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일스님(淨日, 1934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9월 17일 (화) 20:55 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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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일(淨日)스님은 소림선원을 건립하여 포교와 불교인재 양성에 노력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4 경남 창원 출생
1952 부산 소림사에서 금룡(金龍, 金光)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2 금룡(金龍, 金光)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8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2 소림사 주지
1977 청년 불자포교 및 소림선원 건립(160평), 화엄산림 10년, 법화산림 10년, 열반산림 10년, 참회산림 23회
2000 인천 용화사, 승가사 등 제방 선원 안거
2014.2.17. 입적(법납 62세 세수 81세)
문중 계민(戒珉)문중
수행지침 심심, 화합, 포교
상훈 불심 홉법원 홍법대상 수상(1994년)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향묵·혜전·호성·문서·인선·인순·원영·종우·진선·성현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봉전(奉典, 8)→장홍(壯弘, 9)→선덕(善德, 10)→금룡(金龍, 11)정일(淨日, 12)→혜전(慧典, 13), 호성(湖星, 13), 문선(文瑄, 13), 원영(原咏, 13), 종우(宗雨, 13)

활동 및 공헌

출가

[소림사 무량수전 지장보살]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237
[정일스님]사진출처: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80705000219

정일(淨日)스님은 1934년 1월 16일 경남 창원 무성리에서 아버지 이규석과 어머니 청주 한씨 한복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이막순이다.

스님이 16세 되던 1949년, 안타깝게도 몇 달 간격으로 양친이 모두 돌아가셔서 졸지에 고아가 되고 말았다. 19세인 1952년에 속가 사촌언니 영춘스님(금룡(금광)스님의 둘째 상좌, 통도사 보타암 전 주지스님)에게 '삭발하여 수행하면 도를 이룬다.'는 말을 듣고 이에 발심하여 보타암으로 따라 나섰다.

보타암으로 가던 도중 영춘스님의 은사스님이 계신 부산 소림사에 들러 인사를 드렸다. "동생인데 삭발시키고자 보타암으로 가는 도중에 들렀습니다." "보타암으로 데려가지 말고 소림사에 살게 해라." 스님의 한 마디에 소림사에 남아 금룡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25세 되던 1958년에 동산화상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부산 소림사 주지를 맡게 된 인연

은사스님이신 금룡(금광)스님은 웬일인지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여 강원에 갈 수가 없었다. 일하기가 어렵고 힘든 것은 누구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일스님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도량석을 돌고 법당 청소를 한 후 새벽 예불을 했다.

당시 은사스님은 반드시 새벽 예불 전 법당을 청소하도록 시켰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저녁이 되면 스님이 잠드실 때까지 옆에서 시봉을 해야만 했다. “그만 가서 자거라.” 하는 은사스님의 말이 없으면 결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은사스님 시봉을 하며 선방을 다녔는데, 선방에서는 늘 부전을 보며 기도를 했다. 정일스님은 목탁을 잡으면 보통 6시간 내지 8시간씩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 염불소리를 듣고 큰방 스님네들이 환희심을 내며 '이 자리가 극락이구나!' 라고 말할 정도로 목소리가 낭랑하고 목청이 좋았다.

또한 정일스님은 금룡(금광)스님이 정화 개혁 후 운문사 초대 주지를 맡았을 때 같이 운문사에 들어가 은사스님을 시봉했다.

정일스님은 은사스님이 입적하시기 보름 전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은사스님이 열쇠 한 꾸러미를 주셨다. “스님, 이게 뭐예요?" “응, 광을 열어봐!” 스님이 광을 열어 보니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스님! 뭐가 가득 들었네요!” 스님은 은사스님께 열쇠 꾸러미를 돌려드렸다. 그랬더니 은사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응, 이것 네가 가져라.” “제가 이것을 뭐하려구요. 저는 이런 것 필요 없어요.” “아니다. 이제 이것은 네 것이야!”

그리고 몇 년 후인 1972년 스님은 소림사 주지 소임을 맡게 되었다.

※ 註 은사이자 주지인 금룡(금광)스님이 전주 정혜사로 떠나고 1966년 해운스님이 주지소임을 맡았으나 1971년에 입적함에 따라 1972년에 정일스님이 주지소임을 맡게 됨

어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스님은 “주지 안 할라꼬 몇 번이나 도망갔는데 결국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형(해운스님)이 맡고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사형들이 '네가 맡아라. 우리가 도와줄게' 해서 마지못해 맡게 된 것이지요. 절집에서 주지가 할 일은 아무나 못합니다. 저로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지요. 그런데도 어떡합니까.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지요.” 라고 그 때의 심정을 밝혔다. (출처 : 김은영의 SPACE,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marie2005/15104155 )

