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전스님(慧田, 1929生, 비구니)
혜전(慧田)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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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혜전(慧田) |
법호 | 수미(須彌) |
속명 | 윤영매(尹英梅) |
출생 | 1929.11.01. |
출가 | 1950년 |
입적 | 2001.10월 (세수73세, 법랍52세) |
사찰 | 팔성사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 1267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혜전(慧田) 스님은 평생을 무소유와 수행으로 일관하신 대한민국의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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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 전남 해남 출생 |
1950 | 다보사에서 법공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58 | 용화사에서 전강(田岡)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 수지 | |
1965 | 팔성사 주지 취임 |
2001 | 2001.10월 팔성사에서 (세수 75, 법납 48세) 입적(2001.10.15에 다비식) |
문중 | 백양사(白羊寺)문중 |
수행지침 | 허공이 여래의 불성이요, 세상이 여래의 불세계라. 중생이 여래의 불종자요, 중생의 생각이 다 부처로다. |
생활신조 | 근면, 절약, 간소 |
취미 | 자연 산새 소리 모음. 허공 쳐다보기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법륜(法倫) |
문중계보 | 법공(法空)→혜전(慧田)→법륜(法輪) |
활동 및 공헌
출생
수미(須彌) 혜전(慧田)스님은 1929년 11월 1일 전남 해남군 화원면 화원리에서 아버지 윤양민과 어머니 김소덕 사이의 4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스님은 태몽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부모님의 꿈에, 가사와 장삼을 입으신 스님이 걸망을 지고 대문 밖에 서 있다가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멈추었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께 여쭈니 '태몽으로 미루어 아들이 분명하며, 결코 평범하지 않은 큰 인물을 낳겠다.' 고 하셨다. 이에 부모님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런데 정작 낳고 보니 딸이었고, 게다가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는 아기였다.
평범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당시 부친은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마을에는 윤 선생이 벙어리 딸을 낳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스님은 세 살 즈음부터 가족들이 잠든 밤이면 혼자 반가부좌를 한 채 구석진 방안에 앉아서 참선을 하였고, 서너 살 무렵에는 허공을 보거나 산을 보며 자연과 교감하였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에는 '허공이 어느 때에 생기고 없어지는가?', '사람은 어느 때에 태어났다가 가는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동생들이 곁에서 떠들자 처음으로 '시끄럽다.'는 말을 하였다.
또한 동네의 임산부를 만나면 뱃속에 든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있었는데, 스님은 자신뿐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것으로만 여겨 그것이 신통한 능력인 줄 몰랐다고 한다. 한편 스님의 부모님은 어린 아이가 밥을 먹으려 들지 않고 옷도 안 입으려 하여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님은 어느덧 여덟 살이 되었고,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에 나간지 3일 째 되던 날, 같은 반 아이가 잘못한 벌로 반 전체 아이들이 손바닥을 맞게 되었다. 마침 체벌을 한 선생님이 아버지였는데, 스님은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다는 것에 무척 속이 상해서 다음 날부터 등교를 하지 않았다. 평범하지 않은 딸아이의 결정에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비범한 딸아이의 운명이 염려되어 사주를 보러 갔다. “전생의 스님이 탄생해서 세상에서는 살지 못하고 절에 가서 스님이 될 거요.” 사주를 봐준 이의 말을 전해 들은 스님은 그 길로 절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가 어머니에게 붙잡혀 되돌아 왔다. 그러나 이내 다시 집을 나갔고, 광주의 사촌 외숙모 집에서 잠시 살았다. 그러다가 광주 무등산에 있는 천문사의 화주보살을 알게 되어 그곳으로 떠났다. 천문사에서 공양을 얻어먹고 나오려고 하는데 보살 세 분이 스님을 잡고는 놓아주지를 않더니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을 뵙고 가라고 하였다. 스님은 대궐처럼 큰 절이 아닌 초가집 같은 절이라 내키지가 않았고 법당도 보고 싶지 않았으나 보살들의 손에 끌려 억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잠깐 보기만 하고 그냥 돌아서 나오려던 스님은 눈을 들어 잠깐 부처님을 보았다. 순간 뱃속에서 불기운이 돌더니 머리 끝까지 올라와 허공으로 밝은 불이 확 터졌다. 스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서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부처님을 안고 너무나 반갑게 '왜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냐. 하며 울고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후 스님은 '나는 세세생생 부처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그곳에서 3년 정도 머물면서 청소를 하고 도량을 수리하며 살았다. 부처님과 해후를 하고 3년간은 화식을 하지 않고 생식을 하며 기도를 하였다. 그래도 절집 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몸이 늘 가벼웠다.
