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스님(定心, 1918生, 비구니)
정심(定心)스님 | |
---|---|
법명 | 정심(定心) |
법호 | |
속명 | 김행심(金幸深) |
출생 | 1918.03.06. |
출가 | 1924년 |
입적 | |
사찰 | 무주 관음사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1224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정심(定心)스님은 평생을 수행정진으로 보냈고 무주 관음사를 중창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18 | 전남 장성 출생 |
1924 | 백양사 천진암에서 법전(法田)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26 | 백양사에서 묵담(默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백양사에서 만암스님으로부터 초발심자경 수학 |
1932 | 백양사 강원 대교 졸업 |
1940 | 해인사 국일암 안거 성만, 대성암 3안거성만, 김제 흥국사 3안거, 내원사 하안거 성만, 견성암 동안거 성만, 보덕사 하안거 성만, 세등선원 6안거 성만(입승소임), 인천 용화사 5안거 성만 |
1952 | 나주 다보사 안거 성만 |
1955 | 조계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68 | 관음사 주지 취임 |
1998 | 남원 승련사 안거 성만 |
1998 | 관음사 대웅전, 요사채, 전기, 전화 불사 |
2004 | 관음사 주석 |
문중 | 백양사(白羊寺)문중 |
수행지침 | 화두를 지성으로 하라. 이리 저리 끄달리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 |
생활신조 | 누구에게라도 잘못된 일을 용서하라. 내 마음으로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보시이다.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관정・관불・관운・관공・관수 외 14명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법전(法田)→정심(定心)→관정(觀晶), 관불, 관운, 관공, 관수 외 14명 |
활동 및 공헌
출가
정심(定心)스님은 1918년 3월 6일, 전남 장성군 북하면 성암리에서 아버지 김인주와 어머니 최복례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울산이며, 이름은 김행심이다.
스님은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는 고통을 겪은 후 친척 집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전남 백양사 천진암에는 법찬 노스님(法讚, 속명 이성님, 백양사에서 신사년 입적)께서 살고 계셨는데, 정심스님이 가 있던 친척집에 자주 오시곤 하셨다. 어느 날 법찬스님이 “절에 가면 맛있는 것도 많고 하얀 쌀밥도 먹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였는데, 먹을 것이 귀하던 그 시절 하얀 쌀 밥을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큰 소원이었기에 어린 마음에 좋아하며 따라 나선 것이 곧바로 출가로 이어졌다.
그렇게 하여 1924년 스님의 나이 겨우 7세 때에 백양사 천진암에서 법찬스님의 상좌이셨던 법전스님을 은사로 삭발 염의하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동진 출가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26년, 정심스님은 백양사에서 묵담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교육과 수행
세수 15세 되던 1932년, 백양사 천진암에서 비구니 강사스님인 봉선스님께 법화경을 먼저 배우고, 18세에 백양사 큰절에서 송만암 스님으로부터 초심을 배우고 경을 보았다. 그리고 사교입선에 들어 해인사 국일암에서 첫 철을 나고, 35세에 나주 다보사에서 안거를 하던 중에 전강 큰스님을 초청하여 법문과 함께 참회계문을 받았다.
“일념으로 화두 참구를 하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뒤늦게야 선방에 나온 것을 후회하며 울음을 터트린 스님은 이 후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선방을 다니며 참선수행을 통한 화두 참구를 이뤄오고 있다.
스님은 인천 용화사 전강스님 회상에서 5안거를 나고, 대성암 만성스님 회상에서는 3안거 나면서 입승소임을 보았다. 전북 김제 흥국사에서 전강 조실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3안거를 났으며, 양산 내원사와 수덕사 견성암에서 안거를 하였다. 보덕사에서는 법희노스님을 모시고 여름 안거를 지냈으며, 윤필암에서 2년, 대전 세등선원에서 6년 동안 안거를 하면서 입승 소임을 보셨다. 1998년에는 80세의 연로하신 몸으로 남원 승련사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다고 하니 스님의 수행 의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관음사 주지
수행의 정진하는 가운데 스님은 1958년 구례 천은사에서 2년 정도 총무 소임을 살았고 10년 후인 1968년 51세에는 관음사에 주지 소임을 맡았다. 당시 관음사는 집 한 채가 전부인 초라한 절이었고 절을 지킬 스님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머물러 달라는 관음사 보살님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정심스님은 등록조차 안 되어 있던 관음사를 스님께서 금산사의 말사로 등록하고, 법당과 요사채를 짓고 전기 불사를 하였다.
스님은 “정직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일체 반연에 끄달리지 말고 지정으로 화두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또한 ‘수행자는 배움이 부족한 사람,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인욕하면서 산다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로써 끊임없이 아울러 실천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평생을 오로지 화두정진으로 일관한 스님은 다음 생에는 남자 몸을 받아 동진 출가해서 좋은 선지식을 만나 성불하겠다는 원력을 가지고 있다.
정심스님은 2004년 세납 87세, 법납 80세로 무주 관음사에 주석하며 수행 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 관정·관불·관운·관공·관수스님 외 14명이 있다.
무주 관음사
설천면 소천마을 백운산 기슭에 위치한 관음사는 조계종 소속의 비구니 사찰이다. 1938년 포교당으로 시작했고, 2년 뒤인 1940년 석쌍동 스님에 의해 사찰로 발전했다. 1974년 관정 성효례 스님에 의해 중건된 법보전을 중심으로 그 옆에는 선방인 목우실과 요사가 배치돼 있다. 중심 전각인 법보전에 모셔져 있는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6호)은 1650년(효종 1)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조각승인 무염·성수·경성 등이 조성한 소형 보살상이다. 신체에 비해 다소 얼굴이 크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 오똑한 코, 단정한 경가부좌의 자세를 잘 나타내고 있다. 불상 조성연대가 확실하고, 17세기 목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질은 나무이며, 앉은 높이 61cm, 무릎폭 38cm이다. 200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6호로 지정됐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p. 224~227.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26.
- 디지털무주문화대전 http://muju.grandculture.net/muju/toc/GC06500897
- 전국 여행지 정보,http://www.tourcoupon.co.kr/view.html?contentid=1581045&areaCode=37&sigunguCode=5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정심(定心)스님 | 본항목 | 정심스님((定心, 1918~) | (定心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심스님(定心,_1918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
정심스님(定心) | 백양사문중(白羊寺) | ~의 일원이다 | |
정심스님(定心) | 도림법전(道林法傳) | ~의 수계제자이다 | |
정심스님(定心) | 백양사 천진암 | ~에서 출가하다 | |
정심스님(定心) | 묵담스님(黙潭)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정심스님(定心) | 동산스님(東山)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정심스님(定心) | 무주 관음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정심스님(定心) | 무주 관음사 | ~을(를) 중창하다 | |
정심스님(定心)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합천 해인사 국일암, 부산 범어사 대성암, 김제 흥국사, 양산 내원사, 예산 수덕사 견성암, 예산 보덕사, 대전 세등선원(탄방동), 인천 용화사(주안동), 나주 다보사, 남원 승련사 등 |
지도
- 무주 관음사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1224
다른 비구니 스님
지식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