소림선원 건립과 포교불사

30여 년 전인 1970년대에는 부산 초량동에 큰 건물이나 공간이 없어서 크고 작은 행사를 소림사에서 많이 했다. 특히 경로잔치를 열어 주민들의 신심을 돋웠고, 어린이법회, 중고등학생법회, 대학생법회, 청년법회, 거사림법회 등 평생을 포교에 정성을 쏟았다. 또한 연꽃모임, 관음선행회 등 일반 불자들도 소림사에서 법회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소림사는 화엄산림 10년, 법화산림 10년, 열반산림 10년에 이어 2004년 현재 23번째 참회산림을 했다. 이렇게 대법회를 열어 전국 불자들의 신심을 일깨웠고, 일찍이 소림선원을 건립하여 시민선방으로서 일반 불자들이 정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각 40평씩 총 160평의 소림회관을 건립하여 모든 법회를 활성화시켰고, 독서실을 만들어 인근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이런 공로로 스님은 조계종 제4대 박기종 총무원장으로부터 표창패를 받았고, 불교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았다. 스님은 소림사가 부산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포교도량으로서 최적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넓은 포교와 기도정진 하고자 하는 불자들을 위해 수년 째 불사를 해오고 있다. “정성을 다해 열심히 하면 부처님은 꼭 대가를 줍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서 기와 한 장이라도 불사에 동참해준 모든 분들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동안의 어려움을 어떻게 몇 자의 글로써 다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스님은 지금도 '평생 동안 부처님 궁궐 잘 지어 남은 삶을 회향하겠다.'는 원력으로 꿋꿋이 포교와 기도로 정진 중이다. 가부좌를 단정히 하고 담담히 말씀을 이어가는 스님의 모습은 후학들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한 참다운 스승이다.

입적

정일스님은 2014년 2월 14일 법납 62세 세수 81세로 소림사에서 입적했다.

소림스님의 수계제자로는 향묵·혜전·호성·문서·인선·인순·원영·종우·진선·성현스님이 있다.

부산 소림사

[소림사 전경] 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 https://m.blog.naver.com/010iooi/221271988916

소림사(少林寺)는 1913년 승려 송영(松永)이 창건하였으며, 해방 직후인 1945년 비구니 정금광(鄭金光)이 인수하였다. 1948년 순 한국식 불단으로 개조하여 가람을 수호하며 포교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50년 음력 2월 15일 저녁에 화엄 산림(華嚴山林) 법회를 열어 설법을 하던 중 방광(放光)을 하여 인근 소방서에서 소림사에 불이 난 줄 알고 소방차가 출동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 후 1995년 승려 정일(淨日)이 7년간의 불사 끝에 무량수전을 완공하였다.

소림사는 부산 지역의 지도적인 재가 불자를 양성한 대표적인 사찰로 꼽힌다. 소림사는 전통적인 신행 도량이다. 뿐만 아니라 1970~1980년 대불련 등 부산 지역 내에 있는 대중 신행 단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소림사를 대표하는 것은 60여 년간 지속해 오고 있는 산림 법회이다. 승려인 해운(海雲)과 정일의 원력으로 대덕 큰 스님들과 함께 하는 법화 산림 법회, 열반 산림 법회, 참회 산림 법회 등의 대법회를 끊임없이 개최하였다. 역대 고승들의 법문과 회주 정일의 대중 기도는 무척 유명하다.

또한 소림사는 부산 대중 불교의 산실과 같은 곳이다. 부산불교신도회, 거사림회 등이 소림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초 대부분의 사찰들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학생회 등을 사찰 내부에 두기를 꺼려할 때 과감하게 공간을 10년 넘게 제공한 곳이 바로 소림사이다.

소림사에서는 법회와 기도 등을 행하고 있다. 법회는 청년 법회, 대학생 법회, 어린이 법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동문 법회, 일요 법회, 부경대학교 불교 동문 법회 등이 있고, 연중 기도로는 정초 신중 기도, 참회 산림 법회, 자비 도량 참법 기도, 백중 기도, 관음 백일기도, 아미타 백일기도, 만년 위패 봉안 제자 천도재 등이 있다.

소림사의 전각은 무량수전과 대웅전이 있다. 무량수전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상과 좌우에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다. 무량수전 내에는 신중단, 칠성단, 독성단, 산신단 등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상과 관세음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지장보살상, 홍법대사상, 부동명왕상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일(淨日)스님 본항목 정일스님(淨日, 1934~2014) 淨日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일스님(淨日,_1934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정일스님(淨日)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정일스님(淨日) 금룡스님(金龍) ~의 수계제자이다
정일스님(淨日) 부산 소림사 ~에서 출가하다
정일스님(淨日) 금룡스님(金龍)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정일스님(淨日) 동산스님(東山)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정일스님(淨日) 부산 소림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정일스님(淨日) 안거 ~을(를) 성만하다 인천 용화사(주안동), 서울 승가사(구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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