출가
6·25전쟁 당시 나주 영산포로 간 스님은 단식을 한다는 이유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다보사 에서 삭발을 하고 법공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한 달도 채 못 되어 은사스님은 입적을 하시고 말았다. 그 뒤 스님은 광주 신광사에서 몇 년을 머물다가 담양 보광사에서 행자로서 첫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용맹정진을 시작한 첫날, 새벽 3시에 기도를 마치고 선방의 큰방에서 죽비를 치고 10분쯤 지난 때였다. 허공에서 '광명화불' 이라는 글이 왼손에 잡혔다. 그리고 곧 몸이 허공에 날아올라 허공을 안았다. 그 뒤 스님에게는 용맹정진이 특별할 때만 하는 게 아니라 항상 함께하는 것이 되었다. 스님은 지금도 여전히 용맹정진으로 살며, 스스로에게 하루 3시간 정도의 수면만 허용하고 있다.
스님은 1958년 나이 30세에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전강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환희심이 난 혜전스님은 큰스님 밑에서 일생을 수행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승낙을 얻었다. 그 뒤 주위의 권유로 화두를 받았으나 일 년 내내 화두도 들리지 않고 관세음보살염도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예불 전에 쇳송[1]을 칠 때였다.
천상천하무여불 (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 (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 (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 (一切無有如佛者)
스님은 이렇게 염송을 하던 중에 문득 '허공 천하에 내가 스승인데 누구를 스승으로 하겠느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스님은 관세음보살만 염하고 있다.
팔성사에 주석하다
1965년 스님의 나이 37세에 현재의 팔성사에 와서 정진을 하던 중 꿈에 큰 비구스님이 대가사를 수한 채 나타나서 “스님은 5억 1천 년 전에 결정한 원력이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 말은 5억 년 전생부터 세상을 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는 원력이 있었다는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스님은 팔성사에서 도량석을 할 때에 전생을 보았다. 스님은 전생에 팔공산의 문수암에서 비구로 살았는데, 읍내로 다니면서 기생 3명과 친분을 쌓은 과보로 금생에는 읍내 출입을 하지 않는 비구니의 몸을 받았다고 한다.
신기한 경험을 하다
무주 백련사에서 공부할 때에는 큰 보살이 나타나 허허 웃으면서 “키는 작아도 광명이 밝아서 큰일 하겠다. 맑은 물을 많이 먹어야 된다.”하시며 감로수 두 병을(빨간 것과 맑은 것) 가지고 바닷물을 떠오셨다. 빨간병은 머리에서 3미터쯤 위쪽에 떠있고, 맑은 병에 든 물을 먹여주셨다. 그 물을 먹고 나자 허공 위에 연꽃이 맑게 웃고 있었다. 스님은 몸을 위로 움직여 허공을 날아 연꽃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키 큰 보살이 옆에서 웃으며 “스님, 아직 멀었으니까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한번은 공부 중에, 바다 가운데 서 있는 탑이 있어서 올라타니 갑자기 스님의 몸이 5세 동자로 변하였다. 탑은 동자로 변한 스님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다. 공중에 떠있자니 ‘천상천하 모든 세상을 내가 다 제도할 수 있다.' 는 용기가 났다. 그리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천하를 다 고치겠다. 는 원력을 다시 한번 세웠다. 강원도 오대산의 적멸보궁에 있을 때의 일이다. 법륜스님과 같이 오대산에 들어서니 정신은 허공에 가 있고 몸은 보이지 않았다. 기도처에서는 환희심이 솟구쳐 올라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오직 '다음 생에 청정 비구가 되어 이 자리에 와서 세상을 제도하겠다.'는 간절한 생각만 가득했다.
3일 기도 후에 그곳을 떠날 시간이 되자 '내가 왜 여기서 돌아서야 하는가?' 하는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이곳에서만 살고 싶다.'는 마음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며 내려오던 스님은 잠깐 사이에 미끄러졌다. 순간 북쪽 바다 쪽 허공에 있는 바위산에 스님 자신이 동자가 되어 중간쯤 올라갔다. 그때 문득 7세 동자가 앞에 우뚝 서더니 “수미봉의 수미산에 올라가려면 너랑 나랑 같이 가자.”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보니 동자도 바위산도 아무 것도 없었다.
