972

조계총림 순천 송광사 말사인 보덕사는 1970년대 작은 암자로 시작했다. 청풍납자이자 비구니 금강계단의 초대 존증아사리 광호스님과 제자 법인스님이 터를 잡으면서 도량의 면모를 갖추었다. 작은 법당과 요사채 한 채가 전부였다. 여기에 무상선원을 개설하고 비구니 선원과 강원을 시작했다. 도심이 발전하면서 산 아래에 있던 민가가 점점 올라왔다. 도량주변이 번잡해지고 더 이상 선원과 강원에서 정진하기가 어렵게 됐다. 광호스님이 청암사에 비구니 강원을 개설해 보덕사 강원을 옮겼다. 청암사비구니승가대학의 시원이 바로 보덕사 강원인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보덕사는 도심사찰로 대중을 교화하는 도량이 되었다. 광호스님의 상좌 법인스님은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청도 사리암에서 기도 잘하는 스님이었다. 스님의 염 불소리는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청아했다. 부산 인근에서 스님의 염불소리를 듣고자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법인스님이 보덕사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스님은 운문산을 내려올 때 지장보살 석상을 모시고 왔다. 일념으로 기도하고 정진했다. 기도의 힘이 쌓이면서 불사를 시작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자 법당에 비가 새고 요사채 생활도 힘들었던 것이다. 1990년에 시작한 불사가 무려 10여 년이 흘러 2002년 회향했다. 대작불사였다.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 외 7포 내 11포로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비롯해 후불탱화도 모두 나무로 조성했다. 나무가 주는 온화함으로 법당에서 기도하는 이들의 마음도 후덕해진다.
불사가 한창일 때 주지 현경스님은 강원생이었다. 대중들이 눈만 뜨면 일을 해야 했다. 일명 ‘샛별보기운동’이었다. 전날 법당에 들어갈 나무를 켠 톱밥을 자루에 담아 치웠다. 새벽 6시까지 작업장을 깨끗이 청소하면 아침 7시에 대목장 할아버지가 올라왔다. 3~4개월이 지나자 대목장이 말했다. “내 생에 남을 작품하나 남기고 싶으니 법당을 크게 키웁시다.” 대중들이 올곧게 살고 스님들이 직접 작업장을 청소하는 모습에 환희심이 났던 것이었다. 오늘의 대웅전이 웅장하면서도 당당하게 자리하게 된 뒷이야기이다.
광호스님과 법인스님은 오래전에 열반에 들었다. 그러나 보덕사에는 스님들의 수행과 땀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무엇보다 본사인 조계총림 송광사에 대한 정성은 부처님 모시듯 했다. 보덕사 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공부에 게으르지 않다. 불사가 한창일 때도 매달 큰스님들을 초청해 법문을 들었다. 조계총림 초대방장 구산스님을 비롯해 일타스님, 혜인스님, 보성스님, 혜국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이 보덕사에서 법을 설했다.

[출처] 승보종찰 송광사(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onggwang01/221385617550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238~241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82.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260, 261.
  • 네이버 블로그, 조계총림말사기행 18-10/ 부산 보덕사 (2018년) https://blog.naver.com/songgwang01/221385617550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지훈(志訓)스님 본항목 지훈스님(志訓, 1947~) 志訓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지훈스님(志訓,_1947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지훈스님(志訓) 두옥문중(斗玉) ~의 일원이다
지훈스님(志訓) 법인스님(法印) ~의 수계제자이다
지훈스님(志訓) 운문사 사리암 ~에서 출가하다
지훈스님(志訓) 무불스님(無佛)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지훈스님(志訓)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지훈스님(志訓) 공주 동학사 ~에서 수학하다 강원
지훈스님(志訓)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을(를) 졸업하다 선학과
지훈스님(志訓) 부산 보덕사 ~을(를) 중창하다
지훈스님(志訓)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중앙종회의원
지훈스님(志訓) 부산 보덕사 ~에서 주석하다
지훈스님(志訓) 안거 ~을(를) 성만하다 산청 대원사 등

지도

  • 보덕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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