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종수스님(宗秀, 1922生, 비구니)

biguni
공연옥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7월 28일 (목) 12:58 판 (기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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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종수스님은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피나는 정진과 수행으로 대중을 교화하고 전남 무안에 용덕사를 창건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1978~2000 ||용덕사 주지취임. 가람 수호 및 주석
연도 내용
1922 대전 출생
1974 신광사에서 법명(法明)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5 대흥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6~1978 삼선암, 대성암, 석남사 등 안거 성만
1977 송광사에서 구산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2004 현재 용덕사 주지

기타사항

문중 육화(六和)문중
수행지침(오도송) 만곡상풍일무실(晩殼霜風一無實)이요 만승출가무득(僧出家無得)이오나

금생종식(今生種植)하야 내생현재(來生現在)오며 득종성불(得種成佛)이요
광념대심(廣念大心)이면 비해자연(悲解自然)이라.

생활신조 보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며, 밥풀 한 알이라도 귀중한 줄 알고 산다.
수계제자 화진(和眞)·화형(和炯)·혜문(慧門)

활동 및 공헌

늦은 나이에 출가하다

종수(宗秀)스님은 1922년 10월 8일 전남 무안군 해제면 학송리에서 아버지 문성규와 어머니 양경국 사이의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속명은 문덕금이다. 양친께서는 두 개의 국기가 대나무 끝에 매달려 바람에 펄럭이는 태몽을 꾸셨다고 한다. 부처님 법이 좋아 일찍 출가하고 싶었던 스님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 1974년 53세의 늦은 나이로 광주 신광사에서 법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453 종수(宗秀).jpg

[명법사에서 선경스님, 법진스님과 함께] 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 509

스님은 출가 이듬해인 1975년 해남 대흥사에서 석암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1977년 57세 때 송광사에서 구산 대종사를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남들보다 뒤늦은 출가임을 늘 잊지 않은 스님은 해인사 삼선암, 범어사 대성암, 석남사 등을 찾아 안거하며 선지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종수스님은 1978년 세수 57세에 이르러 용덕사 주지 소임을 맡아 불사의 원력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용덕사가 위치한 곳이 농촌이다 보니 신도들도 대부분 농부였고, 불자도 많지 않았다. 스님은 처음 이곳에 28평 법당을 지었는데 너무 협소하여 염려하던 차 당시 문화재 관리자 일을 하고 있던 신재연 불자와 인연이 되었다. 당시 신 씨가 불사에 필요한 목록을 하나하나 모두 적어 기록해 놓으라고 해서 스님이 대들보를 비롯하여 기둥과 서까래 등 일일이 항목을 적어 보니 그 액수가 실로 어마어마하였다. [석남사에서 인홍 노스님과 함께] 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 509 종수스님은 엄청난 공사비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비록 시작은 힘들어도 불사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 믿고 모든 것은 부처님께 맡겨 둔 채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사를 시작하고 나자 신도들이 잇따라 찾아와 불사금을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기적처럼 불사를 원만히 진행할 수 있었다. 용기를 얻은 종수스님은 불사를 할 때 신장님이 옆에서 옹호해주신다고 믿고 더욱더 신심을 내어 추진한 결과 대웅전, 삼존불 봉안, 범종각 건립, 범종 불사를 모두 회향하였다. 1993년에는 요사채 2동과 창고 등을 짓고 도량 장엄 불사와 더불어 부처님 진신사리 5층 보탑 봉안을 하였으며, 2003년에는 관음전 건립 및 일천관세음보살을 조성·봉안하는 등 불사를 완공하여 회향하였다. [신도회 임원들과 함께] 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 510 구법당 낙성식 때 안해운 노스님, 법진 노스님을 모시고[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 511]

초인적 의지로 정진하여 가피 체험을 하다

늦은 나이에 출가한 스님은 1년 가까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만큼 고생을 겪기도 했으나 초인의 정진력으로 초지일관하였다. 어느 해 12월 어느 날, 그날도 스님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루 종일 신심을 다하여 용맹정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세 살 때부터의 기억들이 일순 다 떠오르면서 배우지 않은 한자까지도 저절로 깨우치게 되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스님은 선방스님에게 자신의 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지금처럼만 열심히 정진하라고 일러주기에 용기를 내어 더욱더 정진에 힘을 가하였다. 이듬해 1월 1일에는 입승스님이 법문해주기를 간청하는 바람에 법문을 하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회향

스님은 한평생이 마치 미끄럼을 타듯, 하루 저녁 지나가는 듯 빠르게 지나가서 당신처럼 늙게 되므로 결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젊어서 공부를 해야 힘을 얻고 정진하는데도 장애가 없으니 하루라도 젊었을 때 정진하라는 말씀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스님은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신념이 강해야 하며, 작은 시주물이라도 그 은혜가 귀중한 줄 알아야 하고 보시하는 마음을 지니고 스님들이나 신도들에게 말을 조심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늘 화합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생토록 부처님 제자로 살아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는 스님은 이제는 부처님과 중생들에게 회향할 때라는 생각으로 동국대학교 종합병원 건립에 평생 모은 것을 성금으로 보시하였으며 불교방송에도 성금을 기탁하였다.

2004년 현재 세수 83세, 법랍 30세인 종수스님은 전남 무안 용덕사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화진(和眞)·화형(和炯)·혜문(慧門)스님 등이 있다.

종수스님 오도송 늦은 곡식 서리 바람 열매가 없음이요 산승의 늦은 출가 성불키 어려우나 금생에 불법 닦아 내생에 있으오며 대자대비 불법심이 부처님 법 이루옵고 한량없는 불심으로 보리심을 크게 내면 슬픔은 사라지고 진면목을 볼지니라.

만곡상풍무실(晩殼霜風無實)이요 만승출가무득(晩僧出家無得)이오나 금생종식(今生種植)하야 내생현재(來生現在)오며 득종성불(得種成佛)이요. 광념대심(廣念大心)이면 비해자연(悲解自然)이라.


참고문헌

  •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 507~512.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53.
「논산훈련소 군법당 불사금 절반 모연」(불교닷컴 2011.6.3.)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44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종수(宗秀)스님 본항목 종수(宗秀)스님, 1922~ ) 종수(宗秀))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종수(宗秀)스님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종수(宗秀)스님 범어사_ 법명(法明)스님 ~ 을 은사로 출가하다
종수(宗秀)스님 대흥사_ 석암스님 ~ 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하다
종수(宗秀)스님 송광사_구산山스님 ~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다
종수(宗秀)스님 용덕사 ~ 현재 주지이다

지도

  • 용덕사 (전남 무안군 해제면 광산리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