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스님(常照, 1951生, 비구니)
상조(常照)스님 | |
---|---|
법명 | 상조(常照) |
법호 | 거산(居山) |
속명 | 정애숙(丁愛淑) |
출생 | 1951년 |
출가 | 1956년 |
입적 | |
사찰 | 증산사(경남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873)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상조(常照)스님은 지관스님을 은사로 동학사에서 출가하여 1975년부터는 다양한 포교 활동을 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51 | 서울 출생 |
1956 | 동학사에서 지관(智觀)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8 | 동학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71 |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73 | 동학사 강원 졸업 |
1975 | 서울 배상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
1975~1977 | 내원사 하안거 성만 이후 포교 활동 |
1986~1998 | 서울 보현포교당 주지 취임 |
2004 | 증산사 주석 |
문중 | 삼현(三賢) |
수행지침 | 삼귀의(三歸依)만이 아닌 산 부처에게도 귀의하라. |
수계제자 | 법연(法演)・법정(法靜)・법장(法杖)・법송(法松) |
활동 및 공헌
출가
거산(居山) 상조(常照)스님은 1951년 9월 20일에 서울시 도봉구 수유 1동 166번지에서 아버지 정정귀량과 어머니 진신영의 1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금성이며, 이름은 정애숙이다. 스님은 1957년 7세의 어린 나이에 단지 스님이 되고 싶고 부처님이 좋아서 동학사 지관(智觀)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하였다. 노스님은 인정스님이고, 문중은 당대에 손꼽히는 삼현문중이다.
1961년 11세의 어린 스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수옥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많이 들었다. 법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수옥스님에게 듣는 법문은 마냥 좋았다. 상조스님은 강원에 가기 전까지 미타암에 있었는데, 당시에는 꿈이 많았으며 항상 ‘어떻게 하면 참다운 스님의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뿐이었다.
스님은 1968년 음력 11월 동학사에서 석암(昔岩)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69년 강원에 입학하여 도반들과 열심히 공부하였다. 비록 식량이 풍부하지 않아 굶는 경우가 많았지만, 스님은 그 때를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수행과 교육
상조스님은 1971년 음력 3월 15일 범어사에서 석암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계하고, 강원 5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1973년에 대교를 수료하였다. 동학사 졸업 후에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다가 서울 배상여고에 입학하여 1975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3년 동안 내원사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다.
당시 내원사에서는 법당이 따로 없고 선방만 있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선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새벽 예불하고 도량을 돌고 나서 입선을 들였다. 오후에는 계속해서 입선을 들이고 수행 정진을 했으며 저녁 11시에 방선하였다. 이 때 스님은 본공, 선경노스님 같은 당대 비구니계의 거장들과 함께 공부한 적도 있다.
법문은 주로 경봉 큰스님께 들었다. 큰스님은 영화 이야기를 많이 인용하면서 공부를 가르치셨는데 참다운 비구니가 되려면 영화배우처럼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공부도 잘해야 하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치료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주위에 아무것 없어도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큰스님은 항상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학인들을 가르쳤으며, 어려운 법문을 지루하지 않고 해학과 유머를 섞어가며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큰스님께서는 법문하러 오시는 일 외에도 결제 때에도 오시곤 하셨는데, 오실 때마다 학인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상조스님은 경봉 큰스님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또한 성격이 활달하고 잘 돌아다녀 수옥스님께서도 심부름을 많이 시키셨는데, 주로 편지를 전해 주는 일이었다. 수옥스님은 큰스님을 뵐 때 갈아 신을 양말과, 깨끗이 세수하라며 수건을 같이 주는 등 상조스님을 자상하게 챙겨주셨다. (큰 스님을 뵐 때는 발 냄새가 날까 염려되어 꼭 양말을 갈아 신었다고 한다.) 수덕사의 혜공스님(법호 현당)도 가끔 내원사에 다녀가기도 했다.
포교 활동
내원사에서 안거를 성만한 상조스님은 이후 포교를 주로 했는데 유치원부터 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86년 수원에 위치한 보현포교당의 주지에 임명되어 1998년까지 포교를 수행 삼아 지냈다.
스님은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일선에서 포교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종단 차원에서 포교에 전념할 사람들을 많이 배출하여 재정적인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스님들을 화초처럼 온상에서 키울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참선이나 포교, 염불 중 어느 것을 하더라도 확실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님은 3년 동안 무전으로 만행을 다니고, 이후에는 선방에서 결사를 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틈틈이 서예를 취미로 삼으며 정진하는 스님은 “삼귀의뿐만이 아닌 산부처에게도 귀의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상조스님은 양산 증산사에서 수행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는 법연(法演)・법정(法靜)・법장(法杖)・법송(法松)스님 등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182~183.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상조(常照)스님 | 본항목 | 상조스님(常照, 1951~) | 常照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상조스님(常照,_1951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
상조(常照)스님 | 삼현(三賢)문중 | ~의 일원이다 |
상조(常照)스님 | 지관(智觀)스님 | ~의 제자이다 |
상조(常照)스님 | 동학사 | ~에서 출가하다 |
상조(常照)스님 |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상조(常照)스님 |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상조(常照)스님 | 수원 보현포교당 |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
지도
- 증산사(경남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873)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