가끔 송담스님과 법담을 나누기도 하였던 스님은 입적 전까지 팔성사 뒤쪽의 자그마한 토굴에서 용맹정진을 하였으며, 새벽 예불 시간이면 언제나 변함없이 5분 전에 자리에 앉았다. 혜전스님은 평생 단 두 벌의 승복으로 살았는데, 여름과 겨울용이 아닌 춘추복 두벌뿐이었다. 바깥 출입을 전혀 하지 않았던 스님은 내생에는 세상 사람들을 바르게 이끄는 몸으로 나투기를 간절하게 기원하였다.
후학들에게는 '요즘 젊은 스님들은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살림을 늘리는 데 열중하지 말고 마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간절히 부탁하였다. 혜전스님은 2001년 팔성사에서 세수 73세, 법랍 52세로 입적하였다. 수계제자로는 법륜(法倫)스님이 있다.
법어(法語)
허공이 여래의 불덩어리요
세상이 여래의 불세계라
중생이 다 여래의 불종자요
중생의 생각이 다 부처라
불이 따로 없는 것이니 달리 찾을 것이 없도다.
허공 천하에 가득한 정신이 밝은 불성이요
내가 세상에 가장 크고서 내가 제일 무서운 것이라
세상의 모든 움직이는 것은 다 업이니
중생과 업이 하나 되어 움직임이 그것이라
업(밥 먹고 숨 쉬는 것) 따라 복 짓고 덕 지으며
지혜 또한 생기는 것이니라.
세상에 내가 가장 크고서 내가 제일 무서운 것이
세상에서 바른 일 하기 어려운 것이 그것이라
미워함도 내 마음이요
좋아함도 내 마음이니
다만 스스로가 알아야 할 일이라
자기만이 복과 덕과 지혜를 키우는 것이며
달리 다른 사람이 할 일이 아님이라
인생에는 짐승과 사람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은 돌고 도는 이치거늘
살려고 하는 짐승의 남의 살을 먹어서는
살과 피가 둔해져 밝은 지혜가 사라짐이라
목숨을 죽임으로 업장을 내가 받음이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세상에서
끝도 가도 공간도 없는 무한의 가운데,
한계가 없는 순간순간이 여래불임이라
나무아미타불
장수 팔성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백제 무왕 때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해감(解橄)이 창건하였으며, 해감과 그의 설법을 듣고 귀의한 7명의 제자를 기리기 위하여 팔공산이라는 산명을 붙이고 팔성사라 하였다.
이 때 팔성사를 중심으로 7명의 제자들이 각각 1개씩 암자를 세워 7개의 부속암자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원래의 팔성사는 폐허가 되고, 부속암자 중 하나가 현재의 팔성사가 되었으며, 7개 암자 중에서는 성불암(成佛庵)만이 현존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팔성사의 옛터에는 전성기의 웅장한 사찰 건물 초석이 남아 있고, 각 건물의 계단도 현존하여 10여 개의 큰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사찰 뒤쪽의 암석대(巖石臺) 상부에는 백제형식의 조각수법으로 축조된 사리탑(舍利塔)이 서 있었으나, 1973년 도굴꾼들이 사리탑을 넘어뜨리고 사리함에 들어 있던 사리와 보물 등을 가져갔다. 현재 이 탑은 상부 4층이 모두 암대 밑에 떨어져 있고, 탑신의 일부도 파괴되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8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년, p564
- 전북도민일보, 故 혜전스님 다비식(2001년)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1146
- 전북일보, 장수 팔성사 아미타불좌상, 도난 30년만에 봉안식 (2022년) https://www.jeolla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60166
- 정토를 그리며, 전북 장수 - 팔공산(八公山) 팔성사(八聖寺) https://blog.daum.net/1024511/7158593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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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전(慧田)스님 | 본항목 | 혜전스님(慧田, 1929~2001) | 慧田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혜전스님(慧田,_1929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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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전스님(慧田) | 백양사문중(白羊寺) | ~의 일원이다 | |
혜전스님(慧田) | 법공스님(法空) | ~의 수계제자이다 | |
혜전스님(慧田) | 나주 다보사 | ~에서 출가하다 | |
혜전스님(慧田) | 전강스님(田岡)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혜전스님(慧田) | 석암스님(昔巖)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혜전스님(慧田) | 장수 팔성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혜전스님(慧田) | 장수 팔성사 | ~을(를) 중창하다 |
지도
- 팔성사 :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 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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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예불 준비의 하나로, 종 따위를 치며 진언이나 법계를 외우는 일, 종송(鐘頌)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