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원스님(行願, 1927生, 비구니)
행원(行願)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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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행원(行願) |
법호 | |
속명 | 박정자(朴貞子) |
출생 | 1927.01.15. |
출가 | 1941년 |
입적 | 1980.06.02. (세수54세, 법랍40세) |
사찰 | 대원사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1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1948년10월19일 여수순천반란사건으로 폐허가 된 대원사 가람 복원불사를 은사 법일스님과 함께 1955년부터 시작하여 1980년까지 완성해서 온전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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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 충남 서산 출생 |
1941 | 경남 하동 쌍계사 법일(法一)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42 | 합천 해인사 고봉(高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48 | 예산 수덕사 견성암 안거 성만 1955 산청 대원사 총무 |
1961 | 해인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80 | 1980.6.2. 지리산 산청 대원사 총무 소임 중 입적(세수 54세, 법랍 40세) |
문중 | 계민문중(戒珉) |
수행지침 | 자신을 속이지 않는 중노릇을 하라.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묘혜(妙慧)·영호(榮浩)·영주(榮珠)·진전(眞典)·영운(榮云)·대경(大鏡)·대영(大瑛)·광오(光悟)·묘현(妙玄)·묘인(妙仁)·묘명(妙明)·현주(玄宙) 외 등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지부(志赴, 11)→주화(周和, 12)→문성(文成, 13)→법일(法一, 14)→행원(行願, 15)→묘혜(妙慧, 16), 영주(榮珠, 16), 영호(榮浩, 16), 진전(眞典, 16), 영운(暎芸, 16), 대경(大鏡, 16), 대영(大瑛, 16), 광오(光悟, 16), 묘현(妙玄, 16), 묘인(妙仁, 16), 묘명(妙明, 16), 현주(玄宙, 16) |
활동 및 공헌
출가
성옥 행원(行願)스님은 1927년 음력 6월 6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에서 아버지 태화 거사와 어머니 서안덕화 보살 사이의 3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이름은 박정자이다. 스님의 속가는 맏이인 오빠가 수덕사로 출가할 정도로 불심이 깊었으며, 스님도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그러나 어렸을 적 우연히 집에 들른 어느 스님의 수명이 짧다는 말에 어머니가 늘 속으로 걱정했다. 그러던 중 먼저 출가한 행원스님의 오빠스님에게 법문을 듣고 발심했고, 1941년 14세의 어린 나이로 쌍계사 국사암에서 법일스님의 맏상좌로 출가하게 되었다. 행원스님은 출가한 다음해인 1942년 2월 25일 해인사에서 고봉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고, 1961년 3월 16일 해인사에서 혜일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으니, 이때 스님의 나이 34세였다. 1948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수행정진을 한 스님은 성품이 곧고 진실해서 은사스님을 지성으로 섬기며, 약한 몸을 이끌고 오직 관음기도로 정진 수행했다.
가람복원
1955년 9월 5일, 여수·순천사건 때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채 방치된 지가 8년이 넘은 대원사 터에 은사 법일스님과 함께 들어가서 꾸준히 복구사업을 벌여 오늘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스님은 2년 만에 사리탑 옆에 조그마한 탑전을 지었다. 그 때 비구·대처승간의 치열한 분규로 촉발한 불교정화에 휩싸이게 되어 약 4년여의 소송 끝에 고등법원의 승소로 인정받았다. 은사인 법일스님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탁발을 다니셨고, 총무 소임을 맡고 있던 행원스님은 손발이 얼 정도로 오직 간절한 기도로써 불사를 도왔다. 그렇게 노력해서 1955년부터 시작한 불사가 1980년까지 사리전, 탑전, 대웅전, 천광전, 원통전, 산신각 등 17여 동 3백 20평에 이르는 불사를 완성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용화선원 송담스님은 세등선원 경신년(1980년) 하안거 반살림 법문에서 성옥 행원스님을 “우리와 같이 출가수행인으로서 일생 동안을 참선을 하고, 또 불사를 하고, 교화(敎化)를 위해서 애를 쓰고,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위해서 애를 쓰다가 너무 과로한 탓으로 해서 홀연히 이승을 하직(下直)을 했습니다.”하고 추모했다.
기도정진
스님의 기도 원력은 남다른 데가 있어서 적멸보궁마다 관음성지마다 백일기도를 4분 정근을 하면서 쉼 없이 했다.
스님이 기도 정진할 때면 종종 신기한 기적 같은 일이 나타나기도 했다. 산 정상에 위치한 남해 보리암에 가뭄이 들면 식수조차 모자라서 쩔쩔매곤 했는데 스님이 기도하러 갈 때면 이상하게 비가 와서 항상 물이 풍족했다고 한다. 이는 곧 간절함과 진실함이 우러나오는 지극한 신심은 폐허를 거룩한 성전으로, 물이 없는 곳에는 물이 솟아나게 하는 신령스러움으로 발현되었고, 가뭄이 든 곳에는 해갈을 가져오는 영험을 보였다.
입적
행원스님은 마지막 대웅전 기와 불사를 마무리하고 총무 소임 중인 1980년 6월 2일 저녁 공양을 들고 각단 예불을 모두 마 치고 목욕을 한 후 고요히 입적했다. 이때가 스님의 세수 54세, 법랍 40세였다.
수행지침
스님의 가르침은 특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상의 생활 속에서 대중에게 모범을 보였다. 평생 예불을 절대 빠뜨리지 않았던 스님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중노릇을 하라.'는 말씀을 자주 했다고한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나는 수행자' 라는 생각을 항상 잊지 말 것, 관 속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수행자의 본분을 잃지 말것, 큰소리 치지 말 것, 겸손하게 조심하며 살 것'을 당부했다.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518~521.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16.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349, 351.
- 송담스님1980년(경신년) 하안거 반살림(80.05.30.음) 법문오디오(세등선원No.28) https://chamsonbub.tistory.com/193#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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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원(行願)스님 | 본항목 | 행원스님(行願, 1948~1980 | 行願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행원스님(行願,_1927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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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원스님(行願) | 계민문중(戒珉) | ~의 일원이다 | |
행원스님(行願) | 법일스님(法一) | ~의 수계제자이다 | |
행원스님(行願) | 쌍계사 국사암 | ~에서 출가하다 | |
행원스님(行願) | 고봉스님(高峰)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행원스님(行願) | 동산스님(東山)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행원스님(行願) | 산청(진주) 대원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총무 |
행원스님(行願)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예산 수덕사 견성암 |
지도
- 대원사 :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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