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스님(曉星, 1898生, 비구니)
효성(曉星)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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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효성(曉星) |
법호 | |
속명 | 신학순(申學順) |
출생 | 1898.03.15. |
출가 | 1946년 |
입적 | 1960.06.18. (세수63세, 법랍15세) |
사찰 | 금련사(금련선원)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354-52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효성(曉星)스님은 시주, 화주[1]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수행자이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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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 경남 진주 출생 |
1946 | 수덕사에서 원경(圓鏡)스님을 은사로 출가 |
수덕사에서 법천(法泉)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
1947 | 수덕사에서 수선 안거 성만 |
1948 | 수덕사에서 사미니과 수료 |
1952~1956 | 동학사 주지 |
1960. 6. 18 | 병환으로 선학원에서 입적(세수 63세, 법랍 15세) |
문중 | 실상(實相)문중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수진(守珍)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순동(順同, 2)→의선(義善, 3)→성욱(性旭, 4)→원경(圓鏡, 5)→효성(曉星, 6)→수진(守珍, 7) |
활동 및 공헌
출가
효성(曉星)스님은 1898년 3월 15일 경남 진주에서 아버지 신상주(申商周)와 어머니 이씨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이며, 이름은 신학순이다. 스님이 태어났을 때 스님의 집안은 친일파로 몰려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이 때문에 스님은 불행하게도 고아로 자라게 되었으나 다행히 진주의 한 양가집에 양녀로 들어가 성장했다.
효성스님은 1946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원경(圓鏡)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했고, 같은 해 법천(法泉)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출가한 이후 스님은 만공스님 문하에서 참선 수행을 했다. 남달리 풍류에 뛰어났고, 범패 음성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들었던 스님은 불교정화운동 당시에는 열과 성을 다하여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시주, 화주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수행자
효성스님은 생전에 탁발을 많이 했다. 그런데 탁발할 때 다른 스님들이 따라가 보면, 부잣집에서 탁발한 것을 가난한 집에 가져다가 나눠주곤 했다고 한다.
스님은 1952년부터 1956년까지 동학사 주지를 살았다. 효성스님은 색이 있는 양말은 신지 마라. 극장 구경을 가지 마라. 시계를 착용하지 마라.' 등등 학인스님들에게 모든 면에서 매우 엄격한 가르침을 주는 어른이었다. 그런 반면 때로는 학인스님들을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포행을 가서 몸소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의 연극을 연기하여 학인들을 즐겁게 해준 다정다감한 어른이기도 했다.
스님은 말년에 깊은 병환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때 의사가 스님에게 왜 이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 왔느냐고 묻자, 시주, 화주 돈을 개인적으로 쓸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중의 것은 절대로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철저한 수행자였던 것이다.
입적
효성스님은 1960년 6월 18일 세수 63세, 법랍 15세로 선학원에서 입적했다. 수계제자로는 금련선원에서 정진 중인 수진(守珍)스님이 있다.
경주 금련사(금련선원)
경북 경주 현곡면에 위치한 금련사(주지 법운스님·사진)는 비구니 스님 80여 명이 함께 사는 사찰이다. 사찰이 창건된 건 30여 년 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재학 중인 사미니 스님들을 위해 부산 금련회에서 기탁한 기숙사였다. 이후 동국대에 기숙사가 건립되면서 비구니 선원으로 탈바꿈됐다. 그런데 선원에서 수행하는 비구니스님 가운데 몸이 불편한 스님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스님들에게 방사를 한 칸 한 칸 내어주다 보니 어느새 80여 명으로 늘어났다.
동학사
마곡사의 말사로 724년(성덕왕 23) 상원조사(上願祖師)가 암자를 지은 곳에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절을 창건해 상원사(上願寺)라 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곳에 와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절을 지으니 승려들이 모여들어 사찰이 커지면서 이름을 동학사로 바꾸었다.
1394년(태조 3) 고려의 유신 길재가 고려 태조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고, 1457년(세조 3)에는 김시습(金時習)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는데, 다음해 이곳에 들른 세조가 단종을 비롯해 세조찬위 때 억울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고 인신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728년(영조 4) 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모두 소실된 것을 1814년(순조 14) 월인선사(月印禪師)가 예조에 상소하여 중건했고, 1864년(고종 1) 보선국사(普善國師)가 옛 건물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다. 1904년 초혼각을 숙모전이라고 개칭했다. 6·25전쟁 때 거의 파괴된 것을 1975년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무량수각·삼은각·숙모전·범종각·동학사·동학강원 등이 있는데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649~651.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80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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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曉星)스님 | 본항목 | 효성스님(曉星, 1898~1960) | 曉星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효성스님(曉星,_1898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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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스님(曉星) | 실상문중(實相) | ~의 일원이다 | |
효성스님(曉星) | 원경스님(圓鏡) | ~의 수계제자이다 | |
효성스님(曉星) | 예산 수덕사 | ~에서 출가하다 | |
효성스님(曉星) | 법천스님(法泉)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효성스님(曉星) | 공주 동학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효성스님(曉星)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예산 수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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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금련사(금련선원)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354-52
주석
- ↑ 필요한 양식 · 물건 · 비용 등을 마련하는 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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