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선재스님(善財, 1956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7월 3일 (월) 17:07 판 (다른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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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선재(善財)스님은 성일(性一)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사찰음식의 발전과 대중화에 공헌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56 경기 수원 출생
1980 화성 신흥사에서 성일(性一)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1 통도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87 봉녕사 강원 졸업, 범어사에서 비구니계 수지
1988~1990 선원 안거
1994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1995~1998 불교TV ‘푸른 맛 푸른 요리’ 출연
2002 보타사 주지,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개원, 연구생 지도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가정학과 겸임교수
2004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원장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
2011 제26회 불이상 수상
2016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 공인
프랑스 ‘1700년 한국불교 전통과 수행자의 삶’ 참가
2018 제5대 한식진흥원 이사장 취임
2019 보관문화훈장 수훈
문중 청해문중(靑海)
수행지침 음식을 통해 수행하고, 음식을 통해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사찰음식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다.
상훈 제26회 불이상 수상(2011년), 보관문화훈장 수훈(2019년)
저서 및 작품 『선재스님의 사찰음식』, 『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사찰음식 문화연구』,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 불광출판사, 2011, 『229가지 자연의 맛 선재 스님의 사찰 음식』, 디자인하우스, 2011,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불광출판사, 2021

활동 및 공헌

출생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79
[해인사 보현암 동안거(1989)]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80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80
[동국대학교 전통사찰음식 강좌]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81
[동국대학교 전통사찰음식 강좌]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81
[호주 정법사 창건 10주년 기념 선재스님 사찰음식 강좌(2003)]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82
[선재사찰음식연구원 수료식 (2003)]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83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84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전경]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liplipp&logNo=220204523945

선재(善財)스님은 1956년 7월 28일 경기도 수원에서 아버지 이상길과 어머니 김상옥 사이의 3남 5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이며, 이름은 이용자이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기독교 학교를 다녔는데, 일 년 동안 빠짐없이 새벽 기도를 나가고 주일학교 선생님을 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 1970년대 초 시골에 살면서도 교육열이 대단한 부모님 덕분에 스님은 시내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은 시내에 사는 친구들이 부모님과 마치 친구처럼 대하며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완고하고 고지식한 자신의 부모님과 너무나 다르고 대조적이어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스님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후배들과 수원 용주사 겨울수련대회에 우연히 참가하였다가 한 스님의 법문을 듣고 깊이 뉘우칠 수밖에 없었다. ‘수미산을 무릎이 다 벗겨지도록 부모님을 업고 오르내려도 부모님 은혜를 갚을 수가 없다.’는 『부모은중경』 법문을 들은 스님은 발심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드시게 하고 용돈을 드리거나 옷을 사드리는 것도 효도지만 그것은 작은 효도였다. 부모님께 존귀한 불법을 알려드려 스스로 해탈하도록 도와드리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효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발심을 한 스님은 부모님께 큰 효도를 하기 위해 19세에 출가를 결심하였다. 그러나 몸이 약해서 안 된다는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치고 말았다. 심지어 부모님은 서둘러 선을 보게 하여 스님을 결혼시키려고도 하였다.

이에 스님은 ‘부모님조차 설득하지 못한다면 내가 출가하여 과연 누구한테 부처님 법이 좋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 부모님 먼저 설득해야겠다.‘ 하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1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설득하고 기도하였다. 평소에 사회사업을 좋게 보시던 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사회사업은 바로 포교라는 것을 누누이 말씀드려 마침내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에 이르렀다.

출가와 수학

스님은 1980년 8월 8일 신흥사에서 성일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그때 스님의 나이 25세였으니 출가 승낙을 받기까지 꼬박 5년 세월이 걸린 셈이다. 스님은 출가한 다음 해 통도사에서 자운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1987년 범어사에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곧 이어서 봉녕사승가대학을 졸업한 스님은 1994년에는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였다.

사찰음식에의 관심

선재스님은 행자 시절에 노스님과 함께 음식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중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음식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면서도 뒷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고, 나물 삶고 난 뜨거운 물을 함부로 수채에 버리지 않는 모습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조차도 아끼고 사랑하는 생명 존중 사상을 자연스럽게 터득하였다.

