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운스님(德雲, 1942生, 비구니)
덕운(德雲)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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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덕운(德雲) |
법호 | 고우(告佑) |
속명 | 임정자(林貞子) |
출생 | 1942.01.27. |
출가 | 1950년 |
입적 | |
사찰 | 송림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축산리 273-1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고우(告佑) 덕운(德雲)스님은 평생 기도정진으로 전법포교에 노력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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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 충남 연기 출생 |
1950 | 동학사 미타암에서 춘만(春萬)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55 | 동학사에서 경봉(鏡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58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59 | 동학사 강원 사교과 수료 |
1968 | 송림사 중창 불사 |
2022 | 송림사 회주 |
문중 | 삼현(三賢)문중 |
수행지침 | 염불수행, 무의무탁(無依無托)노인과 고아들에게 보시 |
저서및작품 | 서예(1987, 대전 송산서실) |
상훈 | 충남교육회장, 도지사상 외 다수 |
특기 | 서예 |
수계제자 | 혜진·혜일·혜공 |
활동 및 공헌
출가
고우(告佑) 덕운(德雲)스님은 1942년 충남 연기군 남면 양화리에서 아버지 임흥륜과 어머니 정복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부안이며, 이름은 임정자이다.
스님은 나이 겨우 다섯 살 때 불행히도 어머니를 여의게 된다. 당시 스님의 셋째 당숙이 동학사 큰절 노전으로 계셨는데, 그 인연으로 스님은 9세에 미타암 선방 공양주이셨던 춘만(春萬)스님을 은사로 삭발 출가했다. 은사스님은 성품이 매우 엄하셨다.
수학
덕운스님이 머물던 당시 미타사에는 부산 범어사 대성암에서 살다가 열반하신 만성(萬性)스님이 계셨다. 만성스님은 수덕사 만공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스님이었다.
그리고 서울 진관사 주지 진관(津寬)스님도 계셨다. 함께 수학한 스님들로는 청산(靑山)·인정(仁貞)·봉민(奉敏)·지현(智玄)·법전(法典)(길상암)·기복·일선(一善)·묘화(妙華)스님 등이 있다.
스님은 경봉(鏡峰)스님에게 처음 글을 배웠는데, 이때 화복스님과 화련스님, 피난을 내려온 보련각 사장 이봉수(李奉洙)씨가 함께 했다. 덕운스님은 이후 열여덟 살 때까지 경봉스님께 공부를 했다.
아홉 살부터 열 살까지 『초발심자경문』을 배운 스님은 열네 살에 큰절에서 혜묵스님을 수계사로 정하여 경봉스님에게 계를 받았다.
- 사진출처(덕운스님) : 붓다의 노래나라(다음카페) https://cafe.daum.net/nayuta2001
수행
어려운 시절, 스님은 탁발과 공부를 동시에 병행하는 고된 수행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때는 조석 예불에 대예참(大禮懺)을 했어요. 다기와 향로 닦기를 며칠씩 했는데, 늘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사서 공부하려고 신도안 쪽으로 탁발을 가기도 했지요. 용화사 아래 동네에서 좁쌀 한 주먹을 받고 다시 두계로 가서 고구마를 얻고 그랬습니다. 열네다섯 살 쯤에는 연산 양정 술도가 국회의원 집에서 염불을 하고 쌀 한 말 값을 받았는데, 그걸로 『도서』와 『서장』을 산 기억도 납니다. 쌀이 없어서 주로 쑥죽, 쑥개떡, 도토리밥, 고구마밥, 조밥 등으로 공양을 했어요. 추운 겨울에 조밥을 지을 때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지요. 좁쌀과 돌이 물에 같이 뜨면 찬물에 손을 담가 한 톨씩 골라내야 했거든요. 그때 하루가 멀다 하고 죽을 먹은 탓에 지금은 밥이 조금만 질어도 먹기가 힘들어요.”
