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스님(慶喜, 1931生, 비구니)
경희(慶喜)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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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경희(慶喜) |
법호 | 영상(永祥) |
속명 | 김경희 |
출생 | 1931년 |
출가 | 1947년 |
입적 | |
사찰 | 서봉사(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439-2)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경희(慶喜)스님은 서봉사 재건, 승가의 인재양성과 포교, 국제 승가활동 등 국내외에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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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 강원 고성 출생 |
1946~1950 | 월정사 지장암에서 8안거 성만 |
1947 | 오대산 월정사에서 본공(本空)스님을 은사로 출가, 한암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51~1957 | 해인사 국일암에서 8안거 성만 |
1956 | 해인사 강원 졸업 |
1966 | 해인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67 | 경남대학교 문학부 종교학과 졸업 |
1970~2002 | 대구 서봉사 주지 |
1973~1988 |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 |
1981 | 사원주지연합회 조직부장 |
1982 | 대한불교 청소년교화연합회 대구지부 부지부장 |
1984 | 청소년선도위원, 대구교도소 독지 방문위원 |
1986 | 전국비구니회 총무부장 |
1988~ | 대구 마하야나 불교문화원 이사, 대구 사원연합회 부회장 |
1989~2004 | 사회복지유지재단 화성양로원 원장 |
1990 | 제17차 세계불교도우의회, 제8차 세계불교청년회 서울대회조직위원회 자문위원 |
1994 | 비구니계단 7증사(별소계단 14회 존증아사리) |
1997~2002 | 대구불교교육원 이사장 |
2004 | 서봉사 주석 |
문중 | 봉래(蓬萊)문중 |
상훈 |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윤고암 화상) 표창장(1972년) 외 다수 |
수계제자 | 명순(明諄)·명전(明傳)·명엽(明葉)·명연(明淵)·명인(明印)·명범·명음(明音)·명삼(明三)·명허·용안·명봉·명안·명효 |
활동 및 공헌
출가
영상(永祥) 경희(慶喜)스님은 1931년 10월 17일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 사평리 669번지에서 아버지 김태호와 어머니 서대광명 보살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며, 이름은 김경희이다. 스님은 1947년 10월 15일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서 본공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방한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수학
1946년부터 1950년까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지장암에서 안거를 성만하고, 1951년부터 1957년까지 경남 해인사 국일암에서 안거를 성만했다. 1956년 7월 15일 해인사 강원에서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마치고 1966년 9월 11일 해인사에서 자운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한 뒤, 1967년 2월 28일 경남대학교 문학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를 역임했으며, 1981년 사원주지연합회 조직부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1982년 12월 18일 대한불교 청소년교화연합회 대구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하고, 1984년 6월 1일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같은 해 6월 20일에는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대구교도소 독지방문 위원으로 위촉받았다.
1985년 10월 19일에는 전국비구니회가 봉녕사에서 개최한 제1차 비구니 수행교육을 수료했고, 제2차 비구니 수행교육을 운문사에서 수료했다.
다양한 경력
1986년 5월 3일에는 전국비구니회 총무부장으로 선출되었고, 1988년 5월부터 대구 마하야나불교문화원 이사와 대구사원연합회 부회장을 맡았다. 1989년 3월 17일에는 사회복지유지재단 화성양로원을 인수했다.
또한 1990년 9월 7일 제17차 세계불교도우의회, 제8차 세계불교청년회 서울대회 조직위원회의 부산대표 자문위원으로 추대되었고, 1994년 10월 14일에는 비구니계단 7증사에 추대되었다. 그리고 1970년 4월 18일부터 2002년까지 대구 서봉사 주지를, 1997년 12월 10일부터 2002년까지 대구불교 교육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서봉사 중창불사
스님은 1986년부터 2002년까지 서봉사로 들어가 중창 불사를 하여 요사채 70평, 법당 48평을 완공했다.
유능한 인재 양성과 포교활동
경희스님은 인재양성을 중요한 불사 덕목으로 삼고 발심 출가한 불제자를 교육시켰다. 그 결과 상좌스님들이 불교미술, 양로원복지, 불교 범패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고, 또 해외 유학을 통해 불교의 세계적 감각을 익히는 등 불제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봉사는 스님의 원력에 따라 포교에 주력하여 수많은 대구 불자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 미래 대구 불교의 부흥을 꿈꾸며 수행자의 정진 도량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스님은 여러 가지 공로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윤고암 화상) 표창장(1972년)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1983년 1월 21일 대구 사원주지연합회 회장 공로패, 1985년 4월 19일 육군 제3사관학교 군종참모부 감사패, 1986년 12월 31일 대구직할시 남구청장 감사패, 1991년 1월 11일 2군 불교 장교회장 감사패 등을 받았다.
경희스님의 수계제자로는 명순(明諄)·명전(明傳)·명엽(明葉)·명연(明淵; 2019년4월2일, 이연(離緣), 문도에서 제명 )·명인(明印)·명범·명음(明音)·명삼(明三)·명허·용안·명봉·명안·명효스님 등이 있다.
대구 서봉사
기린산 서봉사는 대구시 남구 이천동 439-2번지에 있으며, 1920년 경 한 청신녀가 창건하고, 탄응, 동운, 전강, 학봉스님 등 여러 큰스님께서 주석하셨다. 운허스님이 쓰신 서봉사 사적비에 따르면, 1952년 본공스님이 결제 후 해제 때 주석하면서 사찰을 수호하고 불법을 선도했다고 한다.
그 후 1965년 조계종 산하의 재단법인 선학원 명의로 등록하고 그 분원이 되기까지 6년간의 법정분쟁 끝에 1971년 쌍방의 화해가 성립된 뒤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가람 불사를 할 수 있었다.
본래의 목재 요사채를 헐고, 1972년 당시 2층 콘크리트 건물 88칸의 요사채, 대웅전 8칸, 명부전 4칸, 칠성각 2칸, 기타 요사 10칸 등의 불사를 했고, 그 후 범종각, 사천왕 등의 불사를 보완하여 가람의 규모를 현재의 위용으로 갖추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652~656.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33.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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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慶喜)스님 | 본항목 | 경희스님(慶喜, 19~19) | 慶喜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경희스님(慶喜,_1931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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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慶喜)스님 | 봉래(蓬萊)문중 | ~의 일원이다 |
경희(慶喜)스님 | 본공(本空)스님 | ~의 제자이다 |
경희(慶喜)스님 | 월정사 | ~에서 출가하다 |
경희(慶喜)스님 | 한암(漢岩)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경희(慶喜)스님 | 자운(慈雲)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경희(慶喜)스님 | 대구 서봉사 |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
경희(慶喜)스님 | 대구 서봉사 | ~을 중창하다 |
지도
- 서봉사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4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