스님은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다가 솜씨 또한 유난히 뛰어났다. 별달리 마땅한 게 없는 상태에서도 정성 어린 밥상을 차리시는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닮은 것 같다며 스님은 웃는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출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출가하기 전에 다니던 포교당의 지도법사 법진스님이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이후로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 고기를 먹어서라도 몸 건강히 수행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라는 그릇된 생각까지 잠시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스님은 음식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였다. ‘스님들이 건강해야 수행도 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 하면 채식으로 영양이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중앙승가대학교 졸업 논문의 주제를 사찰음식으로 정하다

스님은 사찰 음식으로도 건강을 충분히 유지하며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였다. 중앙승가대학교 졸업 논문의 주제도 자연히 사찰 음식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곧 난관에 부딪쳤다. 자료가 너무나 부족하여 도저히 논문을 쓸 수가 없었기에 주제를 바꾸겠다며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그런데 교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주제가 좋으니 그래도 스님이 사찰 음식 논문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며 계속 권유를 하였다. 도반 스님들은 논문을 다 제출하고 퇴방했는데 스님 혼자 수행관에 남아 사찰 음식에 관해 궁리하며 머리를 싸매었다.

그렇지만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자료가 모자랐다. 스님은 경전이란 경전은 모조리 뒤지기 시작하였다. 오히려 경전 속에 부처님의 식생활에 관한 자료가 많았다. 부처님께서는 음식을 먹는 것은 생명과 수행을 더한 일이라고 하셨다. 음식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행자들에게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도록 하신 것도 음식이 정신 세계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음식을 먹을 때 합당한 예를 갖춰야 하며,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는 아이는 탈선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위궤양을 전체식으로 극복하다

음식과 심신 건강이 얼마나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선재스님 자신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스님은 불규칙적인 식습관으로 위궤양을 심하게 앓았다. 병원에서도 고칠 가망이 없다며 포기할 정도였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했던 스님은 ‘내가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출가를 했는데,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불효는 저지르지 말자,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1년 동안 불가(佛家)의 식생활 문화를 연구하며 스스로 직접 실행에 옮겼다.

위장병을 치유하기 위해 스님은 무엇보다도 전체식을 포함한 자연식을 하였다. 밥은 백미 대신 현미를, 과일이나 채소 같으면 껍질과 잎사귀, 줄기까지 먹는 전체식을 한 것이다. 아울러 화학첨가물이 들어갔거나 화학비료 및 농약을 쓴 것은 피하고 자연식품을 섭취하였다. 물론 인스턴트 식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결과 알게 모르게 몸에 항체가 만들어졌고 어느덧 병이 완쾌되었다. 전체식과 자연식을 하는 스님은 어쩌다가 일반 식당의 음식을 먹으면 몸에 좋지 않은 반응을 느낀다. 사이다를 마시면 사흘을 아프고, 콜라를 마시면 닷새나 아프다고 한다.

음식을 먹는 방법

스님은 사람이 음식을 먹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기회로 먹고, 두 번째는 기쁨으로 먹고(안 먹어도 배부른 것), 세 번째는 바로 음식을 먹는 것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몸에 끼치는 영향이 다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좋은 마음으로 먹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을 때 비로소 그 음식이 약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불필요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나를 놓아버리고 나서야 스님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염불을 하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게까지 감사하는 마음이 건강을 돌본 것이다.

사찰음식을 통한 포교

선재스님은 음식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한테 불교 교리를 전하고 부처님을 가깝게 대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은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며,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체라는 것이 음식에 관한 스님의 지론이다. 그래서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을 부처님으로 보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라고 당부한다. 그럴 때 가장 맛있고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사찰 음식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방문자에게 반드시 법당에서 참배부터 하도록 한다. 절집에서 받들어 모시는 어른이 부처님이시기에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먼저 부처님께 정중히 예의를 갖추게끔 하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

스님은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을 이렇게 말한다. “음식도 사람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예컨대 김치와 된장은 푹 익을 때까지 잘 보존했다가 상에 내놓을 때 가장 맛이 있지요. 설익은 김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맛이 없잖아요. 된장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음식 역시 사람과 같아서 제대로 익었을 때가 가장 맛있고 영양도 뛰어납니다.” 그리고 맛도 맛이지만 어떤 음식을 먹는가도 중요하다고 한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날그날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개원

스님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불교TV ‘푸른 맛 푸른 요리’를 진행하며 불교 음식을 꾸준히 소개해왔고,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을 개원함으로써 사찰 음식 문화의 전통과 우수성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널리 보급하고 있다. 2004년 선재스님은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원장 및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가정학과 강사를 역임하고 2022년 경기도 용인시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 주석 중이며 '전국비구니회'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선재(善財)스님 본항목 선재스님(善財, 1956~) 善財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선재스님(善財,_1956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선재(善財)스님 청해문중(靑海) ~의 일원이다
선재(善財)스님 성일(性一)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선재(善財)스님 화성 신흥사 ~에서 출가하다
선재(善財)스님 자운(慈雲)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선재(善財)스님 서울 보타사(안암동)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
선재(善財)스님 한식연구가 ~이다 사찰음식
선재(善財)스님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을(를) 설립(건립)하다
선재(善財)스님 안거 ~을(를) 성만하다 선원 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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