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스님(敬道, 1941生, 비구니)
경도(敬道)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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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경도(敬道) |
법호 | 지암(志岩) |
속명 | 정동례(鄭東禮) |
출생 | 1941.03.21. |
출가 | 1957년 |
입적 | |
사찰 | 보문동 보문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3가 168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경도(敬道)스님은 신광사에서 혜안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늘 정진과 기도로 일관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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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 전남 나주 출생 |
1957 | 광주 신광사에서 혜안(慧眼)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58 | 해인사 삼선암에서 혜안스님을 모시고 수행 |
1958 | 목포 정혜사에서 사미니계 수지 |
1961 | 동학사 강원에 입학 |
1967 | 동학사 강원 졸업 |
1967~1974 | 공주 영은사 및 대구에서 붓글씨와 수행 |
198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88~1994 | 서울 보문사에서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검정고시로 졸업 |
1974~2004 | 서울 보문사 선불장 주석 |
문중 | 삼현(三賢)문중 |
수행지침 | 늘 정진하고 공부하자.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일진(壹珍)·중현(中玹)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지종(智鍾, 6)→성학(性學, 7)→정행(淨行, 8)→혜안(慧眼, 9)→경도(敬道, 10)→일진(壹珍, 11), 중현(中玹, 11) |
활동 및 공헌
출가
지암(志岩) 경도(敬道)스님은 1941년 3월 27일 전남 나주 영산포에서 부친 정인철과 모친 홍씨 사이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하동이며, 이름은 정동례이다. 유복녀로 태어나신 스님은 세 살 위의 오빠와 여덟 살 위인 언니가 있었는데, 스님이 3세 되시던 해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언니 오빠와 함께 막내 작은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작은 어머니가 스님이 15세 되던 해에 돌아가시고, 새 작은 어머니가 들어오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작은 어머니의 동생이 당시 스님이었다.
절에서 생활을 하면 스님들이 마치 형제나 부모와 같이 보살펴주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7세 되던 해인 1957년 광주 신광사로 출가를 하였다. 비로소 무겁디 무거운 속세와의 인연 끊고 부처님의 제자로 혜명을 잇게 되었다.
경도스님은 출가 후 1년 동안 신광사에서 생활을 하고 노스님께서 해인사 삼선암에 계신 혜안(慧眼)스님을 은사로 정해주셔서 해인사에서 정진하다가 다음 해인 1958년, 목포 정혜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동학사 강원에서 수학
해인사에서 염불을 익히고 다른 것들을 배우면서 3년을 보낸 후 스님은 21세 되던 1961년 동학사 강원에 입하여 67년 27세에 졸업하였다.
강원에서는 『초발심자경문』을 상반스님에게 처음 배웠고 『치문』은 혜성스님, 사집부터 『화엄경』까지는 강사스님에게 배웠다. 당시 동학사에서는 대처승이 강주로 계셨다.
정행 노스님께서는 “다른 사람 학교 간다고 따라 흔들리지 말고 강원 공부를 잘하라.”는 말씀을 하시며 강원 생활을 격려해 주셨다. 경도스님은 강원 졸업 후 공주 영은사에서 5년 정도 머물며 수행하였고, 틈틈이 붓글씨를 배웠다.
보문사 선불장에서 주석
스님은 1974년 34세에 서울 보문사 선불장으로 수행처로 옮긴 이 후 현재까지 기도로써 수행 방법을 삼아 정진하고 있다. 한편 틈틈이 배운 붓글씨로 1999년 국전에서 입선하였고 그 외에도 많은 입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낸 탓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스님은 54세라는 늦은 나이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의지의 소유자이다. 경도스님은 서울 보문사 선불장에 주석하며 끊임없이 천일기도를 계속하여 기도로써 정진을 삼는 강인한 정진력으로 수행하고 있다.
수계 제자로는일진(壹珍)·중현(中玹)스님이 있다.
보문사
대한불교보문종의 총본산이다. 1115년(예종 10)에 담진(曇眞)이 비구니의 수련장으로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조그만 암자로, 탑골에 있었으므로 탑골 승방이라 하였다. 그 뒤 1692년(숙종 18)에 대웅전을 개축하는 등 수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45년부터 비구니 은영(恩榮)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원래는 조계종 산하의 소속 사찰이었으나 1972년 독립하여 보문종을 창종하고 보문종의 본산이 되었는데, 현재 그 규모면에서 굴지의 거찰(巨刹)이 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석굴암·호지문·선불장(選佛場)·보광전(普光殿)·산령각(山靈閣)·석굴암노전(石窟庵爐殿)·삼성각(三聖閣)·별당·요사채, 한의원 및 특별양로원이 있는 시자원(施慈園)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굴암은 은영스님이 그 분야의 권위자를 모아 준공위원회를 구성하여 조각과 설계를 하였고, 공사비만 1억을 들여 1972년 부처님 오신 날에 착공하였으며 3년 6개월의 역사 끝에 점안식을 가졌다. 경주 석굴암과 똑같은 규모로 만들었으나, 구성면에서 볼 때 경주 석굴암은 정면이 1문인 데 비하여 이곳은 3문이며, 실내 벽을 이중으로 만들고 실내 천장으로 공기가 유통되게 하였다. 단지, 경주 석굴암의 전실에 있는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이곳에서는 생략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오래된 문화재는 없으나 석굴암 앞의 높은 단 위에 세워진 팔각구층석탑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팔각구층석탑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탑 안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석가여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은 세계 유일의 비구니들만으로 구성된 보문종의 총본산으로서 언제나 150명이 넘는 비구니들이 수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도의 분위기가 특히 엄숙한 도량이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487~489.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178~179, 379, 382.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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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敬道)스님 | 본항목 | 경도스님(敬道, 1941~) | 敬道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경도스님(敬道,_1941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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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스님(敬道) | 삼현문중(三賢) | ~의 일원이다 | |
경도스님(敬道) | 혜안스님(慧眼) | ~의 수계제자이다 | |
경도스님(敬道) | 광주 신광사 | ~에서 출가하다 | |
경도스님(敬道) | 석암스님(昔巖)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지도
- 보문동 보문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3가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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