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呑虛)스님
- 법호·법명 : 탄허택성(呑虛宅成 : 1913~1983)
- 생애·업적
탄허 스님은 1913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김금택(金金鐸), 법명은 택성, 법호는 탄허다. 14세를 전후 하여 유학의 경전을 두루 섭렵했고 15세부터는 노장철학과 제자백가의 사상을 꿰뚫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전적과 사상에서 인생과 세계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해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한암 스님과 3년 동안 서신을 교환하다가 1934년 초가을 상원사 산문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원래 불문에 언제까지라도 있을 예정은 아니었다. 집에는 사랑하는 처자식이 있었으며 3년 내지 5년이면 불법을 모두 통달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였다.
탄허 스님은 한암 스님 문하에서 출가 후 3년 동안 상원사 선원에서 일체의 말도 없이 묵언 정진했다. 그 후 환속하지 않고 한암 스님이 입적하기까지 15년 동안 스님을 모시고 상원사에서 불교 내전 공부와 선 수행을 쌓아 나갔다. 한암 스님의 고매한 인격과 가풍에 매료되어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영원한 탈속을 길을 걸었던 것이다.
1953년 스님은 상원사와 월정사 선원의 조실을 맡으면서 후학을 제접했으며 한암 스님의 유촉을 받아 역경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 번역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1974년에 《신화엄경합론》을 47 권으로 간행하고 그 업적으로 제3회 인촌문학상을 받았다.
스님은 이 외에도 〈육조단경》 《보조법어》 《영가집》 《노자도덕경》 《주역선해》를 번역했다. 《보조법어》는 한암 스님이 일찍이 자료를 수집하여 편집하고 현토, 간행한 책이다. 《육조단경》과 《영가집》 역시 보조 스님이 의지했던 보조선의 교재인 만큼 선사로서의 탄허 스님도 보조선의 계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화엄경합론》은 선교일치를 지향하는 탄허 스님의 마음을 잘 대변하며 그 뿌리는 한암 스님에게로 닿고 있다.
탄허 스님은 1983년 4월 24일 입적하였다. 세수 71세, 법랍 49년이었다. 스님의 부도와 비는 상원사로 들어서는 초입 왼쪽에 한암 스님의 부도와 비 옆에 나란히 서 있다.
한암 스님의 두 제자, 보문 스님과 탄허 스님. 보문 스님이 한암의 선적 실천을 이었다면 탄허 스님은 그 학적인 체계를 굳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탄허 스님은 후학들에게 “천하에 두 가지 도가 없고 성인은 두 마음을 갖지 않는다(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라는 말을 자주 들려주었으며 시주의 은혜가 무서우니 공연히 신세를 지지 말라고 강조했다.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p. 51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