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스님(信典, 1934生, 비구니)
신전(信典)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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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신전(信典) |
법호 | |
속명 | 김인수(金仁洙) |
출생 | 1934.03.12. |
출가 | 1953년 |
입적 | |
사찰 | 대광사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315-84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신전(信典)스님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인재 양성에 공헌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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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 충남 서산 출생 |
1953 | 수덕사 견성암에서 범진(凡眞)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56 | 수덕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56 | 범어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71 | 대광사 창건 |
1987 | 대광사 중창 불사 |
2004 현재 | 대광사 주석 |
- 문중 : 육화(六和)문중
- 생활신조 : 깨달음을 위해 열심히 참선 정진하자.
- 수계제자 : 혜등·시견·묘진·향도·정민
활동 및 공헌
출가
신전(信典)스님은 1934년 3월 12일 동국대학교 초대 졸업생인 아버지 김진원(金鎭元)과 어머니 안영조 사이의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고 이름은 김인수이다. 스님의 집안은 대대로 학식이 있는 가문이었다. 스님의 사촌은 의사였고, 할아버지는 당진에서 알아주는 유지였다. 스님은 서산여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53년 봄 예산 수덕사 견성암에서 나이 20세에 출가했다. 스님은 처음부터 스님이 될 마음은 없었는데 6·25전쟁이 발발하자 스님의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부산에는 금천암에 어머니와 먼 친척뻘 되는 이모님이 살고 있었다. 스님은 출가 전에 그곳에서 초량동의 큰 수녀원에 다녔다. 당시 수녀원 원장은 미국 사람이었고, 스님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1년 가깝게 생활했다. 간호사로 근무했던 스님은 수녀원 원장의 권유로 유학을 다녀와서 수녀가 되어 가난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학사에 있던 이모 성진스님이 출가 권유로 수녀가 아니라 스님이 됐다. “내가 스님인데, 너도 스님을 하는 게 어떠냐? 집안에 종교가 다른 성직자가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스님은 이렇게 이모의 권유로 수덕사로 출가했다. 물론 스님이 출가를 한 이유가 단순히 성진스님의 권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간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스님은 이모와 각별한 정을 쌓아갔다. 스님은 항상 이모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고, '스님이 되면 다 저런 마음이 생기는 것인가? 나도 저런 마음을 갖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어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수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가 막상 견성암으로 출가한 신전스님은 수녀원과 다른 점이 너무 많아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는데 초하루 보름마다 금봉 노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길을 찾았다.
대광사 창건 및 인재양성
스님의 세수 37세에 학교에 다니기 위해 빈 절을 알아볼 때였다. 당시에는 빈 절들이 많았었다. 스님이 거처로 마땅한 장소를 찾다가 빈 움막을 발견했다. 그곳은 무당 이 구석에 부처님을 모시다가 나간 곳이었다. 온통 거미줄 투성이에 퀴퀴한 냄새와 썩어가는 그 구석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부처님을 저렇게 모셔 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스님은 쓰러져가는 빈 절을 수리하여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먼지를 걷어내고 나무를 구해다가 망가 진 곳을 때우는 등 나름대로 수리하여 깨끗하게 정리하여 3년간 부처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어떤 사람이 등기권리증을 갖고 와서 자기 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청천벽력 같은 말에 놀란 스님은 집주인이라는 사람에게 자신은 어차피 얼마 안 있어 수덕사로 갈테니 부처님만 모셔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렇지만 스님은 부처님을 지키기 위해서 집을 팔라고 제안했지만 터무니없는 값을 요구하며 거절당했다. 결국 스님은 법원에서 중재로 그 건물을 양도받아 스님은 절 이름을 '대광사' 라고 짓고 불사를 하며 살기 시작했다. 그때가 1971년이었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 새롭게 불사를 했다. 96평의 대지 위에 아스팔트로 땅을 깨끗이 정리하여 건물도 번듯하게 세우고 도로 불사도 했다. 5명의 아이들을 키워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일본 동경 유학생도 있고 출가하여 스님이 된 사람도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년, pp. 264~268)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년, p321)
- 웃음꽃 피는 쌍문3동 마을이야기(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2017ssm)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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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信典)스님 | 본항목 | 신전스님(信典, 1934生, 비구니) | 信典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신전스님(信典,_1934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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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信典)스님 | 육화문중(六和) | ~의 일원이다 | |
신전(信典)스님 | 수덕사 견성암 | ~에서 출가하다 | |
신전(信典)스님 | 범진스님(凡眞) | ~의 수계제자이다 | |
신전(信典)스님 | 석암스님(昔岩)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비구니계 |
신전(信典)스님 | 서울 대광사 | ~을(를) 창건하다 | |
신전(信典)스님 | 서울 대광사 | ~을(를) 중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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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대광사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315-8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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