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스님(淨華, 1922生, 비구니)
정화(淨華)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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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정화(淨華) |
법호 | 묘각당 |
속명 | 강삼인 姜三仁 |
출생 | 1922년 |
출가 | 1933년 |
입적 | 2015년 4월29일 |
사찰 | 수덕사 견성암(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 |
특이사항 |
목차
[숨기기]정의
정화(淨華)스님은 비구니 최고 법계 명사 품수 받았으며 개심사 비구니스님 강원 주지등 후학 양성과 한평생 청정수행자로 수덕사 견성암 선원장등을 지낸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1970~1994 || 서울 광진구 화양동 광림선원 창건 1973~1994 || 20여년이 넘도록 화양동 광림선원에서 안거 1986 || 비구니 이부승 존중아사리에 추대 11994~1996 || 수덕사 견성암 안거 단일구족계단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6회 존증아사리)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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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 강원도 회양 출생 |
1933 | [ 강원도 고성군 표훈사 돈도암 ]에서 원각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34 | 일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39~1944 | 고성군 외금강면 온정리 여여원에서 효봉스님을 모시고 사미니과 수료 |
1944 | 대원암 안거 |
1944 | 선학원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50~1951 | 수덕사 견성암 안거 |
1952 | 부산 범어사 대성암 안거 |
1954 | 대성암에서 운허 스님 문하에서 능엄경을 수료 |
1950년대 말 | 종단정화운동 동참 |
1961~1962 | 개심사 비구니 강원 총무 |
1962~1970 | 개심사 비구니스님 강원 주지[ 개심사 도감(주지) |
1970년대 초 | 수덕사 극락암에서 안거를 보내고 |
1996~1999 | 견성암 제일선원 선원장 |
2007 | 조계종 비구니 최고 법계인 명사법계를 품수 |
2016.4.29. | 수덕사에서 입적 세수 95세 법납84세 |
기타사항
문중 | 법기法起 |
수행지침 | 청정수행 |
수계제자 | 진우眞宇・진성眞性・진오眞悟 |
활동 및 공헌
출가의 동기
금강산(내금강) 장흥리에서 출생한 정화스님은 부모님과 은사스님 세 분은 친분이 매우 두터웠으며 불심 또한 깊었다. 정화스님은 재 있는 날이면 법문을 들으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금강산 표훈사에 따라 다녔다.
하루는 법당에서 졸다가 스님을 따라가서 방에서 잠들었다. 깨어보니 어머니는 안 계시는 낮선 장소이고 목침을 베고 잔 탓에 목이 아파 큰소리로 울자 스님이 밤11시에 집에 데려다 주었다. 어린 꼬마를 데려다 준 스님은 나중에 정화스님의 은사스님이 되었다.
당시 원산에 갈매수녀원이 있었는데, 건강이 악화된 수녀님 1분이 스님 댁에 머무르게 되었다. 어린 정화스님은 수녀님을 가까이에서 보고는 수녀가 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나타내자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던 어머니가 절에 정화스님을 남겨두고 집으로 갔다.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절에 남긴 이 결정이 곧장 스님의 출가로 이어졌다.
1933년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강원도 회양군 표훈사 돈도암에서 원각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게 되었다.
교육
출가 이듬해인
1934년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면 신계사에서 김일우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
1939년 강원도 고성 외금강면 온정리 여여원에서 효봉스님을 계사로 보살계를 수지
1939년~1944년에 온정리 여여원에서 효봉스님을 시봉하고 사미과를 수료
1945년 3월 선학원에서 동산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스님은 출가 직후부터 19살까지 표훈사에서 머물다 임대원스님, 성공스님, 은사스님과 함께 만주로 들어가셔서 백용성스님을 모셨고, 성공스님이 광명고등여학교를 설립한 뒤에도 꾸준히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정화스님은 만주에서 신계사 입구로 돌아왔고 성공스님은 효봉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여여원이란 선방을 개설하였다. 은사스님은 자족원(진여선원)을, 뒤이어 임대원스님은 신계사에서 십리정도 떨어진 곳에 법기암이라는 선방을 창건하였다.
이렇듯 정화스님은 어른스님들의 독립의지를 받들어 성심껏 시봉을 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일제치하 당시 재단법인으로 인가를 냈던 여여원과 지족원이 해방 후에 적산재산으로 몰려 그대로 두고 나오게 되었다. 이 때가 스님 세수 23살 때의 일이었다.
피난을 나와 수덕사 견성암에서
스님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1·4후퇴 때 피난을 나와 수덕사 견성암에 머무시면서 2년여 동안 수선안거를 성만하는 등 참선수행에 전념했다.
정화운동 당시 큰스님들과 함께 단식에 들어가게 되다.
31세 되던 해인 1952년 범어사 대성암에서 안거를 마친 후 정화의 거센 바람이 종단 안팎에 불어 닥쳤다. 정화운동 당시 큰스님들과 함께 단식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정화스님은 단식이라는 것이 물도 한 모금 먹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만 이틀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굶으셨다.
신심을 다하여 후학양성에 전념을 기울였다.
정화가 끝난 후, 스님은 후학들의 학구의지를 드높여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데 일익이 되고자 1961년 개심사 비구니 강원 총무로 2년간 재직했으며 곧이어 강원의 주지소임을 8년 정도 보았다.
열성적인 가람수호와 신심을 다하여 후학양성에 전념을 기울였다.
서울로 돌아와 광진구 화양동에 광림선원를
1970년 개심사 비구니 강원 주지자리를 내놓고 서울로 돌아와 광진구 화양동에 광림선원을 창건하였다. 도량불사를 거듭하여 불국토의 가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1994년에 이르기까지 꼬박 24년의 긴 시간을 보냈다.
오대산 지장암 면모 일신
스님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와 일상생활이 둘이 아니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 처처가 다 배움터요, 행하는 모든 일이 공부 아님이 없다는 자각이 분명해졌다. 이에 스님은 지장암으로 돌아왔고 5년간 상상을 초월하는 커다란 화두와 직면하게 되었다.
나날의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화두, 곧 육신을 죽일 것인가, 설자리를 버릴 것인가, 마음을 죽일 것인가 등등이 꼬리를 물고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님은 공동체 삶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에피스드를 수행의 재료로 삼아 어려움을 통해 겸손을, 가난한 살림살이를 통해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또한 북방 최초의 비구니 선원이라는 명성에 조금이라도 부응할 수 있도록 지장암 내 기린선원을 정비하여 많은 대중이 살 수 있게끔 조건을 갖추는데 공헌했다.
사찰
- 보덕사(☎ 041-353-9306):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07-36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 459~463.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31.
- 오대산 기린선원 남대 지장암 [홈페이지], http://namdaejja.webbit.kr/
- 월정사 지장암 감원 정안스님 입적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475
- 佛心도 반해버린 산 병풍과 계곡 물소리, 백암산 천진암 [자비화 카페], https://cafe.daum.net/squirrel4u/Bpz4/4288?svc=cafeapi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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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淨岸)스님 | 본항목 | 정안스님(淨岸, 1951~2014) | 淨岸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淨岸,_1951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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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淨岸)스님 | 봉래(蓬萊)문중 | ~의 일원이다 |
정안(淨岸)스님 | 혜종(慧宗)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 |
정안(淨岸)스님 | 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정안(淨岸)스님 | 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