여덟 살부터 열세 살까지 사시에 백팔 참회를 하고 참선을 하며 수행 정진을 하던 시절, 스님은 실컷 잠을 자는 게 소원이었다. 한번은 미타암 앞에 있는 개울에서 빨래를 하다가 조는 바람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다.
열세 살부터 열여덟 살 때까지는 밤낮없이 기도를 했다. 잠이 들지 않게 태징(金鼓)을 치고 북을 쳤다. 백일 씩 장좌기도(長坐祈禱)를 하기도 했다. 10월 보름에서 정월 보름까지,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 예순이 넘은 나이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을 하셨던 부전스님 덕분이었다. 부전스님은 덕운스님의 은사스님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당시 동학사는 관음암과 옛 옥천암의 물을 대나무 통으로 이어서 받아먹었는데, 대나무 통은 미타암과 길상암의 각 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미타암과 관음암은 정화시기부터 삼현문중이 포진하기 시작했다. 덕운스님 이후 조대현 스님이 주지로 오셨고, 지현, 지관, 성현스님이 큰절 소임을 맡았다. 결제 때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무불(無佛)스님과 운허(耘虛)스님이 와서 법문을 해주셨으며, 마곡사 용엄 노스님은 덕운스님을 무척 귀여워해주셨다.
덕운스님은 맨 처음 동학사로 들어서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양 길가에 줄지어 선 가로수가 서로 만나 터널을 만들어서 햇살 가득한 3월의 봄날에도 길이 어두웠다. 미타암은 숲속에 조그맣게 들어앉아 있었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발전했지만, 스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작고 소담했던 그 절집이 살아있다.
스님은 열다섯 살 무렵 부처님의 영험을 경험한 적이 있다.
“미타암에는 자그맣고 인자한 관음보살님이 계셨는데, 그 앞에서 밤새 기도를 하면 살며시 미소를 짓곤 하셨지요. 철불에 금동을 입힌 보살님이었는데, 어느 날 새벽 사라지고 말았지요. 관음보살님이 그립네요. 미타암에서 열심히 기도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요.”
은사스님을 25년 동안 시봉했던 덕운스님은 1968년 나이 27세에 현재의 송림사 중창 불사를 하여 25평 법당을 지었다.
스님은 2014년 송림사오층연화장금강보탑이라는 불탑을 건립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으며, 2017년 10월 송림사 불자들과 500여명의 사부중생이 참석하여 점안법회를 거행했다.
이 탑은 보물 제37호인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의 상륜부를 고증하여 석탑의 우아함과 불교의 깊은 진리를 조각하여 세웠다.
- 사진출처(송림사 오층연화장금강보탑) : 세종의 소리(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iota8903/222129210926
수계제자
송림사 회주 덕운스님의 수계제자로는 혜진·혜일·혜공스님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04~107.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76.
- 세종의 소리(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iota8903/222129210926
- 붓다의 노래나라(다음카페), https://cafe.daum.net/nayuta2001
- 한국전쟁 직후 비구니 스님 수행 모습 https://cafe.daum.net/jjj3752/8aGm/370?q=비구니&re=1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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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운(德雲)스님 | 본항목 | 덕운스님(德雲, 1942~) | 德雲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덕운스님(德雲,_1942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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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운(德雲)스님 | 삼현문중(三賢) | ~의 일원이다 | |
덕운(德雲)스님 | 춘만(春萬)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덕운(德雲)스님 | 공주 동학사 미타암 | ~에서 출가하다 | |
덕운(德雲)스님 | 경봉(鏡峰)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덕운(德雲)스님 |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덕운(德雲)스님 | 세종 송림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 |
덕운(德雲)스님 | 세종 송림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회주 |
덕운(德雲)스님 | 세종 송림사 | ~을(를) 중창하다 | |
덕운(德雲)스님 | 세종 송림사 | ~을(를) 설립(건립)하다 | 송림사오층연화장금강보탑 |
지도
- 송림사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축산리 273-1